기억 파단자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기억파단자-기억 추적 스릴러의 최고봉


 


어디에서 봤더라, 이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 꽤 기억에 남는 이름이었는지 낯익었다. 그리고 작가 소개에서 <장난감 수리공>으로 일본 호러 소설 대상 단편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보고 알아챘다. 1년 전쯤 굉장히 기억에 남는 호러소설이었기 때문에, 전개 방식과 이야기 내용 등 단 하나도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특유의 분위기와 문체, 그리고 독특한 전개에 순식간에 빨려들어 글을 읽었고 소설이 끝날 때쯤 온 몸에 소름이 돋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소설 한 편으로 그의 팬이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작가의 다른 작품 <앨리스 죽이기>는 읽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 파단자>를 읽고 난 지금은 <앨리스 죽이기>도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노트에 제목을 옮겨 적는 중이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인간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으니까.


고바야시 야스미의 소설에서는 그 어떤 호러 소설이나 스릴러, 또는 추리 소설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만의 무언가가 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홍채, 지문 등처럼 소설 여기저기에 온통 그만의 흔적과 지문이 찍혀있는 듯하다. <장난감 수리공>과 함께 실린 소설들을 읽은 이후로 그의 방식에 익숙해졌을 법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억 파단자>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다시 나를 소름돋게 만들었다. 절제된 표현과 잘 짜여진 구성 이외에도 곳곳에 숨겨져 있는 소름끼치는 요소들.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기억 파탄자>인 줄 알았다. 성격 파탄자처럼 기억이 파탄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파단자였다. 한국에서는 '파단'이라는 단어를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기 때문에 낯설었던 것이다. 기계에는 가끔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에서는 자주 쓰는 단어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제목처럼 기억이 순식간에 파단나고 마는 '전향성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나간다. <장난감 수리공>의 시작처럼 첫 페이지부터 이 책은 순식간에 독자를 빨아들인다. 경고!라는 문구에 나와 있는 주인공의 노트 첫 페이지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낯선 병명, 전향성 기억 상실증. 주인공인 타무리 니키치의 행동과 그가 평소에 꼼꼼히 작성해둔 노트를 따라가면 전향성 기억 상실증이란 어떤 증상을 나타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싸움에 휘말려 뇌를 다치는 바람에 이 병에 걸리게 된 것 같은 주인공. 독자는 순식간에 그가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는 환자라는 것을 파악하지만 주인공은 노트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걸 파악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린다. 노트에는 온갖 규칙과 주의사항으로 가득하지만 전향성 기억 상실증 환자를 위한 노트인 만큼 따라가기가 벅차지는 않는다. 자신의 상태를 누가 이용할까봐 노트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지 않았으며 문패도 없다. 집의 위치도 잊어버리므로 집의 위치는 물론이고 자주 가는 곳의 위치는 모두 지도가 첨부되어 있다. 일상 생활이 힘든 병이지만 다행히 보험금이 있어 당분간의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돈은 있는 듯 하다. 그냥 노트를 읽으며 특이한 병을 앓고 있는, 좀 불쌍해 보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가보다 했는데 마지막 문구는 호러 작가에 대한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나는 지금 살인마와 싸우고 있다.


이 한 마디 때문에 우리는, 특이한 병명의 환자 이야기인 줄 알았다가 순식간에 사건의 중심으로 나아간다. 미완성의 기억을 가진 주인공과 역시 뭔가 많이 허술한 기억 노트와 함께.


다음 챕터에는 바로 그 살인마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름은 키라 마츠오, 내키는 대로 행동하며 여자와 돈 모두 자신만의 초능력을 이용하여 강탈하는 사이코패스다. 놀랍게도 그가 힘을 쓰면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고 그의 말을 그대로 믿으며, 뭔가 수상쩍은 부분이 있더라도 알아서 그 부분을 메워넣는다. 소설은 키라와 타무라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하다가 절정으로 가까워질 수록 둘의 접점이 늘어난다. 키라가 초능력을 이용하여 마음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자라는 것을 타무라가 파악하는 과정, 왜 키라의 힘이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는지 알아내는 과정, 키라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 등이 챕터와 노트를 오가며 순식간에 펼쳐진다.  사실 페이지는 매우 긴데, 이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거의 쉬지 않고 순식간에 읽고 말 것이다. 기억을 조작하는 키라의 힘이 기억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는 타무라에게 통하지 않는 역설적인 점도 재미있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반복되면 독자들은 쉽게 질린다고, 이 책은 그 공식을 완전히 파괴했다.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타무라의 일상과 노트, 그리고 기억을 읽는데도 퍼즐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스릴러의 변주곡이 울려 퍼지면 독자는 완전히 이야기 속으로 파묻히고 만다. 또한 마지막의 숨은 반전, 이것은 안도의 한숨마저 빼았으며 더욱 독자를 소름끼치게 만든다.


최근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신나게 읽은 책,

추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고른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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