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새소설 1
배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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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시트콤-질풍노도의 시기, 십대여 마음껏 발버둥쳐라



어디선가 드라마나 소설에서 본 듯 하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이야기, 백민석 소설가가 손에서 놓을 수 없어 원고를 온갖 곳에 들고 다니며 읽었다는 이야기, 바로 자음과 모음 경장편 소설 수상작 <시트콤>이다. <시트콤>은 1990년 제주도 출생의 젊은 작가가 쓴 십대들의 이야기이다. 전교 1등인 연아가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숨 막히는 삶(타인의 의지대로만 사는 삶을 삶이라 부를 수 있다면)에서 탈출하고 싶어 벌이는 사건이 중심인데, 작가가 태어난 도시 '제주도'에서 한국 최대규모의 국제 학교 부지가 있으며 앞으로 더 확장될 것을 생각하면 뭔가 참 그렇다. 유흥 시설도 없고 부모가 차로 태워다주지 않으면 거의 번화가에도 갈 수 없는 환경, 참 가둬놓고 공부시키기 좋았다.


첫 전개는 그야말로 황당했다. 여자친구와 섹스 한 번 하고 싶어 다른 사람들이 찾지 않던 교실을 찾은 고등학생, 어떻게 거사를 치러 보려고 교복 셔츠까지 벗어 먼지를 털어내지만 갑작스럽게 들어온 선생님들 때문에 미처 바지 지퍼를 다 올리지도 못하고 테이블 아래로 숨는다. 겨우 나갈 수 있는 타이밍을 잡았나 했더니 역시 섹스를 하러 온 젊은 남녀 선생님들 때문에 무산된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생각하는 게 크게 다르지 않나보다. 하지만 그들도 연아의 담임교사와 연아의 어머니 상담때문에 테이블 밑으로 다급하게 숨게되고, 엉겹결에 넷은 테이블 밑에서 조우하게 된다.


그 이후로 쭉 이어지는 연아의 이야기. 연아는 그 고등학교의 전교 1등이며 시간이 가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단 한번도 엄마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다. 엄마가 학원 뺑뺑이를 돌리면 그렇게 했고 전교 1등을 하라면 역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강원도 철원에 있는 기숙학원을 가라고 통보받는 순간 반기를 든다. 과외와 학원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전국 모의고사1등 또는 서울대를 반드시 가기 위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을 연아가 정한 것이 아니라 늘 엄마가 정한다.  연아가 어떤 걸 잘 하고 어떤 게 부족한지 다 꿰뚫고 있다며 막무가내인 엄마, 아빠가 어떻게 말리려고 해 보지만 아빠의 목소리는 두 모녀의 설전에 허망하게 묻히고 만다.


   
   

내가 나 좋으라고 이래? 네가 서울대를 안 가면 뭘 어쩔 건데?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연예인처럼 예쁜 것도 아니고, 머리 좀 좋은 거 빼고는 네가 잘난게 뭐가 있냐고!


난 너 낳고 내 인생을 버렸어. 네가 태어난 날 이 엄만 죽었다고.


-시트콤 중 연아 엄마의 대사-

 
   

 

 


세상에 이렇게 현실적일 수가.

현재 어느 집 부모와 자녀가 싸우는 장면을 그대로 복사 붙여놓기 해 놓은 것 같다. 헛웃음을 치며 읽게 되는데, 어찌나 현실 반영을 잘 하는지 억지로 자녀 공부를 시키는 수많은 부모의 발언을 보는 줄 알았다. 대학 입학 전까지는 부모가 정해 놓은 길을 가라며 꼭두각시처럼 자녀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 <시트콤>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 엄마가 너무했네, 또는 이런 사람이 어디있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 자기가 이렇게 행동하는 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자녀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며 부모의 마지막 말엔 꼭 이런 말이 따라붙는다.


"다 너 좋으라고 이러는 거야."


연아 또한 이번에는 질 수 없는지 엄마의 김치싸다귀에도 강경하게 나간다. 집 있고 밥 먹여주고 등 따뜻하니 배가 불러 이런다는 엄마의 말에 김치에 절은 티셔츠를 입고 가출을 강행한 것! 지갑도 가지고 나오지 않아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겨우 택시비를 치르고 전혀 로열같지 않은 '로열 불가마방'에 머물게 된다. 과연 엄마와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한 십대 '연아'의 대결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트콤>의 책 뒤편에는 여러 소설가와 사회비평가의 멘트가 나와 있는데 그 중 박권일 씨가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데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십대 자녀가 있는 어느 집에서나 있는 일인데, 정말 이러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는지 결말도 기상천외한 방법을 이용한다. 바람직한 해결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아쉬웠으나 애초에 자신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부모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또 이런 방식으로 교육을 강요하는 부모가 이런 책을 굳이 찾아읽지 않으며 읽는다 하더라도 '소 귀에 경 읽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결론 방식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다만 이건 확실하다, <시트콤>을 쓴 배준 작가는 어떤 10대 시절을 보냈을지 매우 궁금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며 10대를 보냈기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어렵고 따분한 건 질색이라 재미를 먼저 생각했다는 작가의 말, 실제로 <시트콤>이라는 소설은 가볍고 재미있지만  메시지는 확실히 담았다.


빨리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 싶은 한국 학부모님들, 이 책 좀 읽으세요. 재미있고 따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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