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리뷰]서재를 떠나보내며-책덕후의 책에 대한 연가


 


여기 어쩔 수 없는 개인의 사정으로 소중히 모아온 책들을 깜깜한 상자에 가둘 수 밖에 없었던 독서광이 있다. 어린 시절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났고 시력을 잃어가던 그에게 책을 읽어준 이후 평생을 독서가, 장서가로 살아왔다. 또한 그는 <밤의 도서관>, <독서 일기> 등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자신의 서재를 잃고 책들에게 바치는 <서재를 떠나보내며>를 썼다. 하나하나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을 장서들을 무미건조한, 특색없는 상자에 쌓아 넣으면서 그는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은 책들을 위한 책이자 자신의 텅 빈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나 또한 전문적인 책 수집가는 아니지만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디선가 책을 모으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말을 들었는데 한 부류는 수집하기 위해 모으는 사람이고 다른 부류는 읽기 위해 모으는 사람이었다. 전자는 책을 최대한 깔끔하게 보관하는 것이 우선 순위라서 책의 비닐 커버도 벗기지 않고 고이 보관해두는 경우가 많다. 나는 주로 수집하기보다는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수집용으로 산 책은 거의 없으며 모두 읽기 위한 책이니까. 책을 함부로 던지거나 굴리지 않으며 책을 읽을 때에도 책 장이 구겨지거나 접힐까봐 소중히 대한다. 내가 자주 머무는 자리에는 어디에나 책을 두고 싶어하며, 아무것도 읽지 않은 날에는 뭔가 서운하다. 항상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 안에는 사고 싶은 책들이 한가득 담겨 있으며 매 달 상당한 양의 책을 구입한다. 그러다 보니 책장에는 책이 꽉꽉 차 있어서 틈새 여기 저기에 책들이 들어가 있다. 언젠가는 제 자리를 마련해 주리라 약속하면서, 임시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다.


나처럼 책을 좋아하여 서재가 책으로 꽉 찬 사람들은 모두 <서재를 떠나보내며>를 읽고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우주의 도서관에는 모든 독자를 위한 책이 적어도 한 권은 있다. 그러나 아무 책이나 그 한 권의 책이 될 수는 없고 또 모든 책이 모든 독자를 위해 집필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서문 중에서-

 

그가 책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에 공감하고, 다른 사람의 애독서 목록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며 또 그 사람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여부도 판단한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유치하다고 폄하(읽어 봤는지 그 여부도 불투명하다)한다면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읽은 흔적은 하나 없고 보여주기 위한 책들(수집용도 아님)로 가득찬 서재를 마주하면 차라리 텅 빈 책장에 두어 권의 책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며, 내 취향과 비슷한 또는 내 취향은 아니지만 충분히 존중할 만한 책들이 꽃혀 있는 것을 볼 때 호감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책을 우주에 비유한 것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우주를 가지고 있고, 다른 도서관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 그가 자신이 가졌던 마지막 도서관에 대해 읽고 잠이 들었다. 내 꿈 속에서 나만의 도서관이 나왔다. 도시 근교의 한적한 곳에 넓은 정원을 가진 아담한 집이 있었고, 서재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어 녹음이 짙은 정원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서재 안에서 나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모여 한적하게 차와 다과를 나누며 이야기할 수 있었고 방의 삼면에는 온통 책이 가득했다. 창문을 열면 싱그러운 초목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시끄러운 경적소리, 공사장 소리 등 도시에서 겪는 소음들이 전혀 없었다. 창을 가리는 높다란 건물도 없어 이 층에 올라가면 바깥 정경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서재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읽고 잠이 드니 나도 모르게 내가 그리던 꿈의 서재를 보았나 보다. 꿈에서 깨고나니 저자는 정말 마음에 들었던 서재를 잃고 나서 그 마음이 얼마나 비통했을지 이해가 갔다.


<서재를 떠나보내며>를 읽으면 읽을 수록 그가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가 얼마나 방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세계의 작가들이 쓴 온갖 유명한 책들이 줄줄이 흘러나왔고 그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감상들이 애틋하게 이어졌다. 번역본과 텍스트 초고에 대한 의견도 흥미로웠으며 때때로 고전을 이용한 비유법과 책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재미있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서재를 떠나보내며>를 읽으며 책에 대한 작가의 연가를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가 부르는 연가와 어떻게 다른지, 내가 가지고 있는 우주의 도서관을 떠올리면서 읽는다면 훌륭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