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엑시트/황선미-소녀에게 행복으로의 출구는 있을까?
황선미 작가는 여러 작품을 통해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뤄왔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는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고 싶어 양계장에서 나왔고, <빈 집에 온 손님>에서는 엄마가 외출한 후 비를 뚫고 온 외부인에게 아이들이 따뜻한 배려를 베푸는 이야기를 했다. 이번 청소년 소설 <엑시트>는 소녀이자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로 세상에 존재하지만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아이들, 미혼모에 대한 소설이다.
장미, 이 어여쁜 꽃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는 한번도 엄마와 아빠의 손길을 느껴본 적이 없다. 너 때문에 부모가 도망갔다는, 할머니의 구박 속에서 애정을 갈구하며 물질적 혜택을 받지 못하며 자랐고 할머니가 없어지고 나서는 고모의 차가운 눈초리 속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학교를 다녔다. 어른들에게서 한 톨의 애정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애정을 갈구하느라 갖가지 알바를 하며 학교생활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 와중에 반해버린 친구의 남자친구 J.
처음으로 이성을 좋아한다는 감정을 깨닫고 그걸 밝혔을 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성폭행이었다. 삐끗, 고작 한 걸음 잘못 디뎠을 뿐인데 어른들의 울타리가 없는 이 소녀는 곧장 낭떠러지로 직행하고 말았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아이들의 삶이 망가지는 것은 너무나 쉽고 평범한 일이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품고 있어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그게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J는 교모하게 그 사실을 이용했다. 거듭되는 성폭행으로 '하티'를 낳게 된 장미, 미혼모 센터에 가게 되지만 거기에 있는 어른들은 모두 장미에게 아이를 입양보내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장미는 그 곳에서 알게 된 진주의 집에서 하티와 함께 신세를 진다.
센터처럼 무료로 지원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장미는 하티와 자신의 생계를 잇기 위해 사진관에서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으며 '막내'로 일하게 된다. 막내가 된 장미는 사진관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을 때 아이들을 어르고 돌보는 일을 떠맡는다. 그럴 때마다 구토감이 올라오지만 돈을 위해 꾹 참는다. 모든 걸음걸이가 위태롭지만 집에 있는 하티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간다. 곰팡내가 나는 방에서 하티의 피부병은 점점 심해지고 돈이 떨어지는 속도는 빠르다.
사진관 사장은 본인의 허영을 채우고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입양인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장미는 시급도 없이 일감이 늘어나는 그 날이 마땅치 않다. 게다가 동호회 사람 중 한 명이 장미를 아는 것 같다고 사장에게 언급하고 장미는 애써 잡아떼지만 아는 누군가를 마주칠까봐 불안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출구 없는, 커다란 검은 구멍을 가지고 있는 듯한 장미의 인생. 과연 그녀에게 행복으로 가는 출구는 존재할까? 장미에게, 넌 나쁜 게 아니라 아픈 거라고 말해 줄 어른이 어디엔가 있을까?
작가는 문단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입양인, 입양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났고 그럴 때마다 불편하고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현재도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보내고 있고, 그 입양인들이 한국에 돌아와 부모를 찾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전쟁 때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가난해서... 그리고 지금은 충분히 안전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사회의 안전망 밖에 있다. 미혼모는 여전히 치명적인 주홍글씨이며, 출산률이 아무리 낮아도 이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만한 장치를 만들기보다는 시설에 아이를 보내고 입양시키게 한다. 어디서부터 이 커다란 구멍이 시작되었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이 검은 구멍이 메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