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더 레터 - 편지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사이먼 가필드 지음, 김영선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리뷰]투 더 레터 To The Letter-편지에 대한 낭만


가끔 이메일과 핸드폰이 없어서 아직도 편지를 보내는 시대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핸드폰과 컴퓨터를 접해 온 세대는 상상할 수도 없는, 편지를 주고 받는 추억.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메일은 종이로 된 편지보다 더 영구적으로 활자를 보존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인터넷을 통해 나에게 온 편지를 더 보존하지 못한다. 이메일로 주고 받은 편지들을 보고, 자녀들이 부모님 연애의 구구절절함을 안다든가 친구와의 우정을 나눈 흔적을 본다든가 이런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이메일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고, 다시 종이편지로 회귀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종이 편지에 대한 추억과 낭만이  떠오르며 종이 편지가 애타게 그리워진다. 그래서 <투 더 레터>라는 제목을 봤을 때,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세계와 그 안에서 개인이 한 역할을

이렇듯 직접적이고, 이렇듯 강렬하고, 이렇듯 솔직하게

그리고 이렇듯 매력적으로 되살릴 방법이 달리 무엇일까?

오직 편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이먼 가필드-


<투 더 레터>는 저자가 세기의 마술사 밸 워커의 편지를 경매받기 위해 경매 장소로 출발하면서 시작된다. 우리는 편지를 보고 그 사람의 자취를 밟을 수 있고, 그 사람이 살던 세계를 훔쳐볼 수 있다. 편지(예전의 의미로써 편지)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이 책은 그저 과거를 그리워하는 회고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겠으나, 그러기엔 세상의 수많은 편지들에 담긴 감정과 인생과 낭만이 넘쳐 흐른다. 프롤로그를 대신하는 편지에 대한 글에서 저자는 오스카 와일드의, 편지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재미있게도 그는 재능을 발휘하는 데 너무 바빠서 편지를 썼지만 우편으로 부치지 않았다. 우표만 붙이고 창 밖으로 던져버렸는데, 이는 길을 지나던 누군가가 편지를 발견하고 부쳐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모든 편지가 부쳐진 것은 아니었겠지만 상당한 편지가 부쳐졌을 거라고 예측하는데, 왜냐하면 오스카 와일드가 이 방법을 계속 사용했고 그가 이런 식으로 보낸 상당수의 편지가 경매에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투 더 레터>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편지들을 다뤘는데, 그 중에서 내가 흥미를 가졌던 몇몇 편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 공부를 열심히 하자고 결의를 맺은 신라 시대의 임신서기석이 있다면, 서양에는 고대 로마 시대에 주고 받았던 나뭇조각에 쓴 편지들이 있다. 철학적인 내용이 있는 게 아니고 일상 메시지에 가까운 이 편지들은 라틴어로 적혀 있었고 이 편지들을 통해 우리는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추정할 수 있다. 로마 요새인 빈돌라다 병사들은 많은 싸움에 휘말렸으며 왕에게 맥주가 떨어졌다며 맥주를 더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물자를 살 자금을 부탁하는 편지도 있으며 생일 파티에 친구를 초대하기도 했다. 편지는 이렇게 과거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며, 인간의 보편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편지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 연애편지. 역시 <투 더 레터>에서도 연애 편지에 대한 내용을 빠뜨리지 않았다. 사랑과 여행의 증거가 되었던 편지를 통해 플리니우스가 세 번째 아내 칼푸르니아에게 품은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으며 12세기 수도사의 격정적인 사랑과 14세기 학자이자 시인이며 최초의 문인이었던 페트라르카의 여행기를 볼 수도 있다.


<투 더 레터>는 우편 서비스가 개선된 과정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현대적인 정기 우편 서비스는 16세기에 발달하기 시작했다. 바로 세기의 러브 스토리, 사랑에 빠진 헨리 8세가 앤 불린에게 연애 편지를 쓰기 위해 우편제도를 개선했던 것이다.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는 앤 불린에게 푹 빠진 헨리 8세가 쓴 열렬한 편지는 당시 그의 마음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서양에서 우편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편지를 쓰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가 나오기도 했는데 <완벽한 여성 편지작가>도 그 중 하나이다. 딸, 아내, 지인 등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모든 주제에 대한 편지 쓰는 법을 소개했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편지 예시도 있다. 바로 불륜에 대한 편지이다! 남자가 전날 밤 외도를 했다고 의심하는 여인이 쓴 편지와 불륜을 의심받은 여인이 쓴 편지이다. 그 외에 싫어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인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도 있다. 이런 예시가 있다는 것은, 실제 편지에 이런 내용을 담기도 했다는 것인데 자극적인 내용을 고상하게 풀어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엿보인다.


이 외에도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쓴 열정적인 연애편지, 전쟁을 치르며 병사가 보낸 편지, 청혼을 하는 편지 등 사람들의 생활상이 담긴 온갖 편지들이 나를 그들의 삶으로 이끌었다. 온갖 시대의 다양한 삶들을 보면서 편지 안에 흐르는 낭만과 매력과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종이 편지를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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