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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신화여행 - 신화, 아주 오래된 이야기
김헌선 외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3월
평점 :
[리뷰]중동신화여행-낯선 중동의 신화 속으로 빠져보자
어릴 때 내가 알던 신화는 단군신화와 한국의 옛이야기들, 그리고 그리스로마 신화가 전부였다. 단군신화를 읽고 나서는 굉장히 아리송한 기분이었고(왜 꼭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가, 동물에게 그런 욕구가 있을까, 만약 그렇다 해도 그 당시엔 곰이나 호랑이같은 맹수가 인간보다 강했을텐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고서는 인간보다 강한 불사의 몸으로, 인간보다 더 격정적으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신들의 모습에 재미와 충격을 동시에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한참 후, <람세스>를 통해 이집트 신화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엔 그리스로마신화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북유럽 신화를 읽고 나서는 더욱 더 신화에 빠져들었다. 이후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원작을 쓴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시리즈 소설을 모두 읽은 후에는 뱀파이어의 원류를 이집트 신화에서 찾았다는 것을 보고 신화를 이렇게 차용할 수 있다는 것에 전율을 느꼈다.
나는 신화가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갖는 측면은, 신화가 갖는 이야기의 힘이다. 인간의 뇌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항상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퍼뜨린다. 신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원조이자 그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적 발판이다. 그래서 현대 작가가 쓴 이야기들 중 많은 것들은, 특히 구조가 매우 탄탄한 것들은 신화를 밑바탕에 두고 있는 것들이 많다. 사람들은 신화를 배경으로 하거나 신화를 차용하고 있는 작품을 읽을 때 쉽게 수긍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신화와 옛이야기가 침략의 역사를 겪으며 사라진 것이 매우 아쉽다.
<중동 신화 여행>은 상대적으로 우리가 낯설게 느끼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현재 중동은 상처가 끊이지 않는 땅이지만 인류최조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탄생시킨 곳이며 한때 가장 강성한 문화의 꽃을 피운 곳이다. 그래서 저자는 <중동 신화 여행>이 인류 최초의 기억을 찾아가는 여행이라 하였다.
사막은 아무리 뜨거운 화공 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별밤을 선사하고, 티그리스 강은 아무리 많은 시체를 흘려보내고도 여전히 살아남은 연인들에게 다시 또 사랑의 산책로를 선사한다.
-본문 중에서-
<중동 신화 여행>은 7명의 신화 전문가가 신화에 대해서 강의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신화와 서사시를 보는 시각부터 시작하여 이집트 오시리스 신화, 수메르 엔키신화, 여신 이난나, 길가메시 이야기, 바빌로니아의 창세신화 에누마 엘리쉬 등으로 이어진다. 강의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장점과 단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장점은 강의자의 특성이 진하게 드러나는 글을, 신화의 주제에 맞춰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전문용어가 많이 쓰였으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전반적인 신화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본다면 정신이 분산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전체적 틀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낯선 나라의 신화에 대한(교양강의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느꼈다.) 내용을 주제에 따라 이것저것 보게 되므로 혼란스러울 수 있다.
<중동 신화 여행>에서 흥미로웠던 점들은 몇몇 저자들이 중동신화를 우리나라의 신화와 비교하면서 주제에 따라 제시했다는 점이었다. 특히 제주도의 사례를 기준으로 삼아 한국과 어마어마하게 떨어진 중동의 신화를 분석했다는 점이 낯설었다. 이집트 오시리스 신화는 워낙 다양한 이집트 배경 소설에서 다뤄졌기 때문에 친숙한 친구를 보는 느낌이었으며, 저승여행을 다녀온 여신 이난나에 대한 이야기는 여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세계적으로 삭제되고 축소된 상태에서 수메르신화의 '이난나'는 강인하고 현명하며 욕망이 강한 여신으로 살아남았다는 점(물론 이난나 여신도 많은 시련을 겪었다)에서 인상 깊었다. 원래 많은 신화들이 초기에는 여성신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나 고대 도시 사회로 이전되면서 남성신으로 권력이 이양되었고 오랜 세월동안 남성지배적인 세상이 지속되면서 여성신들의 흔적은 점점 옅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난나 신화를 보면, 과거 여성신들이 어떤 면모로 그려졌는지 그 위상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쭈욱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로서의 신화보다는, 중동신화를 주제에 따라 분석하는 관점에서 다루었으므로 중동신화를 전반적으로 가볍게 살펴본 뒤 읽을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