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곳간들을 헐어 내리라 / 부자에 관한 강해 / 기근과 가뭄 때 행한 강해 / 고리대금업자 반박 그리스도교 신앙 원천 1
한국교부학연구회, 노성기 역주 / 분도출판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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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심에 사로잡힌 자들의 가장 큰 죄악은 타인을 향한 무관심입니다. 재물에 온통 관심을 쏟느라 이웃의 아픔과 신음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에도 더 가지지 못하여 안달합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아주 적은 것에 대해 질투하며,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돈이 중요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생기는 손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그 손실을 줄이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정작 다른 사람에게 더 큰 불이익이 있음에도 말입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작은 고통을 겪기 싫어서 타인에게 아주 큰 아픔을 던져줍니다.


세례 후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 대 바실리우스는 자신의 강해를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합니다. 『내 곳간들을 헐어 내리라/부자에 관한 강해/기근과 가뭄 때 행한 강해/고리대금업자 반박』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아끼는 바실리우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강해입니다.


재산은 본디 흘러갈 때에만 이롭게 작용합니다. 입구는 두고 출구를 막아버린다면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나를 위해 엄청난 재산을 쌓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허락하신 것은 타인을 돕고 섬기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것을 자신이 가진 것이 왜 부당한 일인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본디 빈손으로 온 우리가 무엇인가를 소유한 것은 은혜임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들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모든 순간들 가운데 하나님의 선물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는 탐욕입니다. 충분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설교자는 그러한 사람이 바로 강도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힐 수 있음에도 입히지 않는 사람이 강도라는 것입니다. 굶주린 자를 먹일 수 있음에도 먹이지 않았기에 그는 강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심판이 있을 것인데 그때의 판가름은 무엇인가를 훔친 것에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않은 것에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지 않았음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선을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물어보실 것입니다.


바실리우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가 사랑이 있다고 말하면서 부자라면 무엇인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이웃을 사랑한다면 나의 재산을 적극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돌보기 위해 나눌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는 매우 신비합니다. 흘러가게 놓아주면 다시 돌아옵니다. 나를 위해 쌓아두면 흩어져 버립니다. 실상 우리는 이미 우리가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습니다. 악한 세력은 우리를 속입니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행복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야만 참된 만족이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만족은 돈이 아닌 이웃을 섬기는 삶에 있습니다. 결국 사람인 것이죠.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돌볼 수 있습니다. 나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참 만족이 없습니다. 너를 바라보며, 너를 들으며, 너에게 손 내밀 때 그때에야 나에게 마르지 않은 풍성한 평안이 주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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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함락 후 일주일
벤 위더링턴 3세 지음, 왕인성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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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체성은 인생의 크나큰 사건을 경험할 때 흔들리게 됩니다. 존재의 기반이 되는 관계와 공간의 상실은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합니다. 더군다나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닌 외부적인 사건과 사고로 인한 우리 삶의 변화는 오랫동안 구축했던 세계관까지도 변화시킵니다.


유대인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의 함락은 그동안 유지했던 자신들의 종교적이며 문화적인 전부가 없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있어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종교적, 사회적, 역사적인 중심이었으며, 신비롭고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예수가 오시기 전부터 유대인들의 항쟁은 있어 왔습니다. 로마에게 있어 그들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자신들만의 뚜렷한 종교적 색채를 유지하기 원하는 유대인들에게 더 이상의 관용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열심당원의 계속된 반란과 봉기는 로마군의 공격을 더욱 가속화했습니다.


신약학자인 벤 위더링턴 3세(Ben Witherington III)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예루살렘 함락의 현장을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 당시의 그곳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곳의 참담한 모습과 유대인들의 절망을 몸소 경험하게 됩니다.


저자는 성경 텍스트 이면의 배경을 능숙하게 살려냅니다. 그리하여 보다 더 성경을 입체감 있게 그려냅니다. 예수님을 만난 많은 사람에게 그 만남이 어떤 의미였는지가 더욱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예수님의 존재와 삶을 깊숙하게 경험합니다.


예루살렘의 함락은 단순하게 슬픈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들의 세계관이 붕괴되는 기막힌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유대 민족의 세상은 확실하게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경고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그 순간에서도 소망을 엿보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비록 겉으로는 실패로 보일지 모르나, 새로운 유익을 허락하는 듯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벽 끝에 다다른 듯 보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모호한 고통과 핍박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장면들 가운데 선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또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는 그분의 섭리가 있음을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이야기에 희망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죽은 것만 같은 삶에 여전히 생명이 있음을, 오히려 더욱 크고 강한 또 다른 힘이 작용함을 경험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결코 하나님은 우리를 그저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살리셨던 하나님께서는 우리 또한 살리실 것입니다.


불확실할 때가 더 많아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신뢰하며, 그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두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또다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결국은 우리를 통해 일하신 그분을 신뢰하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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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D] 삼위일체
로저 E. 올슨 외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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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들이 있습니다. 그 단어 자체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이미 잠재되어 있는 것들이죠. 특별히 삼위일체 교리는 복음과 구원에 있어 중차대한 교리입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정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교리는 매우 난해합니다. 하나님을 정의한다는 것도 어려운데, 세 분 하나님의 일치와 연합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리하여 어거스틴을 비롯한 많은 신학자들도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토로했습니다.


로저 E. 올슨(Roger E. Olson)과 크리스토퍼 홀(Christopher A. Hall)은 기독교의 핵심적 교리인 삼위일체에 대해 간결하게 정리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삼위일체』를 통해 기독교 역사에서 삼위일체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확장되며, 정리되어 왔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이미 성경의 많은 구절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양한 방법으로 증언합니다. 저자들은 구약과 신약을 통해 드러난 삼위일체 하나님을 살펴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보내시며,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이 부여하는 과제를 가지게 됩니다. 결국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은 삼위일체 교리의 방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삼위일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위험성은 다시금 우리를 삼위일체 교리로 향하게 합니다.


많은 이단들의 공격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설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열린 논쟁의 결과가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작 삼위일체를 발전시켰던 교회의 교부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교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계시를 해석하고 주석했을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삼위일체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본질과 세 위격에 대한 교리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존재이자 하나의 실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 위격은 세 현존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요. 하나의 실체는 본질적인 특성을 나누는 것을 뜻합니다. 세 위격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갖는 구별을 의미합니다.


복음과 구원에 있어 삼위일체 교리는 그 뿌리와 같습니다. 우리의 복음과 구원에 있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하심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내적 속성과 관계성이 없다면, 하나님의 일하심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즉 사랑의 하나님, 관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내적 속성이 전제되어야만, 세상 가운데 사랑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와 관계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영원한 신적 교제 안에서 이미 드러나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교부 시대와 중세, 종교개혁, 현대에 이르기까지 삼위일체 교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의 역사를 통해 삼위일체를 조금 더 실제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그리하여 삼위일체가 그저 명제적 성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매우 실제적인 교리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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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e Words - 잠언이 들려주는 18가지 지혜의 이야기
피터 J. 레이하르트 지음, 안송희.조성희.안정진 옮김 / 세움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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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사건들을 연달아 겪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반응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면서 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분은 참으로 지혜롭구나, 혹은 저분은 지혜롭지 못하구나'를 떠올리게 된 것이죠.


지혜로운 분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자신이 겪게 될 불이익이 있을 수 있지만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신의 신념이 일관되며, 정직했습니다. 힘든 와중에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결국 타인을 향한 관심이었습니다.


반대로 우매한 자들은 자신의 욕망 앞에 말을 바꾸고, 자신을 지키려는데 온 힘을 쏟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말을 많이 하지만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약속을 떠올리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쫓는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타인을 향해 무관심했습니다.


여러 사건들이 겹쳐지며 입체적인 지혜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 사람이 쌓아 올린 서사는 그 사람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이야기는 불명확한 개념을 분명하게 만들어줍니다. 어렴풋하여 잡히지 않는 개념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줍니다.


탁월한 신학자이자 이야기꾼이기도 한 피터 레이하트(Peter J. Leithart). 저자를 통해 성경의 텍스트는 보다 풍성해지며, 새로운 관점을 제공합니다. 이 책 『Wise Words』를 통해 독자는 다양한 지혜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하여 지혜에 대해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저자는 지혜를 찾아가는 18편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잠언의 말씀은 저자의 문학적 상상력과 함께 우리에게 더욱 친밀하게 다가옵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지혜의 여러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총합을 통해 우리는 어렴풋했던 지혜의 실체를 조금씩 보게 됩니다.


저자가 들려주는 각각의 이야기에는 성경의 큰 이야기가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성경의 말씀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주듯 저자는 따뜻하고도 친절하게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다양한 지혜를 들으며,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꿈을 꿉니다. 여러 서사를 통해 경험했던 참 지혜자의 모습을 본받고 싶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려놓는 지혜자가 되고 싶습니다. 때로는 누군가 오해할 수 있지만, 끝까지 한 사람을 보호하는 참 지혜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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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다시 묻다 - 복음의 소식을 다시 듣기 비아 제안들 시리즈
크리스토퍼 모스 지음, 윤상필 옮김 / 비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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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우리의 세계관으로 어떠한 단어를 정의하곤 합니다. 기존의 관점이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본래 전하려는 메시지를 퇴색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질문을 던지며, 전혀 모른다는 마음으로 새롭게 배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기존에 자주 사용했던 용어의 경우, 짧은 단어에 내포된 의미가 매우 다양해집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부여하는 정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텍스트 자체의 문맥과 더불어 역사 속에서의 여러 논의들은 우리를 풍성하게도 하지만, 혼란스럽게도 합니다.


신학자이자 감리교 목사인 크리스토퍼 모스(Christopher Morse)는 이 책 『천국을 다시 묻다』를 통해,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천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천국'이라는 단어야말로 학계에서의 논의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의미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천국'을 내세와 연결시킵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의 방법은 다를 수 있겠지만, '죽어서 가는 좋은 곳' 기본적인 이미지는 비슷합니다. 지옥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즐겁고 화평한 곳, 행복한 곳이라는 환상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성경에서 반복하고 있는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복음이 증언하는 천국은 죽음 이후의 삶과는 무관합니다. 성경에서 600회 이상 언급하는 '천국'은 물리적 하늘이나 사후세계로 환원해 해석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저자는 복음이라는 맥락에서 천국은 우리가 가는 장소가 아니라 오는 무엇이라고 강조합니다. 죽고 나서 가는 내세가 아니라 지금 그리고 이곳에서 누리는 생명에 관한 무언가입니다. 무시간적인 정적 상태가 아니라, 때에 따라 발생하는 역동적인 사건입니다.


저자는 '천국'에 관한 신학적 담론을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이러한 탐구들은 크게 네 가지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성경에서 말하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둘째는 '신화'로 들어야 한다는 견해이며, 셋째는 '사화'로 들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마지막으로 '약속'으로 듣자는 견해입니다.


각각의 견해에서 다양한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논리에 근거해 천국에 대해 논합니다. 요하네스 바이스, 알베르트 슈바이처, 프란츠 오버베크는 천국에 관련해서 문제를 제기한 인물들이지요. 이후 루돌프 불트만과 폴 틸리히, 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은 이러한 논의를 더욱 확장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습니다.


복음의 맥락에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침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자를 통해 다양한 신학자와 조우하며 '지금, 이 땅'에서의 천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현실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결국 복음을 재정의하고 보다 더 명확한 의미를 추구하는 이유는 복음 자체가 가진 능력 때문입니다. 본래의 의도를 알게 되었을 때 경험하는 그 단어의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즉, 추상적인 문장이 구체적 실제가 되어, 우리의 존재와 삶을 움직이게 됩니다.


참된 복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윤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땅으로 침투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규정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도전합니다. 현재하는 참 희망을 누리며, 그 풍성함을 다른 사람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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