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가 창작의 근간이 된다는 말은 흔하지만 사실 일기가 시나 소설이 되지 않아도 좋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인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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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역사‘라는 명칭은 창세기의 가장 첫 장들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고대근동에 만연했던 기성 신화의 복제품이 아니며, 동시에 오늘날처럼 정확한 사실(fact) 기록으로서의 역사도 아닌, 이후에 전개될 모든 역사의 ‘근원‘이 된 이야기임을 천명하는 용어입니다. - P11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담고 있는 동시에 엄연히 시공간적 제약 속에 탄생한 문서라는 사실입니다. 그 주제와 핵심 내용에 있어서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는 성경의 기자(혹은 편지자)로 불리는 고대인들의 여러 한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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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글 쓰는 주체의 개인적 특성을 잘 드러냈느냐가 관건일 뿐, 정답 같은 건 꿈에서조차 있을 수 없는 것이 글쓰기라는 장르의 본질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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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즐거움 - 지적 흥분을 부르는 천진한 어른의 공부 이야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유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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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많이 알게 되는 일일까요.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모르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되는 일일까요.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모른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서, 부족해 보일까 봐, 뒤처진 사람처럼 보일까 봐, 아는 척으로 자신을 지키려 했던 때가요.


그런데 우치다 다쓰루의 『무지의 즐거움』을 읽으면서, 그 조급한 마음을 천천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한국의 출판사 유유가 직접 기획하고, 한국의 편집자와 번역자가 던진 질문에 우치다 다쓰루가 답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더 인상적인 건 책의 형식입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진 스물다섯 개의 질문이 저자에게 건네지고, 그는 그 질문들을 붙들고 자신의 사유를 천천히 풀어냅니다.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배움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읽다 보면 어려운 사상을 배운다는 느낌보다, 깊고 유쾌한 어른과 긴 저녁을 보내는 느낌이 듭니다. 책의 제목인 『무지의 즐거움』은 결국 배움의 즐거움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모른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저자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배움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넓고 아직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은 절망의 이유가 아니라 기쁨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남아 있다는 말은 아직 만날 세계가 남아 있고, 아직 새롭게 변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모호함과 무지를 견디는 힘을 ‘지적 폐활량’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이 한참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지성은 많은 지식을 쌓는 능력만이 아니라, 아직 알 수 없는 것을 품고 버티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답을 서둘러 확정하지 않고, 낯선 질문 앞에서 숨을 고르며, 모른다는 사실 속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 힘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어른에게 필요한 공부의 태도일지 모릅니다. 책이 말하는 어른의 공부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기 위해 배우지만, 어른은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배웁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생각이 굳어지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을 새롭게 조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미 익숙해진 판단, 오래된 습관, 굳어진 확신을 조금씩 흔들어 보는 일 속에서 어른의 배움은 다시 시작됩니다. 특히 좋았던 건, 노화와 신체의 변화까지 배움의 자리로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은 대개 상실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 변화 속에서도 새로운 감각을 익히는 길을 찾습니다.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을 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이해하게 됩니다. 예전처럼 빠르게 판단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더 천천히 보고 듣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이 책은 개인의 배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길가에 피어난 꽃, 바람의 온도, 몸의 작은 변화에서 출발한 사유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혐오, 공동의 자산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우치다 다쓰루의 글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철학이 아닙니다. 그는 선과 악이 뒤섞인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그 답을 일상을 감지하는 섬세한 태도 속에서 찾아갑니다.


『무지의 즐거움』을 읽으며,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많은 답을 가진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좋은 어른은 질문 앞에서 닫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낯선 세계 앞에서 다시 배우려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확신을 절대화하지 않고, 아직 이해하지 못한 타인의 자리와 세상의 복잡함 앞에서 조금 더 오래 숨을 고르는 사람입니다.


이 책은 지적인 자극을 주는 동시에 마음을 가볍게 해 줍니다. 모른다는 사실이 더 이상 수치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건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뜻이고,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건 아직 내가 새로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처럼, 무지는 두려움이 아니라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천진한 노학자가 건네는 유쾌한 인생 공부의 초대장. 배움이 성취의 도구로만 여겨지는 시대에, 이 책은 배움 자체가 삶을 넓히는 기쁨임을 다시 일깨워 줍니다. 모르는 만큼 우리는 다시 물을 수 있고, 묻는 만큼 다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배움이 필요하다는 말은, 결국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자랄 수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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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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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봄이었습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마주 앉았던 그날, 전 세계는 숨을 죽이고 바둑판을 바라보았습니다. 인간 최고의 기사가 다섯 번의 대국 중 단 한 번만 승리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오래도록 다시 보기 어려운 장면이 될 줄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는 바로 그 충격 이후의 시간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책입니다. 이 책은 AI가 얼마나 뛰어난 기술인지를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압도적인 기술 앞에서 인간의 자부심과 권위와 존재감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차갑고도 선명하게 기록합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쓸쓸하게 다가온 장면은 바둑 해설자의 자리였습니다. 한때 해설자는 오랜 경험과 직관으로 수의 의미를 풀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사람은 해설자의 판단보다 화면 한쪽에 뜨는 AI 추천 수와 승률 그래프를 먼저 신뢰합니다.


수십 년 동안 쌓아 올린 베테랑의 감각이 기계의 수치 앞에서 너무 쉽게 밀려나는 모습은 묘한 감정을 남깁니다. 알파고 이후 프로기사들의 일자리가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평생 바쳐 온 실력의 가치와 직업적 긍지, 바둑을 향한 대중의 존중은 이전과 같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이 붙드는 핵심은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통해 스스로를 이해하고, 그 일을 통해 세상 안에서 자기 자리를 확인합니다. 그런데 AI가 그 능력을 압도적으로 넘어서는 순간, 사람은 내가 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부터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AI는 그저 인간을 돕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이 이제 조금 불안하게 들립니다. 물론 기술은 도구일 수 있지만, 강력한 도구는 어느 순간 우리의 생활 방식과 판단 기준을 바꾸어 놓습니다. 스마트폰이 하루의 감각을 바꾸었듯, AI 역시 인간의 사고방식과 경쟁의 규칙을 새로 쓰고 있습니다.


바둑계에서도 AI를 스승 삼아 공부한 이들은 빠르게 성장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AI를 쓰지 않겠다”는 선택은 점점 고집에 가까운 일이 되어 갔습니다. 기술은 처음에는 매력적인 선택지처럼 다가오지만, 어느 순간 거부하기 어려운 환경이 됩니다.


책에서 또 하나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은 신뢰의 붕괴입니다. AI가 일상화된 바둑계에는 치팅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스며들었습니다. 누군가 갑자기 좋은 수를 두거나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르면, 사람들은 노력의 결과를 인정하기 전에 기계의 도움을 의심하게 됩니다.


기술은 인간의 한계를 넓혀 주었지만, 동시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를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서로의 실력을 존중하던 세계에 감시와 의심의 공기가 들어온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책은 바둑계를 넘어,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사회의 차가운 단면을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자는 기술이 가치를 앞질러 가는 현실을 경계합니다. 무엇을 더 만들 수 있는가보다 그것이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가를 먼저 살펴야 하고, 무엇이 더 효율적인가보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의미를 지켜 주는가를 먼저 헤아려야 합니다.


『먼저 온 미래』는 바둑 기사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둑계가 AI 이후의 세계를 조금 먼저 겪었을 뿐, 우리는 이미 그 뒤를 따라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먼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곁에 시작된 변화를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무 빨리 변해 버린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적응이 빠를수록, 무엇을 잃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은 더 필요합니다. 인간의 치열한 판단보다 기계의 매끄러운 계산이 더 신뢰받는 시대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무엇을 끝까지 붙들고 살아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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