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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로 시작하는 이상은의 노래가 떠오른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젊음을 몰랐던 시절의 어리석음에 가슴이 얼얼해지곤 했는데, 황혼이 되어서도 황혼인 줄 모르는 게 인생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다시 가슴이 얼얼하다.

나로 말하면, 늘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되기를 바랐으나 실제론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나를 속이고 남을 속이다 모든 것이 아리송해지고 말았지요.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잔인한 말로 두 번 세 번 거듭 죽이는 세상을 겪다 보면 그의 절망이 이해가 된다. 정말이지 착한 사람은 다 죽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인가 회의가 생긴다.

당하는 사람은 죽을 맛이지만 보는 사람은 재미있다. 그러니 남들의 웃음거리가 됐다고 화내지 말자. 웃을 일 없는 세상을 웃긴 내가 얼마나 대견한가!

요새는 아예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외려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다간 신경 쇠약에 걸린다고 큰소리를 친다. 뻔뻔하게.

산에 꽃이 피었다.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저 혼자서,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홀로 어엿이.
그래서 예쁘고 그래서 삼삼하다.
나도 저 꽃처럼 살고 싶다. 혼자서 피어나, 오는 새 막지 않고 가는 새 잡지 않고 "갈 봄 여름 없이" 무심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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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인간관계든, 사회적 관계든, 비즈니스는 대면을 통한 관계가 주축을 이루는 방식이었다.- P86

비대면은 극히 일부였을 뿐이다. 이것을 바꾸는 건 단지 두 가지를 물리적으로 뒤집는 게 아니라, 비대면을 통해서 인간관계, 사회적 관계, 비즈니스를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P86

타인과의 대면과 접촉을 피할 수 있고 줄일 수 있다면, 피하고 줄이는 게 언컨택트다.- P86

무조건적인 단절이 아니라, 피하고 줄여도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언컨택트 기술이자 서비스의 방향이다.- P86

기술적 진화의 목적은 위험 회피와 안전 지향과도 연관이 있다.- P87

기술이 위험으로부터 우릴 보호해주고, 이를 통해 우리의 자유를 더 확대시켜준다.- P87

결국 언컨택트는 우리가 가진 활동성을 더 확장시켜주고, 우리의 자유를 더 보장하기 위한 진화 화두다.- P87

비대면의 위상이 높아지는 계기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욕망의 문제다.- P87

사회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는 것도 결국 우리가 가진 욕망이 바뀌어 우리가 필요로 하는대로 변화하는 것이다.- P87

언컨택트는 욕망의 진화인 셈이다.- P87

물론 투명성, 효율성은 누구나 바라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그걸 거부하는 세력도 있다.- P92

하지만 기술적 진화와 사회적 진화는 그 문제를 풀어갈 방법을 찾아줄 수 있다.- P92

언컨택트는 결국 사회적 진화의 산물이자, 우리가 가진 라이프스타일에서의 기본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P92

과거엔 하지못했다면, 이젠 할 수 있어서다. 당연하던 컨택트를 대신해 당연하지 않았던 언컨택트에 대해 우리가 자꾸 관심을 가지고 방법을 모색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진화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P92

전염병은 과거에 비해 늘고 있고, 그 중 동물에서 인간에게로 병원체가 옮겨져 발생하는 인수공통감염병의 비중이 높다.- P97

미국 <수의학 저널Veterinary Science>(2019. 6)에 따르면, 지난 80년간 유행한 전염병들은 거의인수공통감염병이고, 그 중 70% 정도가 야생동물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P97

인수공통감염병의 대부분이 가축이 아닌 야생동물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인류가 했던 생태계 파괴와 무관하지 않다. 도시화, 세계화로 점점많은 개발이 이뤄지며 생태계가 파괴되자, 서식지가 줄어든 동물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인간 세계로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P97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가뭄, 수몰 등 이상기후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이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인간과 접촉이 가능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P97

20세기 동안 인류가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파괴해왔고, 20세기 후반부터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어왔음에도 모두가 기후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P98

이는 21세기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가 전염병에 대한 불안과 불편을 겪을 일은 앞으로 더 잦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P99

그리고 이는 노령, 장애, 빈곤을 가진 사회적 약자에겐 더취약한 상황이 된다.- P99

위생을 신경 쓰고 면역력을 키우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 대면과 접촉을 줄여서도 사회와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건 정부와 기업의 몫이다.- P99

분명한 것은, 언컨택트 사회를 지향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것이다.- P99

이런 과정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나서야 하는 것도, 정부와 기업에 이런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일상에서 탄소배출 절감을 위해 행동하는 것도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P99

당연하던 모든 것이 당연해지지 않기 전에, 당연했던 것 중에서 문제 될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는 것을 우린 받아들여야 한다.- P99

컨택트 사회만 고집하다간 위기 상황 앞에서 일상이 멈춰버린다. 언컨택트 사회를 받아들이면서 우린 계속 일상을 이어가야 한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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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말이 위로와 충고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하려니 번번이 허방을 짚고 만다.
가만히 곁에 있어 주는 위로,
조용히 몸으로 보여 주는 충고,
달리 무엇이 있는가?

반성은 나중에, 청춘이 다 지난 뒤에 해도 된다. 그때 짐짓 깨달은 얼굴로, 화무십일홍이니 젊음을 낭비하지 마, 하고 잘난 척해도 된다.

‘노’No에 익숙해지고 실패에 이골이 났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만날 꼴등을 한다 해서 꼴등이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닌데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줄 안다.

실패에 적응이 되는 사람은 없다는 걸 실패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그래서 모욕을 준다.

지고도 창피한 줄 모른다고 모욕한다. 바보들!

깨지고 모욕당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 실패했다고 모욕까지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

진짜 굴욕스러운 건 실패할까 두려워 싸움을 피하는 것.

겁나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거라고 자신을 속이는 것.

제가 못 먹는 포도는 신 포도라고 박박 우기던 여우처럼, 패배를 부인한 채 비겁하게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옷깃에 얹힌 "쓸쓸"을 알게 된 지금, 부끄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나만 쓸쓸한 게 아니라서 반갑고, 우리가 함께 쓸쓸해서 다행이다 싶다.

나중에 알았다. 어떤 사람이 충고를 듣고 잘됐다면 그건 내 덕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듣고 행한 그의 덕임을. 그가 충고를 구한 게 나만이 아니란 것을. 더구나 내 말대로 해서 잘못된 경우는 내가 싹 잊어버린단 것도.

요즘은 충고를 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몸에 밴 습習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서 매번 나 자신에게 충고한다.

조선 최고의 지식인으로 꼽히는 정약용은 철학, 의학, 역사학, 언어학, 법학 등 다방면의 학문은 물론이요, 시 짓기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내 길을 가려면 이런 자신감이 필요하다. 물론 실력이 있다는 전제 아래서. 실력은 없이 자신감만 있으면, 어휴…….

죽은 사람을 화장해서 강물에 뿌리는 그림이 그려지며,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강물이 되어 가문 땅을 적시기도 하고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늙은 죽음이 곧 젊은 생이 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나중에 만나자고, 남은 이를 위로하는 따스한 유언.

‘인생이 뭐야?’라고 누가 물으면 딱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모르는 일이 아는 일이 되어 흘러갈 때까지 떨고 있는 일이야.

그나저나 나는 좀 더 오래 이 물속에서 떨고 있어야 할 모양이다. 아직도 죄다 모르는 일뿐, 도대체 아는 일이 없으니…….

왜 남의 집 불빛들은 그리도 다정해 보이는지, 왜 사무치게 외로울 땐 다들 그리도 부산한 것인지…….
나만 혼자 하염없이 강물을 벗 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구나. 저 강이 저리 붉은 것은 노을 때문이 아니구나. 아무 데도 갈 데 없는 외로운 설움들이, 내 설움 네 설움 한데 어울려 타오르는 까닭이었구나.

밥벌이의 고단함을 겪지 않았으면 끝내 몰랐을 비유들. 몰랐어도 좋았겠지만 기왕 겪은 시간, 그래도 배운 게 있어서 다행이다.

마흔이 되어도 쉰이 되어도, 아니 일흔이 되어도 여전히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라는 시구에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을.
삶은 그런 시간들로 이어진다는 것을.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을 "페이지를 넘긴다"라고 표현하다니. 게다가 ‘달 귀퉁이가 접혀 있다’라고!

아름다운 말은 사람을 순하게 만든다. 시는 참 힘이 세다.

요즘 애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대면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사는 줄 알았다. 한때는 나도 ‘요즘 애’였다는 걸 잠시 잊었더랬다.

나치 독일에서 브레히트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고백했다면, 네팔의 가난한 시인 두르가 랄 쉬레스타는 ‘살아남은 자의 운명’을 노래했다.
그의 말처럼,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때가 있다.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짜깁기하는 데도 지쳤을 때, 안간힘으로 버티던 두 팔을 탁 놓아 버리고 싶을 때,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모든 것이 부질없어질 때.

그러나 시인은 말한다. 보다 위대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라고. 그래, 어쨌든 살아남아야 한다.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의리로, 슬픔을 견디며 살아가는 서로에게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임금이 높은 벼슬을 주며 불러도 응하지 않은 학자들을 훌륭하다고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의심스럽다. 정치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보다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가 훨씬 더 어려우니까.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두보는 집 안에 틀어박혀 시를 쓰기보다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기를 바랐다.

두고두고 사람들을 감동시킨 그의 절창은 모두 세상의 비극에 눈감지 않았던 이 뜨거운 열망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 꿈이 아무리 뜨겁고 그 뜻이 아무리 높다 해도 어린 자식이 굶어 죽는 참담한 슬픔과 거듭된 세상의 냉대를 견디기는 쉽지 않았으니, 깊은 밤 홀로 깨어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뜻을 되새겨야 할 만큼 그의 생애는 외로웠다.

이 시를 쓴 이성선 시인은 평생 설악을 벗하며 가슴 시릴 만큼 맑은 시를 써서 읽는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심지어 김사인 시인은 아예 이 시구를 그대로 옮겨 적어 시 한 편을 썼으니, "(……)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라고 고백했을 정도다.

나이 먹어서 배운 게 딱 하나 있다. 너의 행복은 나의 행복이고 당신의 불행은 돌고 돌아 내 불행이 된다는 것.

물론 가끔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저놈의 인간이 불행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은 때도 있다. 그러나 복수가 복수를 낳아 세상이 눈물 속에 잠기는 끝을 상상하면 결국 기도하게 된다.

나도 나를 용서할 수 없으니 너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너도 부디 무사히 살라.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는 그날까지.

첫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가 바보 온달이라도 좋고, 달동네 산비탈 셋방에 살아도 좋고, 가끔 전기가 나가도…… 나가면 더 좋다는 것.

둘째, 마냥 좋은 그 시간이 썩 오래가진 않는다는 것. 뭐든 유통 기한이 있기 마련이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 풍경도 없는 깜깜절벽 속을 밀감보다 작은 불빛에 의지해 달리는 그이들에게 이 시를 읽어 주고 싶다.
날마다 어둠에 길을 내는 당신이 있어 오가는 내 걸음이 편안했으니, 고맙습니다.

어떤 아홉수든 아무튼 아홉수는 외롭기 십상이다.
애인도 직장도 없던 스물아홉에도, 합격 발표를 기다리며 마음 졸이던 열아홉에도, 심지어 입이 찢어져 죽었다는 이승복 어린이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던 아홉 살 그때도.

죽음 앞에서 생은 투명해지느니, 시인의 마흔아홉 생을 거듭 살아도 나는 삶의 무상에서 희망을 보는 열반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얼마나 공평한가!

도서관을 나섰을 때, 이미 해가 저물어 있더군. 어둔 하늘에 상여 꽃처럼 목련이 희게 떠 있는 저녁 캠퍼스를 젖은 눈으로 걸어오며 결심했지. 나는 이 시를 살겠다, 이 역사를 살겠다. 내 스물은 그날 시작되었지. 내 서른이 어땠느냐고, 마흔이 어땠느냐고 묻지 마.

내 삶은 그때 시작되었고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그렇다. 내가 좋아한다고 나를 좋아하란 법은 없다.
내가 간절히 원한다고 이루어지란 법은 없다.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으니.

그때마다 맘이 쓰리다. 필 때는 질 때를 걱정하고 질 때는 필 때를 놓친 것을 서러워하는 누군가가 떠올라 쉬 버리지도 못하고 안쓰러워한다.

지금의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사소한 일로 핏대 올리기 전에 생각해야지. 혹시 나비를 잡겠다고 총을 들고 설치는 건 아닌지.

빈대 잡으려다 간신히 마련한 초가삼간 태우면 나만 손해.

그래, 웃자. 그냥 웃자. 웃으면 복이 온다니까, 복이 오나 안 오나 한번 웃어 보지, 뭐.

슬픔은 슬픔이 알고 슬픔은 슬픔에 힘이 됩니다. 지극한 슬픔은 지극한 힘입니다.

그녀를 보고 알았어. 남들에게 받은 친절과 칭찬은 금세 잊어버리고 남들이 서운하게 한 것만 두고두고 저금하는 내 기억력, 아주 나쁘구나. 그런 못된 기억력으로는 절대 멋쟁이 할머니는 될 수 없겠지.

벌레가 갉아 먹어 나뭇잎에 구멍이 났는데 그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는 것, 한두 번 본 풍경이 아니다. 한데 이 흔한 풍경에서 시인은 벌레 먹힌 "잎들의 신음"을 듣고 "금싸라기" 햇빛에 세상이 환해지는 것을 본다. 똑같이 눈 두 개 귀 두 개가 있어도 나는 못 보고 못 듣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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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눕고 밥 지어 먹을 집 한 칸이 없어서, 사랑하는 연인은 결혼을 못하고 부모와 자식은 뿔뿔이 흩어진다.

하늘을 우러러 목 터지게 울고 싶은 밤, 견우성 직녀성이 서로를 보며 빛난다. 견우와 직녀도 내 집 마련을 못했나 보다. 그래서 그리 슬피 울었나 보다.

그런 적 있어요.
언젠가 여름날, 쏟아지는 장대비를 우산으로 피하다가 우산 따위 소용없게 다 젖어 버린 날, 에라, 모르겠다, 몸을 맡긴 적 있어요.

어느 겨울날,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머리로 손으로 어깨로 받다가 그저 눈사람이 되어 버린 적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온몸을 적시는 눈비는 두 팔을 벌려 맞이했건만, 몰아치는 저 바람 앞에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네요. 뿌리 없이 흔들리는 보잘것없는 인생이라고 자조하면서도 바람이 불면 나도 모르게 온몸으로 버텼네요. 흔들리지 않으려고, 한 번은 제대로 살아 보려고.

너를 모욕하는 세상을 벗어나 흰 바람벽 안으로 숨고 싶은 네 마음을 모르지 않아. 그러나 너를 모욕한 이들을 원망하기 전에 네가 세상을 모욕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렴. 스스로를 높이기 전에 네가 누군가를 너만큼 높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렴. 혹시 세상보다 먼저 네가 벽에 벽을 치지는 않았는지, 한 번만 의심해 보렴.

때론 정의를 위해서, 때론 사랑을 위해서, 때론 자존심을 지키려, 때론 오직 분에 못 이겨서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아니요!"
내가 외치면 세상이 따라서 ‘아니요!’ 하고 합창해 주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외로워질 줄이야……. 스스로가 처량해지며 다 소용없구나, 절망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떠오르는 얼굴 하나.
그것이 부모든 자식이든 애인이든 예수든 석가든 마르크스든, 절대 이성, 영원 회귀, 리비도, 유전자 기타 등등 무슨 상관이랴. 아직 내가 붙잡을 동아줄이 있다는 게 중요하지. 그게 썩은 동아줄이라도 내가 잡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그런데 너는 왜 자꾸만 내 동아줄이 썩었다고 시비를 거는 것이냐?

저녁이면 들르는 참새방앗간, 집 앞 구멍가게에서 맥주를 산다.
온종일 바람난 마음을 용케 붙잡은 내가 기특해서 한 잔, 아직도 늙지 않고 일어서는 마음이 대견해서 또 한 잔.
하루가 저문다.

사랑을 할 때 처음,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기뻤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치고 사랑만 한 것이 어디 있나요.

아쉽게도 그런 사랑을 한 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이젠 다 끝났다고 슬퍼했는데, 아! 아직 나무가 될 날이 남았네요.

시간은 늘 야속한 줄만 알았는데 시간이 하는 일도 제법 근사하구나. 가는 시간을 쓰다듬어 주고 싶어요.

나는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나무를 키우고 나무에 새를 깃들인 건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나는 모르는 누가 나 모르게 한 일이다.
그래서 다 고맙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울음이 목까지 차오른 날, 엄마는 또 산소로 달려가서 울었다. 엄마, 엄마, 나 어떡해! 묏등에 얼굴을 묻고 얼마나 통곡했을까. 문득 엄마는 깨달았다. 엄마는 없구나, 내가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날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구나. 그 뒤로 엄마는 혼자서 견뎠다.
엄마의 무정이, 삶을 뒤흔드는 바람에 맞선 유일한 몸짓 결가부좌였음을 오늘에야 알았다.

불가사의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 중인, 그러므로 언제든 다시 전쟁이 시작될 수 있는 한반도에 살면서도 돈 걱정, 교육 걱정, 취직 걱정에 건강 걱정까지 전쟁 걱정만 빼놓고 다 한다. 세계 분쟁 지도에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위험 지역인데도, 거기 사는 우리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아프리카를 불쌍히 여기며 평화롭다 자부한다.

전쟁을 끝낼 노력은 눈곱만큼도 안 하면서 전쟁이 일어날 리는 없다고 믿는 이 순진한 신앙!

부디 세상이 우리를 배반할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천동 같은 화산"이 진짜로 일어날 줄은 몰랐다고, ‘뒷북’은 치지 말아야 할 텐데.

우주학자 마틴 리스가 말하기를,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란다.
그러니까 막 따지고 들어가면, 나도 당신도 모두 별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단 얘기다.
그래서일까, 저녁 하늘에 반짝이는 총총한 별을 보면 그리운 애인인 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시 구절이 떠오르고, 평소에는 먼지만도 못하게 여겼던 나도 당신도 한없이 그리워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누구는 재미있다고 하고, 누구는 피곤하다고 하고, 누구는 소심하다고 하고, 누구는 자신만만하다고 하고, 누구는 젊다고 하고, 누구는 삭았다고 하고, 누구는 부럽다고 하고, 누구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다. 모두 다 나를 두고 한 말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모르는 사람한테서 시인에게 문자가 왔대요. "나지금입사시험보러가잘보라고해줘너의그말이꼭필요해"
낯선 이의 문자 앞에서 시인은 지난 시절을 떠올렸대요. 아무 데에도 의지할 수 없었던 시절을.

서점에 선 채로 시 한 편을 다 읽었어요. 잠시 움직일 수 없더군요. 가슴에 쥐가 나서 가만있었어요.
일 분쯤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내가 왜 그랬는지 궁금하다면 당신도 끝까지 읽어 보세요. 아마 나처럼 당신도 가만히 있게 될 거예요. 가슴에 쥐가 나서 어쩔 수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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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 시를 읽는 이유는 기분이 좋아서다. 뒤통수를 한 대 맞았는데 머리에서 분수가 솟는 기분이랄까.

이런 청량한 즐거움은 시가 아니면 느끼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시가 좋다.

잘 알지도 못하는데 좋고, 좋으니까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시를 읽다 보면 이런저런 사념이 든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 낯 뜨거운 고백, 아직 뜨거워 당황스러운 열망, 여전히 막막한 두려움, 그 모든 것은 여기 덧붙인 들쑥날쑥한 내 문장처럼 정처 없다.

다듬고 정리하지 않은 문장들을 그대로 내놓는 것은 시가 마음의 격동을 허락하는 유일한 문장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의 시 옆에 그대의 문장을 적기를.

시를 읽다 보면 마음을 뺏긴 한 줄의 문장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문장 너머로 시는 계속 이어진다. 밑줄 친 금언, 근사한 아포리즘 너머에 진짜 삶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쓸쓸하고 그래서 오기가 생기는 것처럼. 짧은 시도 끝까지 다 읽어야 그 뜻을 알 듯, 삶도, 짧고 보잘것없는 삶도 끝까지 다 살아야 비로소 뜻을 알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 읽어도 알 듯 모를 듯한 시처럼 다 살아도 모를지 모른다. 그 막막함이 다시 시를 부른다. 언젠가 그 막막함의 끝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한 잔의 술을 따르고 한 편의 시를 읊자.

요즘은 시보다 소설이 인기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생긴 지 200년 남짓한 소설에 비해 사람들이 시를 즐기기 시작한 지는 수천 년이나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가 쓰인 것이 지금으로부터 4천여 년 전이니, 기록되지 않은 것까지 치면 시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면 그 말씀은 필경 시였으리라.

아무튼 시가 오랜 세월 지역과 인종을 넘어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인류의 유전자 속에 시를 즐기는 습관이 새겨져 있다고나 할까. 그러니 시를 쓰는 건 몰라도 시를 읽는 것만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시라는 형식에 문학적 조예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시를 즐기기 위한 남다른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 안에 있는 오래된 유전적 본능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즐겁거나 슬플 때 노래를 부르듯이 자기 마음속에 차오르는 감정을 따라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읽으면 되는 것이다

처음엔 생략과 비유가 많은 시 고유의 독특한 형식이 낯설고 어렵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자꾸 읽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다.

시를 읽는 것은 사는 데 도움이 되고 쓸모도 있다. 시는 당신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왜냐하면 시는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혁신이란 기존의 세계를 다르게 보는 데에서 출발하는데, 다르게 보는 능력을 키우는 데는 문학, 철학, 예술 같은 인문학이 기본이 되니 그런 것이다.

시란 무엇보다 언어의 반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더 많은 언어에 능통해지려 애쓰는 것도 그래서다. 한데 시는 이런 언어를 거꾸로 뒤집는다. 언어의 반전을 통해 기존의 세계를 뒤집는 것, 그리하여 세계의 틈을 보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 그것이 시의 힘이다.

시의 유용성은 투자 대비 만족도가 크다는 점에도 있다.

바쁘고 지친 삶에 시가 쉼표가 되어 줄 테니까. 아니, 쉼표만이 아니라 때론 이정표도 되어 줄 테니까.

답답한 마음에 점을 치고 술을 먹고 쇼핑도 하지만 별 도움이 안 될 때, 그럴 땐 일단 멈춰야 한다. 멈춰서 온 길을 돌아보고 갈 길을 헤아려야 한다.

요즘 세상은 돌아보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고, 우선 달리고 나서 나중에 생각하라고 하지만 그건 잘못이다. 제때 고민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가서, 기껏 달렸는데 잘못 왔구나, 뒤늦게 낭패를 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를 읽는 것은 멈춰서 돌아보는 것이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듯이 시 한 편을 읽으며 마음을 빗는 것이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나면 다시 먼 길을 갈 힘이 난다. 남들이 좋다는 이 길 저 길 기웃거리지 않고 시를 등불 삼아 오롯이 내 길을 갈 배짱이 생긴다.

시는 이처럼 힘이 세다. 특히 아프고 쓰린 마음을 위로하는 데는 시만 한 게 없다.

겨우 일 초! 라고 우습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단 한 줄의 시를 읽었을 뿐인데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던 내 마음이 바뀌었다면 그게 우스운 일일까? 단 한 줄의 시를 읽기만 해도 밖으로 향하던 내 마음이 안으로 향하여 평화로워질 수 있다면 ‘겨우’ 일 초가 아니라 ‘무려’ 일 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마음을 바꾸는 것이니까.

시는 말수가 적다. 너도 나도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에서 압축과 생략으로 이루어진 시는 그 자체로 침묵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이 말이 없으면 불편하듯이 시도 그래서 서먹하고 친해지기 힘들다. 수수께끼와 비밀이 많은 시를 이해하려면 궁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성가실 때도 있다.

세상엔 아직 내가 모르는 일이 너무나 많고 내 좋은 스승은 이제 여기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보다 작아진 몸으로도 태산 같은 가르침을 주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는 괜찮다. 괜찮아야 한다. 괜찮고말고…….

그 경계가 나와 너의 사이, 안과 밖의 사이, 우리와 그들의 사이이기도 한 것은 몰랐다.
그 사이에서 꽃이 핀다는 걸 몰랐다.

시인의 놀라운 상상력이 아니었으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것이다. 만날 편 가르기나 하고 보초나 서면서, 온 세상 꽃들이 다 시들도록 전전긍긍 호시탐탐 늙어 갔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진짜 재미없고 참기 힘들 때는 소리 내 말하는 거야. 구름이 놀라 달아날 만큼 큰 소리로.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소리치다 보면 아마 넌 웃게 될 거야. 눈물이 글썽해지도록.

"아, 누나! 왜 이렇게 늙었어?"
왜 이렇게 늙었느냐고? 너만큼이나 정직한 시간 때문이지 뭣 때문이겠니!

그래도 견딜 수 없어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쓰기 시작했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 무정한 사랑에 대해 썼지. 그 사랑의 역사를 시작부터 끝까지 복기하듯이 써 내려갔어. 한참 쓰다 보니 눈물이 마르고 팔이 아프더군. 허리도 쑤시고 다리도 저렸어. 그래서 밖으로 나갔지. 세상이 참 예쁘데.

큰돈을 벌지도 못하는데 왜 글을 쓰느냐고 누가 묻더군.
나는 대답했어.
사랑 없는 세상을 견디기 위해서.

오래전 일기를 보며 그때를 그리워한다. 질문을 두려워 않던 나를, 나아감을 믿었던 나를, 아직 젊던 나를.

봄날은 가물어서 비가 오면 반갑지만, 그 빗줄기에 우수수우수수 꽃잎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그런데 ‘채울수록 가득 비었다’고, 떨어지는 봄꽃에서 먼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읽다니!
한 편의 시가 흩날리는 저 꽃잎처럼 말문을 막는다.

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많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별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시간 여행을 하라고 등을 떠민다면, 그래, 삼십 대로 돌아가고 싶다. 껌처럼 씹고 버린 청춘에 절망하는 대신 짝짝짝 불량하게 껌을 씹으면서 남은 젊음을 만끽하고 싶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지만 아무래도 그 말은 거짓말 같구나. 오래 보지 못한 너에게 나는 오늘도 편지를 쓰는걸. 마음으로 마음을 다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타인의 연민을 얻고 싶다면 자기 연민부터 버리라던 몽테뉴의 충고를 떠올렸다. 오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이란 얼마나 변함없는 존재인가, 새삼 놀라면서.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될 줄 알았다. 집안일도 회사 일도 다 엉망이 될 줄 알았다. 심지어 술자리조차 내가 없으면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울 줄 알았다.
아니더라!
그냥 살짝 가면 되는데 그걸 몰랐다.

살면 살수록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구나 깨닫게 된다. 떠날 날을 통고받은 사람의 마음도 그중 하나. 떠나고 싶지 않은데, 아직 떠날 때가 아닌데 떠나야 한다고 떠밀리는 그 마음을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자신이 떠난 뒤, 비가 오면 창에 물구슬발水簾을 드리우는 자신의 방을 찾아올 사람에게 그녀는 말한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쉬다 가라’고. 그것은 떠나는 이가 남은 이들에게 전하는 유언이자 짧은 생을 마감하는 자신에게 보내는 당부였으니, 툭하면 죽고 싶다고 서슴없이 말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사랑도 성공도 이름도 다 부질없는 걸 누가 모르랴. 사람이라 그 거품 같은 것들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이고 그래서 슬픈 것이지.

그러니 차라리 "네 잘못이야" 하고 말해다오. 길들일 수 없는 비애를 길들이려 한 네 잘못이라고, 콕 집어 말해다오.
내 부질없는 슬픔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도록.

그러나 지금, 한 자 한 자 옮겨 적고 보니 웃을 수가 없네요. 사랑받고 있음을 몰랐던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습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 망연자실. 도대체 내 사랑은 어찌 된 걸까요.

물론 부모도 할 말은 없지. 부모도 부모의 살을 먹고 자랐고, 무엇보다 내 살이 토실토실해지는 걸 보며 살 힘을 얻었거든. 그러니까 우리 모두 서로서로 기생한 거고, 그러니까 우리 모두 서로에게 빚은 없다고 해도 돼. 그런데 왜 나는 자꾸 미안한 걸까.

솔직한 게 좋다면서 고작 남에게 가시 돋친 말이나 하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진실을 말하면 입을 막거나 귀를 닫는다. 이런 세상을 보며 어떤 이는 분개하고 어떤 이는 비웃지만, 표현은 달라도 결론은 똑같다. 진실을 감당하기에 인간은―나만 빼고―너무 한심하다는 것.

평생 고향집을 떠나지 않고 세상이 모르게 2천여 편의 시를 썼던 에밀리 디킨슨은 다르게 말한다. "너무 밝은 진실은 엄청난 놀라움"이니 단번에 드러내지 말고 넌지시 보여 줘야 한다고. 눈부신 태양을 똑바로 볼 수 없듯이 진실도 에둘러서 일깨워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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