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기도 - 그리스도교 기도의 처음과 끝 비아 문고 12
제프리 그린먼 지음, 한문덕 옮김 / 비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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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도하는 방법과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합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위한 기도가 우리의 욕망으로 대체될 때가 많습니다. 너무도 자주 우리의 탐욕이 투영됩니다. 자신의 안전과 만족, 유익을 위한 행위가 기도라는 이름으로 자행됩니다.


물론 우리의 필요가 기도 가운데 포함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목적에 우리를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간구하며, 성도인 우리가 맡은 바 사명을 충실하게 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는 개인과 공동체가 올바로 기도할 때 얼마나 큰 힘과 풍성함이 있는지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교회의 오랜 전통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도로 '주님의 기도'를 위치시켰습니다.


리젠트 칼리지의 총장인 제프리 그린먼(Jeffrey Greenman)은 이 책 『주의 기도: 그리스도교 기도의 처음과 끝』에서 복음서와 기독교 역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주의 기도'에 대해 간명하게 정리합니다. 주의 기도를 통해 기도의 방법과 내용을 충실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주의 기도'의 위치를 살펴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마태와 누가의 문맥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는 이 기도를 산상수훈의 정중앙에 위치시킴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서 핵심임을 강조합니다. 누가는 하나님 나라 선교의 기초로 주님의 기도를 제시합니다.


이렇듯 주님의 기도는 성경에서 매우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주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이 기도를 가르쳐 주셨을까요? 저자는 이 기도가 제자들을 위한 가르침이었음에 주목합니다. 즉,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초점 맞추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저자는 주의 기도를 하나씩 자세히 살펴봄으로 그 내용에 담긴 보다 깊은 뜻을 탐구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기를 간절하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우선되지만, 그 가운데 신실하게 그의 뜻을 위해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먼저 구한 하나님 나라 백성은 그제야 우리의 가장 절실한 필요를 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도는 아닙니다. 우리 삶을 위한 최소한의 간구임과 동시에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게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식의 조급하면서도 우리 필요 중심의 기도가 만연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교회의 전통과 성경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주님의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화려하고 그럴듯한 무엇이 아니라, 묵묵히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주의 기도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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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마지막, 특별한 열흘
배성혜 지음 / 좋은땅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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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우리를 상상하게 합니다.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의 짐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잠시이지만 이야기가 들려지는 순간에 염려와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풍성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집니다. 듬성듬성 드러났던 빈 공간이 이야기로 가득 채워집니다.


더하여 좋은 이야기는 우리를 그 이야기 안으로 동참하게 만듭니다. 마치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웃고 웁니다. 조용히 그들 곁에 있습니다. 그들과 눈 마주치고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함께 햇살을 맞고, 포옹하며, 감격을 나눕니다.


성경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장르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의 상황에 맞게 그 순간 가장 필요한 내용을 여러 장르를 통해 전달합니다. 전기나 편지, 역사적인 서술 등을 통해 우리는 복음의 좋은 소식을 재구성하기도 합니다.


재구성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시대와 문화, 언어의 차이는 당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되지 못하게 하는 장벽입니다. 하지만 배성혜 작가는 이 책 『사도바울의 마지막, 특별한 열흘』에서 성경(text)과 배경(context)을 섬세하게 분석하여, 현재의 독자까지의 공백을 충실하게 메꾸어줍니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인해 성경은 새로운 옷을 입고 우리에게 들려집니다. 사도들의 행적은 보다 입체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딱딱했던 문자 속 성경 인물들은 생기를 얻어 실존하는 인물과 같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곳곳의 유쾌한 장면들의 배치로 인해, 죽음을 앞둔 사도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더욱 생동감이 넘칩니다.


더불어 우리의 언어와 문화가 곳곳에 등장하니 그 현장감이 더욱 살아납니다. 가령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15)"는 속담이나, 다섯 사도가 흥분하여 "강강술래(73)"를 한다는 대목과 '부름받아 나선 이 몸, 나의 죄를 정케하사'를 부르는 사도들(253, 390)을 보며 동일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한국 저자가 가진 힘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각자의 경험을 풀어냅니다. 누가가 들려주는 데오빌로 이야기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야기는 성경의 이야기와 공명을 이루며, 풍성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에게도 어느새 데오빌로는 사도들의 든든한 지지자로 새겨집니다.


베드로와 마가를 통해 듣는 성령 세례 이야기로 우리는 그때 당시 마가의 다락방으로 초대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이 강하게 쏟아부어지는 경험입니다. 그때 당시의 분주함, 설렘과 기대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성령 세례가 임하던 그때의 흥분과 혼란, 감사와 찬양의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마주하는 누가의 기록은 이렇듯 여러 사도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때로는 성경에서 미처 파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과 복잡한 배경 등이 묘사됩니다. 바울이 눈물과 자책 가운데 들려주는 스데반 집사의 이야기와 헤롯과 야고보에 대한 이야기 등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관찰자의 시선에서 사도행전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사도행전을 대하게 됩니다. 사도들은 각자의 시선에서 자신이 경험하거나 들었던 사건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보다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이 연출됩니다. 우리는 보다 선명하게 그들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사도들의 이야기는 그리움에 잠기게 하기도 하며, 서로를 향한 사랑을 불러일으키게도 합니다. 슬픔과 기쁨, 두려움과 평안이 공존하는 그 공간에서의 열흘. 이후 순교의 현장들. 작가의 이야기는 성경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며, 그 이야기가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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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사르의 구원 이야기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김관희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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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물음과 설명이 많이 뒤따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너'의 구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개인주의적인 신앙은 철저하게 나만의 구원에 몰두하게 만듭니다. '너'와 '우리'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웃의 구원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의 구원에 대해 자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비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톨릭 신학자이자 '신학적 미학'이라는 신학 체계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보다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표현하기를 원했던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 그는 이 책 『발타사르의 구원 이야기』를 통해, 모든 사람의 구원 가능성에 대해 자신의 논지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즉 구원과 멸망이라는 가능성은 분명하게 공존한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인간은 사랑과 희망, 선을 위해 살아야 하며, 끊임없이 그러한 삶을 위해 분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최종적으로 맡겨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토대로 하여 신학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일하심에 근거해 우리는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희망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인간은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랄 수 있는지에 대한 중차대한 질문입니다. 발타사르는 분명히 성경에서 모든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도 하고, 지옥을 암시하는 표현들도 많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발타사르는 두 가지 상반된 언명이 존재함을 전제합니다. 심판 아래 놓인 인간이 이 두 가지의 언명을 종합하거나 취합할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보편적 구원과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라는 주제를 성경과 역사적인 주장들을 통해 새롭게 조명합니다.


성경에서 표현되고 있는 심판과 지옥에 대한 언급을 통해 우리는 최종적 권한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거룩하고 건전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반면 또 다른 측면에서 여러 말씀을 통해 저자는 보편적인 구원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간청과 기도를 드리라는 권고가 있는 이유 또한 이것이 유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는 교회의 정당한 기대이며 거룩한 믿음입니다.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입장도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두 관점을 모두 포괄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사랑을 더 우위에 두거나, 자비에 대해 더 강조할 수 있더라도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정의를 모두 베푸시는 분이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결국 희망을 통해 통합됩니다. 초자연적인 희망은 모든 경쟁과 대척을 덮어버립니다. 우리는 희망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며, 그분의 정의를 보게 됩니다. 그 정의가 곧 사랑과 다르지 않음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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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성경을 읽다
이상환 지음 / 도서출판 학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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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성경 읽기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 말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분별해야 한다고요. 성도들이 믿음의 끈을 유지하기 위해 말씀을 꼭 붙들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더 깊이 하나님과 관계하기 위한 은혜의 방편이라 합니다. 제자로 살아가기 위한 영적 자양분을 말씀을 통해 공급받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문제는 정작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과 시각으로 읽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많이 읽고, 계속 읽고, 자주 읽으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균형 잡힌 관점으로 건강하게 성경을 읽어야 하겠는데, 그 방법은 잘 모릅니다.


성경은 참으로 어려운 책입니다. 오랜 시간 여러 저자에 형성된 책입니다. 더하여 초월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물론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받아 깨달음이 주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공백들로 인해 텍스트를 온전하게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수의 세계적인 학술지에 기고하며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이상환 목사. 저자는 그의 국내 첫 저작인 이 책 『Re: 성경을 읽다』를 통해 간결한 언어로 명쾌하게 성경해석 방법을 들려줍니다. 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며 적용해야 하는지를 신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만 저마다의 해석이 다른 이유는 각자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의적인 해석은 성경 자체에는 큰 권위를 두면서도, 해석에는 신중함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입니다. 섬세하고도 겸손한 자세로부터 성경해석은 시작됩니다.


성경은 특정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적 문서입니다. 동시에 지금도 여전히 말씀하고 있는 초월적인 문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사성과 초월성은 성경이 지니는 독특함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것을 충분하게 반영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고대 문서와 현대 독자 사이에는 의미의 공백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텍스트를 기록한 저자와 그 텍스트의 대상이 되는 일차 독자는 서로가 공유하는 환경과 문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미묘하면서도 다층적이기 때문에 현대의 독자가 그러한 부분을 간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현대의 독자는 이를 충분하게 이해하며 텍스트를 대해야 합니다. 특별히 성경은 초월적인 문서로 받아들여지기에, 이러한 역사성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쓰인 책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쓰인 책임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저자는 다양한 해석학 방법을 쉽게 설명합니다. 저자와 텍스트, 청중 중심의 접근법이 가진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서술합니다. 이후에 절충형 모형의 유익과 함께 여전히 가지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조금 더 명확하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모형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완벽하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모형이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저자는 '의사소통 모형'이 성경을 보다 적실하게 해석할 수 있는 유형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양면성(역사성과 초월성)과 성경의 두 독자(일차 독자와 이차 독자)를 존중하면서 성경에 접근할 수 있는 규칙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의사소통 모형은 저자와 텍스트, 독자의 세상을 의사소통이라는 하나의 규칙 아래 통합합니다. 그리하여 저자와 텍스트, 청중을 모두 존중하는 해석을 찾으려고 합니다. 의사소통의 목적은 독자가 텍스트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에 담긴 의미를 따르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저자는 의사소통 모형을 통해 실제적으로 성경 본문을 해석하고 적용해 봄으로 이 모형의 가진 장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성경을 읽는 독자는 시간과 공간, 문화적인 간격을 뛰어넘어 텍스트가 지시하는 핵심적인 의미와 목적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우리 삶에 적실하게 적용 가능합니다.


우리는 정직하고 겸손하게 다시금 성경 말씀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읽기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저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듣습니다. 그 안에는 여전히 우리를 아름답고도 거룩하게 만들 생명력 넘치는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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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왕의 복음
매튜 W. 베이츠 지음, 이학영 옮김 / 도서출판 학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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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은 통찰을 이끌어 냅니다. 가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우문(愚問)이 현답(賢答)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예리한 질문은 새로운 시각을 허락합니다. 질문을 바꾸면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던집니다. 그 대상을 정의하고 개념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각자의 가치와 사상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뒤따릅니다. 그러면서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조차 천차만별(千差萬別)이 됩니다.


한 단어에 대한 정의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고, 모호해진다면 질문을 한번 바꾸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무엇'에서 '왜'로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에서 그것이 '왜 필요한가?'로 바꾸어보면 '무엇'에 대한 대답도 훨씬 깊어지고 풍성해집니다.


『오직 충성으로 받는 구원』의 저자 매튜 W. 베이츠(Matthew W. Bates)는 이 책 『예수 왕의 복음』에서 그동안의 복음 이해에 새로움을 더할 수 있는 색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복음이 무엇인가'에서 '왜 복음이 필요한가'라고 우리에게 물어봅니다.


'왜'라는 질문이 주는 유익은 '의도와 목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복음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복음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 묵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는 복음이 너무도 필요해서일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복음이 필요할까요?


이렇듯 질문을 살짝 바꾸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많습니다. 여전히 복음이 우리에게 의미 있습니까? 복음은 지금도 우리에게 좋은 소식인가요? 여전히 '복음'은 영향력이 있나요?


저자는 빙빙 둘러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저자는 복음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35)."


복음은 왕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서 기자들이 반복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자주 부르기에 마치 호칭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단어에 담긴 뜻은 복음의 내용과 의도를 포괄합니다.


'그리스도'는 그저 이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요구이자 주장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확언입니다. 기름 부은 받은 자로서의 예수는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선지자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입니다. 메시아의 통치는 우리에게 정의와 평화, 화목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곧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를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왕권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냄 받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복음서 기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사도들의 메시지는 달랐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의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이며, 사도들의 메시지는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사도들의 메시지를 더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강조한 본문을 들여다봅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셨다는 그 본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선순위는 십자가와 부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있습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일들을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사도들이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이 복음의 틀이기에 이것을 전제로 하여야만 십자가와 부활 또한 온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궁극적인 목적을 향한 과정이며 사건입니다.


우리가 왕이신 예수님의 복음에 합당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에 믿음과 충성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믿음은 관계적이며, 능동적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신실하게 충성을 표현하는 몸의 행동이자 의지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렇듯 전인격적이며, 지속적인 응답이자 반응입니다.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았던 복음, 한쪽 측면만 강조된 복음 등 기형적인 복음들을 이야기하며 이것이 나쁜 복음, 왜곡된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정도의 진리를 지니고 있지만, 여러 가지 문제도 내포한 복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안에 왕과 이야기, 충성 등이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복음은 복음의 목적을 재조정합니다. 그리하여 보다 포괄적이고 품 넓은 복음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께 충성을 선언하여, 인간과 피조 세계,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에 영원히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의 회복은 목적이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것에서 벗어나 모든 것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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