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는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언어들에 탐닉하는 사람이다. 언어로 집을 짓고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는 존재들을 알아보고 발견하는 일에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종족이다. - P17

시대는 변한다. 단절이 상수였던 오프라인 사회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들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연결되는 디지털 초연결 사회에선 ‘무대를 만들어 배우를 세우고 관객을 불러들이는 일‘을 하는 사람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나와 비슷한 사람, 익숙한 이웃에게서 남다름을 발견할 때 오히려 환호한다. - P50

왜 우리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들까? 저마다 곡진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 행위가 인간만의 일이자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고 여긴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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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후의 세계 - 챗GPT는 시작일 뿐이다, 세계질서 대전환에 대비하라
헨리 A. 키신저 외 지음, 김고명 옮김 / 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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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인공지능’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이 설명됩니다. 검색을 하고, 길을 찾고, 음악을 고르는 작은 순간마다 이미 AI의 도움을 받고 있지요.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편리함의 나열을 넘어서, AI가 인간과 세계를 어떻게 바꾸어 갈지 묻습니다. 기술의 문제를 넘어 삶의 질서와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세 명의 저자가 참 흥미롭습니다. 외교의 거장 헨리 키신저, 구글 전 CEO였던 에릭 슈밋, 그리고 MIT의 과학자 대니얼 허튼로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AI 이후의 세계가 얼마나 다차원적인 문제인지, 이미 저자들의 조합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AI가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스스로 학습하고 예측하며 때로는 인간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답을 내놓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결과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당혹감을 느낍니다. 두려움과 매혹이 동시에 스며듭니다.


키신저는 이 문제를 철학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을 ‘이성적 존재’라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이성의 일부를 기계와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까요? 그의 물음은 존재론적 깊이를 지니고 다가옵니다.


슈밋은 더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봅니다. AI는 이미 국가 안보와 사이버 전쟁, 경제 패권의 한복판에 놓여 있습니다. 기술 경쟁은 곧 국제 질서의 경쟁이 됩니다. 허튼로커는 차분하게 AI의 원리와 한계를 설명하며 균형을 잡아 줍니다. 덕분에 책은 극단으로 기울지 않습니다.


결국 이 책은 기술보다 인간의 태도를 묻습니다. 우리는 AI가 열어 놓을 질서에 무작정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책임을 가지고 이끌어갈 것인가. 편리함은 선물일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창의성과 공동체성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술보다 사람이 중심에 서야 합니다.


저자들의 목소리가 향하는 곳은 통제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근원적인 물음이지요. AI 시대에 인간은 누구이며, 무엇을 소중히 지켜야 하는가. 이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과 윤리의 언어로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인간다움의 본질을 지키자는 외침이 담겨 있습니다.


AI는 미래를 설계할 수는 있지만,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합니다. 의미를 만들고 책임을 지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AI 이후의 세계는 결국 우리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세계를 선택하며 살아갈지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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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쉬
옌스 하르더 지음, 주원준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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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신비롭습니다. 평범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를 낳습니다. 근원적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다양해집니다.



이야기 중의 이야기인 ’길가메쉬‘. 가장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점토판 12개에 새겨진 ’길가메쉬‘는 성경,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천일야화, 반지의 제왕 등의 이야기에도 줄곧 등장합니다. 이 서사시의 모티브는 여전히 많은 영화나 이야기에서 각광받습니다.



특별히 옌스 하르더(Jens Harder)의 ’길가메쉬‘는 ’그래픽 노블‘로 제작되었습니다. 마치 고대의 토판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그림체나 표현방식이 독특합니다. 거친 듯한 그림이지만 등장인물의 세세한 감정 표현들은 여실히 드러납니다.



작가는 ’길가메쉬‘의 주된 인물을 우르크의 왕 길가메쉬가 아닌 엔키두로 설정합니다. 이는 이 책의 표지를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앞면 표지에 길가메쉬가 아닌 엔키두가 나옵니다. 길가메쉬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인물인 엔키두. 그는 자연으로부터 태어난 땅의 사람이자 야생의 존재입니다.



그런 면에서 왕으로서 권력과 자만심을 대표하는 길가메쉬와 엔키두는 출생이나 성품이 참으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엔키두는 난폭하며 억압적인 길가메쉬를 안정적으로 길들이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엔키두도 완벽한 인물은 아니지만, 길가메시와의 대조를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줍니다.



훔바바의 향백나무 숲에서 길가메쉬는 매일 꿈을 꿉니다. 분명 악몽이었지만, 엔키두는 길가메쉬의 꿈을 새롭게 재해석합니다. 악몽을 길몽으로 바꾸어줍니다. 그리하여 길가메쉬는 자신을 괴롭히던 염려와 두려움에서 점차 벗어나고, 크나큰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됩니다.



엔키두는 왕도 아니고, 원래부터 성읍에 있었던 존재도 아닙니다. 그저 나그네요 도망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엔키두가 없었다면 길가메쉬의 영웅적인 활약도 없습니다. 엔키두 없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길갈메시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각박한 현실을 바라보면 부한 자는 더 부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역전시켜주거나, 약하고 소외된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는 것은 요원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함께 할 수 없어 보이는 길가메쉬와 엔키두가 서로 동료가 되어 신뢰하며, 한 목표를 이루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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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없는 진보 -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 사유의 뜰 1
김상봉 지음 / 온뜰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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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겨야만 끝나는 전쟁과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의 진실 여부'보다 자신의 정치 성향에 따라 시비가 결정됩니다. 사용하는 언어는 같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매우 다릅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는 시대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보면 숨이 막혀 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인 소통이 되지 않다 보니 대화의 가능성조차 없습니다. 서로는 상대방을 향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비상식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해괴망측한 사람을 지지하지?'



민주주의의 위기는 소통의 실패로 인하여 발생합니다. '나'와 '너'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품격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도 하고, '너'의 통찰과 안목을 칭찬하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합니다.



이러한 '나'와 '너'의 주체적인 만남에 대한 오랜 관심을 갖고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기를 원했던 김상봉 교수. 그는 이 책 『영성 없는 진보』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우선적인 과제가 무엇인지를 물어봅니다. 근원적 문제에 대한 명확한 진단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지만, 시민의 정치적 관심은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보기보다는 당파적 이익에 대한 관심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서두에 밝힙니다. 그것은 바로 '영성의 부재'입니다.



어떻게 보면 생뚱맞습니다. '정치'와 '영성'이라니요. 하지만 저자의 주장을 조금만 들어보면 쉽게 납득이 됩니다. 여기서 '영성'은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입니다. '전체'는 '신'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무한히 큰 무엇'이라 정의한다면 종교와 상관없는 특정한 마음의 소질이나 자세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영성이 정치와 관계가 있을까요? 특히 진보 정치와 영성은 무슨 상관일까요? 저자는 한 마디로 이 나라의 진보적 정치활동이 '전체를 위한 자기희생'이었다고 요약합니다. 동학 농민 혁명과 3.1운동 등이 모두 그러한 가치 위에 전개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독재 권력의 엄혹한 시절을 겪으면서도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독재에 맞서 싸운 덕분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과감하게 던질 수 있었던 이유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고통에 응답하여 자신을 희생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가운데 '나'라는 존재가 그저 '나'만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너'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하는 것은 세계가 나와 하나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의 작은 몸짓이 역사의 진보를 위한 유의미한 과정이 된다는 믿음 위에 우리는 '나'를 버리고 '우리'를 위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행위를 '정치'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저자가 줄곧 주창했던 '서로 주체성'이라 명명합니다. 민주주의는 서로 주체성의 형성 원리이며, 타자의 주체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됩니다. '나'와 '너'가 '우리'가 되지 못하고, 서로 적대적으로 으르렁거리고만 있으니 심각한 위기라는 것입니다.



한국 정치의 위기는 이러한 전체를 위해 나를 버리는 영성의 전통이 끊어짐으로 인해 야기됩니다. 저자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믿음이나 자기를 희생하는 정신을 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단지 지금의 정치 행태는 자신의 권력을 쟁취하고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탐욕만이 가득한 모습입니다.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꾼다는 구호는 큰 동력을 얻습니다. 절대적 악에 대한 비판은 흩어져 있는 힘을 재빨리 모아줍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낡은 것을 파괴한 뒤에 새로운 것을 형성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저자는 현재의 한국 민주주의는 보편적 가치의 상실로 인해 집단적 자기 형성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합니다.



저자는 다시금 우리의 민주주의가 회복되기 위해 전태일과 서준식의 예를 들어 그들이 간직했던 영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들은 거창한 무엇보다 한 사람을 위한 사랑과 애타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너'의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입니다.



분열된 시대, 적대적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웃의 아픔을 간과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소외되고 연약한 사람들, 신음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영성입니다. 그 가운데 상처와 고통은 필연적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기꺼이 전체에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지금 너무도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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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흐른다 (특별판 트레싱지 에디션) - 삶의 지표가 필요한 당신에게 바다가 건네는 말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 FIKA(피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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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인생입니다.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흡수하고 포용합니다. 때로는 거칠게 뱉어냅니다. 위로와 용기, 평안을 주며 다시금 살 수 있게 하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냉랭함, 강렬함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인생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대상을 통해 삶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낯설지만 이미 그 사건이나 감정에 대해 어떠함이라고 명명했다면, 우리는 생각보다 자연스레 우리의 인생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로랑스 드빌레르(Laurence Devillairs)는 이 책 『모든 삶은 흐른다』를 통해 인생을 논합니다. 저자의 철학적 사유는 바다를 통해 표현됩니다. 바다의 느낌과 바다에서의 경험, 바다가 주는 생각들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철학적 도구가 됩니다.



바다에는 선원들, 상어, 섬, 등대, 파도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는 삶을 배웁니다. 용기, 힘, 자아, 변화 등입니다. 바다는 무궁무진한 철학입니다. 저자는 독자들을 바다로 데려가 철학을 논합니다. 자연 앞에서 겸손하게 배우기를 요청합니다.



저자는 바다를 통해 인생의 여정을 떠올립니다. 변화무쌍한 바다를 보며 우리네 삶도 그러함을 말합니다. 거친 파도가 휘몰아치는 것과 같은 고통의 순간들이 있지만, 그것이 영원토록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순간과 같은 평온함이 우리를 덮어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바다를 통해 한없는 자유를 경험합니다. 때로는 잔잔하지만 모든 것을 삼킬만한 힘으로 흐르기도 합니다. 자연스레 그 흐름에 내어맡기면, 바다는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인생에 고난과 역경이 있으며, 슬픔과 우울이 있기도 하지만, 기쁨과 즐거움, 탄성을 내지르는 순간도 있음을 말입니다.



후회는 또 다른 후회를 낳습니다.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은 더 이상 우리가 손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다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휘몰아치는 격랑 이후에 바다는 더욱 고요해집니다. 삶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포기나 좌절이 아니라 삶의 흐름에 용기 있게 우리의 몸을 던져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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