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드라이브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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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생의 일처럼도 느껴지는 여러해 전 독일 프라이브루크Freiburg에서 티티제Titisee-Neustadt를 거쳐 스위스 바젤Basel로 가는 기차에 앉아 있었다. 12월이었고 눈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빛나고 있었다독일의 검은 숲Schwarzwald을 이루는 모든 나무들이 눈으로 포장되어 빈틈없이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심코 풍경에 눈을 두다 기이한 느낌이 소름처럼 온 몸을 관통했다본체도 이름도 완벽하게 가린 모두 눈에 쌓인 세상이 문득 비현실적이고 낯선 무서움으로 해석되었다눈이 한 가득인 저 장소들은 인간이 이미지화 시킨 것처럼 포근하지도 안온하지도 않으리라숲 속의 동물들은 먹이를 찾아 나서지 못하리라.

 

눈 아래 세상은 전부 다른 색을 띠고 있지만 눈 덮인 세상은 어디나 비슷한 결로 망해 가고 있다는 것. (...) 이 재난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왠지 모를 힘이 나는 것이다.”

 

기차가 지나쳤듯 그 느낌을 잊고 내내 도시의 편리함과 풍족함을 누리고 살았다가능한 낭비하지 말고 환경 부담이 덜한 방식으로 살자는 지적 동기는 있었으나 일상은 그에 맞지 않는 시스템에서 생산된 것들로 포화상태였다그리고 다 함께 코로나 판데믹을 만났다.

 

기온이 낮을수록 바이러스 생존력이 강해진다기에 따스한 봄이 오면 혼란도 질병도 기세를 잃으리라늘 그렇듯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해결해 주리라불평불만을 내뱉으며 조금만 더 견디면 태연히 일상으로 돌아가리라 느긋하게 믿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날의 일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겼다아니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눈앞에 닥친 비극과 재난의 징조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려는 몸부림이었다이해가 가능한 범주를 벗어난 사건 같은 건 일상을 영위하는데 불안을 가중시킬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애써 기억을 뒤져봐도 2020년의 봄은 떠오르지 않는다준자가격리자처럼 집안에 머물며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기온은 매일 오르는데 바이러스는 왜 사라지지 않는지 화가 났다그리고 상황은 악화되었다. 2021년 봄은 왔고 바이러스는 여전히 상주 중이었다지금여름 폭염 속 인간 사회는 변이 실험을 위한 최적의 배양실이 되었다일상은 돌아오지 않는다그래서도 안 된다살던 대로 살아 이런 꼴을 당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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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지구를 통째로 박제해 버릴 심산인 듯했다언제 어느 곳에든 하얗고 반짝이는 방부제 가루가짜 눈이 있었다빌어먹게도 예뻤다.”

 

티티제에서 만난 가장 사랑하는 눈내리는마을 스노볼을 옆에 두고 폭염 주의 문자를 받으며 <스노볼 드라이브>를 읽는다조금은 반가웠던 서늘한 감촉의 눈이란 단어는 실리카겔이란 정체를 알자 한 여름에 닥친 재앙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우리가 사랑했던 아름다운 것들그리워하던 것들이 현실만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조차 변형되고 변질되는 것이 서글프다.

 

떠오르는 것이 없다아무것도정말 아무것도항상 당장 코앞의 현실을 감당하기도 벅차서 먼 미래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나중을 계획하는 건 멍청한 짓이야어차피 세상에는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몇 없다하다못해 이런 세상에 눈뜨게 한 가족조차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 이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 중 내 의사가 반영된 게 있기는 할까.”

 

모든 문장에 마음이 따갑고 쓰려 당혹감이 든다어쨌든 기성세대인 나는 아이들이 이런 말을 퍼부으면 내 자식들이 아니라도 이런 세상을 넘겨 준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할 말을 못 찾을 것이다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하며 묵묵히 살면 된다고 면죄부를 주며 살았다희생은 싫었다감당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만 감당했다.

 

죄책감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어서 자꾸만 이월을 다그치게 된다발바닥에 박힌 유리조각처럼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나를 아프게 찌른다빼내려면 바닥에 주저앉아 내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잘 빠지지도 않는다그렇게 내 신체의 일부가 되어 곯아갈지도 모른다.”

 

태어나자마자 마스크하고 외출을 한마스크로 덮인 얼굴들을 보고 자란맘 편한 외식도 여행도친구들과의 놀이터도 학교도 박탈당한 아이들은 이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마음을 품으며 자라고 있는 것일까온라인 수업을 하는 초등생 꼬맹이의 조그마한 등이 서러워 볼 때마다 눈물이 슬쩍 차올랐다.

 

이 책에서 보호자인 이모가 상징적이게도 스노볼만을 남긴 채 드라이브 도중에 실종되고 남은 아이들이 재앙을 처리하는 눈소각센터에서 일하는 장면은 현실을 책임지지 못한 어른들의 실질적 부재와 그래도 살아서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존재로서 아이들을 바라보게 한다.

 

어른들은 왜 항상 아이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걸까알려 주는 것 말고는 알려 하지 말고보여 주는 것 말고는 보려 하지 말고들려주는 것 말고는 들으려 하지 말라고그래 봤자 애들도 다 안다다 보고 듣지. (...) 그들이 왜 폐기물이지하루는 내 친구였는데친구와 폐기물을 나누는 기분은 무엇인지.”

 

현실의 어른들은 비겁하게도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눈을 돌리고 감고 온갖 합리화를 하며 우아하게 살다 아무 변화도 마중하지 못하고 시시하게 삶을 마칠지 모른다많이 알아 영리하게 군다고 생각한 어른들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돌발과 예측 불허의 미래에서 아이들이 반증해주길 바란다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지 말고정확한 과학적 상상력으로 가려진 덮인 면면을 들춰 가면서.

 

모루는 여행이 끝나면 사진을 주겠다 했지만 나는 이 여정에 목적지 따위가 없으면 좋을 것 같았다목적지가 있는 여행은 지루하니까. (...) 꼭 영원히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까지 단단하길 바라는 염원이 담긴 이름의 모루와 내내 염원했던 봄의 이월이 서로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서사가 귀하고 흥미롭고 애틋했다상대의 믿음의 근거를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선택할 줄 아는 넉넉한 배려가 뭉클했다내가 믿는 것보다 상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을 귀하게 여기는 시선이 깊고 아름다웠다.

 

작품을 읽기 전에 불결하고 불안한 시절과 닮은 글을 읽는 일이 즐거울 리 없다고 생각해서 한참을 망설였다떠날 수 없는 사람들재난에 가장 먼저 고스란히 노출되는 이들의 삶은 판데믹 이전에도 지금도 이후에도 사회의 경계선으로 더 촘촘히 밀려날 뿐이니까.

 

이 눈은 언제까지 내릴까멈추는 날이 오기는 할까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갑자기 궁금해지는 것이다만약 어느 날 갑자기 이 망할 눈이 그친다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능력도 힘도 없지만 함께’ 하는 것은 여전히 힘이 된다고 믿고 싶다서로를 향한 응원과 연대가 희망의 정체라고 그렇게 믿기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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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기계 vs 생각하지 않는 인간 - 일과 나의 미래, 10년 후 나는 누구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홍성원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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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에 관한 책들 중에 가장 강렬한 제목이다정보처리에 과한 뇌기능에 대한 정확한 계산을 차치하고 함의가 설득력이 있어 덜컹하는 기분이 든다이는 저자가 경영학 전공자이고 대학 강의와 인사관리 컨설팅 조직을 운영하는 분이니즉 인간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분이라 더욱 그러하다그러니 나는 생각하는 기계보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쪽이 더 무섭다.

 

인간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의 로봇은 처음에는 인간에게 육체적 부담이 가거나 인간의 육체가 감당할 수 없는 환경에서 노동 강도를 일정하게 하는 작업에 투입되었다인간이 에너지원을 공급해주고 잘 관리해줘야 작동하고 그럼에도 기계라서 늘 고장이 났다즉 인간의 몸에서 팔다리를 대신해주는 근육을 기계로 대체한 연장품이었다.

 

2021년 각 산업분야에서 이미 활발하게 활용되는 기계들은 개념이 다르다인간의 팔다리를 기계화하는 순서가 아니라 기계를 인간화한 형태의 생산수단을 만들어 내었다자율주행차알파고지능형 로봇인공지능사물인터넷머신러닝learning 등은 모두 빅데이터와 입력 상황을 근거로 인간의 두뇌처럼 생각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누군가 주장했듯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다 믿지 않더라도반복 노동이나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작업을 대신해줄 기계가 있다면 좋은 일이다물론 그렇게 확보된 시간에 인간이 여유를 누리고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자유롭게 할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나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고유한’ 감정을 진화시킨 로봇들이 인간을 적으로 인지하고 지배할 가능성을 거의 믿지 않는 편이다근거는 존경하는 뇌과학자들의 논문 발표 내용들이다기계에 의한 인간 지배보다 더 현실적이고 바꿔야하는 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이다.

 

간혹 읽고 싶은 책들이 무작위로 선택한 것들임에도 주제나 소재가 겹치거나 연관이 있어 반가울 때가 있다아직 읽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모르나 을유문화사의 <호모 파버>를 읽고 싶어 일단(?) 모셨는데 이 책의 저자가 일자리와 업무를 구분하는 내용을 읽다 보니 애니멀 라보란스Animal laborans와 호모 파베르Homo faber를 나눈 이야기를 인용한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는 일과 ?’라는 일을 나누는주어진 일을 하는 작업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나누는 구분이다이때 새로운 것에는작업 결과로서의 상품만이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체계사회가치환경의 변화까지 포함된다즉 지식정보의 보유량보다 활용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는 점이다이런 시대적 필요가 한국에서 시행되는 창의력 교육과 만날 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이런 구분 작업이 가능해지면물리학이나 수리력이 필요한 부분은 모두 컴퓨터 계산으로 대체 가능하고법조계 일들 중 판결 사례나 법조문 적용은 기계가 검색정리판단할 수 있다비행기 항법 기술도많은 교육 프로그램들도 대체 가능하다일의 성격은 분리되고 변할 것이다.

 

계산 능력이 좋다는 것이 사고 능력을 담보하지 않는다즉 AI의 목표는 정보를 최적화하는 일일 뿐이다차원 자체를 넘어서는 연산은 불가능하고프레임 문제를 추가 적용할 수 없고복잡한 변수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인간은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다시 한 번 나는 로봇의 반란기계 제국의 등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저자의 매력은 한편으로는 직무 분석 프레임을 통해 직종볍로 대응 전략을 마련하라고 하면서도, AI 시대의 인간의 생존 방식은 스마트 시대에 아날로그로 살아남으라’ 고 주장하는 점이다스마트 기계를 닮으려 애써봐야 기계를 이길 순 없다다른 방식은 디지털 소비자로 사는 방식인데 그 역시 권장할 방식은 아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아날로그라는 점심신 모두를 기계로부터 분리시켜 여유를 가지고아날로그식 즉 인간식 사고와 행동을 하고다른 인간들을 만나고인간관계들을 경험하고인문학적인 사고를 위해 책을 읽고 책모임도 하고... 이런 뜻밖의 익숙하고 반가운 결론에 이른다.

 

나는 이 미래가 협업을 통한 행복한 미래이길 응원하고 싶다마지막으로 당부하자면이 때 협업은 기계와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들 간의 협업을 의미한다제발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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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없는 변호사입니다
이지연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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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담이 아니라 실패담을 듣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같은 분야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군가의 실패담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각자에게 맞는 격려가 될 수 있다이야기를 듣고 힘을 내는 청자도 멋지지만 자신의 실패담을 가감 없이 들려주는 화자도 대단하다실패의 후유증이 가셨다 하더라도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스스로의 확실한 실패일 텐데.

 

시애틀에 살고 있는 내 친구와 시대는 다르지만 이리저리 겹치는 이력들이 있어 궁금했다독자들에게는 한국적인 상황이 아니라 관심이 덜할 수도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 싶다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읽어 보는 일은 당장 쓰임이 덜하더라도 사고에 인상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뜻밖에도 나는 한국에서는 여지가 없을 듯한 교육 과정과 그에 반응하는 저자의 선택과 행동이 무척 흥미있었다가능한 솔직한 칭찬을 더 많이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쉽게 한 평가가 다른 누군가의 삶의 방향을 이리저리 틀 수도 있다는 점을 조금 더 무겁게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잘 몰라서온전히 실수로 가까운 누군가를 상처 주기도 하는 일저자는 열두 살 어린 오빠가 남긴 흉터를 보며 사람에 대한 이해를 깊이 오래 한 듯하다여전히 오빠는 동생에게 남긴 상처를 곱씹으며 자신을 원망하지만저자는 인식에 대해 자기 나름의 믿음으로 흉터를 상처가 아닌 것으로 받아들인다.

 

타인으로 인한 상처보다는 자신감이 없이 자괴감을 느끼고 타인에게 부러움과 시기질투를 느끼는 자신이 입힌 상처를 깊이 돌아본다기이하게도 매 순간 불안과 좌절로 지옥 같았던 날들에 올린 SNS 글에 누군가가 자신을 부럽다고 댓글을 올린 것을 보고 부러움이라는 것이 가진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갈망에 대해 절감한다.

 

생각과 시선이 달라지니 부정적인 판단은 최악과 절망을 미리 위무하기 위한 방어적인 습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따라서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도 천성이 아니라 습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그렇다고 세상은 아름다워인생은 아름다워식의 시각은 아니라 내 삶에 결여된 것들을 세어보는 일을 멈추는 일이랄까. 자신을 철없다 하지만 그건 겸손의 표현인 듯하다.

 

상처와 부족함투성이의 나는 행복을 다른 누군가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끌어내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내 소개글 때문에 저자의 시각과 생각에 집중한 소개글이라 에피소드는 없나 하실 지도 모르겠다. ‘법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그 외 다양한 문제들에 관한 고찰은 풍성하다종교관가치관정치 이데올로기대인관계정신질환 그리고 연애까지.

 

저자 자신이 당당하게(?!) 비행청소년이었다고 들려주는 이야기도 있고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싶게 우여곡절 다 겪고 변호사가 되는 과정도 있고안타깝게도 그 이후에 자신의 꿈과 적성을 다시 고민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저자는 이 모든 여정이 피해갈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고 한다.

 

결국 신발을 버릴 수 있는 선택권을 나에게 있었다살면서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아니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지만결국 맨발인 상태가 더 편할 때처럼혼자인게 더 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집착을 포기하고 살아가다 보면 아픔이라는 것은 시간과 함께 잊히고는 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난 여러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하나같이 강렬하다어린 소녀들은 왜 감옥 생활을 자처하는지... 약물에 중독된 청소년들의 일상은 어떤지길가의 노숙자로 살면서 저자에게 삶을 바꿀 영감을 제공한 인물제대로 살아 보기 전에 자살한 여배우저자가 관심을 두는 시대의 영웅들 그리고 신도 등장한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이 책은 성공담과 행복론이 아니다그러니 지침서도 비법도 없다저자는 자신이 겁쟁이였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다오히려 자신의 삶을 복잡하고 어려운 장편소설처럼 차분하게 읽어가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담백하게 분석을 마친 후기를 읽는 기분이 든다.

 

생각 없이 사는 일은 간단하다지금은 외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지식정보의 홍수시대라 내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대신해주는 이들이 많고 그런 글들도 부지기수다그래도 다른 사람의 경험과 생각은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그러니 자기 고찰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싶었다는 이 실패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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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로리 - 새장 밖으로 나간 사람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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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버드 박스 >영화가 여러 의미로 숨 막히게 좋았던 지라,

영화화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에 축제 기분입니다.

그 사이 벌써 10년이었던가요.

 

그동안 판데믹 자체도 그렇고

그로 인해 촉발된 가시화된 차별, 테러 유혈 사태들을 목격하는 시절이

영화 내용과 연계되어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주인공의 이름이 제목이 된 작품 <맬로리>

위험한 미래가 현실이 된 현실의 우리들에게

이야기 속에서 어떤 희망과 메시지를 전해 줄지 몹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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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와 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34
배수연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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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업무를 마치고 물컹한 사과처럼 뭉그러질 듯 피곤한 시간에도 꼭 읽고 싶은 이웃님의 글이 보였다<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이 번역 출간되어 올 여름 휴가를 그 책 속으로 떠나신다는 설레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었다피곤이 흩어지는 아름다운 사진들과 글 중에 이런 장면이 등장했다.

 

부엌은 좌절을 안겨줬다몽크스 하우스에서 보낸 첫날밤에 정원에서 계단을 타고 물이 들어왔다물은 급하게 경사진 부엌 바닥을 흘러가서 식기실을 통과한 다음반대편 끝의 길거리 쪽으로 난 균열 사이로 내려갔다. “거대한 쥐들이 나타났고부엌 바닥엔 물기가 스며 나왔다. (...) 고용인들은 기겁하고 짐을 쌌어.

.

.

꼬리가 없어진 내 마우스를 돌돌 돌리다가 내게 있는 쥐가 떠올랐다츱츱츱 쥐가!



츱츱츱

쥐의 언어는 단물을 빨아먹듯이 츱츱츱

흔히 표현하는 찍찍찍이 아니다.

 

쥐와 도시’ 중에서

 

쥐에게 피해를 본 일이 없어 쥐를 무서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까만 눈이 반짝반짝 엄청 영리해 보인단 생각은 했다다람쥐토끼햄스터도 설치류이니 인간들은 를 빼곤 다 잘 지내는 중이다인간이 더럽힌 환경을 옮겼을 뿐인데 전염병의 책임과 비난을 다 지고 학살당한 쥐들은 정말 많았고 지금도 인간의 건강과 미용을 위해 실험실에 갇힌 쥐들도 많다.

 

꿈에서 쥐는 공모전을 거절했다

대단한 일이다

도시에선 끝없이 공모전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용기를 자랑하기 위한 포트럭 파티

 

쥐와 도시’ 중에서

 

시를 읽다 오랜 세월 기억 위에 한 번도 떠오른 적 없던 덴마크에 머물 때 들은 특별한 쥐 이야기가 떠올랐다.

 

중세 유럽에 퍼진 흑사병은 덴마크까지 퍼져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당국에서는 도시가 아니라 야생에 사는 쥐들까지 모두 소탕할 계획을 세웠다그 소식을 들은 10대 한 명이 쥐들이 다 죽는 게 싫어 울면서 잠들었는데꿈속에서 쥐의 왕을 만나 인간들의 계획을 미리 알려줘서 들판에 살던 무고한 쥐들이 대피시켰고 신기하게도 현실의 소탕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들판에는 실제 쥐가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신화와 동화와 역사의 묘한 경계에 살고 있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그 아이는 나중에 그 겨험을 소설로 써서 덴마크 문학상을 받았다기록도 책도 남아 있고 주민들이 진짜라고 하니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나는 믿기로 했다덴마크 쥐의 왕은 햄릿과 달리 결정이 빨라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흔한 일이다 하나같이 닮은 쥐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다 하나같이 쓸쓸하다는 것

 

쥐와 도시’ 중에서

 

매번 시집 앞에서 겁을 잔뜩 먹는 나는 긴장을 하고 읽기 마련인데이 시집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시집일단 시집의 화자는 귀여운 다람쥐도 토끼도 햄스터도 야생의 튼실한 쥐도 아닌도시에서 살아가는 시궁쥐다.

 

도시는 시원하고 도시는 아프고 도시는 간지럽고

도시는 죽는다 도시는 태어난다

 

쥐와 도시’ 중에서

 

외모는 도시의 비둘기나 완전히 방치된 노숙인을 연상시킨다바싹 말랐고 윤기 없는 털은 그나마 듬성하게 빠져 있다한 쪽 눈은 상처로 뜨지 못해 감긴 상태이고 등마저 굽었다도시 생활의 풍파를 다 겪은 노인의 시선을 가졌다이런 구성 본 적 있는지 츱츱츱.

 

이봐노인

늦잠을 자는 노인은 없나열 시 열한 시까지 자는 노인

나는 그런 노인이 될 거다

(...)

꽃을 싫어하는 노인은 없나돌만 좋아하는 노인

나는 그런 노인이 될 거다

예쁜 돌에 푸른 이끼가 있다면 락스로 박박 닦아 버려야지

(...)

노을을 볼 땐

개를 쓰다듬듯 자기 무릎을 만지는 노인

잘 모르겠네란 말은

아주 진지하게 그러나

슬프지 않게 그러니까,

자나노인

 

쥐와 노인’ 중에서

 

노인의 집에 사는 쥐는 가만 노인보다 더 오래 산건가 적어도 노인만큼은 노인답다인간 노인이 시끄럽다고 소리치면 티브이 소리나 좀 키워보라고 되받아친다그리곤 태연하게 지난주에 먹은 굴이 참 맛있었지 멋졌지 천상의 맛이었지 하고 생각한다피식거리는 웃음이 자꾸 새어나온다.

 

쥐는 앞니로 자기 무릎을 만들고 있다

(...)

쇠고리에 걸어둘

한 솥 뼈만 남은

노인이여

공기처럼 소파 위에 얹어놓은

무릎이여

(...)

마침내 흰 연기와 쏟아지는 박수

상기된 추기경이 새 교황을 발표할 때

노인과 쥐는 무릎을 꿇을 것이다

(...)

쥐는 차갑고

쥐는 레몬과도 어울리는

그런 영혼을 생각한다

 

쥐는 무릎을 완성한다.

 

쥐와 굴’ 중에서

 

웃으며 읽다 표정이 한순간 사라지는 기분... 웃기고 재미난 이야기로 읽지 못한 생각이 떠오른다도시는 더럽고 악취가 나고 그 속에서 사는 나는 늘 투덜거리고 괴롭다하고... 우리는 때론 도시에서 갖가지 상처를 입고 재난을 당하고... 그 대가로 굶주리지 않고 산다지하로도 옥상 위로도 거처를 만들면서.

 

싫다면 힘들면 떠나라고 누가 말한들 떠나지 않는다도시에 먹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아침저녁으로 보는 도시의 풍경을 모두 다 사랑하여 사진에 담는다쥐들도 그럴 것이다집세를 세금을 내지 않아도 나도 집주인이라고당연히 도시의 거주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딘가의 쥐들은 오늘 티브이 소리가 작아 불만일 지도 모르겠다어떤 쥐들은 지난주에 누군가의 굴을 대신 혹은 함께 맛있게 먹었을 지도 모른다인간 세상의 선거도 투표도 실황으로 보아서 그 결과를 다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인간 노인처럼 관절염을 앓으며 밤에는 무릎을 쓰다듬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가... 여전히 인간이라고 믿는 쥐들인가. ‘쥐가 화자인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인간이 화자인 이야기로 들리니... 누가 되었든 도시에서 살아남는 일이 별반 더 나을 것 없는 모양새이다무섭지만 그보단 서글픈 이야기라 끄덕끄덕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면 놀라 울지도 모르겠다.

 

인간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인간 같다.

오히려 인간이 제일 인간 같지 않다.

 

쥐와 도시’ 중에서

 

찰랑찰랑거리는 묘한 슬픔에 마저 지친 나는 이제 시를 다 읽고 노인처럼 기운이 없다여기저기가 아프고 졸음이 밀려든다눈을 감으면 이 집의 또 다른 주인인 쥐가 나와서 아직 굴을 사두지 않았다고 투덜거릴까... 혹시 내가 감춰든 초콜릿을 몇 개 집어가는 건 아닐까.... 사는 일의 진짜 얼굴과 삶의 진실은 정말로는 무엇일까..... 사랑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나, 노인" 츱츱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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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졸았다시간이 두 칸 반이 빈다알아볼 발자국이 있을까 바닥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시들과 함께하는 저자의 에세이 속에 현현하신내 삶의 기적처럼 신에 대한 믿음 없이도 무척 존모하는 교황의 얼굴을 몽롱함 속에서 나도 떠올려본다어두운 비가 쏟아지던 바티칸에서 홀로 기도를 드리던 그 모습을.


진실Truth은 중요하지만사랑이 없는 진실은 견딜 수 없습니다.”

<두 교황The Two Po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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