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있는 1등급 아빠
이혜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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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대단한 분이다저자 소개가 씩씩해서 짐작은 했지만구체적인 내용은 늘 상상 이상인 분들이 적지 않다에세이를 읽으면 아는 건 고사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조건에서 사람들이 고군분투한다는 절감이 더 커진다.

 

고령의 부모님은 물론이고 자신조차 노화와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이라서경사보다 조사가 더 많아진지 한참 되어서뭔가 이해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또 줄었다줄어든 만큼 배웠다절대 누구의 삶도 속단하지 말아야지.

 

두어 달 몹시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를 봤다고 해서저자의 오랜 시간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어머니의 상황도 내 할머니의 상황보다 더 먼 옛날처럼 느껴져서 무척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한국 사회의 공동체는 여전히 냉혹할 정도로 무관심한 부분이 많다.

 

모든 비용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수술비와 비급여 항목 몇 가지는 받을 수 있었다.”

 

늘 도움은 국가정부사회가 아닌 단체나 개인들로부터 먼저 온다는 것도 안타깝고 아픈 일이다물론 어떤 도움이라도 절박한 분들에게 먼저 닿기를 바라고 응원하지만어째서 사회는 개인이나 단체보다 빠를 수가 없는지정치 효용성이 무척 아쉽다.



 

그렇게 엄마의 도망과 함께 아빠의 간병 생활이 시작되었다더 이상 우리 가족은 물러설 데가 없었다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빠와 아무 것도 모르는 철없는 엄마의 보호자는 나 혼자였.”

 

지친 어머니와 누워있는 1등급 아버지와 작업치료사인 딸... 이 가정의 문제들을 누가 짊어지고 해결해왔는지 짐작이 가고실제로도 그랬기 때문에 더 안타깝고 다행이고 존경스럽다어머니께서 간병을 나눠하게 되고반려를 만난 이야기는 정말 안심이 되었다.

 

중증 뇌졸중 환자에게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불가능하다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된다면 가족들과의 정리 작별할 시간도 없다.”



 

이렇게 애썼는데 임종을 못 보았다다른 사람들의 해석도 의미는 하등 필요 없는 일이지만저자 본인이 섭섭했으리라 짐작되어 위로의 말을 건넨다.

 

간병은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다작은 아기를 키워내는 일에도 힘이 많이 드는데아픈 성인을 모두 잘 돌보며 치료까지 책임지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어둡고 무겁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에 짓눌리기도 하고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도 흔히 발생한다.

 

나의 깜냥으로는 흉내 못 낼 대단한 분이라서간병의 시간이 견딜만했다고 하지만...


 

달리 드릴 말은 없고잘 지내오셨다고 매일 더 행복해지시라고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독립적이고 생산적인 노인이 되는 것이 지금 나의 노년의 꿈이다하고 싶은 일을 내가 선택하고나를 주체로 움직이는 나의 삶이 노년기에도 유지되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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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 - 소멸하는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
대니얼 셰럴 지음, 허형은 옮김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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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편지 형식의 글을 이틀 동안 읽습니다주제의 접점은 있지만두 작품 모두 에세이인데 느낌은 다릅니다어쩌면 이런 내용의 편지를 제 짐작보다 많은 이들이 누군가에게 미래에게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목격한 현실에서 젊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중에 절망과 슬픔이 큽니다막 즐기며 살진 않았는데 기성세대인 저는 부끄러움과 수치심과 미안함과 무력감을 느끼며 삽니다대멸종은 얼마나 가속될까요. ‘슬로모션 응급사태란 구절이 아픕니다.

 

그래도 저는 저자가 찾은 희망의 이야기만 남기려합니다뭐라도 하는 분들이 많으니 절망과 좌절과 포기는 마지막에 하면 되겠지요기후문제로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저항 운동을 생존의 문제로써 벌이고 있는 청년 연합녹색업계화석연로 반대 투쟁가들과학계와 종교계 리더들지역주민노동조합원들텃밭 농부들이웃집 할머니들...

 

저자 대니얼 셰럴이 활동하는 미국의 환경단체 NY리뉴스(NY Rebews)는 2019년 미국 뉴욕주에서 기후정의 법안을 정식 통과시켰습니다.

 

너를 몰락하고 있는 세계로 데려오기로 한다면 그 이유를 너에게 솔직하게 말해줄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데려오기로 한 결정만이 아니라 그 배경정황 전체를 말이야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읽었으며어떤 기분을 느꼈고 또 어쩌다가 무력감을 느꼈는지어디에서 믿음을 되찾았고 또 어느 부분에서 의심을 품었는지 전부 다그리고 희망을 유지하는 것이마냥 올라가는 수은주에도 불구하고 너를 실현 가능한 대상으로 남겨두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이 편지 내용은 네가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도록 해거부하든가뒤집어엎든가고쳐 쓰든가확장하든가무시해도 돼. (뭐가 됐든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현실에 살게 됐고 눈을 깜빡이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그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단다.”

 

미래에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대에게 보내는 편지글에남의 편지에미어지듯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요담담하게 자신의 고뇌를 우아한 인문학적 사유로 글로 풀어내는 저자가 당혹해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분석할 기운이 없습니다미래를 떠올리는 일이 왜 즐겁고 설레지 않고 슬픈지...

 

화석연료 산업은 설계상 목표로 지정된 바를 좇느라 인류를 황폐화하고 있고 이를 위해 화석 연료 업계는 수백 명을 죽이고 생태계 일체를 괴멸하고 주거 불가능한 수준으로 지구를 뜨겁게 달굴 태세가그리고 자신들을 가로막는 모든 정부에 뇌물을 먹이거나 그들을 고소하거나 포섭할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는 피로해서 화 낼 기운이 없고 저자는 여전히 단단한 의지로 포기하지 않고 직시하고 해야 할 일을 계속하겠다고 단정하게 써나갑니다.

 

알아채 주세요! #알아채기의 기술*

 

가만히 서서 보기만 하는 능력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책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당혹감과 놀라움을 받아들이는 능력.

 

우리 삶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다른 유기체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항상 자원처럼 굴지는 않거든요.” - 풀과 동물을 알아채는 능력의 중요성인류학자 애나 칭(Anna Tsing)

 





대의와 사적 행복 사이의 고뇌젊음이 고민스럽지 않으면 좋겠단 마음과 그 고뇌가 만들어갈 존경스러운 인물을 함께 느낍니다.

 

사소한 나의 노력과 선택이 후손들이 너무 혹독하고 가혹한 계절을 피할 수 있게 하길조금만 더 준비할 시간을 늘려주길태어난 이들이 충분히 오래 살 기회가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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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 귀농하고픈 아들과 말리는 농부 엄마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
조금숙.선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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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볶다’... 지나치면 타버릴 때도 있겠지요. 신경이 달달 긁히는 느낌이 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마음이 볶인다는 것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빠른 결정과 실행력을 가진 친구들 몇몇은 10-20년 전에 귀촌/귀농을 했습니다. 그들 중에 영농후계자가 되어 억대 농가 소득으로 TV에 나오는 이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어릴 적 농사경험이 있거나 고향에 집과 땅을 가진 부모님과 친지가 있는 이들도 없었습니다. 무슨 생각... 혹은 자신감일까 걱정이 커지다 저는 살짝 화도 났습니다. (표현은 안함)

 

농사는 뙤약볕 아래 등산보다도 뜨겁고 길고 괴로울 텐데 잘할 수 있겠니.”

 

그중 한 명은 물리학 전공하고 계속 물리학 공부하다 유학을 가더니 다 집어치우고 도쿄 외곽에서 농사짓고 살겠다고... 심지어 남의 나라...

 

시간은 각자의 공간에서 흘렀고, 수확물이 생기면 반갑게 사서 친구보듯 만나기도 하고, 농촌 현실이 어떤지 충격 속에 배우기도 하고, 생활비는 따로 마련해야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식도 들으며 어느덧 2022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말한다. 언젠가 시골에서 마당 딸린 집 짓고 여유롭게 사는 그런 귀농 말이야. 그런데 귀농은 어렵다. 농사는 고되고 힘들단다. 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여유 있는 귀농은 사실 귀촌이지.”

 

이제 친구들은 그곳에 삽니다.’ 땅도 사람도 다른 생명들도 물도 공기도 살리자고 애쓰는 무농약 유기농법은 몸고생이 심합니다. 생산물은 관행농법 최고가보다 가격이 더 낮음에도 불구하고, 관행농법의 최저가와 비교되어 비싸다고 욕을 먹거나 외면당합니다.

 

그래도 꾸준히 구매하는 분들이 계셔서, 서로 주고받는 게 돈과 상품만이 아니라서 연결된 삶을 느낀다고 합니다. 물론 아르바이트는 여전히 요긴한 도움입니다.

 

시골에는 몸이 고달플 정도로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아챌 수 없는 아름다움이 곳곳에 있는 것 같아. 모든 삶이 그런 건가.”



 

이 책을 읽으며 온통 제 생각에만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귀농은 능력 밖이라도 귀촌해서 텃밭이라도 가꾸며 고요하게 살고 싶다는 낭만... 하지만 가볍게 이동할 수 없는 일상과 관계의 모든 무게...

 

그래서 읽는 동안 때론 아들의 입장이었고 때론 엄마의 입장이었습니다. 이래서 저는 여전히 우유부단하고 결정이 느린가 봅니다.

 

스스로 환경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생각함에도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를 매일같이 만들어냅니다. 환경을 생각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어느새 몸에 밴 습관에 또 좌절해요. () 그런데 저는 이렇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싶어요. 시골에서 흙과 함께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가장 놀랍고 부럽고 마음을 탕탕 울린 것은, 이 두 분이 글을 나누는 방식과 생각을 전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의사소통의 모습이 오랜 꿈이자 이상입니다. 담담하지만 결곡하고 정갈하지만 진지한. 가족끼리 혹은 누구라도 이런 대화가 필요하면 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흉내라도 내어보면 연습해봐야겠습니다.

 

삶을 향기롭게 하려면 용기가 꼭 함께해야 하는 것 같아.”

 

! <오해의 잡초를 헤치고 피어난 이해의 말들> 뭉클하고 부럽고 멋진 부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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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쿠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42
이혜미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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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상처보다 흉터에 가깝다.”

 

처음 이 시집을 소개했을 때 댓글로 흉터가 맞겠다는 답글을 받았다. 어째서 그럴까 문득 생각하고 며칠 간 담아 두었지만, 시문해력이 무척 낮아서 말끔하게 이해하고 문장으로 동의를 완성하지 못했다.

 

나는 내 몸의 자잘한 흉터들을 좋아한다. 폭력의 아픈 기억이 함께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인 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서툴고 어리석은 내가 만든 사건들이다. 가장 최근에는 손목에 무척 흥미로운 문양의 긴 화상 자국이 생겼는데 역시 어리석은 판단 때문이라 아픈 척도 못했다.

 

흉터를 좋아하는 건 통증과 자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런 순간들이 모두 나를 고유하게 만든 역사이기 때문이다. 요즘 더 자주 활용되는 다중 우주 어딘가에 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같고도 여전히 다른존재이다.

 

상처는 피부에만 남는 것이 아니다. 시인의 언어와 문장은 흉터가 남은 수천, 수만의 상처들을 아울러 위로한다. 제목에 쿠키란 단어가 있다고 일차원적으로 쿠키 생각만 하다 공간과 색이 겹친 표지를 받고 잠시 당황, 여러 생각...



 

쿠키를 찍어내고 남은 반죽을 쿠키라 할 수 있을까


안 구워내면 쿠키라 할 수 없다... 그냥 반죽... (시 이해가 이 정도로 얄팍해서야... )

 

찍어내는 쿠키는 공이 많이 든다. 요즘엔 더 게을러져서 이런 쿠키만... 재료를 다 붓고 젓고, 뜨고 올려서 굽는다. 그것마저 귀찮아지면 큰 반죽 덩어리로 남은 재료를 모두 사용해서 굽는다. 구워야 쿠키가 된다.



 

날이 추워지면 자꾸 식탁에서 책을 읽으려 한다. 도피하기 전에 뭐라도 오븐에 넣으면 완전히 무용하지 않았다는 변명도 생기고, 온도감이 좋고, 다 구워지면 천국 같은 향이 나고, 사지 않으니 포장쓰레기가 없어서 안심이 된다. 달지 않은 쿠키가 좋다.



 

무탈하니 좋은 날이었다고 생각한 월요일 저녁, 시집이 있어 금요일 저녁처럼 지낼 수 있었다. 벌써 발가락이 시리다. 가을이 사라졌나 서러운 기분이 위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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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 zebra 2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지음, 김윤진 옮김 / 비룡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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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좋아해서 구독하는 출판사 레터마다 소식 전해달라고 신청해 두었지만, 늘 못 본 그림책들이 많고, 이 작품처럼 세계가 주목했는데도 모르고 지나가는 작품들도 있다. 그림책만 모아 둔 큐레이션이 귀하고 반갑다.

 

이탈리아 작가가 프랑스아동문학상을 받았구나...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는 그림의 힘! 누구라도 사람들을 이토록 깊게 들여다보고 위로해주는 이야기와 장면을 보면 공감하고 감동 받을 것이다. 전달하는 방식 역시 아름답다.

 

색이 종이에 스며들 듯, 빛이 몸을 데우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조용히...

 

제목에서 좀 살아본 나이든 독자들이 더 공감할 내용인가 했던 짐작은 기분 좋게 틀렸다. 누구의 시간에서라도 일시적인 명멸이 없을까... 우리 존재 자체가 기준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순간적인 섬광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일 뿐인데...

 

운이 좋아 인지 능력이 있는 추상 사고가 가능한 생명체로 태어났다. 아무리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실은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갖가지 감정을 맛본다. 서글프고 허무할 때도 있지만,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 지금 여기의 삶과 일상이다.

 

사라질 줄 몰랐던 것들

사라질 리 없다고 믿었던 것들

내가 사라진 후에도 남아 있을 듯한 것들

죽도록 그리운 것들

 

삶은 찬란하고 슬프다.

그래서 뚝뚝 흐르는 눈물도

언제나 사라져버린다.

.

.

살다보면,

많은 것들이 사라진단다.

변하기도 하고,

휙 지나가 버리지.

단 한 가지만 빼고 말이야.

 

우리 각자의 단 한 가지는 무엇일까.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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