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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 귀농하고픈 아들과 말리는 농부 엄마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
조금숙.선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평점 :
‘마음을 볶다’... 지나치면 타버릴 때도 있겠지요. 신경이 달달 긁히는 느낌이 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마음이 볶인다는 것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빠른 결정과 실행력을 가진 친구들 몇몇은 10-20년 전에 귀촌/귀농을 했습니다. 그들 중에 영농후계자가 되어 억대 농가 소득으로 TV에 나오는 이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어릴 적 농사경험이 있거나 고향에 집과 땅을 가진 부모님과 친지가 있는 이들도 없었습니다. 무슨 생각... 혹은 자신감일까 걱정이 커지다 저는 살짝 화도 났습니다. (표현은 안함)
“농사는 뙤약볕 아래 등산보다도 뜨겁고 길고 괴로울 텐데 잘할 수 있겠니.”
그중 한 명은 물리학 전공하고 계속 물리학 공부하다 유학을 가더니 다 집어치우고 도쿄 외곽에서 농사짓고 살겠다고... 심지어 남의 나라...
시간은 각자의 공간에서 흘렀고, 수확물이 생기면 반갑게 사서 친구보듯 만나기도 하고, 농촌 현실이 어떤지 충격 속에 배우기도 하고, 생활비는 따로 마련해야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식도 들으며 어느덧 2022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말한다. 언젠가 시골에서 마당 딸린 집 짓고 여유롭게 사는 그런 귀농 말이야. 그런데 ‘귀농’은 어렵다. 농사는 고되고 힘들단다. 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여유 있는 귀농은 사실 ‘귀촌’이지.”
이제 친구들은 ‘그곳에 삽니다.’ 땅도 사람도 다른 생명들도 물도 공기도 살리자고 애쓰는 무농약 유기농법은 몸고생이 심합니다. 생산물은 관행농법 최고가보다 가격이 더 낮음에도 불구하고, 관행농법의 최저가와 비교되어 비싸다고 욕을 먹거나 외면당합니다.
그래도 꾸준히 구매하는 분들이 계셔서, 서로 주고받는 게 돈과 상품만이 아니라서 연결된 삶을 느낀다고 합니다. 물론 아르바이트는 여전히 요긴한 도움입니다.
“시골에는 몸이 고달플 정도로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아챌 수 없는 아름다움이 곳곳에 있는 것 같아. 모든 삶이 그런 건가.”
이 책을 읽으며 온통 제 생각에만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귀농은 능력 밖이라도 귀촌해서 텃밭이라도 가꾸며 고요하게 살고 싶다는 낭만... 하지만 가볍게 이동할 수 없는 일상과 관계의 모든 무게...
그래서 읽는 동안 때론 아들의 입장이었고 때론 엄마의 입장이었습니다. 이래서 저는 여전히 우유부단하고 결정이 느린가 봅니다.
“스스로 환경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생각함에도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를 매일같이 만들어냅니다. 환경을 생각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어느새 몸에 밴 습관에 또 좌절해요. (…) 그런데 저는 이렇게 ‘안’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싶어요. 시골에서 흙과 함께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가장 놀랍고 부럽고 마음을 탕탕 울린 것은, 이 두 분이 글을 나누는 방식과 생각을 전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의사소통의 모습이 오랜 꿈이자 이상입니다. 담담하지만 결곡하고 정갈하지만 진지한. 가족끼리 혹은 누구라도 이런 대화가 필요하면 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흉내라도 내어보면 연습해봐야겠습니다.
“삶을 향기롭게 하려면 용기가 꼭 함께해야 하는 것 같아.”
! <오해의 잡초를 헤치고 피어난 이해의 말들> 뭉클하고 부럽고 멋진 부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