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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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장르는 문제를 풀어야 끝나기 때문에 엉터리만 아니면 분량에 관계없이 몰입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순삭이라는 주변의 평이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밌게도 2001년 일본에서 첫 출간되었을 때 20대였던 나는 인물들과 더불어 20대로 회상 여행을 하게 되었다.

 

재미와 즐거움만 있어도 별로 불만 없는 장르문학이 사회파 본격 이슈를 다루면 독자 입장에서는 한층 더 반갑다. 무려 2001년에 출간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살인우정사랑이 원래 한 팀 소속인 듯 한 그릇에 넣고 버무려 맛있는 한 상을 차려낸다.

 

청춘, 첫사랑, 짝사랑, 우정이 얽힌 위험한 경계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아슬아슬해서 긴장되는 전개! 젠더로 고민하는 이들은 선택과 결정에 꼭 이렇게 생을 몽땅 걸어야 했나... 아프고, 부디 지금은 같은 무게감이 아니었으면 해서... 조마조마하다.

 

나름 노력도 했어. 줄곧…… 계속 연기했어.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연기가 아닌 날이 오리라 생각하고. 하지만 소용없었어. 마음은 얼버무릴 수 없었지.”

 

내 모습을 보는 것은 타인만이 아니야. 이 세상에는 거울이라는 게 있어.”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어요. 그 사진 속 인물도 육체는 여자인데 마음은 남자라는 단순한 표현으로 다 담을 수 없어요. 내가 그러하듯.”




2001년에 제기된 젠더, 신체, 이성애, 연애, 결혼, 가부장제, 정상가족, 정상성.... 이런 주제들을 마주하며 현재의 나를 자꾸 돌아보게 된다. 버블 붕괴 후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혹 한국사회에도 닥칠 미래 풍경이 아닌가 불안해하면서.

 

좀 더 몰입해서 현실을 잊고 보면, 추리 미스터리만의 구성과 장치들이 보이고 결말에 속 시원해하며 잊었던 전작들에 대한 감탄을 반복하게 된다. 여전히 놀라는 반전, 2001년 출간 사실을 잊고 새롭게 누리는 결망이 아쉽지 않다.

 

옛날책 같은 느낌은 크지 않다. 작품으로만 만나던 작가의 세계관을 무척 가깝게 만났다는 생각을 한다. 문제로 제기될 때마다 잠시 배우고 생각하다 둔 정체성에 대해 내가 여전히 가진 편견을 고민하게 한다. 청춘을 청춘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미워진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내용을 전하기가 어렵다. 출간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있는 작가라 독자로서 반가우니 좋아했고, 높아지는 기대만큼 엇갈리는 평이 안타까웠다. 잘 하는 것만이 아닌 무척 다양한 도전을 하는 작가가 나는 좋다. 분명 다음 작품도 기대와 호기심으로 펼쳐볼 것이다.

 

! 깊이 있는 고민을 오래 잡고 견딜 힘이 내게도 있었으면 바라게 됨

 

결국은 자신 역시 낡아빠진 꼰대들과 같은 부류 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기혐오에 빠졌다. 입으로는 아내의 자립을 바란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강한 저항감을 품었다는 말인가. 그런 것을 본인만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여는 거야. 형태는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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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연애소설
이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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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로 다친 상처는 이기호로 치료? 아니 이런 뚜렷한 목적은 없다.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연애소설이라 낯가림(?)이 심해 모셔두었던 책을 펼쳤다.

 

<눈 감지 마라> 일독 후 마신 핫초코가 서럽고 씁쓸한 맛이라 멍했다. 연애소설로 다시 당충전... 될까. 잘못하면 혼쭐 날 수도 있다. 어떤 연애는 세상 어렵고 무서운 일일 수 있으니.

 

으음... 모두의 연애는 모두 다르지만, 그래도 연애를 하려면 시간과 분량이 필요한데, 재밌어 지려하면 이야기를 끝낸다. 주제가 29개인데 10개 넘어가니 인물들이 막 헷갈린다. 이렇게 비슷한 패턴들이면 굳이 분리할 필요가... 주제 파악을 못하는 건 나인가...

 

연애 관계에 머물다 이별하고 이별 후를 사는 모습들이 비슷비슷... 그게 연애라고 하시면 할 말은 없지만, 왜 반복하시는 건지 뜻을 잘 파악 못하고 계속 읽다 혼동...

 

연애도 그렇지만 푸욱 빠져서 한참 머무는 이야기 - 장편 - 을 좀 더 좋아하는 내 취향 탓일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감정의 타래를 살살 풀어가는, 간혹 싹둑 자르기도 하는 그런 몰입과 집중의 과정이 아쉽다.

 

매력적인 연애들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건 평범한 삶과 특별한 연애로 분리시키고픈 내 의식 탓인가 싶기도 하다. 연애소설이래 놓고 살다 마주치는 아픈 곳들을 넘어가주지 않는 문장들 때문인 듯도 싶고.

 

너도 그러지 말고 경찰 공무원 준비하는 게 어때? 넌 친구가 없어서…… 누구 봐주고 뇌물 받고 그러진 않을 거 아니야?”

 

그가 내심 의기양양하게 채팅창에 제가 당근밭만 2천 평이 넘거든요라고 치기만 하면 그다음부턴 상대가 말을 하지 않았다. 이거 왜 먹통이 됐지? 이게 버그인가? 괜스레 컴퓨터 본체를 퉁퉁 치기도 했다. 이젠 그것도 다 옛날 일이 되었다.”

 

공무원 아빠를 둔 아이나, 교사인 아빠를 둔 아이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걔들은 인생이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처럼 저절로 흘러가는 줄로만 알고 있다.”

 

삶도 연애도 흐리고 쓸쓸... 달달한 거 하나 찾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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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지 마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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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독 후 올 해 첫 핫초코를 만들어 벌컥벌컥 마셨다날이 흐려서도 혈당이 낮아서도 아니고 속이 헛헛했다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불쑥거린다이 작품을 읽고 나면 이것저것 메가톤바고사리호빵 등등 먹고 싶어진다는 게 정말이었다.

 

일단은 자주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이기호 작가의 작품들이 다루는 주제는 늘 진지하고 묵직하다겁쟁이에 자기연민에 잘 빠지는 내게 주제에 짓눌리지 않고 외면하지도 않고 거듭 목격하게 하는 무서운 저자다.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는 가족소설이라기에 읽기도 전에 마음이 답답했지만푸슉웃게 되는 표지에 속아(?) 읽었고마음이 한참이나 징징 울렸다<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특별히 짧은 소설이란 문구가 매력이라 또 속아 읽었는데훨씬 더 정교하고 세련되고 절묘했다.

 

<눈감지 마라>는 표지가 두렵도록 쓸쓸하고 직설적이라 마음이 덜컹했다늙어가는 처지라 미안해서 어떻게 읽어야할지괴로운 무거움으로만 이야기를 건네는 분이 아니라고 경험으로 신뢰한다하지만 이미 현실이 이토록 잔혹하니...



 

49편의 짧은 소설이 가능한지 의아했다가 타인의 일기를 넘겨보는 것처럼 읽었다이 불안이 끝내 다 뒤집어졌으면 좋겠단 생각에 점점 더 겁을 내며 읽었다불길한 짐작을 부정하고픈 내 안의 저항이 그의 시간처럼 툭... 멈췄다.

 

즐거운 행복한 특별한 화려한 찬란한 일도 없던 짧게 스쳐가던 일상들이라 49편이나 쓸 수 있었던가... 슬프다다정한 작가가 그게 아파서 이들의 일상을 말끔하게 펴고 다듬어 버릴 수 없는 기억처럼 글로 옮겨 담은 것만 같다.

 

살던 대로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일상을 유지하는 일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다 쓰는 기성세대인 나는 일상이 깨어지는 것이 두렵다돌발과 변화가 발생하기도 전에 버겁다그러니 하던 대로 살려 한다그래서 안부를 묻고 손을 내미는 일도 아주 사소한 것들만 가능하다.

 

그런데 청년들의 현실과 미래는 해시태그와 클릭과 후원과 서명만으로는 더 나아질 것 같지가 않다충분하게 충분히 빠르게 개선시킬 수가 없을 듯하다이 지점에 나의 수많은 고민과 갈등과 죄책감이 살고 있다.

 

그래서

 

눈감지 마라

.

.

.

흐리다

어둡다

춥다

위태롭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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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 피해자에서 생존자, 그리고 감시자가 된 마녀 D의 사법연대기
D 지음, 김수정 외 감수 / 동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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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책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주제도 분량도 누가 이런 책을 출간할 결심을 했을까많은 분들이 의아해하실 만한 책이다강병철 역자께서 일인출판사 대표로 출간하신자폐 관련 의료인들가족지인분들 그리고 관심과 뜻을 가진 많은 분들이 펀드로 기획한 귀한 책이다.

 

북클럽회원분들과 펀드로 출간시키고 싶은 꼭 읽었으면 하는 여러 책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무척 좋았다이 책 역시 북펀드로 출간된 책이다책 말고도 활동 후원이 잘 되고 있는지 염려하게 되는 힘겹고 방대한 활동 기록이다.



 

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성범죄 수사와 재판을 지켜봅니다

 

남성법조인들이 권력을 잡고 한국사회를 내외적으로 박살내는 시절에, n번방 류의 범죄들은 거칠 것 없이 진화하는 시절에성폭력 범죄자들은 제 편을 들어주는 한국사법체계로 태연한 시절에매일 맞고 죽임을 당하는 여성들이 있는 시절에 읽고 지치고 다시 읽으며 배운다.

 

숨 막히는 싸움의 시간을 편히 읽으며부족한 내 단상은 미루고 모르는 법정과 현장의 이야기들을 배우고 기록해보려 한다도대체 법과 상식이 이토록이나 멀 수가 있단 말인가이렇게 운용될 거면 뭐하러 만든 제도란 말인가저열한 자극 중독자들이 모인 곳이 언론인가.

 

법정에서 겪은 피해자의 고통이 양형에 적극적으로 반영된 판결을 찾기가 어렵다부당함을 인지한 피해자가 증인석에서 항의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오히려 저 정도로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가능한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소극적으로 대처할 리 없다” 등의 이유로 피해자 에게 불리한 판단을 하기도 한다결국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의 고통만으로도 버거운데취조에 가까운 신문을 견디며 모멸을 느껴야 한다.”

 

피해자로 불리다생존자로 살아가며사법 감시를 하는 반성폭력 활동가인 저자와 법무법인 지향의 두 변호사님들께 존경과 응원을 올립니다화 내고 지치고 울면서도 함께 가야하는 이유를 거듭 배우겠습니다.

 

피해자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연대를 중도에 그만두기도 하며원칙에 벗어나는 돌발 행동을 하기도 한다부담이 될 것을 우려해 자기 의견이나 감정을 숨기기도 하고여과 없이 본인의 감정을 쏟아버릴 때도 있다이런 피해자와 적절한 거리를 설정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을 경우연대자는 마모되고 연대를 포기하게 된다.”




<저자만남연대자D X 안주연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라이브 북토크>

 

https://youtu.be/Bn4CGk0wdyw



<“당하면그때 오세요” 스토킹 살인 직감할 때 국가가 말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588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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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버시티 파워 - 다양성은 어떻게 능력주의를 뛰어넘는가
매슈 사이드 지음, 문직섭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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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자체가 수많은 신화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과거/입시제도처럼 한계가 분명하지만 다른 대안보다 쉬워서이미 공고한 이익관계가 있어서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절대기준처럼 남용되는 제도는 현실에 적지 않다.

 

묘하지만 설득력 있는 현상은 철학/교육정치 영역이 아니라 기업/산업 사회에서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과 분석과 대안 제기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이는 진짜’ 이익 계산에 밝고 숫자에 강한 집단 특성이기도 해서 한편 다행이고 한편 씁쓸하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사례실험보고서들이 많다는 점이다이론과 논쟁은 충분하고도 넘쳤다사회과학 분야도 자연과학처럼 실증(사례)’을 놓고 판단하고 설득하는 일이 통용방식이 되길 바란다그래야 괴변과 억지가 설 자리가 줄어든다.

 

이 책을 구성하는 개념들즉 집단 두뇌대중의 지혜심리적 안전감재결합적 혁신동종 선호네트워크 이론매끄러운 동종 어울림의 위험은 전체론적이다이 개념들을 구성하는 내용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에서 나타난다이는 우리의 가장 긴급한 문제들이 개인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시대즉 집단지성이 가장 중요한 존재로 떠오르는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



 

인류는 모두 이민자들이다근대국가가 정립되고 국경선이 선명해지고 여권이 발부되기 전에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여전히 이동하며 살아간다한국의 단일민족 신화도 유전자 검사로 부정되었다문제는 작위적으로 이루어지는 분리와 배제와 자기 복제이다.

 

능력주의에 기반을 둔 시험에 뛰어난 개인들이 주로 모인 집단은 자기복제그룹이고 거의 동종이다중산층백인남성개신교가 지배한 근현대 사회가 현재 도착한 곳의 심각한 위기상황은 사회 분야에서 다양성확보의 실패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수백 년간 아이디어 네트워크에서 여성이 제외된 결과 여성만 사회적으로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인구의 절반에서 나올 수 있는 통찰다양한 관점과 정보로부터 남성을 단절시킴으로써 남성들의 창의성도 크게 감소시켰다는 것이다.”



 

즉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멍청한 향방이었다는 것이다이익 집단과 수익 산업을 받드는 이들에게도 더 효율적인 개념이 다양성이다속이 시원하다남성들 중에서도 다시 소수의 동종집단의 아이디어에 얼마나 많은 창의성이 있을 수 있었을지 한계는 뚜렷하다.

 

수백 년의 과오에 더해 저자가 지적하는 메아리효과’ ‘에코체임버의 위험성도 현실적으로 가시화된 위협으로 느껴질 정도로 명백한 위험이다정보 접근이 확대되고 쉬워지고 매개수단으로서의 기술이 발전하면적어도 정보민주화는 가능할 것이란 믿음은 순진했다.

 

SNS는 사실이나 진실보다 가짜뉴스를 퍼트리는데 최적화한 기술공간으로 채워진다. ‘단톡방이란 공간의 메아리효과를 상기해보면인류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가스라이팅 범죄현장이었다고 생각된다.



 

문제지적과 반박사례대안과 극복방안까지 모두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는 점이 끝까지 좋았다경험과 역사에서 우리가 배우고 바뀌고/바꿀 수 있다면 이 책은 중요한 자료로서 그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근래에 신경다양성이란 혁명과 과제 둘 다로서의 표현을 만났고이 책에서 인지다양성에 대해 배웠다. ‘다양성이란 고안한 개념이 아니라 원래부터 현실이었으며 인류가 오래 부정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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