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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지 마라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9월
평점 :
일독 후 올 해 첫 핫초코를 만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날이 흐려서도 혈당이 낮아서도 아니고 속이 헛헛했다.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불쑥거린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이것저것 - 메가톤바, 고사리, 호빵 등등 - 먹고 싶어진다는 게 정말이었다.
‘일단’은 자주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이기호 작가의 작품들이 다루는 주제는 늘 진지하고 묵직하다. 겁쟁이에 자기연민에 잘 빠지는 내게 주제에 짓눌리지 않고 외면하지도 않고 거듭 목격하게 하는 무서운 저자다.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는 가족소설이라기에 읽기도 전에 마음이 답답했지만, 푸슉~ 웃게 되는 표지에 속아(?) 읽었고, 마음이 한참이나 징징 울렸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특별히 짧은 소설이란 문구가 매력이라 또 속아 읽었는데, 훨씬 더 정교하고 세련되고 절묘했다.
<눈감지 마라>는 표지가 두렵도록 쓸쓸하고 직설적이라 마음이 덜컹했다. 늙어가는 처지라 미안해서 어떻게 읽어야할지. 괴로운 무거움으로만 이야기를 건네는 분이 아니라고 경험으로 신뢰한다. 하지만 이미 현실이 이토록 잔혹하니...
49편의 짧은 소설이 가능한지 의아했다가 타인의 일기를 넘겨보는 것처럼 읽었다. 이 불안이 끝내 다 뒤집어졌으면 좋겠단 생각에 점점 더 겁을 내며 읽었다. 불길한 짐작을 부정하고픈 내 안의 저항이 그의 시간처럼 툭... 멈췄다.
즐거운 행복한 특별한 화려한 찬란한 일도 없던 짧게 스쳐가던 일상들이라 49편이나 쓸 수 있었던가... 슬프다. 다정한 작가가 그게 아파서 이들의 일상을 말끔하게 펴고 다듬어 버릴 수 없는 기억처럼 글로 옮겨 담은 것만 같다.
살던 대로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을 유지하는 일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다 쓰는 기성세대인 나는 일상이 깨어지는 것이 두렵다. 돌발과 변화가 발생하기도 전에 버겁다. 그러니 하던 대로 살려 한다. 그래서 안부를 묻고 손을 내미는 일도 아주 사소한 것들만 가능하다.
그런데 ‘청년’들의 현실과 미래는 해시태그와 클릭과 후원과 서명만으로는 더 나아질 것 같지가 않다. 충분하게 충분히 빠르게 개선시킬 수가 없을 듯하다. 이 지점에 나의 수많은 고민과 갈등과 죄책감이 살고 있다.
그래서
“눈감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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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다
어둡다
춥다
위태롭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