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로 건너가는 법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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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아프고 뜨거운 목요일 밤에 보드라운 색감의 책을 열었다달달하고 말랑하게 살아온 저자가 아니기에 내용도 단단할 거라 기대했다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그날 밤 꾼 꿈의 몇 조각 잔상이 오래 전 일상으로 데려가 주었다.

 

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진지한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그 시절젊고 오만해서 꽤나 대담한 선택과 변화를 해볼 수 있었던그래도 대부분은 시행착오로 배우기 바쁘던 덥고 고단한 시절이었다이토록 이상한 사람들끼리 뭔가 일을 함께 해내는 장면들이 신기했다.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치고는 여러 큰 조직들에서 버텼다운이 좋아 옮길 곳이 보여 움직이면 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일 무서운 거사람 힘든 걸 배울 때쯤부터 늘 퇴직을 바랐다버티는 요령들이 늘어갔다지금은 요령도 안 피우고(?) 견뎌 보는 중이다.


 

오래 전 친구들과 직업이란 무엇인가’ 토론을 할 때는 우리가 생각해낸 다양한 종류의 직업들 중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을 거란 오해를 했다자아실현도 하게 될 줄 알았다어쩌면 세계 평화와 환경 보전도.

 

정리력과 책임감나에게는 당연한 이 능력이 나만의 강점으로 변모하는 순간이 찾아왔으니그것이 바로 팀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 그때쯤부터였다나는 더 이상 퇴사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마침내 내게 딱 맞는 직업으로 이직을 했으니까.”


 

재능용기끈기 있는 친구들 몇몇은 하고 싶은 일을 고집했다다른 몇몇은 하고 싶은 일에 부재한 능력에 한탄하며 잘 하는 일을 하는 것을 위로를 삼았다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산다그러니 저자처럼 반짝이고 행복한 이야기는 드물다뜻밖에도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는 피로할수록 치유와 회복의 효능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그 후에 인생이 내게 알려준 건 팀장 역할이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었다정리하고 책임지는 것만으로 팀장의 역할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내 능력에 이 역할이 버거워서 몇 번이나 도망칠까 생각했다.”


 

나는 직책과 업무에 관한 이해도 없이 어느 날 팀장이 되었다이상적이고 넘사벽 팀장인 저자의 경험과는 다른 것들이 기억난다업무 이외의 많은 것을 안 하는 팀장이 되기로 했다퇴근 후 연락회식잡담이 사라졌다연말에 팀원들로부터 조금 외롭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안전망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팀일 이유는 없다. (...) 나는 괜찮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우리가 우리인 한 다 괜찮을 거라는 분위기그 분위기가 소속감을 만든다다른 팀과 구분되는 우리 팀의 힘을 이끌어낸다.”


 

적지 않은 나이로 입사를 해서였을까나야말로 사수가 필요했지만 만나지 못한 팀장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 모두가 원할 팀장을 책에서 만난다업무 접점이 없어 협업하는 상상도 제대로 즐길 수 없어 아쉽다그래도 (매일 원하는퇴직 전에 만난 팀장님이 많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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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의 밤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이은주 옮김 / 푸른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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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SF 장르에 액션 스릴러! 드라마 제작 확정된 원작 소설이라면 최고로 즐거운 독서겠지요. 분명 나른하고 무거운 몸이 확 깨어나는 전개와 반전들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펼쳤습니다. 자잘한 것이 아니라 묵직하게 큰 펀치를 날리는 설정들이 시작부터 등장합니다.

 

납치, 약물 주사, 기절, 정신을 차리니 14개월이 지났다고?

 

꿈속도 망상도 아니고 가스라이팅도 조작도 아니고 아예 다른 세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악몽 - 저만 그럴 수도 - 인 바로 나 자신과의 대결입니다. 제이슨을 납치한 범인이 제이슨2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세계에 사는 나와 같은 존재가 나를 납치할 수도 있고, 삶 자체를 빼앗고 나를 또 다른 세계로 보내버릴 수도 있습니다. 끔찍합니다. 기본적으로 지능도 체력도 동일한데 저쪽이 명백한 의도를 지닌 자라면 어떻게 싸워 이기나요.

 

묘하게도 며칠 전에 사용한 단어인 다중 우주가 등장합니다. 524쪽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은 이전에 본 어떤 SF영화보다 더 실재적이고 섬세한 방식으로 독자가 다중 우주가 배경인 작품 세계를 경험하게 합니다.

 

! 원제는 무려 Dark Matter 암흑 물질

 

후회가 많아서 혹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장치는 많이 활용되어왔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과학자 제이슨2가 직업 시공간을 이어 다른 세계들을 연결해 주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사는 게 행복해?”


 

SF의 오랜 팬으로서 이 장르의 작품들이 현실의 우리에게 주는 경고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정이 극적이지만, 현실의 우리도 유사하게 작품 속 사건들과 같은 경험을 합니다. 예상 못한 일로 이전의 삶이 갑자기 달라지거나 파괴되고, 아무리 애써도 설득하기 힘든 자신과의 내적 투쟁을 하고,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집착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니까요.


 

어떤 세계에 도착할지 모른다는 것은 우리가 한 과거의 선택들이 현재를 만들었고, 현재의 선택들이 미래를 결정하는 현실과 동일합니다. 무언가를 하면세상에 개입하는 것이고, 세계는 내가 개입하기 전과는 필연적으로 달라집니다.

 

이런 (양자 과학적)사실이 희망의 메시지에 더 가깝게 들리나요?

혹은 예측 불가능한 혼돈의 상태가 떠오르나요?


 

주인공도 세계도 무한확장이 가능한 이 소설은 장수 시리즈를 양산하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다중 우주를 설득력 있게 상상하고 묘사할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재밌고 강렬해서 잠도 다 깨고 즐거웠는데... 다 읽고 나니 문득 울컥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장 훌륭한 버전의 나로 사는 것이겠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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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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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공부를 제대로 할 기회가 없어서 무지한 상태로 영국 유학을 갔다. 국적이 수십 개인 학생들을 만나다보니 기초지식도 부족한 세계사 상식이 부끄러웠다. 그래서였을까, 호세이니의 문학을 전공이 아님에도 함께 읽었다.

 

2022년에 다시 만난 작품은 달랐다. 라일라와 마리암의 처지가 모국어로 가감 없이 생생하고 처참하게 전해져 문득 숨이 막혔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에 무지하지만, 반백년쯤 살아 보니 누구의 생존도 대체로 무겁고 고단했다.

 

버리고 팔고 때리고 죽이는 일이 법인 곳에서, 살리고 키우고 지키고 사랑하고 용기를 낸다. 늙어서 눈물이 왈칵거린다. 남은 자들이 살아가는 이런 모습을 떠난 자가 알 것인가. 외부인인 나의 눈에 현장의 삶을 제대로 담길 것인가.

 

20대에 나는 작가가 못미더웠다. 안전하고 한가롭게 미국에 살면서 글 쓰는 남성작가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생존을 위해 매번 목숨을 거는 여성들의 삶을 아는 걸까 기분이 뾰족해졌다. 지금은 판단할 만큼 알고 안타까워하고 도움이 될 일을 한 적이 없어 부끄럽다.

 

라일라에게 슬퍼하지 말라는, 죽어 갈 마리암을 만나 기어이 울었다. 시시한 일들에 홀려 생전에 녹취를 못한, 대하소설 같은 삶을 살아내신, 여러 해 기워주신 할머니가 죽도록 그립다. 사람은 주고받은 사랑이 있어 거듭 무너지고 살아 본 기억이 있어 버틴다.

 

그녀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


 

두 번 못 읽겠다 싶게 괴로운 내용인데 끝까지 읽게 된다. 저자는 모든 문장들을 세상에 불러내어 뜨거운 아픔과 안타까움을 눌러 썼을 것이다. 마침내 체온처럼 따스하고 찬란한 태양을 이들의 삶에 데려다놓고 말겠다는 결심을 지켰을 것이다.

 

폭력은 망가뜨리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다른 꿈을 꾸는 이들은 더 힘이 세다. 생존한 인간은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 그러니 포기도 좌절도 마지막의 마지막에 하면 될 일이다. 고되고 두려운 희망도 여전히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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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팬데믹 - 코로나19가 부활시킨 식량위기
최성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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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원인이 기후위기라는 것에 80% 이상의 사람들이 동의했다는 보고서는 이전에 보았다부정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시끄러웠던 세월이 길어서 격세지감을 혼자 크게 느꼈다문제는 팬데믹이 끝났다고 기후위기도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기후위기는 재앙으로 비상으로 현현하고 있다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든다고 해도그동안 배출한 결과를 피해갈 도리는 없다가장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은 가뭄홍수와 같은 극한 기후와 그로 인한 식량 재배/수급/유통의 변화일 것이다.

 

“UN은 2015년 지속 가능 개발을 위한 2030 어젠다를 선정하면서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식량 손실을 줄이기 위해 책임 있는 소비와 생산이라는 의제를 포함시켰다. (...) 기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생산 및 유통 과정의 음식 손실을 줄이고 식량 활용도를 높여 2030년까지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그러나 (...) 전 세계적으로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는 수준이다.”


 

더구나 2022년 2월에 시작된 전쟁으로 인해식량과 에너지 문제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다아직은 전 세계적인 식품 사재기로 인한 공황 상태는 아니지만어쩌면 대비할 틈 없이 어떤 식재료는 사라질 지도 모른다.

 

정치/경제적 혼란이 큰 남미와 아프리카 등지의 메뚜기 떼도중국 및 남아시아 지역의 대홍수도 식량 위기를 가속화시킬 요인들이다살던 국토가 물에 잠겨 기아와 사망에 이르는 이들도 많다이들의 탄소배출량이 미미한 것을 생각하면 환경정의 역시 시급한 논의이다.

 

우리가 적게 버리고육류를 적게 먹고자동차에 바이오 연료를 적에 채우기만 해도 오늘날의 수확물로 충분히 먹을 수 있다따라서 더 많은 식량 생산보다는 더 적은 손실과 적정한 분배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우리가 더 많은 식량을 수확한다고 해서 그게 굶주린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도 계속 변이하는 바이러스들과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현생 인류가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바이러스와의 접촉은 더 늘어날 것이다기아로 면역력이 떨어진 이들은 무방비로 노출/감염되고 사기업이 개발한 백신 구매력이 없으니 높은 확률로 사망에 이를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것은 세계 식량 분배 체제가 불공평하다는 방증이다.”


 

우리는 변화를 선택할 수 있을까

 

식량권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식량 투기 거래를 금지하고

식량 작품을 연료 생산을 위해 투입하는 것을 제한하고

농가공식품 거래에서 문어발식 카르텔을 차단하고

거대 자본에 의한 농지 갈취에서 농민을 보호하고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농업 기술 향상을 위해 투자하고


 

이런 등등을 당장 전 세계적으로 시작하면 우리에게 기회가 아직 남았을까있다고 누군가 보장한다면인류는 그 답을 믿고 행동할 것인가호소는 공허하고 제안은 무시당한다인류는 팬데믹 이전에도 어리석은 일들을 수없이 저질렀다.


 

특히 식량 분배 문제에서는 최악의 멍청한 선택을 했다생존과 관련된 일에 이윤만을 추구하는 방식은 문제를 난제로 만들었다식량자본 카르텔은 이미 거대해졌고한 두 국가에서 제어할 수도 없다누가 실마리를 찾아 말끔하게 풀 것인가.

 

현재의 여러 위기 상황에 동참한 공범이자 무책임하게 좌절한 기성세대로서염치없지만 미래세대가 해결해 주기만을 희망한다어른들을 믿지 말고 기대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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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변방 울산 - 역사를 담은 정책 에세이
김상육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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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살다가, 반구대 암각화에 대해 알게 되면서 도시의 역사와 환경에 대한 공부를 조금 했다. 여전히 외부인의 입장으로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느라 도시 전체를 애정을 가지고 대하진 못했다.

 

그래서 1998년부터 울산시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계신 저자의 글이 궁금하고 드물어서 귀하다고 생각한다. 행정업무를 주로 하셨겠지만, 지역에 대한 업무 이상과 관심과 애정을 가지신 분일 것이다.

 

향토사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정책과 사업으로 전개되는 사고방식이 자주 접하지 못하는 종류의 글이라 더 흥미로웠다. 블로그와 언론에 여러 해 꾸준히 쓴 글을 모아 출간한 책이다. 성실하고 진지한 사람도 글도 무척 좋아한다.

 

수도와 지역으로 충분했을 텐데 중앙과 변방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그런 현실이 된 것이 안타깝고 잘못이라 생각한다. 수도권이라고 해도 인구를 분석하면 대부분은 지방 이주민들이다. 명백한 정책 실패와 차별의 역사가 만든 기형이라고 믿는다.

 

지방을 방치하고 소외시키고 지역을 특색을 없애고 인구를 줄여서 사회 전체가 이득이 될 것이 무엇이 있나. 멍청할뿐더러 망국적이다. 얻을 건 하나도 없고 읽을 것만 태산 같다. 나부터 무지했던 향토사를 이 책을 통해 처음인 듯 배운다.


 

자연적 입지로 인해 감당해야했던 역할들, 전투의 흔적, 오랜 상공업 전통, 개방적인 지역 분위기, 포경의 역사. 예전엔 분명 더 풍성하고 다채로웠을 모습들이 거듭 안타깝고, 환경정책을 담당한 분의 생명에게 고통을 주는 연구조사 근절이라는 단호한 의견도 반갑다.

 

25년 경력의 공무원인 저자가 업무 보고가 아닌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역사와 문화와 사회와 바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존경스럽다. 무려 44가지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나는 내가 속한 장소와 시절에 대해 몇 가지나 정확히 알고 전달할 수 있을까.

 

울산시민 독자들이 많이 읽으시면 좋겠다. 인구와 자본이 많지는 않아도, 지방자치체만의 장점과 역량이 있다고 믿는다. 지역을 제대로 아는 기관장, 담당공무원, 무엇보다 주민들의 의지와 협력으로 중앙정부와는 다른 섬세하고 유용한 정책을 만들고 실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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