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보다 - 100 lessons for understanding the city
앤 미코라이트.모리츠 퓌르크하우어 지음, 서동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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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햇살과 노점상과 교차로와 랜드마크와 상점 출입구와 지하철과 공원과.. 등등을 통해 도시를 말한다. 뉴욕 중심의 이야기라 그런지.. 멋스럽다. 그런데 시끄럽지가 않네. 아직도 뭔가 관조적. 그게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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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1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악. 저 이것도 볼래요. 안그래도 [몬스터 콜스] 땡투 하고 오늘 구매했는데 ㅎㅎ 이것도 땡투네요. 드림아웃님 부자되시면 다 제 덕인줄 아셔야해요!

dreamout 2012-07-12 08:00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해요~!! ^^
 
사각형의 신비 - 네모난 틀 속의 그림이 전하는 무한한 속삭임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 신성림 옮김 / 뮤진트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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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과 고야의 <1808 5 3일의 처형>에서 기존의 미술평론가들이 보지 못하던 것을 저자가 발견했다는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을 보고 읽었다. 그림 하나를 두고 10분이면 오래 보았다고 생각하는 내 앞에, 두어 시간을 보통으로 바치는 사람이 여기 나타났다. “테두리는 그림의 경계와 규모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 안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라는 말부터 마음에 들기 시작했지만, 정말 인터넷 소개 글처럼 베르메르와 고야의 그 유명한 작품들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낸 저자의 관찰력과 통찰력에 내내 감탄했다. 하지만 탄복하는 마음에 의례 따라다니는 거리감은 거의 안 생겼다. 현학적인 용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자신의 느낌과 생각들을 추적해 나가는 저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듯 했다. 배우는 자세고 그림을 보는 그 행위 자체를 즐기는 자세다. 하나의 그림 앞에서 느낀 것들을 언어로 풀어나간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도전인 법. 차근차근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독자의 손을 놓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끌 듯 나아간다.

 

 

2.

머리를 시원시원하게 해 주는 통찰의 연속이다.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에서 수태고지를 떠올리고, 고야의 <1808 5 3일의 처형>에서 고야의 자화상을 발견하고, 조르조 모란디의 정물화에서 병과 병, 병과 노란 천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고, 폴 세잔이 지나가듯 쓴 말 윤곽에서 세잔 회화 철학의 어느 한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 등등.

 

더불어 이 책의 한 챕터인 <식탁에 앉은 유령들>은 이제껏 읽은 정물화(또는 회화 전체) 관련 해석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같은 시기에 함께 읽었던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을 읽는데 이 챕터가 큰 도움이 되었다. 비록 내가 그 통찰을 제대로 짚어내 풀어내진 못했지만.

 

 

3.

고야와 조르조 모란디의 재발견이다. 베르메르야 워낙 예전부터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고야와 모란디는 알고만 있었지 좋아할만한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고야의 <로스 카프리초스> <1808 5 3일의 처형>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란디가 정물화 속에서 해낸 게 무엇인지. 내게는 재발견이라는 말도 모자란다.

 

 

4.

원작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복제하면 아주 형편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조르조네의 <폭풍우>를 보기 위해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몇 번이고 방문한다. 사사키 아타루의 자세와 동일한 것을 이 책의 저자에게서도 똑같이 느꼈다.

 

 

5.

가십성 정보지만, 은근 흥미로운 사실.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로 알려진 조안 미첼과 폴 오스터가 아주 친한 사이였다는 점. 조안 미첼을 통해 폴 오스터가 사뮈엘 베케트를 만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폴 오스터가 저자 시리 허스트베트의 남편이라는 사실.

 

고야의 <1808 5 3일의 처형>에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고야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 사실을 알렸을 때 폴 오스터 또한 단박에 알아차렸다는 점. 뉴욕에 돌아와서 그 사실을 전했던 저자의 친한 친구 두 명중 하나가 니콜 크라우스였다는 점.

 

 

6.

같은 출판사에서 저자의 소설(남자 없는 여름)도 나왔다. 논픽션과 픽션, 둘 다 잘 쓰는 작가는 매우 드물다. 소설도 이 작품 수준이라면, 나는 좋아하는 소설가 한 명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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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0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보고 작가 이름 타고 가서 말씀하신 소설을 검색해보았어요. 책 소개를 읽고 장바구니에 넣어버렸어요. 하핫.
이 책은 제가 읽을 수 없을것처럼 생겼어요. orz

dreamout 2012-07-02 01:29   좋아요 0 | URL
아주 드물게 보는 제대로 된 회화 에세이였어요.
서평도 이렇게 써야 하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소설은 읽지 못했으므로 장담하긴 어려워요~ ^^;

... 2012-07-02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오 모란디의 그림은 제가 좋아하는 웨인 티보(Wayne Thiebaud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케이크를 많이 그려요)의 그림들과 많이 닮아서 묶어서(?) 좋아하는 화가예요. 미술관에서 만나면 처음엔 뜨악해요. 그러다가 점점 대상 전체가 눈에 들어오고, 대상들의 형태와 배치가 눈에 들어오고, 그 다음엔 그림자가 눈에 밟히게 되죠. 그리곤 영원히 못 잊을 그림이 되요.

이 책, 역시 폴 오스터의 와이프라는 태그가 떨어질 순 없는 거겠죠? ^^

... 2012-07-02 01:11   좋아요 0 | URL
5월달에 한길아트 시리즈가 50% 할인해서 <고야>를 샀거든요. 알려드리려고 보니, 가격이 그새 다시 원상복구 됬네요 -.-

영화 <고야의 유령> 혹시 못 보셨으면 강추요!

dreamout 2012-07-02 01:45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웨인 티보. 그림을 보니 알겠어요. 국내의 어느 전시회에서 직접 본 것 같아요. 모란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정말 있는거 같아요. @@

번역가 김석희가 훗타 요시에를 엄청 상찬한 글을 본적이 있는데, 훗타 요시에는 몽테뉴와 고야에 관한 아주 긴 글을 썼죠. 몽테뉴는 그렇겠구나 했는데, 고야는 이해하지 못했었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충분히 이해가 가더군요.

책날개에 소개된 저자의 약력에서 폴 오스터가 남편이라는 것을 보았어요. 사실 그런 정보는 관심 없어서(작가의 전기적 내용에는 거의.. 관심이 없거든요.)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데, 고야와 조안 미첼의 회화에 대한 글에서 소개되더군요. 출판사가 쓴 약력이 아니라 책 내용에 언급되었으므로 얘기해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

탄하 2012-09-0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리뷰 기억나요.
제가 <사각형의 신비>를 살까말까 고민할 때 참고했던 리뷰네요.
다만 헌책방의 책을 산거라 땡스투를 드리지 못함이 아쉬웠습니다.ㅜ.ㅜ

dreamout 2012-09-04 23:09   좋아요 0 | URL
앗.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땡스투 받는 것보다 더 좋네요. ^^

뮤진트리 2017-04-1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 허스트베트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의 출간 기념 북토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유니크한 여성작가 시리 허스트베트를 만나다.˝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095663&memberNo=6336660&navigationType=push
 
깡패단의 방문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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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뒤표지에 커다랗게 인쇄되어 있어 두말 할 필요가 없겠지만, 내 방식대로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소설은, 시간이 깡패라는 통찰을 전한다기 보다는 깡패인 시간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어떤 마음을 담고 있다. 라고. 또는 시간이라는 형식은 인간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시킨다. 라고.

 

읽는 동안 머리가 바빴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를 너무 굴리느라 핑핑 돌 지경인데, 머리를 더 굴리게 하는 그런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됐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난해하다는 뜻은 아니다. 주제는 명확하고 13개의 단편으로 이뤄진(차례를 보면 느끼겠지만 이 소설은 하나의 앨범(LP)으로, 각각의 단편(혹은 연작소설의 한 챕터)의 제목은 하나의 곡명처럼 사용되고 있다) 것을 그냥 쭉 읽어 나가면 된다. 정보량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읽기에 부담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뭔가가 나를 자극했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책 읽기를 자꾸만 멈추게 만들었다. 스탭퍼를 밟는 것처럼. 하나를 누르면 다른 하나가 반동되어 올라오듯. 두 가지 때문에 뇌가 가동됐다.

 

첫 번째는 물건들. 첫 단편인 <유실물>에서 사샤가 훔친 물건들은 당연하게도 시간과 연관된다. 사샤의 물건뿐 아니라 13개 단편 구석구석 놓여진 물건이 모두 그렇다. 한 사람이 지니고 다니는 물건들은 그 사람의 삶과 결부되기 때문에 그 물건들에는 삶의 일부가 결정화되어 간직된다. 첫 번째 모호함이 여기서 감지된다. 물건들에는 윤곽선이 존재할 터이다. 즉 소설의 주제와 연관된 중요 사물에는 질감이라든지 아니면 회화적 의미에서의 윤곽선이 선명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내 느낌이 어긋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의 물건들은 문장들 사이의 다른 어휘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놓여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말해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게 느껴졌다(그래야 함에도 말이다).

 

두 번째는 메시지. 13개의 단편들엔 아주 노골적으로 (심지어 폰트가 굵게 표기된 것들조차 있는데) 메시지가 나타난다. 단발마의 단어나 짧은 문장들로 이뤄진 그 강력한 메시지들은 시간은 깡패라는 것을 계속해서 환기시킨다. 이 메시지들은 무엇인가? 왜 이렇게 노골적으로 각 단편마다 이렇게 유치한 방식으로 계속 나타나는가? 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다가, ‘해골을 떠올렸다. 서양의 정물화. 그 중 바니타스(Vanitas).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소설은 헛되고 헛되도다를 표명하는 소설이 아니라는데 있다. 해골을 그려 넣었는데도 어떻게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느껴지지 않은 것일까?

 

그게 첫 번째로 언급한 윤곽선이 모호한 물건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 물건들에 윤곽선은 모호하지만 (사샤의 말로 잠깐 언급되듯) 어떤 메아리가 느껴진다. 이것이 두 번째로 언급한 강력한 메시지와 묘한 균형을 이뤄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 소설은 다르다.

다른 뛰어난 소설이라면 첫 번째로 언급한 시간의 사물성, ‘응축된(단면의) 시간을 선명하게 또는 만질 수 있게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췄을 테다(뛰어난 소설이라고 벌써부터 설레발 친 이유는 이것을 제대로 해내는 작가 또한 극소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허나 제니퍼 이건은 메시지 그 자체, 단발마의 느낌이나 짧은 잠언 같은 메시지. 바로 그 자체의 사물화를 이뤄내고 있다. 즉 메시지(소설을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눈에 확 띄는 그 문장들)가 해골로서 정물화의 정물로 기능하고, 해골 주위에 사물들(응축된 시간으로서의)의 이름을 정물로 배열해 놓은 느낌. 소설의 12번째 단편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로 작성되어 있는데 파워포인트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작성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 테지만, 거기서는 읽혀지는 문장보다 그리기 도형(사각형, 화살표, 삼각형 등) 자체가 그 메시지의 메시지성(메시지의 우선순위)을 나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로 그런 것처럼 이 소설의 각 단편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그 메시지들이 마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의 그리기 도형, 바로 그것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

 

첫 번째 것. ‘시간이 결정화한 사물을 그려내는 능력(그 중 특히 질감)이 탁월한 작가에 오르한 파묵이 있다. 제니퍼 이건은 사물은 오히려 문장처럼, 문장(중심 메시지)은 사물처럼 표현해 낸다.  이런 형식은 지금껏 읽은 소설에선 처음 보는 것이다(있었는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록음악이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처럼 깔려 음악이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소설은 회화적이다. 매우 뛰어난 현대 작가의 정물화(포스트모던 한?)를 감상한 느낌. 그러니 이렇게 말해야겠다. 제니퍼 이건은 매우 뻔한 주제를 절대 뻔하지 않은 형식으로 표현해 냈다고.

 

하지만 새롭다는 것과 좋아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좋아하려다 결국 거리감을 두게 되었다. 이유는 작가가 생각지도 못한 것 때문이다. 시간만큼이나 문화도 깡패라는 것. 만일 이 소설이 동남아시아나 남미의 어느 나라 소설이었다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잘 모르는 문화관련 단어들을 외우려고 하고,,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입맛이 좀 썼다. 미국 문화. 20세기와 21세기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아직도 알게 모르게 시간만큼이나 깡패인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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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22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다 읽으셨네요. 그리고 책장이 잘 안넘어간다고 하시더니 책을 잘(!) 읽으셨네요. 제가 제대로 읽지 못한것 같아 다시 읽어볼까 싶게 만드는 리뷰이지만, 그렇지만, 음, 팔아버렸...orz

dreamout 2012-06-22 20:02   좋아요 0 | URL
잘 안넘어간거 맞아요. ^^
저도 제대로 읽었다고 말씀드리긴 좀 그렇네요. ㅋ
제대로 소화했다면 이렇게 어설픈 글이 안나왔겠죠.. ^^;

Shining 2012-06-2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걸까요? 아니면 다른 종류의 기대를 했을까요? 챕터 5인가 읽고 있는데 재미도 없고 집중도 안 되고.. 더 읽어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ㅠ 일단, 읽어내보려고 합니다-_ㅠ 그러고보니 드림아웃님 서재에 댓글 남기는 건 처음인것 같아요^^; 앞으로 종종 남기겠습니다+_+

dreamout 2012-06-22 20:03   좋아요 0 | URL
^^
 
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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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문장이고 뜻밖의 이미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도 못한 사운드였다. 알음알음으로 알았던 <<잉글리시 페이션트>>에 대한 내 선입견은 한 두 페이지의 독서 만으로도 곱게 부스러졌다. 이 고요. 처음부터 깊은 숨을 들어 마시게 한 이 고요. 부커상 수상작들(시끄러운 분위기거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분위기)에겐 거의 기대해 본 적 없는 것. <<다다를 수 없는 나라>>의 적요함과는 느낌이 또 다른. 깊게 스윽.. 하고 부드럽게 안기는 것 같은 고요.

 

소설의 주요 무대인 빌라 산 지롤라모와 사막은 동그랗게 몸을 만이미지로 계속 변주되어 나타난다. 2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했던 곳, 국경이 없는 곳. 사막. 영국인 환자 알마시와 캐서린의 헤엄치는 사람들의 동굴’, 캐서린의 목 아래 움푹 패인 곳. 해나가 홀로 남아 알마시를 간호하던 빌라 산 지롤라모, 빌라 안에서 알마시가 누워 있던 트롱프 뢰유가 그려진 2층의 방, 킵의 천막 안과 킵이 폭탄을 해체하던 구덩이들. 그 동그랗게 말려 들어간 장소들에서 그 고요는 고요하게 물결쳐 작고 고요한 와류들을 또다시 생성해 내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이 고요에는 기적 같은 우정의 분위기(플라토닉 러브 같은)도 녹아 들어가 있어... 아이를 자기 손으로 지운 젊은 간호사 해나, 거의 탄소 결정체나 다름없이 타 버린 영국인 환자 알마시, 엄지 손가락을 잘린 카라바지오와 자기의 전쟁이 아닌데도 그 한복판에 있어야 하는 킵. 그들이 우연찮게(그렇지만 우연만은 아닌 어떤 조화로) 빌라 산 지롤라모에 모여 작은 유리잔을 얼굴에 갖다 대고 눈물을 모으는것 같은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었다.

 

또 그리고 이 고요에는 해나가 다른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영국인 환자 알마시와 있기를 결정한 순간과 킵이 해나가 곁에 있는 상황에서 지뢰를 해체하던 순간, 킵이 해나와 둘 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알마시의 보청기 전선을 끊던 순간과 알마시가 캐서린의 목소리를 사랑하게 된 순간과…. 그리고 무엇보다 인류가 생긴 이후로 가장 지독한 폭탄 두 개가 떨어지던 순간이 함께 하는 것이다.

 

무언가 인간적인 것을 만져야 했다.’ 킵이 그러했던 것처럼 너무나 비인간적인 시대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비인간적인 여러 사건들을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소설은 너무나 인간적인 것-고요, 사랑, 우정, 그리고 위반의 순간들-을 만지게 해 주고 있었다. 기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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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셀린 붓다
정영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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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이것은 결과가 좋은, 무언가를 작동시키는, 그런 문장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장들의 형태는 SQL 쿼리(Query)를 떠올리게 한다. 엔터 키를 탁 치면 무언가 결과물이 나올 것 같은 그런 문장. 아마도, ‘그리고(and)’혹은(or)’. 이 두 접속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작동시키는 문장이 아니라고 느낀 것은 이 270여 페이지를 꽉 채우고 있는 쿼리문에 엔터 키를 탁 치면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정의 문장, 어지러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문장이다. 인간의 소장. 7미터짜리 꼬불꼬불하고 부드러운 관을 마치 음식물이 되어 통과하는 듯한 느낌을 독자에게 준다. ‘그리고혹은그리고 쉼표(,)로 연결되는 그 리듬에 정신을 실으면 곧 꿈틀꿈틀 연동운동을 느끼게 된다. 뭔가 밀어내고 뭔가 자꾸 나를 휘몰아치는 기분. 드럼 세탁기 속 빨래들 처지가 된 것 같은.

 

 

2.

이 소설의 문체로 글을 쓰는 것은 누구에게든지 가능할 것 같다. 이어폰을 꽂고 하나의 생각거리를 머리에 떠올린 채 산책하듯 배회하듯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저절로 떠오르는 상념들. 무언가 하나의 사물을 봤을 때 연상되어 떠오르는 관념과 경험들. 그런 것들을 그대로 종이에 옮긴다면 이와 비슷한 문장이 될 것이다. 물론 누구든지 똑같진 않겠지. 도둑과 돌고래와 염소와 양과 쥐, 올빼미와 고양이와 벤치와 백조와 놀이공원과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도시들과 궁전들과 호텔들과 베케트와 몰로이와 울프와 등대로와 비트겐슈타인. 정영문이 토해내는 얘깃거리들은 당연히 독자들과 다르다. 하지만 독자들 또한 정영문의 얘깃거리들과는 전혀 다른 것들을 얼마든지 토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체를 베끼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그건 문장력의 문제도 관념의 틀의 문제도 아니다. 전정기관이 문제가 될 것이다. 일단 어지러워서 쓰지 못할 것이다. 또 하나, 우리들 생각의 편향. 인간의 뇌는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이렇게 길게 무의미한 것들을 풀어놓기는 어려운 일이다.

 

 

3.

무의미. 라는 말을 썼지만, 물론 우리의 사고는 이 무의미에서 기어코 의미를 뽑아내고야 만다. 서사를 꺼린다. 는 저자의 말과 사실주의와의 기나긴 전쟁. 이라는 표현을 보면 짐작되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서사를 꺼리지만서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것이 작품에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용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한다.

 

 

4.

작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이 작품은 나를 휘저어놓기는했으나, 나를 휘어잡는 순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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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2-05-01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좋아하는 작가의, 그러나 끝내 끝까지 읽어내지는 못했던 작품이라 더욱 흥미롭게 읽었어요. 길을 가다 소와 마주치는 부분까지 읽은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네요. 아무려나, 어디면 또 어떻겠어요.

dreamout 2012-05-02 18:34   좋아요 0 | URL
독특하더군요! 한국에선 못 본 유형의 소설였어요 ^^

비로그인 2012-05-0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력적인 문장들로 가득한 리뷰네요. 저절로 추천을 누르게 만드는... 잘 읽었습니다^^

dreamout 2012-05-02 18:34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