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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 ㅣ 궁리 공동선 총서 1
인디고 연구소 기획 / 궁리 / 2012년 2월
평점 :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어. 단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를 뿐이야”라고 말하는 이들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말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론과 철학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 그렇다. 해답을 찾기 보다는 올바른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나 스스로에게 특히.
질문을 발명하라.
제가 보기에 서구사회는 현재 지나치게 나르시시즘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안전 속에 가두려고 하며, 심지어 이런 열정적인 섹스, 사랑을 동반한 섹스, 자신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이러한 행위들로부터 멀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섹스는 좋지만, 적절히 조절을 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 우리는 모두 위험한 사랑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지젝은 말한다. 사랑조차도 현재의 사람들에게는 공포라고. 사람들은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얼른 결혼하라고 하지. 그래.. 아마, 그러면 열정은 곧 식어버릴 테니까. 그래야 자기 주변이 안정적이 될 테니까. 모두들 식어버린 채 말이지. 나는 결혼한 사람들이 미혼인 사람들에게 갖는 불편한 감정을 많이 접했었다. 결혼을 하라고 종용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들 자신의 결혼이 행복한 경우란 거의 없다는 사실. 스스로가 겪는 공포도 끔찍할 테지만, 바로 옆 직장 동료의 열정적인 사랑과 사랑만 하고 결혼을 안 하는 그런 행위들도 자기들한테는 똑같이 끔찍할 테니까. 아니, 다른 사람들 얘기할 필욘 없겠지. 나부터도 모든 것을 거는 사랑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겪어봤으니까. 하지만, 맞다. 우리는 정말이지 새로운 질문을 발명해야 한다.
예이츠의 유명한 시구가 생각납니다. 자신의 시 「재림 The Second Coming」에서 그는 “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반면 가장 악한 자들은 격정에 차 있다”고 말했지요. 오늘날 정치에 있어 우리는 어디서 열정을 찾을 수 있습니까? 오직 근본주의자들에게서 입니다.
: 정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집단, 회사들도 마찬가지. 왜 기업들이 50년조차 버티지도 못하고 나가 떨어지는지. 물론 경쟁상황의 격화나 우연적 사건으로 그리 되는 경우가 많겠지만, 내부적인 요인도 무시 못할 것이다. 상층부를 차지한 열정적인 사람들의 자기 반성 없는 의사결정들이 조금씩 쌓여 어느 순간, 팍 하고 주저앉게 되는 것이지.
예를 들어 이집트 혁명에서 100명이 죽었다고 합시다. 끔찍한 일이지요. 하지만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고문과 테러에 의해 잔혹하게 죽어간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폭력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언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이나 요즘 한창 투쟁 중인 방송사들의 낙하산 사장들이 방송사 내부에서 했을 그 모든 일들. 그 가시적, 비가시적 폭력들이 그 동안 얼마나 만연됐을까?
자신들의 권리를 구현하고 사회적 요구를 관철시키는 방식으로써 권력을 무시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아주 확실한 무기이며, 점점 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국가는 결코 상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의나 소명 의식하에, 함께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우리’에 속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함께 가자”고 외치는 방식. 이것이 진정한 좌파의 기획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결정적인 사건들이 도덕적인 문제로 치부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이런 종류의 종교적 설교가 싫어요. 특히 사회의 변화 과정 중 하나를 개인의 책임이나 욕심 탓으로 돌리는 방식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도덕화의 방식이 아니라 구조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 학교 폭력에 대한 최근의 방송/신문 기사들을 보며 내가 느낀 게 이거다. 내가 십대 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언론기사의 수준이라는 게 정말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이 끔찍한 사실.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볼 때, 이방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보고 또 상상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인류에게 가장 훌륭한 사유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자신만의 관점에 스스로를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중략) 우리는 타인의 다름이나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을 통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각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혁명적 과정은 점진적인 진보가 아니라, 반복적인 운동, 몇 번이고 다시 시작을 반복하는 운동이다.
: 회사에서 사용하는 내 이메일 서명, 사무엘 베케트의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자, 또 다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