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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심
박상륭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공원 일꾼이,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너무 오래 입어 흐리꾸리하게코롬이나 퇴색하고, 빨지 안 해 땀이 썩은, 거의 넝마가 다 된 윗옷모양, 벤치에 쭈구려 앉은 늙은네께도, 볕은, 산수유 꽃 그늘이 되어, 늙은 냄새를 저어하지 않고, 너그럽게, 늙은네의 몫을 나누어주고 있는다, 산수유 꽃잎의 담요로 포근히 감싸주고 있는다. 자라는, 또는 활력에 넘치는 젊은 생명들에 대해선, 그것은 아직도 충분한 것은 아닐 터이지만, 쇠잔해가는 생명들에 대해서 그것은, 그런 까닭에 무겁다. 가을볕만큼은 무겁다. 그것을 받는 이마나, 가슴엔 따스함으로 무겁고, 눈꺼풀엔 잠으로 무겁다. 보릿고개 때의, 모든 허전한 위장들은 모른 척하고 말해야겠지만, 그것은 봄날의 무게인 것이어서 늙은네는, 그 따스함, 너그러움, 그 훈훈함의 산수유 꽃빛의 물결 속에, 자기의 전신이 녹아들고 있음을 느끼며, 산수유를 등지고 놓여진 그 벤치에 앉은 뒤 얼마 되지도 안 해, 조금씩 졸음 속에로 내려가고 있는다. 그럴 때론 늙은네는, 물에서 물로 몸 해입고, 물을 사는 물고기에의 몽상에 잠겨있게 마련인데, 몽상은, 그리고 혼자서 고스랑거리기는, 하릴없는 늙은네께 주어진 자유며, 방종이기까지도 하다. 산수유 꽃빛의 볕의 바다에 잠겨, 그 바다를 왼통 뻐끔여들이는, 한 마리의 작은 물고기, 한 바다가 왼통 한 마리의 물고기이다.
신형철이 얼마 전 알라딘에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소개했을 때, 약간 화가 났다. 그 책은 적요함 속에 침잠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을는지, 그것은 한 유명한 사람이 유명하게 소개해 한낮 볕 아래 환하게 드러내기 보다 한 인연자의 인연에 알맞게 그 인연에게만 소롯하게 가 닿아야 했던 책은 아니었을는지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상륭에 대해서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 작가는.. 그 언제나 읽어도 확 한눈에 잡히지 않는 어마어마한 추상적 사유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화려하고 유장한 문체로, 읽는 이를 기 죽이게 만들고 열패감에 휩싸이게도 하는 작가지만, 그럼에도 정말 그 말빨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이 작가는 확실히 더 알려져야 하며 알려져야 할 운명을 좀 맞이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신화적/종교적/철학적 사유는 제쳐 두고서라도 말이지 정말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문체를 가진 이란 말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