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질을 시작한 이래 내 즐찾은 상승일로를 달린 끝에, 8월 4일 현재 내 즐찾 수는 아홉명이나 된다. 특이한 걸 좋아하는 분께서 실수로 즐겨찾기 버튼을 눌러주신다면 꿈에 그리던 두자리 숫자가 될 수 있다. 열명에 흥분하는 건 물론 오버일 수 있다. 내가 돌아다니는 서재에는 즐겨찾기가 몇백명씩 되는 분도 여럿 있으니까. 하지만 내 즐찾의 끝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두자리 숫자가 된다는 건 분명 소중한 이정표이리라. 신경을 안쓰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하나하나 늘어가는 내 즐찾 숫자는 날 뿌듯하게 한다.

이틀 전인가, 어떤 분이 이런 페이퍼를 올렸다. 그다지 열심히 안하는데도 즐찾이 꾸준히 늘어 8명이 되었다고. 그때 내 즐찾 숫자도 마침 여덟이었기에 난 그에게서 진한 동지애를 느꼈다. 수줍어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런 댓글을 남겼을 것이다.
"반갑습니다. 저도 여덟인데요, 앞으로 잘해 봅시다"
물론 난 그냥 반가움만 느낀 채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지금은 그 서재 이름도 모른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다. '무명서재간의 즐찾 동맹'. 즐찾 숫자가 적은 사람끼리 서로 즐겨찾기를 함으로써 단기간에 즐찾이 급상승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미국과 소련같이 500명이 넘는 즐찾 보유자에 맞설 수도 있지 않을까. 일국 일표제인 UN에서 미국과 소련,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비동맹 국가들이 큰 힘을 행사하는 것처럼.

잠시 후, 이런 바보같은 생각을 지워 버렸다. 즐찾의 증가는 서재 활동의 결과일 뿐, 목적은 아니다. 여러 명을 규합해-예컨대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 조카, 며느리 등-즐찾을 늘린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알라딘은 UN이 아니며, 따라서 중대한 일을 결정하는 투표 같은 것도 없다 (심심풀이로 투표를 하는 일은 많지만). 즐겨찾기가 없다는 건 그만큼 볼만한 게 없다는 말이며, 볼만한 게 없는 사람끼리 힘을 합쳐봤자 그건 마찬가지다. 하루에 최소한 글 하나, 일주에 리뷰 두개 정도는 쓰는 니콜 키크더만이 되자. 즐찾은, 내 서재가 볼만한 곳이 된다면 저절로 늘 것이다. 500명 이상의 즐찾을 거느린 분들 역시 시작은 0에서 했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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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04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중 한명입니다^^ 백배 옳으신 말씀!!!

하이드 2005-08-04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찾 할까요?

2005-08-04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수검객 2005-08-04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은 아니지만 저도 즐찾이 8명이랍니다..그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님처럼 즐찾분들을 늘릴려고 노력할거구요..저도 즐찾해드리죠..두자리 숫자에서 세자리 숫자로 넘어가기까지 같이 노력해요..^^

줄리 2005-08-0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서재활동도 안하면서 즐찾때문에 속상한 마음이 생긴때가 있어서 푸념을 했걸랑요. 그랬더니 마음씨 좋으신 서재주인장님들이 동정의 즐찾추가를 해주셨지 않았겠습니까? 덕분에 제나름으로 뿌듯한 숫자 - 제 나이보다 많걸랑요 - 가 되는 쾌거를 이룩했지요.^^

날개 2005-08-05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댓글 남기실 때 비공개로 말고, 공개로 남겨주세요.....! (여기서의 그래도는 뭐에 연결돠는 걸까요? 흐흐~)

니콜키크더만 2005-08-0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네, 제가 부끄럼을 많이 타서 그랬는데요 앞으로는 안그러겠습니다
줄리님/하하, 저도 이 페이퍼 덕분에 즐찾이 드디어 열개가 되었습니다. 제 나이보다 즐찾이 많으려면...와...
살수검객님/아, 한분이 바로 검객님이셨군요! 감사합니다.
속삭이신 분/저도 주인장보기 댓글을 자주 애용합니다. 부끄럼 타는 건 저랑 비슷하네요...
하이드님/그러시면 저야...감사하죠^^
만두님/즐찾이 수백에 달하는 서재계의 거장 만두님... 감사합니다. 자주 와주셔서요

잉크냄새 2005-08-0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한명 더 늘지 않았던가요?
서재초기의 한명 두명....숫자 늘던 재미에 한동안 빠져있던 기억이 납니다.

니콜키크더만 2005-08-08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맞습니다. 한분 두분 늘어가는 게 서재질의 재미인 것 같습니다. 몇백분 쯤 되면 한두명 늘어도 별로 안기쁠 수 있겠지만요^^

ceylontea 2005-08-0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휴가때라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이제야 보네요..역시 재미있는 글입니다.. 흐흐.. 저는 이렇게 글을 재미있게 잘 쓰시는 분들이 존경스러워요... 흐흐..
맞아요.. 저도 즐찾 0에서부터 시작했어요.
방명록도, 페이퍼도, 리스트도.. 0에서 시작했지요.. 소장함만 0이 아니었을 거예요... 주문하고 서재는 나중에 생겼으니..
니콜키크더만님.. 화이링~~~!

ceylontea 2005-08-0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념으로다가..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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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키크더만 2005-08-15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하루에 열명이나 오다니, 정말 드문 일입니다.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다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 제가 보기에는 우울하기 그지 없는데... 실론티님도 화이팅입니다.
 

어젯밤 12시 45분에 무간도 3을 해준단다. 1, 2편을 안봤는데 3편만 보면 괜찮을까 싶었지만, 요즘 속편들은 다들 독립적인 작품이고 캐릭터만 전편을 베낀 거니까 봐도 될 것 같았다. 졸음을 참으면서 그 시각까지 기다렸는데, 실제 영화가 시작된 것은 1시가 다 되어서였다. 내 예상은 빗나갔다. 무간도는 1, 2편을 모르면 도저히 볼 수 없는 영화였다. 게다가 성우들이 더빙을 해서 유덕화의 목소리가 예전에 듣던 그 목소리가 아니었기에 영 이상했다. 20분쯤 버티다 잤는데, 그 바람에 지각을 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지도 꽤 오래 된 것 같다. 2년? 아니면 3년? <올드보이>나 <매트릭스>처럼 화제가 된 영화는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도대체 누구랑 영화를 본단 말인가. 이상하게도 영화는 연애할 때 보는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여자와 함께가 아니면 도저히 영화를 보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지난 2-3년간, 내게는 애인이란 게 있어 본 적이 없다.

요즘 영화가 한창 뜨는 분야라서 그런지 만나면 다들 영화 얘기를 한다.
"친절한 금자씨 봤어?"
"아일랜드 봤어?"
그들은 내가 영화를 봤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자기가 봤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거다. "너 야광팬티 입어봤어?"라고 물었던 초등학교 시절처럼. 난 영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언제나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날 외면한 채 자기네끼리 영화 얘기를 한다. 영화를 이용한 왕따, 난 말없이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셨다.

그대신 난 TV에서 해주는 유명 영화들은 꼭 챙겨보는 편이다. '타이타닉'도 그렇게 봤고, '올드보이' '신라의 달밤'도 지난 설 때 봤다. 하지만 아무도 TV를 보고나서는 "올드보이 봤어?"라고 묻지 않는다. 요컨대 영화 얘기에는 때가 있는 것이다. 여름이 다 지나간 뒤 에어콘을 트는 게 부질없는 것처럼.

요즘 친절한 금자씨가 최고의 인기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라고 하는데, 앞의 두 편 중 '올드보이'밖에 못본 내가 본다면 이해를 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이해할 수 있다해도 난 그냥 안보련다. 혼자 가서 보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건 왠지 처량해 보인다. 애인이 있는데 혼자 보는 것과 그럴 수밖에 없어서 혼자보는 사람은 달라도 많이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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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8-0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가 복수인거지, 앞의 영화들이랑 아-무 상관 없습니다. 보세요.

날개 2005-08-02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보는 거.. 안 처량해 보입니다.. 즐기세요~^^
나중에는 같이 가는 게 귀찮을겁니다.. 둘이 시간 맞춰야지, 취향 맞춰야지....등등

icaru 2005-08-02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에는 친절한 금자씨...텔레비전에서 해 주는 걸로~ 함 볼까 합니다...
인내!! ~ 가 필요할 듯 ^^

줄리 2005-08-02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다들 자기가 그 영화 봤다고 자랑하려고 저한테 그거 봤니 하고 물어보는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저는 안그래요 ㅎㅎ 전 안본게 훨 많기 때문이죠. 전 무간도 재밌게 봤어요. 올드보이도요. 근데 복수는 나의것은 잘모르겠어요. 동생말에 의하면 내가 이해를 못했대요. 어쨌거나 볼 영화는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저두 태어나서 한번두 영화 혼자 보러 극장에 간적 없어요. 남자랑 간것은 아니구 친구랑 주로 가는데 요즘은 같이 갈 친구들이 별로 없네요.

니콜키크더만 2005-08-04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리님/동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랑하려고 물어보는 거 맞지요? 요즘 보면 볼 영화가 참 많이 나오고, 그게 일상 생활에서도 화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혼자 영화보러 못가는 건 저랑 비슷하군요
이카루님/아, 그런 날이 과연 언제 올까요. 저도 기다립니다
날개님/날개님같은 마음을 먹기가 저처럼 소심한 사람으로서는 힘이 드네요. 겁이 납니다...
하이드님/알겠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보도록 하구요, 안되면 이카루님처럼 텔레비젼을 기다려 볼까 합니다. 내년 설에는 해주겠지요 뭐.

ceylontea 2005-08-0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애가 생기고는 거의 극장에 안가게 되고 비디오도 다운받은 파일도 안보게 되니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일방적으로 들어만 줍니다.
그리고.. 영화도, 책도 이야기엔 다 때가 있더라구요..

니콜키크더만 2005-08-1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그렇죠. 때가 있지요. 저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데요, 그러면 나중에 비디오로 볼 때 재미가 없답니다.
 
양철북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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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터 그라스가 쓴 양철북은 노벨상을 탄 유명작가의 특징적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 난해한 문체, 뭔가 심오한 사상이 담겨있을 것만 같은, 그러나 뭔지는 모르겠는 난해한 내용 등등. 평소의 삶이 그런지라 심각한 것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된 난 무려 20여일간 사투를 벌인 끝에 이 책을 읽을 수가 있었는데, 느낌을 말하라면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 중요한 건 '다 읽었다'는 것.


그라스가 이 책을 출간한 건 1959년인데 노벨상을 받은 건 1999년, 무려 40년만이다. 요즘 와서야 이 책의 문학적 가치가 재평가된 것일까? 그게 아니다.

[그라스가 활동한 시기는 서구 자본주의 진영과 동구 사회주의권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때였고... 그런 와중에 좌파적 성향에 기울어 있는 그라스의 손을 들어 준다면 본의 아니게 사회주의권 세력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바가 될 테니 한림원으로서도 꺼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주의가 완전히 몰락해 체제에 위협이 전혀 되지 않는 90년대에 그라스가 상을 탔다는 것이다. 노벨상도 이렇게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인가보다.


"<양철북>을 이제 읽냐? 난 중학교 때 읽었다"고 말하는 회사동료 P에게 물어봤다.

"너 오스카가 왜 성장을 안한 줄 알아?"

P의 대답, "어른들의 부조리를 보고 어른이 되기를 포기한 거지"

과연 그럴까. P에게 다음 구절을 보여주자 그는 매우 민망해하면서 “그게 그거잖아!”라고 우겨댔다.

"나의 아버지라고 칭하는 사나이에게 자신의 인생을 맡긴 채 장사꾼이 되어버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84쪽)"

참고로 그라스가 자라지 않는 오스카를 모델로 한 건, 그 당시 잔뜩 뒤틀린 독일 사회를 표현하기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단다. P를 보면서 회의에 빠지게 된다. 읽으면 뭐하나. 나중에 기억도 못할 텐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읽었다'는 걸 자랑할 수 있다는 것 말고 어떤 유용성이 있는 걸까.


이 책에 담긴 심오한 사상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을 얘기하겠다. 난장이인 오스카가 여러 여자에게 소위 '껄떡거리는' 장면에서 난 맘이 그리 좋지 않았다. 비단 이 책에서뿐 아니라, <고양이를 부탁해>란 영화에서 뇌성마비를 앓는 애가 자신의 소설을 타이프쳐주는 배두나를 좋아하는 장면에서도 맘이 불편했다. 불편한 이유가 전혀 없는데. 난장이나 뇌성마비나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고, 내가 이쁜 여자를 보면 마음이 동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그러는 게 당연한 건데. 하지만 난 왜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좋아하는 장면만 나오면 맘이 불편한 걸까. 장애인은 장애인만 사귀어야 한다고 머릿속에 박혀있는 탓일까. 말로는 "장애인을 사랑하자"고 하지만, 난 장애인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라고 말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아닌, 그저 동정하고 불쌍히 여겨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머리와 가슴의 괴리, 그게 내 참모습이다. 그래서 난 장애인들이 특수학교에 격리되는 걸 반대한다. 어려서부터 내가 장애인들과 어울려 지내고,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면 이렇게 비뚤어진 인간으로 자라지 않았을 텐데. <오아시스>처럼, 그들의 삶을 그린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도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한 사회의 성숙도는 장애인이 얼마나 활동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 바, 대부분의 장애인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지하철 역에서 장애인이 떨어져 죽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한국 사회는 그래서 야만적인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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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8-01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들의 부조리를 보고 어른이 되기를 포기한..." 이라는 구절이 아마 영화 <양철북> 나올때 광고 문구였을겁니다.. 저도 그걸로 기억하거든요..ㅎㅎ

니콜키크더만 2005-08-02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안녕하세요. 제 리뷰에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게 거기서 나온 말이었군요. 영화를 안봐서 몰랐습니다. 그 방대한 양을 영화로 어떻게 구현했는지 갑자기 궁금하네요. 날개님은 참 아시는 것도 많으십니다
 

곧 점심시간이 된다. 더워서 그런지 밥맛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 P와 S, 이렇게 셋이서 늘 밥을 같이 먹는다. 그 생활을 한 2년쯤 했더니 이젠 뭐 먹을지 정하는 것도 고통스럽다. 주변에 식당이 많은 듯한데 왜 먹을 건 없는 걸까? 하나씩 따져보자.

1. 왕비성, 중국집
촌스러운 이름부터 이 집이 심상치 않으리란 걸 말해준다. 그리 뚱뚱한 편은 아니라도 짜장이나 짬뽕 하나만으로 점심을 떼우면 오후 늦게부터 배가 고파 죽겠기에, 볶음밥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 그런데 이집 볶음밥은 정말이지 맛이 없다. 김치랑 밥, 참기름을 넣고 비벼도 그보다는 맛있겠다 싶을 정도. 짜장과 짬뽕이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볶음밥의 맛은 삶이란 원래 고통스럽다는 석가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회사 근처에는 중국집이 여기밖에 없다.

2. 강남설렁탕
설렁탕과 도가니 등을 파는 집이다. 도가니는 1만원을 받으니 평소에 못먹고, 가면 주로 설렁탕을 먹는다. 근데 이 설렁탕, 정말 대단한 설렁탕이다. 쓸 걸 안썼는지, 아니면 재료를 넣었는지 맛이 무미건조 그 자체다. 당연히 한번 간 뒤에는 안가야 하지만, 혹시나 그새 정신을 차렸나 싶어 석달쯤 후에 가봤더니 그때 그맛 그대로다. 그럼에도 식당이 안망하는 건 유동인구가 많아서 처음 가는 사람이 속아서 가거나, 아니면 도가니탕은 그런대로 괜찮던지 둘 중 하나일 거다. 아니면 빌딩 주인이라서 임대료 걱정이 없든지.

3. 가마솥식당
식당 이름을 옮겨적다보니 참 운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마솥식당, 제목만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곳은 한식 전문이다. 대충 다 한다. 여기 음식의 특징은 '무난하다'는 것. 물론 탕 종류를 시키면 쓴맛을 보지만, 욕심 안부리고, 큰 기대도 안한 채 비빔밥이나 김치찌개 등을 먹는다면 속상할 일은 없을 듯.

4. 장터국수
맛으로 따지면 이곳이 가장 낫다. 브랜드 네임에 걸맞는 성실함을 보이는 이 식당은 하지만 늘 사람들로 미어터져-다른 데 갈 곳이 없으니 여길 갈 수밖에-12시 이전에 가지 않으면 줄서서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 소장은, 그 인간성 나쁜 소장은 점심 먹으려고 일어나면 꼭 시계를 쳐다보며 눈을 부라리는 버릇이 있어서 12시 전에 가는 건 힘들다. 그래서배고픔을 참고 아예 늦게 장터국수에 가거나, 아니면 다른 식당에 간 뒤 장터국수 맛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가며 먹는 수밖에는 없다.

5. 이서방삼계탕
주인이 이씨인지조차 의심스러운 이 집은 여름 한철에는 인기다. 삼계탕 한그릇에 9천원을 받는데, 아무래도 닭이니까 맛이 기본은 한다. 한달에 한번 정도 가는 편인데, 다른 삼계탕집과 달리 닭을 아주 작고 귀여운 걸 쓰는 듯하다(그래도 다리가 하나인 닭을 쓰진 않는다). 그래도 먹고 나면 배가 부르고, 서비스로 인삼주도 한잔씩 준다.

6. 이조부대찌개
에어콘이 빈약해 가기 꺼려지는 이 집은 부대찌개 전문점을 표방하는 듯하지만 없는 메뉴가 없다. 심지어 칼국수나 제육덮밥 같은 것도 메뉴에 있는데, 그러다보니 간판에서 추구하는 부대찌개의 맛이 일류가 아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간이 안맞을 때가 많아 "고추장을 달라"고 해 우리가 넣거나, 소금을 넣거나 하기도 한다. 손님이 직접 조리사가 되는 체험을 하는 건 아무 식당이나 가능한 건 아니다. 이씨조선이 왜 망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7. 김가네왕만두
김밥으로 유명한 김가네를 표절한 듯한 이곳은 괜찮은 분식점이다. 라면은 내가 끓이는 라면맛의 70% 정도는 되고, 공기밥을 시켜서 국물에 말아먹을 수도 있다. 김밥은 동그란 김밥 안에 햄과 당근이 무성의하게 들어있어 해괴한 맛을 내며, 칼국수에서는 빨래 빤 물의 냄새가 난다. 그럼에도 내가 '괜찮은'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자포자기를 해서다. 지금까지 쓴 걸 다시 보니 모든 식당을 후지다고 욕해놓았다. 그렇다면 난 과연 뭘 먹고 살았단 말인가. 해서 조금 관대해지기로 했고, 그게 김가네 왕만두에 대한 후한 평가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도 두렵다. 점심 시간이 오는 게.  "이것도 먹고싶고 저것도 먹고싶은데 뭘 먹을까?" 하는 고민을 하면 좋은데 "여기 음식은 못참겠고 저기 음식은 먹기싫다. 그래도 먹기싫은 정도가 덜한 곳이 저기니까 저기를 가자" 식이 되어버렸다. 우리 회사 주위는 도대체 왜 이모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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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5-08-0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도시락이 좋아요. 밥 위에 반찬 하나 올려서 가져가도 사먹는것보다 훨 맛있고 든든하더라구요. 그래두 한식은 웬만하면 다 맛있지 않나요? 니콜키크더만님 입맛이 까다로우신가봐요^^ "이씨조선이 왜 망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 너무 오바시다. ㅎㅎㅎ

날개 2005-08-0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시간에 메뉴 정하는거 정말 고통이죠..ㅎㅎ 우린 사다리를 활용했었습니다만..

니콜키크더만 2005-08-01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사다리를 타신다고요. 그것도 좋은 방법일 듯 싶네요.
줄리님/맞습니다. 제가 좀 입이 까다롭습니다. 그리고 이씨조선 얘기는 좀 오버지요.

ceylontea 2005-08-09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원식당이 좋아요.. 그런데.. 지금 있는 곳은 사원식당이 없어서 항상 골라서 사먹어야 하니 귀찮아요... 그렇다고 도시락 싸오는 것은 더 귀찮고..
정말.. 점심 먹는 것 또한 전쟁이지요...

니콜키크더만 2005-08-15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사원식당이 있으면 약간의 불만은 있을지언정 뭘 먹을까 고민하는 일은 없겠지요. 점심을 매번 사먹으려면 그것도 참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호밀밭의 파수꾼>은 JD 샐린저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콜필드처럼 샐린저 역시 퇴학을 당한 바가 있고, 술과 마약에 빠졌으며 걸핏하면 가출을 했다. 책에서 콜필드는 가출을 한 뒤 뉴욕의 어느 호텔에서 묵게 되는데, 거기 바에서 금발머리 여자를 만나 춤을 춘다. 금발의 여자는 무식했지만 귀여운 면이 있었는데, 콜필드가 어리다는 걸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실제로도 샐린저는 바에서 만난 여자와 첫 번째 결혼을 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열아홉이었고, 그 여자는 세 살 연상이었다. 그 밖에 그가 행한 일탈적 행위들에는 저자 자신의 경험이 짙게 묻어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릴 적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 같다]라고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리뷰를 쓸 때 작품의 배경과 저자의 삶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렇게 카리스마적인 리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위에 쓴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그냥 혼자 생각한 것에 불과하다.


이 소설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역시 구라지만, 성경보다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채프먼이 탐독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고, 이것 역시 구라지만,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도 콜필드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그저 한 소년의 일탈을 그린 것에 불과한 이 책이 그렇게 각광받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 책의 훌륭한 점을 잘 모르는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걸 물어봐야 했는데, 놀기 좋아하는 내 친구는 “젊을 때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대리만족시켜준다”고 했고, 그래도 모범적인 편에 속하는 친구 하나는 “야해서 좋다”고 한다. 이 대답들이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한 것은 물론이지만, 아쉽게도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 이 책을 읽은 사람은 그 둘이 전부다. 그래서 난 “명작은 원래 그런 법이다”라고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이 책에서 높게 평가하는 것은 바로 책의 제목이다. 아이들이 호밀밭에서 뛰어놀고, 콜필드는 파수꾼이 되어 아이들을 돌본다. 그는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아이들이 위험에 빠지면 잽싸게 달려와 구해주는 적극적인 존재다. 이름하여 호밀밭의 파수꾼, 얼마나 멋진 제목인가. 책의 제목을 ‘나의 일탈기’ ‘니들은 바르게 살아’ ‘애들은 공부해’ 같이 했다면 학부모와 선생들은 열광했겠지만, 정작 학생들에게 이 책은 외면당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의 기준을 3T, 즉 title, timing, target이라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제목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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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키크더만 2005-07-3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로 과연 땡스 투를 받을 수 있을까.

싸이런스 2005-09-06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 투는 받을 수 없을 지라도... 구라의 세계는 즐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