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12시 45분에 무간도 3을 해준단다. 1, 2편을 안봤는데 3편만 보면 괜찮을까 싶었지만, 요즘 속편들은 다들 독립적인 작품이고 캐릭터만 전편을 베낀 거니까 봐도 될 것 같았다. 졸음을 참으면서 그 시각까지 기다렸는데, 실제 영화가 시작된 것은 1시가 다 되어서였다. 내 예상은 빗나갔다. 무간도는 1, 2편을 모르면 도저히 볼 수 없는 영화였다. 게다가 성우들이 더빙을 해서 유덕화의 목소리가 예전에 듣던 그 목소리가 아니었기에 영 이상했다. 20분쯤 버티다 잤는데, 그 바람에 지각을 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지도 꽤 오래 된 것 같다. 2년? 아니면 3년? <올드보이>나 <매트릭스>처럼 화제가 된 영화는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도대체 누구랑 영화를 본단 말인가. 이상하게도 영화는 연애할 때 보는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여자와 함께가 아니면 도저히 영화를 보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지난 2-3년간, 내게는 애인이란 게 있어 본 적이 없다.
요즘 영화가 한창 뜨는 분야라서 그런지 만나면 다들 영화 얘기를 한다.
"친절한 금자씨 봤어?"
"아일랜드 봤어?"
그들은 내가 영화를 봤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자기가 봤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거다. "너 야광팬티 입어봤어?"라고 물었던 초등학교 시절처럼. 난 영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언제나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날 외면한 채 자기네끼리 영화 얘기를 한다. 영화를 이용한 왕따, 난 말없이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셨다.
그대신 난 TV에서 해주는 유명 영화들은 꼭 챙겨보는 편이다. '타이타닉'도 그렇게 봤고, '올드보이' '신라의 달밤'도 지난 설 때 봤다. 하지만 아무도 TV를 보고나서는 "올드보이 봤어?"라고 묻지 않는다. 요컨대 영화 얘기에는 때가 있는 것이다. 여름이 다 지나간 뒤 에어콘을 트는 게 부질없는 것처럼.
요즘 친절한 금자씨가 최고의 인기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라고 하는데, 앞의 두 편 중 '올드보이'밖에 못본 내가 본다면 이해를 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이해할 수 있다해도 난 그냥 안보련다. 혼자 가서 보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건 왠지 처량해 보인다. 애인이 있는데 혼자 보는 것과 그럴 수밖에 없어서 혼자보는 사람은 달라도 많이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