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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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먼 남자는 초조한 마음에, 얼굴 앞으로 두 손을 내밀어, 그가 우유의 바다라고 묘사했던 곳에서 헤엄치듯이 두 손을 휘저었다. 입에서는 벌써 도와달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절망으로 넘어가려는 마지막 순간에, 눈이 먼 남자는 다른 남자의 손이 자신의 팔을 가볍게 잡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책의 저자 주제 사라마구는 199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겨우 고등학교만 졸업한 후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나이 마흔 여섯에 이르기까지 우익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반정부 공산주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용접공 시절 독학으로 문학수업을 했던 사라마구는 신사실주의 문예지 「세아라 노바」에서 계급투쟁적 시각의 작품을 선보이며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47년에 소설 <죄악의 땅>으로 데뷔했다.

 

그 후 19년간 한 편의 작품도 생산하지 못 한 채 공산당 활동에 전념하며, 기술자 공무원 번역가 평론가 신문기자 자유기고가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그가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나이 마흔 여섯 되던 해인 1968년에 시집 <가능한 시>를 내놓은 이후의 일이었다. 문학의 전성기를 연 것은 1982년 작 <수도원의 비망록>이었다. 사라마구는 이 작품으로 일약 포르투갈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순식간에 유럽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문제적인' 작가의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눈이 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주행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한 남자의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이 원인불명의 실명失明은 이 남자에게만 그치는 게 아니다. 마치 급성 전염병처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익명의 도시, 익명의 등장인물들에게 삽시간에 퍼져버린다. 알베르토 까뮈의 소설 <페스트> 에서처럼, 불가항력의 재난은 인간성의 다양한 국면을 드러낸다. 같은 이름으로 2008년 개봉한 영화의 원작이기도 하다.

 

 

눈 먼 남성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낯선 사람은 과연 '선한 사마리아인'이었을까? 아니다. 이 사람은 눈 먼 남성을 집 근처에 내려다 놓고는 그의 차를 훔쳐서 달아난다. 아이러니하게도 결코 선하지 않은 사마리아인도 실명을 당한다. 여기서 우리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태를 보는 셈이다. 과연 우리들 중에 자신은 남의 물건을 그렇게 도둑질하지 않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눈 먼 남성은 아내가 귀가하길 기다린다. 집에 돌아온 아내에게 갑자기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하자, 그의 아내는 이 남성을 병원으로 데려간다. 병원 안은 복잡하다. 마침내 눈 먼 남성의 차례가 되었다.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환자의 말에 안과 의사는 환자의 눈을 살펴본다. 언뜻 봐도 남자의 눈은 건강해 보인다. 홍채는 밝게 빛나고 공막은 하얗고 단단해 보인다. 하지만 휘둥그레진 눈, 얼굴의 주름, 치켜올린 눈썹을 보아하니 괴로운 모습이 역력하다.

 

이후 안과 의사는 귀가해서 자신이 겪은 이상한 환자의 얘기를 아내와 대화를 나누면서 "눈이 먼 남자는 마치 눈을 뜬 채로 우유의 바다에 빠진 것처럼, 진하고 균일한 백색을 본다"고 단언했다. 잠자리에 들어야 할 때라 그는 탁자에 흩어진 책을 모아 책꽂이로 가져 갔다. 아뿔사, 어찌 된 영문일까? 안과 의사도 자신의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 전체로 실명 전염병이 퍼져나감에 따라 불가피하게 국가는 공권력을 가동한다. 눈 먼 사람들을 수용소에 모아 놓고 무장한 군인들이 이들을 감시하도록 한다.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상태를 우려해서다. 심지어 통제에 필요한 총기 사용권까지 부여한다. 한편, 수용소 내부에선 눈 먼 자들의 약탈과 강간 등 온갖 범죄가 발생한다. 보이지 않음에도 인간들의 소유욕구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 수용소에 화재가 발생한다. 이 현장을 목격한 유일한 생존 여성은 바로 안과 의사의 아내였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수용소 생활을 해야만 하는 자신의 남편을 보호할 목적으로 자진해서 안 보이는 척하면서 수용소에 입소했던 것이다. 수용소 내의 모든 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이 여성만은 생생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만약 이 세상이 모두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게 된다면"

 

지금 대한민국 사회도 이런 모습이 연출되는 듯하다. 분명하게 죄를 지은 사람인데도 어떤 이들은 이 범죄인이 결백하다면서 '조국 수호'를 외치고 집단 시위까지 펼친다. 정말로 안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소설 속의 안과 의사 아내처럼 안 보이는 척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중요한 점은 안 보려는 행동에 있는 것이다.         

눈먼 사람에게 말하라, 너는 자유다. 그와 세계를 갈라놓던 문을 열어주고, 우리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말한다, 가라, 너는 자유다. 그러나 그는 가지 않는다. 그는 길 한가운데서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다. 그와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들은 정신병원이라고 정의된 곳에서 살았다. 사실, 그 합리적인 미로에서 사는 것과 도시라는 미쳐버린 미로로 나아가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307쪽)

 

 

눈이 보이면, 보라.

볼 수 있으면, 관찰하라.

ㅡ <훈계의 책>에서

 

이 소설의 맨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말을 지금의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지면서 서평을 마차려 한다. 읽기 쉬운 소설이 아니기에 소설 뒷편의 '작품 해설'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모든 이에게 발표된 지 십년 이상 지난 이 소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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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이달의 영업이익이 얼마입니까? - 왠지 잘 풀리는 회사에는 이유가 있다
김상기 지음 / 치읓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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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경영자라면 '충분한 수익(이익)이 창출되고 있는가? 재정(돈)의 흐름은 원활한가?'라는 질문 앞에서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의 회사에는 어떤 경영위험(재무 위험 등)이 존재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당신의 회사는 충분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가?

 

책의 저자 김상기 주식회사 디딤돌 대표, 기업 경영컨설턴트, 경영전략 코칭 전문가, 경영관리 상담가, 전문엔젤투자자, 작가, 성공전략 기버(Giver). 경영 현장에서 기업 대표 및 실무자들과 함께 20년 넘게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한 대한민국 비즈니스의 산증인이다. 매출 실현의 방법, 원가의 구조, 이익 실현의 가능성, 재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해하고 있어야 매년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장에서 실무자들 및 경영자들과 함께 매월 회계 결산을 하고 경영 전반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통해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

 

기업은 이익 없이는 존재 자체를 할 수가 없는 조직이다. 이익을 남기려면 반드시 기업 구성원들 간에 '숫자'로 소통을 해야 한다. 25년 동안 기업 회계와 경영관리 실무를 담당해온 저자는 지금까지 수많은 기업의 사례를 접하면서 경영활동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는 "매출 실현의 방법, 원가의 구조, 이익 실현의 가능성, 재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해하고 있어야 매년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경영에 필요한 실무적인 경영관리 코칭에 나선다. 기업의 현금 흐름을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 가치를 설정하고, 보고 체계를 갖추고, 인력 관리를 하는 등 전반적인 경영의 노하우를 함께 설명한다 자, 이제 책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사람의 몸은 어딘가에 곪아 있거나 그 부패 상태가 심하면 역겨운 냄새와 함께 생명 유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찬가지다. 회사는 소통으로 하루하루가 연결되는데, 이와같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조직은 반드시 어딘가에 곪고 썩는 부분이 발생, 회사의 존립을 크게 위협하는 위기상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책은 소통을 바로 '숫자'로 할 것을 권한다.

 

회사 관계자들이면서도 회사의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얼마이며, 비용은 얼마나 지출하고 있는지에 대해, 심지어 회사가 적자인지 흑자인지에도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에 대해 <돈 잘 버는 사장의 숫자 경영법>의 저자 고야마 노보루 사장은 이렇게 경종을 울린다.

 

"일반 직원은 회사의 손익에는 관심이 전혀 없고,

회사의 손익이 자신의 급여나 상여에 직결되고 있다는 의식이 희박하다"    

 

회사의 목표 매출액을 달성하려면 사장과 직원들 모두가 회사가 목표로 책정한 숫자에 대한 학습을 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대체로 임직원들은 연초 신년사에서 발표된 목표 매출액의 숫자가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진다. 아마도 수개월이 경과하고 나면 이 목표 숫자는 과거 속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다.

 

건강한 회사라면 마땅히 매출액(=영업), 매출총이익(=마진), 영업이익(=매출총이익-판매비 및 일반관리비), 당기순이익의 목표치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 이는 모두 다 '숫자'로 표현된다. 따라서 이런 숫자를 꾸준히 학습해야 회사에서 목표로 하는 바가 구성원들 사이에서 제대로 공유되고 추구되는 것이다.

 

나아가서 회사는 무엇을 개선해야 하고, 향후 무슨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바로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즉 자체 결산 또는 경리아웃소싱을 통해 매월 경영실적보고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월차 회계결산보고만으로도 회사 내에서의 상호 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 소통을 통해 의사결정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및 일반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흔히 범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살펴보자. 이들도 당연히 소통을 중시하면서 영업보고를 매일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반복적인 영업실적만 파악, 무작정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사후관리의 중요성을 외면한다. 연초에 수립한 목표 매출 실적을 달성하려고 보여주기식 밀어내기, 손해를 감수한 판매 등등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묻는다. 

 

"대표님, 이달 영업이익이 얼마입니까?"


또 저자는 이런 점도 지적한다. 재무제표는 회사의 중요한 최상위 재무보고서지만, 경영 및 세무회계 분야의 비전공자 출신인 회사의 대표들은 세무사 또는 회계법인 등에 장부의 기장대행을 의뢰하면 그냥 쉽게 만들어지는 리포트 정도로 여긴다. 이런 대표는 '회사 재무제표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충격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지금도 늦지 않다. 이런 대표들은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경영의 성과는 말이 아닌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남이 대충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사업은 '자금관리'로 귀결된다. 세계 최대 온라인 상거래업체인 아마존도 엄청난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망하지 않았다시가총액이 2조 달러를 향해 가는 거대한 글로벌 공룡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금 상황을 항상 체크하라는 시사점을 던지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지속해야 할지, 중단해야 할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빨리 결정해야 할 것이다비즈니스는 숫자로 결과를 말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는 감성적인 게 결코 아니다. 자선사업이 아닌 냉정한 동물과 같은 존재다. 지구상에서 숫자가 소멸되지 않는 한 모든 가격은 항상 '숫자'로 표시될 것이다. 숫자는 돈의 흐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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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치 - 전민식 장편소설
전민식 지음 / 마시멜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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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라는 내게 한마디 위로의 말도 건네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라는 내게 내가 가진 걸 잃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조차 내가 잃은 것들에 대해,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우리의 땅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한눈에 훤히 보이는 작은 섬이지만 독도는 조선의 땅이며, 독도 역시 조선에게는 애틋한 자식일 터였다. 자식에게 바라는 바 없지만 무한정 사랑을 쏟아 붓는 게 어미의 도리이듯, 나 역시 나의 애틋함으로 독도를 우리의 섬이라고 끝까지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 '본문' 중에서

 

 

독도를 지킨 안용복, 그는 누구인가?

 

책의 저자 전민식은 1965년 겨울, 부산에서 태어나 평택에서 자랐다. 서른을 앞둔 마지막 해에 추계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고, 6년 만에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오로지 글쓰기에만 매진했고, 20년 넘게 한길만 고집한 끝에 마흔일곱이라는 중년의 나이에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꾸준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작품으로는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13월>, <불의 기억>, <알 수도 있는 사람>, <9일의 묘> 등이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강의를 하며 파주에서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독도는 누구 땅?",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이 땅에 살고 있는 유아원생조차도 "우리 땅"이라고 즉답을 한다. 이토록 대한민국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독도, 동해 먼 바다에 자리잡은 이 작은 섬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땅이건만 일제 치하의 식민지로 전락해 치욕의 역사를 보낸 것도 억울한 데, 왜 지금도 마치 자기의 땅을 우리 대한민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양 일본은 억지를 펴고 있는 걸까?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다. 조선 왕조가 미처 관리를 다하지 못함에 따라 평범한 조선인의 신분으로서 이웃 일본의 어부들이 불법으로 조업하는 행위를 준엄하게 꾸짖고자 몸소 일본으로 가서 공식적으로 이를 따진 열혈 남아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안용복, 우리의 역사책에도 거의 다루지 않을 정도로 몇 줄만의 남겨진 기록을 근거로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이를 소설로 탄생시켰다. 

 

이토록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그의 여생이 해피 엔딩이어야 당연함에도 그는 일본에서 조선으로 무사히 귀국해선 조정으로부터 오히려 벌을 받았다. 즉 조선의 독도 지배권을 확인시킨 문서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는 있으나, 일본과 담판을 짓고 돌아와 국법을 어긴 죄로 귀양을 간 후, 그가 어떻게 살았고 또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조선 숙종 때 안용복이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 일본에 건너가 에도 막부에게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한 일로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번졌던 '안용복 1차, 2차 도해渡海사건'을 긴박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는데, 실존 인물 안용복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영화 시나리오와 함께 소설로도 탄생되었다. 소설은 안용복이라는 한 인물의 고뇌와 내면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 땅에서 오히려 도둑 취급 당하다

 

때는 1693년 4월, 경제적인 문제로 부산 초량에서 울릉도(독도)로 흘러들어온 안용복 일행은 수백 마리의 강치 무리가 해변으로 몰려오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어서 화승총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왔다. 사실 지금 울릉도와 독도는 나라에서 도해금지령을 발령했기에 발각되면 곤욕을 치를 게 분명하므로 우선 몸을 숨기는 게 급선무였다. 멀리 시야에 들어온 배는 일본의 군선인 세키부네였다.

 

몽돌 해안가는 강치의 울음과 고통 소리가 회오리쳤다. 강치의 피 냄새는 어둠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강치들의 울음소리가 빠져나간 허공을 일본 어부들의 웃음소리가 채웠다.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렸다. 쪽바리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자비한 인간 백정이나 다름 없었다. 생선을 절여 운반하는 포작선까지 보였다.

 

임시 숙소로 정한 우데기집에 돌아와 모두 잠을 깨웠다. 지금 눈 앞에 벌어지는 일본 어부의 행위는 분명 불법이지만 자신들의 처지가 이를 관아에 보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철수가 현명하다고 판단, 말리던 오징어와 짐을 챙겼다. 그런데, 훈도시만 몸에 걸친 채 쇠갈고리와 죽창과 화승총으로 무장한 일본 어부들이 우데기집을 덮쳤다.

 

"이놈들 독도에서 도망 쳐봐야 울릉도지.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인적이 드물어 풍성해진 수산물이 안용복 일행의 경제적 애로를 해결해주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입도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울릉도(독도)까지 먼 바닷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 관리들에게 체포된 것도 아니고 안용복 일행들은 철천지 원수 같은 일본 어부들에게 체포되었던 것이다. 

 

나라는 안용복에게 한마디 위로의 말도 건네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라는 내게 내가 가진 걸 잃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눈에 훤히 보이는 작은 섬이지만 독도는 조선의 땅이며, 독도 역시 조선에게는 애틋한 자식일 터였다. 독도를 우리의 섬이라고 끝까지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조선이 그에게 어떤 미래의 약속도 해주지 않겠지만 이 섬은 자신의 피와 같다는 걸 일본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한편, 백과사전에 따르면 안용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693(숙종 19) 울릉도에서 고기잡이 하던 중 이곳을 침입한 일본 어민을 힐책하다가 일본으로 잡혀갔다. 일본에서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강력히 주장하여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받아냈다. 이를 가지고 돌아오던 중 쓰시마(대마도) 도주에게 빼앗기는 바람에 그 내용이 죽도가 일본땅이므로 고기잡는 것을 금지시켜 달라고 위조되어 조선에 들어왔다.

 

이에 조선에선 울릉도는 조선의 땅임이 명백함을 밝히고 1694년 일본의 무례함을 힐책하는 예조의 서계를 전달했다. 이후 안용복은 1696년(숙종 22) 박어둔과 다시 울릉도에 고기잡이 나갔다가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송도(:독도)까지 추격하여 정박시킨 후 조선의 바다에 침범해 들어와 고기를 잡은 사실을 문책한 다음 울릉우산양도감세관이라고 자칭하고, 일본 호키주에 가서 번주에게 범경을 항의, 사과를 받고 돌아왔다.

 

이듬해 일본 막부는 쓰시마 도주를 통하여 공식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하고 일본의 출어금지를 통보해 왔다. 안용복은 나라의 허락없이 외국을 출입하여 국제문제를 야기했다는 이유로 조정에 압송되어 사형까지 논의되었으나 지사 신여철 등이 '나라에서 하지 못한 일을 그가 능히 하였으니 죄과와 공과가 서로 비슷하다'고 하여 귀양에 처해졌다.

 



애초에 조선은 안용복에게 중요한 세상은 아니었다. 양반도, 선비도 아닌 평범한 양인이나 천민들에겐 적어도 그러했을 것이다. 안용복 일행에게 중요한 건 바다였고, 삶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터전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조선이라는 나라가 중요하게 다가왔던 건, 초량 왜관에서 일본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그의 조선이 밉기도 했지만 애틋하기도 했다.

 

"너는 조선 사람이니까. 너는 조선의 흙이고 숨이며 물이니까. 본래 나라를 지키는 사람은 미천하고 평범한 사람이니까. 참고 숨죽이고 살아온 건, 오늘을 위해서인지도 모른다"(281쪽)

 

그는 어머니의 말에 용기를 얻어 재차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얻어내기로 결심했다. 안용복 일행은 배를 타고 독도를 거쳐 울릉도로 들어갔다. 거의 다섯 달 동안 울릉도와 독도의 감세장이었다. 그리고 지금 쇼군의 서계를 받아 돌아왔다. 서계를 꺼내 살펴보았다. 서계 모퉁이가 피에 젖었을 뿐 글자는 살아 있었다. 비록 공은 세웠지만 관직을 사칭하면서 나라의 법을 어기고 울릉도와 독도에 입도했던 일에 대한 처벌을 피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천박하고 평범한 사람도 나라의 땅과 바다를 지킬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도해금지령을 어긴 죄와 관직을 사칭한 죄를 물어, 어떤 형벌을 주더라도 감수할 작정이었다. 이는 조선을 떠날 때부터 무사히 살아서 귀국한다면 그리 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었다.

 

"네게 조선이 무엇이더냐?"

 

그는 지금 근정전 앞으로 끌어나온 죄인이었다. 가슴 속에 쌓인 말들이 많았지만 임금의 말을 듣는 순간, 울릉도 탐사 차 그곳으로 들어갔던 광경이 떠올랐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해는 중천에 떠서 오롯이 솟은 울릉도를 쓰다듬고 있었다. 햇살은 멀리 보이는 독도도 그러안고 있었다.

 

"……제게 조선은 태양입니더. 우리 땅이 어느 곳에 있든, 우리가 어디에 있든 시기와 질투도 없이 공편함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빛을 나누어주는 태양입니더"(364쪽)

 

이제 안용복의 미래는 임금의 한 마디에 모든 것이 결정될 참이었다. 임금은 안용복의 죄는 죽어 마땅하나 일본인의 기를 꺾고 몸소 울릉도와 독도에 일본인의 왕래를 막고자 한 것은 큰 공임을 들어서 극형을 감하고, 그를 "멀리 유배토록 하라"고 명을 내렸다. 안용복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던 핏덩이가 한순간에 풀어져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안용복을 추모한 조선의 대학자 이익<성호사설>에 이런 글을 남겼다.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다. 미천한 일개 군졸로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를 위하여 강적과 겨루어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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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에 돈이 쌓이는 초저금리 재테크 - 예.적금에 목숨 거는 당신만 몰랐던 최강 투자 전략!
조재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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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가 1%로 떨어지면 예, 적금 등의 수신금리도 그 이하로 떨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은행에 돈을 맡겨 얻는 이익이 제로로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과 세금을 차감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제 초저금리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현상이 되었고,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경제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좀 더 적합한 새로운 투자법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초저금리 시대, 어떻게 재테크해야 할까?

 

이 책의 저자 조재영20년 경력의 대한민국 톱클래스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로 국제 기준이 요구하는 자격요건을 갖춘 CFP BOARD 인증 국제공인재무설계사이자 금융교육 컨설팅회사 웰스에듀 부사장이다. 삼성생명 FP센터 팀장, 우리투자증권 PB압구정센터 부장, NH투자증권 PB강남센터 부장으로 수많은 VIP 고객의 자산을 관리했으며, 매경이코노미 선정 '대한민국 BEST PB 50인', 주간매경 선정 '대한민국 베스트 PB'에 뽑히기도 했다. 매일경제신문 재테크 자문위원, 이데일리 재테크 전문위원, 포브스 PB자문단을 역임했다.

한국FP협회 FP저널 편집위원, 금융연수원·금융투자협회·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 및 금융감독원 객원교수로 활동 중이며,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 PB MBA 과정에 출강 중이다. 금융감독원 인증 금융교육 전문강사, 투자자산운용사, 금융자산관리사, 종합자산관리사, 증권투자상담사, 선물거래상담사 등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이코노미스트에서 '조재영의 초저금리 시대 자산증식법' 칼럼을 연재 중이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장(내 통장을 살찌우는 돈 관리법)에서는 초저금리 시대에 투자하기에 앞서 꼭 알아야 할 기초지식과 자산관리법에 대해 다룬다. 금리를 이해하고, 나의 투자성향, 금융상품의 리스크 등을 파악한다. 2장(예금보다 쏠쏠한 펀드)과 3장(고수익의 매력, 눈여겨볼 추천 투자 상품)에서는 예금 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는 펀드와 대안 투자 상품을 소개한다. 국내 주식, 해외 주식, 국내 채권, 해외 채권, 원자재, 부동산 등 투자 대상을 폭넓게 다루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투자 초보자가 가장 접하기 쉽고 활용하기 좋은 상품들을 위주로 투자 시 장점뿐만 아니라 유의할 점들도 자세히 설명했다.

 

4장(아는 만큼 돈이 되는 유용한 제도 BEST 6)에서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연금저축 등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장에서 소개하는 제도들은 대부분 장기적인 플랜인데, 작은 차이가 향후 큰 차이를 만들기 때문에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장기적으로 꽤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 5장(젊었을 때 알아야 할 증여, 상속, 세금)에서는 어떻게 하면 문제없이 원하는 대로 잘 물려주고, 잘 물려받고, 합법적으로 절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유용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투자성향 파악하기

 

대체로 젊은 사람일수록 적극적인 투자성향을 보인다. 나이가 들면 앞으로 자금을 운용할 시간이 줄어들고, 수입이 중단될 시점이 가까이 오기 때문이다. 투자경험도 큰 영향을 미친다. 주식이나 펀드 등에 투자해본 경험이 전무하다면 처음부터 위험등급이 높은 금융상품에 가입하길 꺼리겠지만, 여러 차례 투자상품에 가입한 경험이 있다면 부담없이 투자위험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투자성향을 판단하는 게 어렵다.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면 금융회사에서 '투자성향 진단표'를 통해 자신의 투자성향을 점검할 수 있다. 이 표는 투자자의 나이, 투자경험, 금융상품 투자에 관한 지식 수준, 원금 손실 감내 수준, 투자 가능 기간, 전제 금융자산 중 투자자산의 비중, 투자자의 수입원 안전성 등의 항목으로 투자성향을 판별한다.

 

공격투자형~ 80점 초과

적극투자형~ 60점 초과 80점 이하

위험중립형~ 40점 초과 60점 이하

안정추구형~ 20점 초과 40점 이하

안정형~ 20점 미만

 

 

인덱스 펀드

 

2007년 말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은 펀드운용회사('프로티지 파트너스')와의 세기의 대결을 펼쳤다. 즉 향후 10년 후의 누적수익률이 누가 높은지를 내기했던 것이다.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던 이 대결에서 2017년 말 워런 버핏은 승리했다. 이 때 워런 버핏은 S&P500지수 인덱스 펀드를 선택했고, 프로티지 파트너스는 5개의 펀드에 분산투자를 했는데 인덱스 펀드는 연평균 7.1% 수익률, 프로티지 파트너스 펀드는 연평균 2.2% 수익률을 기록했다.

 

"내 유산의 90%는 인덱스 펀드에, 나머지 10%는 국채에 투자하라"

- 워런 버핏(2013년 주주총회에서)

 

 

주가연계증권ELS

 

이는 주가지수나 개별 종목의 주가 같은 기초자산 가격에 연계되어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상품이다. 2003년 증권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금융 상품화되엇으며, 장외파생금융상품업 겸영 인가를 받은 증권회사만 발행할 수 잇다. 주식은 주가가 떨어지면 손해를 본다. 하지만 ELS는 주가가 하락해도 이익을 낼 수 있다. 처음 설정한 하락 범위(보통 최초 기준가격의 50% 내외) 이하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사전에 약속된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텝다운형~ 주기마다 평가, 정해진 하락률을 하회하지 않으면 약속한 수익을 조기 상환

녹아웃형~ 미리 정해놓은 주가 수준에 도달하면 확정 수익을 지급

양방향 녹아웃형~ 가입시 정해놓은 주가에 도달하면 확정 수익을 지급

불스프레드형~ 만기시 주가상승률에 비례해 수익을 지급

디지털형~ 가입시 정해놓은 주가를 초과할 때 일정 수익을 지급

리버스컨터블형~ 가입시 정해놓은 주가하락 폭 이하로 하락않으면 약속된 수익을 지급

 

 

돈이 되는 유용한 제도

 

국민연금의 기금이 고갈될 것을 우려해 이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우리들의 건강 수명이 길어지는 것을 고려한다면 사회보험의 성격인 국민연금이 사실상 절실한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급여를 수령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가입하지만 소득이 없는 사람은 가입의무가 없기에 이를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가입의무가 없음에도 임의가입 형태로 매월 정기적으로 꾸준하게 연금을 납입한 사람들은 노령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지역 가입자의 기준소득월액이 근로소득자의 그것보다 현저하게 낮으므로 낮은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해서 보험료를 납부하고 수령할 때는 전체 평균을 감안한 연금을 수령하므로 매우 유리한 제도이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이면 평생 국민연금 노령연금을 수령할 수 있으므로 이에 미달되는 납입자라면 임의계속가입을 신청, 추가 보험료를 납부함으로써 10년 이상 납입기한을 채운 후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국민연금은 모두 동일하게 받는 게 결코 아니다. 관리할수록 더 많이 받는 것이다. 

 

 

사망하기 전 재산을 미리 분배

 

재산이 많은 자산가들은 증여에 대한 관심이 크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2년에는 8만 건에도 멋 미쳤는데, 2018년에는 15만 건을 넘겼다. 과거 몰래하던 방식을 버리고 합법적으로 사전 증여를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자산 증여보다 부동산 자산 증여가 훨씬 많았지만 이제는 현금, 예금, 주식, 펀드, 보험 등 금융자산의 선호도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2개월 평균 주가로 증여가치를 평가한다

증여세 신고기간 내에는 반환이 가능하다~ 주가 하락시

증여세 신고는 반드시 기한 내에 한다~ 산출세액계의 3%를 세액공제 받는다

장애인은 증여세 혜택을 받을 수 잇다~ 연간 4,000만 원까지의 보험금 한도로 비과세

 

 

 

 

초저금리의 파도에 올라타라

 

이젠 시대가 크게 변했다. 과거처럼 예금을 하면 금리를 지급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예금보관료를 징수하는 시스템으로 변하고 있다. 대세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현상이 된 초저금리라는 거대한 파도에 저항하지 말고, 그 위에 올라타서 더 멀리 더 빠르게 나아가는 것이 현명한 투자자들의 자세다. 높은 수익률을 원한다면 이 책의 필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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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이야기 1 - 전쟁과 바다 일본인 이야기 1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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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찾아온 우연을 행운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야말로 실력입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모두 위험한 순간마다 우연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진정한 실력은 그 우연을 놓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행운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 부문 이상으로 경제, 군사면에서 실력을 발휘하여 우연을 행운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경제, 군사 부문은 17세기 이후의 한반도 주민이 한반도와 바깥 세계를 바라볼 때 취약한 부분입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16~ 17세기 일본의 전환기를 살펴본다

 

이 책의 저자 김시덕은 고려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의 국문학 연구자료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HK 교수로 재직 중이다. 16~20세기 동부 유라시아 지역의 전쟁사가 주 연구 분야로, 특히 임진왜란을 조선, 명, 일본 간 국제 전쟁으로 바라보는 작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고문헌을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 근거해 전쟁이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력을 살피고 역사의 흐름을 추적해왔다.

일본에서 펴낸 박사학위논문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는 2011년 외국인 최초로 일본 고전문학학술상을 받았고, 2015년에는 한국 동방문학비교연구회의 석헌학술상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이 연구는 2016년에 <일본의 대외 전쟁>으로 번역 출간되었고 2017년에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밖의 주요 저서로는 <그들이 본 임진왜란>, <교감· 해설 징비록>,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전쟁의 문헌학>, <서울 선언>, <갈등 도시> 등이 있다.

 

이 책은 총 다섯 권으로 구성될 <일본인 이야기>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6장으로 구성된 책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 관점을 다룬다. 첫째, 인간 세상에선 때로 법칙보다 우연이 더 크게 작용하며, 둘째, 인간 개개인의 삶에선 노력 이상으로 행운이 중요하고, 셋째, 정치 분야 이상으로 경제와 군사 분야가 인간 세계를 전진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는 일본의 근세사에 해당하는 16~17세기를 소환한다. 일본 국내의 통일 전쟁 과정, 유럽 국가들과의 교섭, 가톨릭의 영향력, 그리고 조선과 한반도의 정세 등을 담고 있다. 조선사에서의 큰 불행인 임진왜란이 발생한 시기이며, 일본과 조선의 격차는 바로 이 시기에 크게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대항해시대

 

책은 네델란드 이야기로 시작한다. 네델란드 동인도회사는 1602년에 설립되었는데, 이 회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타이완과 파푸아뉴기니에 이르기까지 인도양의 패권을 차지한 무역 회사이자 전투 집단이었다. "전투 없이 거래 없다"는 캐치프레이즈가 이 회사의 태도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 유럽 문명국들이 지금까지 견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상업과 무기라는 두 개의 칼을 앞세워 동인도회사가 인도양을 휩쓸고 동중국해에 이르렀을 때 중국은 명,청대였고 일본은 전국시대였다. 다른 인도양 지역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이들은 중국과 일본에게 군사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동인도회사는 타이완 남부에 거점을 마련하고 일본 규슈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히라도와 나가사키에 극히 제한된 무역 거점을 마련했을 정도였다. 

 

일본은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오사카 전투(1614~1615년)를 거쳐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섰는데, 네델란드 동인도회사의 군사력을 압도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동인도회사는 중국과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무역에 치중했다. 중국의 도자기와 비단, 일본의 은銀이 바로 그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대항해시대 일본의 상황은 아메리카·아프리카와 중국 대륙의 중간 정도였다. 일본은 아메리카·아프리카처럼 분열 상태였지만, 유럽 세력이 본격적으로 일본에 접근하기 시작하는 16세기 중반에 이르면 분열에서 통합으로 서서히 방향이 전환되어 간다. 그 계기는 유럽 세력의 일본 접근을 상징하는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년)가 1549년 일본에 상륙한 사건이다. 그는 46년 동안 인도, 중국,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1540~1550년대 일본은 전국시대에서 통일로 향하던 시기여서 분열보다는 통합으로의 열망이 컸고, 센고쿠 다이묘들은 수많은 전쟁 경험을 통해 유럽의 신무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유럽 세력을 몰아내는 것 이상으로, 자신들이 일본을 지배하는 데 불만을 품은 백성과 불교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강력한 군사력을 필요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일본을 포함한 동중국해 연안 지역에 나타난 유럽 세력의 핵심은 군사 집단이 아니라 선교사였다. 한마디로 일본은 실력과 운에 의해 간신히 유럽의 군사적 진출을 막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실력보다 행운에 의해서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재수 좋은 과부는 넘어져도 오이밭에 넘어진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조총과 사격술을 가르치는 포르투갈인

 

 

16~ 17세기 일본과 카톨릭

 

유럽 세력이 동중국해에 가져온 조총과 십자가, 즉 신무기와 새로운 종교 가톨릭을 중국과 일본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오다 히데노부(오다 노부나가의 장손)(1580~1605년, 세례명 페드로), 임진왜란 때 외교 교섭에 관여한 나이토 다다토시(1520~ 1626년, 세례명 조안), 저명 의학자 마나세 도산(1507~1594년, 세례명 베키오르 또는 멜키오르) 등 당시의 유명인사들이 가톨릭 신자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당연히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도구가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 인간 개개인과 마찬가지로 인간 집단으로서의 사회 역시 깨달음보다는 오히려 강한 외부 충격에 의해 바뀌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변화는 반드시 긍정적이거나 미래 지향적이지 아닐 수도 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 따르면, 청나라가 만주 이주를 금지하는 봉금령을 해제하고, 러시아와 조선의 국경이 맞닿게 되자 조선인들은 새롭게 열린 만주와 러시아로 건너가 악착같이 일하며 정착했으므로 한반도 주민의 민족성은 결코 게을러서 가난했던 것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충격과 새로운 기술의 탄생은 이렇게 인간 사회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17세기 일본의 경우, 전 세계의 기축통화가 된 일본 은銀을 대량 생산하게 된 것은 조선의 발달된 은 제련 기술이 일본으로 전래된 덕분이고, 상업출판이 융성하게 된 것 역시 조선과 유럽의 인쇄술이 일본에 전래된 덕분이었다. 즉 기술이 들어오면서 사회 시스템이 바뀌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정신과 물질적 조건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일본은 한국과 매우 다른 역사적 경험을 지녔다. 그 경험의 차이가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부분이 16~17세기 남중국해 연안에서 전개된 일본인의 활동, 그로부터 촉발된 유럽과의 접촉이다. 이런 차이를 못 본 척하고 한자 문화권이니, 유교 문화권이니, 왕인 박사니 하며 한국과 비슷한 것만 찾아서는 결코 일본의 참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이 중국과 비슷한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481~1495년 간 재위했던 포르투갈의 제13대 국왕 주앙 2세가 인도 항로를 개척하면서부터였다.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에 도착,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캘리컷에 도착함으로써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항로가 열렸다. 포르투갈은 1510년 인도 고아를 점령, 1511년 동남아 해상 항로의 핵심지인 이슬람 국가 말라카 왕국을 점령했다.

 

당시 포르투갈은 동남아에서 '왕실의 영광, 복음, 재물'을 찾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재물'이란 특히 정향, 육두구, 메이스 등 3가지 향신료를 가리킨다. 대량 생산지가 바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사이의 말로쿠제도였다. 그래서 포르투갈 세력들은 말라카 왕국을 제입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말라카는 태국, 명나라, 버마 등지에서 수입한 대포와 자체 제작 대포 등으로 2개월 정도 버티었지만 비밀리에 포르투갈과 내통한 내부 이슬람 세력으로 인해 멸망하고 말았다.  

가톨릭과 조총이 일본에 도착했다. 기계 제작은 글자로만 기록하거나 전달하는 게 한계가 있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포르투갈인 왜구가 조총을 직접 가지고 와서 일본인들에게 사용법을 가르쳐준 것은 그런 의미에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임진왜란 직전에 쓰시마 측에서 조총을 선물로 주었으나 조선이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한 국가의 지도자가 외래 문명과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나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최근에는 '신국설神國說'에 매몰된 일본에서도 유럽 가톨릭의 자료를 통해 16~17세기 일본을 연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마치 고대 중국을 연구할 때 땅속에서 갑골문자나 백서, 죽간, 목간 같은 출토 문헌이 나오기 전에 제작된 문헌과, 막대한 양의 출토 자료를 활용하는 20세기 후반 이후의 연구 내용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출토 문헌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않은 <주역> 해설서를 읽는 것은 헛된 일이 될지 모른다. 백 년 뒤의 세계인들은 지금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고대 중국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말라카는 유럽 세력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일본이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단순한 행운일까? 말라카는 일본보다 훨씬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해서 일 것이다. 포르투갈이 동남아시아의 향료 무역을 지배하려면 핵심 교역지인 말라카를 당연히 지배하고 싶을 것이다. 또한 무력 상대로도 만만해 보였을 것이고 말이다.

 

 

 

 

바보야, 군사력이 문제다 

 

유럽 해양세력이 볼 때 일본은 무역의 상대로서는 매력적이었지만 무역 거점은 아니었다. 태평양을 이용해 무역 루트를 만든 스페인도 거점 확보를 위해선, 자체적으로 무장되어 있는 일본보다는 저항이 약한 필리핀을 차지하는 것이 훨씬 손쉬웠을 것이다. 말라카와 일본 두 나라의 운명은 지정학적 위치가 달랐기 때문에 말라카는 식민지가 되고 일본은 살아남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조선이 왜란에 시달리고 구한말 일제에 의해 식민지가 된 것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고 차근차근 진행되어 온 해양세력 일본의 대륙진출 욕구와 한반도의 허약한 군사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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