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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회복 - 삶의 균열 앞에서 나를 돌보는 연습
박재연 지음 / 한빛라이프 / 2025년 8월
평점 :
상실이라 하면 대개 죽음이나 이별을 떠올리지만, 우리가 살면서 겪는 상실은 그보다 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이별, 죽음처럼 명료한 상실이 있는가 하면, 학창 시절에 겪은 지독한 소외감과 폭력의 두려움 같은 상징적 상실도 있다. 또한 갑작스레 찾아온 사고나 질병과 같은 외상적 상실, 부모의 이혼이나 실종 같은 정의 내리기 어려운 모호한 상실이 있다. 우리는 어떤 결과를 통해 상실을 하나의 '사건'으로 정의하고 결혼 지으려 하지만, 상실이라는 것은 아주 복잡하고 모호하게 사람의 마음에 파고든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박재연은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소장이자 한국신학대학교 대학원 죽음교육상담전공 교수이고 국제공안 죽음교육상담전문가이면서 수련감독이다. 8~15주의 <연결의 대화> 워크숍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갈등 중재와 집단 대화 훈련 및 개인 대화 상담을 진행하고 잇으며 한계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세계와 상호관계의 대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된 책은 '가족이 그리울 때, 가족이 힘들 때', '주기만 해도 행복하다 생각했는데, 사랑이 고플 때', '일도 삶도 어긋났다 느낄 때', '삶의 유한함을 깨닫게 될 때' 순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상실의 사건 앞에서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는 것을 넘어 관계와 맥락 속에서의 진짜 상실을 다루고 있다.
감추어두었던 눈물이 흐르는 날
인생의 여정에서 경험하는 상실은 우리들에게 비탄이라는 깊은 슬픔의 감정을 느끼게 하고, 그 비탄은 애도의 과정을 거치게 한다. 그러니 이 과정에서 일부러 울음을 참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상실 수업>에서 "30분 울어야 할 시간을 20분으로 줄여서 울지 말라"고 권고헸다.
"울어요?"
"아줌마가 네 나이 때는 친구가 별로 없었어. 잘 못 놀았거든"
"아, 슬펐겠다"
"그래서 너랑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보니까 아줌마가 눈물이 나네"
이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이루어진 대화이다. 어떻게 그 아이는 그토록 해맑은 얼굴로 다가와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었을까? 문득 아이의 부모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아이를 키웠길래 이토록 다정하게 아이는 말할 수 있었을까?
발달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들과 보호자 간에 애착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안정적인 애착을 지닌 아이들의 특징은 심리적 안정감, 자율성, 사회적 유능성 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주된 양육자와의 관계에 큰 영향을 받는다.
사랑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불안은 적다. 또한 자신의 욕구에 귀 기울이는 능력이 있고 자율적이다. 앞서 예시한 아이와의 대화가 비록 잠시였지만 다정한 말씨와 함께 상대의 눈물에 대해 진실한 호기심을 가졌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사진, 생각나누기- 어린 시절의 상처)
깊이 사랑해본 사람은 다르다
유명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긍정심리학의 핵심 모델인 PERMA 이론에서 인간의 행복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중 하나로 관계를 꼽았다. 다른 요소인 긍정 감정, 몰입, 의미,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버티게 해주는 힘은 '깊이 연결된 사람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바쁘다", "죽겠다". "하루가 너무 짧다" 등과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며 하루를 보낸다. 속도에 쫓기고, 해야 할 일에 떠밀리며, 관계는 자꾸만 뒤로 미뤄진다. 나 또한 80년대 초중반의 직장인으로 꼭 이런 모습이었다. 회사일 때문에 갈수록 이성과의 교제는 당연히 후순위가 되는 추세였다. 결국 그 여성은 나에게 절교를 통보해왔던 것이다. 그 당시엔 이런 통보가 무덤덤했지만 한해두해 솔로 생활이 길어지면서 퇴근 후 가장 친한 친구는 사람이 아닌 술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 걸까?'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한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녀를 두고 떠났고, 남겨진 그녀는 기꺼이 사랑했던 그 모든 시간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다시는 누군가를 이토록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 결심이 너무나도 확고해서 지인들 아무도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이후 그녀는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올인했다. 결과는 정직했다. 성취는 그녀의 몫이었고, 노력한 만큼의 보상은 자존심을 다시 세워주었다. 주위 사람들은 '멋지게 혼자 잘 살아간다'라고 감탄했다.
그러나 일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을까? 마음 깊은 곳에 온기를 데워주는 존재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린 모두 잘 알고 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갚은 숨을 내쉴 때, "노 괜찮아?"라고 물어주는 단 한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 고용함 속의 공허함은 결국 일이 채울 수 없는 감정의 틈으로 남는다.
우리는 모두 혼자 살아간다고 믿기 쉬운 세상에 산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한 착가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쓰러지지 않고,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선다.
사랑은 늦게 오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그때, 당신이 마음을 열어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생각나누기 - 사랑이 떠난 상실)
베푸는 것도 선택이고 기쁨이어야 한다
남에게 베풀고 선한 행동을 많이 행하면서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에게는 '강박적인 인정 욕구'로 인해 오히려 스스로의 삶을 지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선을 넘은 무례한 언행을 그저 흘려보낸 탓이다. 마음속엔 억울함과 슬픔이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고, 침묵으로 넘겼다. 이를테면 스스로를 기만한 것이다.
"기쁘지 않다면 어떤 일도 하지 말라"
- 마셜 로젠버그, <비폭력 대화> 중에서
페르소나, 이는 타인에게 보이는 '사회적 가면'이라고 칼 융이 말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위해 다양한 페르소나를 사용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페르소나가 '진짜 나'라고 동일시하며 살아가거나 '진짜 나'와 크게 괴리될 때 발생한다. 그 페르소나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적 사고 때문에 감정을 억압하고 외부 인정에 몰입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갈등을 회피하려 하고, 심지어 화를 낼 때와 참아야 할 때를 분별하는 능력이 약화되었다.
그렇다.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시선을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타인에게 밥을 사는 대신 나를 위해 맛있는 브런치를 사 먹고,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며 에너지를 소비하는 대신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돌보며 삶의 균형을 찾는 게 나 자신에 대한 인정이자 오히려 가장 중요한 인정인 것이다.

(사진, 생각나누기 - 페르소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죽음은 가장 고통스러운 상실의 유형에 속한다. 가족의 자살은 갑작스러운 외상적 상실에 해당한다. 자살과 같은 인위적인 이별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극도의 혼란과 죄책감을 남긴다.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상상 그 이상이다.
죽음학에서는 죽음 직전의 극심한 고통을 줄여주고 저서적 안녕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요소 중 하나가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란 사실을 반복적으로 연구해왔다. <말기 환자 돌봄 연구>에서도 가족 또는 돌보는 이가 곁에 있어주었을 때, 불안이나 공포 같은 주관적 경험이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결과들이 꾸준히 보고되었다.
죽음을 목격했고, 그 현장에 있었던 남겨진 사람의 심리적 경로를 살펴보면,
첫 번째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두 번째는 재현 기억~ 죽음의 순간이 반복해서 떠오름
세 번째는 감정의 회피~ 사건 관련 대화나 기억을 언급하지 않는 시도
네 번째는 애도와 외상의 교차~ 감정의 마비 상태를 경험
애도가 단지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가는 것이다.

(사진, 생각나누기 - 죽음)
관계에서 경험하는 상처는 유의미하다
아동기에 힘든 시기를 보낸 이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눈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랑하는 조부모를 잃은 사람은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부모로부터 학대받ㅇㄴ 남성은 따뜻한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고, 취업에 많이 실패했던 청년은 진로전문가가 되어 희망을 잃은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었다. 상처는 아픔임에 분명하지만 동시에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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