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자산
김한국 감독 / OHK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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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를 소모품으로 쓸 것인가, '지속 가능한 자산'으로 만들 것인가. 이 책은 사람들이 지금껏 당연하게 믿어온 잘못된 상식들을 단호하게 구분하고 피부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피부자산 경영 지침서'로 쓰고 싶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책의 저자 김한국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고려대 의대, 삼성제일병원 레지던트를 거쳐 청담오라클피부과, 아이디, 원진성형외과 등 국내 주요 의료기관에서 임상 경험을 쌓았다. 잘못된 관리와 과도한 시술로 피부 상태가 악화되고, 문제가 발생한 후에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목격하며 현대의 피부 관리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누적 수만 건 이상의 임상 경험을 통해 피부의 구조와 회복력을 기반으로 한 피부자산 개념을 정립했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책은 당신의 피부는 이미 원금을 까먹고 있다(제1장), 피부에도 복리의 법칙은 작용한다(제2장), 피부자산을 우상향시키는 실천 전략(제3장) 등을 통해 이제 우리들의 피부자산 경영을 시작해야 함을 강조하며 피부 스스로 일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주라고 제안한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도서 제목에 등장한 피부자산이란 용어 탓이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자산, 원금, 복리의 법칙, 우상향 전략 등과 같은 말은 재테크 분야에서 흔히 등장하므로 책의 저자가 강조하는 피부자산이 바로 주식투자와 같은 개념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책 속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당신의 피부는 이미 원금을 까먹고 있다


이를 투자의 개념으로 해석하자면 이미 손해를 보고 있다는 말이 된다. 피부과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많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반복적으로 접하는 아이로니가 있는데, 바로 '문제성 피부'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스킨케어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1,800억 달러(원화 약 240조)를 넘어섰다. 한국 시장만 본다면 국내 스킨케어 시장은 약 101억 7천만 달러(2024년)에 달하며, 2035년까지 147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한국 여성 81%가 다단계 스킨케어 루틴을 실천하고 있으며,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단계는 7~10단계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공을 들이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민감성 피부'로 자각하는 성인 여성 비율은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왜 관리할수록 피부는 더 예민해지는가?

비싼 시술을 받는데도 왜 변화가 없는가?

피부는 지금 관리되는가, 소비되는가?


이는 피부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음에도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는 마치 '과유불급'과 같은 결과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는 뭘까? 기준도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투자의 개념에 대입해 보면 투자 원리에 대한 이해없이 돈만 계속 투입해서 오히려 원금을 까먹고 있는 것과 같다. 즉 주식투자에 있어서 주가가 하락한다고 '물타기'를 계속해도 주가가 오르지 않아 손해만 보고 있는 것으로 비교된다.


저자는 가장 치명적인 오류가 루틴처럼 반복하는 아침저녁의 '세안洗顔'이라는 것이다. 예민한 피부를 가진 사람이 클렌징 오일로 화장을 꼼꼼히 녹이고, 또 다시 클렌징폼으로 이중 세안을 한다. 또 일주일에 한번 스크럽이나 필링 제로 각질을 벗겨내고, 가끔씩 진동 클렌저까지 돌린다. 이는 관리가 아니라 오히려 피부를 혹사하는 행위이다.




계면활성제가 포함된 세안제로 얼굴을 문지르면 그 순간 피부의 방어선은 급격히 흔들린다. 정상적으로 약산성을 유지하던 표면이 알칼리성(페하 8이상)으로 치솟는다. 이는 장벽 보호의 붕괴 신호이다. 피부과학에 따르면 알칼리 세안 후 정상으로 회복되기까지 최소 수시간이 필요하므로 그동안 피부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세라마이드가 합성되지 못하고, 이미 존재하던 지질 구조가 용해되어 보호막이 녹아내린 것이다. 그렇다. 노폐물 제거가 아니라 보호막을 제거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피부자산 경영 원칙은 '지출을 차단하는 것'이다.

아침엔 미온수(체온과 비슷한 32~34도)만으로도 밤새 분비된 피지와 각질은 적절히 제거된다. 저녁엔 약산성 세안제(페하 5~5.5)를 사용, 손바닥에서 충분히 거품을 내어 얼굴에 부드럽게 문질러 1분 이내에 마무리한다. 반드시 미온수 이하의 물을 사용하고, 세안 후 수건으로 부드럽게 눌러서 물기를 흡수시킨다. 짙은 화장을 한 날엔 클렌징 오일로 메이크업을 녹여낸 뒤 약산성 세안제로 한 번먼 마무리하면 된다. 그렇다. 필요 이상으로 피부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자.



세안 직후가 바로 보습의 타이밍이다. 피부가 약간 촉촉한 상태에서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지방산이 균형 있게 배합된 보습제를 얇게 발라주면, 장벽 개선에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다. 세안 후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방치하면 수분 증발이 가속화되면서 회복이 지연된다. 이처럼 피부 보습의 핵심은 피부에 뭔가를 더하는 게 아니라 빠져나가는 걸 막는 것이다.


피부에도 복리의 법칙은 작동한다


피부의 노화는 결코 직선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매년 1%씩 깎여 나가는 콜라겐은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급격하게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30대 중반에 시작한 작은 관리의 차이는 50대의 우아함이라는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단순히 주름살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피부의 펀드멘털을 유지, 보강하는 안목이다. 이는 재테크 측면에서 초기 자산관리의 작은 차이가 나중에 커다란 차이를 만드는 것과 같다.


초기의 작은 차이가 시간이 경과하면서 큰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바로 '복리'의 본질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강조하는 '언덕 위에서의 눈 굴리기'와 같은 개념이다. 즉 작은 눈뭉치가 언덕 아래로 굴러가면서 덩치를 크게 만들어낸다.


저자의 진료 경험에 따르면, 오십대 초반의 여성이 팔자 주름과 내려앉은 볼의 상태를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싶어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복구는 가능하지만 만약 삼십대 중반에 관리를 시작했다면 지금 드는 비용의 20% 수준으로 훨씬 자연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금융자산과 달리 피부의 복리는 '잃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골든타임은 '아직 괜찮다'고 생각하는 시기인 30대 중반이다.



피부자산 우상향 전략


최근까지 한국증시의 코스피 지수는 우상향 그래프를 그려왔다. 재테크 용어에서 우상향이란 증가, 성장, 확대 등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피부자산 또한 인위적인 변조가 아닌 꾸준한 관리를 통한 품격 있는 '슬로 에이징'을 추구하자는 게 저자의 의도이다.


피부자산 가치를 갉아먹는 습관


잘못된 세안~ 비누의 계면활성제가 피부 장벽을 훼손

자외선 차단~ 피부 노화는 자외선에 의한 황노화

과도한 보습~ 모공을 막고, 트러블의 원인


비싼 화장품이 피부자산을 지켜주지 못한다. 앞서 살펴본 바처럼 화장품을 많이 자주 사용한다는 것 또한 '과유불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피부 장벽의 핵심인 각질층은 각질세포,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지방산으로 이루어진 구조다. 그런데, 아이로니하게도 화장품이 피부 치유를 돕는 걸 알고난 후 스스로 지질을 합성하고 장벽을 보수하는 능력을 점차 사용하지 않는다.



슬로 에이징의 품격


진정한 피부 경영의 승자勝者는 동안 피부나 동안 얼굴을 유지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나이에 걸맞는 우아함을 을 유지하면서 남들이 보기에도 '품격 있게 나이 들었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인 것이다. 저자는 이를 '슬로 에이징'이라 정의한다.


#책추천 #자기관리처세 #자기관리처세추천 #피부자산 #김한국 #o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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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
김동인 원작, 이정서 편저 / 새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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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쓰인 역사 소설의 측면에서 <대수양><단종애사>의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다. (중략) 한마디로 김동인은 이광수와 달리,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거쳐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단종의 비극만 보지 않고 수양의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쪽에서도 바라보았던 것이다. - '편저자의 말'중에서



소설의 원저자인 김동인(1900~1951년)은 한국 근대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일본 유학 후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나섰다.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등의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 단편소설의 미학적 가능성을 확장했으며 <운현궁의 봄>, <대수양> 등의 역사와 인물을 다룬 장편 소설에서도 독자층을 넓혔다. 한편, 편저자인 이정서는 원저의 한문 표현이나 그 시절 표현법을 현대적으로 풀이해 다시 썼다.   


천만 관객 신화를 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최근 불황 조짐을 보이던 한국 영화 산업에 한줄기 빛으로 등장했다. 여기서의 '왕'은 비운의 주인공 단종을 말하고, '남자'는 조선 숙종 때 충신으로 추인된 인물인 촌장 엄흥도와 단종 복위 운동을 도모한 사람으로 이해된다.(사진, 영화 '왕사남'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일제 치하의 문인 이광수가 쓴 소설 <단종애사> 중 '혈루血淚'편을 영화로 각색한 것이다. 1928년 말부터 1년 여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인데, 정통성을 갖고 왕위에 오른 단종이 삼촌 수양대군과 한명회 등 측근 세력에 의해 왕위에서 축출당한 후 죽음에 이른다는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명顧命, 실국失國, 충의忠義, 혈루血淚 등 네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어 실패로 끝나면서 관련 인물인 사육신들은 참형에 처해지고 상왕이던 단종은 노산군 이홍휘로 신분이 강등되어 강원도 오지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어 작은 촌락 백성들과 어울리며 살다가 결국 억울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우리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서사이다.


반면, 이와 대치되는 스토리를 보여주던 연재소설이 있었다. 1941년 소설가 김동인은 조선일보사의 월간지 <조광朝光>에 '대수양'이란 소설을 연재했다. 앞서 이광수의 소설이 감상적인 면이 강했다면 이 소설은 수양대군의 영웅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아버지 세종도 그의 출중한 능력을 인정하며 맏이로 태어나지 않음을 안타까워 했을 정도라고 그를 평하며 상대적으로 단종의 아버지 문종은 나약한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또 계유정난은 어린 단종의 왕위를 노리는 안평대군 일파의 쿠데타 음모를 사전에 간파, 이를 진압한 사건으로 묘사한다. 이에 왕위에 염증을 느낀 단종은 능력이 출중한 삼촌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내용으로 소설이 끝난다.


동일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소설가 이광수는 왕위를 빼앗긴 단종과 나라를 잃은 조선 백성들을 동일시하며 단종 복위 운동과 사육신의 절개를 통해 일제 당시 핍박받던 백성들의 혼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담긴 듯하고, 소설가 김동인은 나약하고 무능한 리더(왕) 때문에 나라를 찬탈당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 수양대군이란 인물의 영웅적 모습을 통해 능력있는 위인의 등장을 고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사진, 관상)



소설 속 인상적인 대목들을 소개해 본다. 왕 세종과 맏형 양녕대군과의 대화인데, 이를 통해 왕 세종이 자신의 아들 중 장자(후일의 문종)는 왕의 자질로는 영 성에 차지 않음을 내보이고 있다. '사자 노릇을 감당하지 못할 새끼'란 표현까지 하고 있을 정도이다.        


(세종)“사자는 제 새끼가 사자 노릇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죽여버린다지만, 사람은 그러지도 못하니 참으로 딱하오이다.”


(양녕)“전하, 어쩔 수 없는 일이옵니다. 기린은 잠자고 스라소니(문종)가 춤추는 시대가 올 모양이니…….”


(세종)“그 스라소니를 형님께서 돌보셔서, 너무 지나치게 숭한 춤이나 추지 않도록 이끌어주셔야 할까 봅니다.”


(양녕)“신의 힘 닿는 데까지 해보기는 하겠습니다만, 한 가지 근심은… 스라소니도 호랑이 새끼라, 과연 이 늙은 말의 지휘에 복종할지가 의문이옵니다.” 


이 대화에서 왕 세종은 장자인 문종이 사자 노릇을 못할 것 같다며(즉, 제왕감으로 부족하다는 말) 자신의 형 양녕대군에게 잘 보살펴 달라는 당부를 한다. 이에 양녕은 '기린은 잠자고 스라소니가 춤추는 시대'를 거론하는데, 여기서의 '기린'은 바로 수양대군으로 수양이 제왕 재목임을 은근히 비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형 왕(문종)은 늘 수양을 의심의 눈으로 보고 경계심을 품어 마음을 터놓지 않았다. 이것이 수양에게는 몹시 민망하고 답답한 일이었다.(90쪽)


이 대목에서도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의 형 문종 또한 자신보다 능력이 출중한 아우 수양을 항상 경계하고 있음을 나타난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당당함보다 잘난 동생을 곁에 두는 걸 시기하고 있음이다. 무릇 왕이라면 자신보다 잘난 것조차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하는 법인데, 이런 태도는 아우인 수양의 마음 한켠에 시퍼런 멍어리로 쌓이도록 한 것이 아니겠는가.


승하하신 아버지 세종과 비교해볼 때 형인 왕은 정사 돌보기보다 복상服喪 예절 지키기에 급급하고, 대신들은 마치 태평세월인 듯 음주나 바둑 두기로 시간만 보내고 있으니 동생 수양의 눈엔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또한 젊은 인재들도 경서經書 토론만 중시하는 작태를 보이므로 선왕 세종의 국정 운영 때완 너무나도 달랐기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더구나 병환 중 임종을 앞둔 문종은 고명 대신을 호출할 때, '수양은 들이지 말라'는 명이 있었기에 대신들은 이를 방패 삼아 수양대군과 간간이 다툼을 벌이고 있음을 내관들이 수근대는 걸 들은 어린 신왕(단종)은 부왕(문종)의 승하 후 석달 가까이 경험했던 수양 삼촌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던 거다. 빈전에서 재궁을 모시는 동안 수양 삼촌은 바로 곁에 앉아 잠시도 떠나지 않을 정도로 헌신적인 보호가 눈에 띄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신왕(단종)의 왕위 추인을 위한 명나라로 가는 사절단의 정사엔 순식간에 자원을 한 수양대군이 임명되었다. 안평대군, 김종서 등이 입도 뻥긋해보기 전에 처리될 수 있었던 것은 사전에 어린 왕과 삼촌 수양 간의 충분한 토의가 진행된 바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한명회가 안평대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면서 수양의 명나라 사행使行을 그만두자는 건의를 한다. 이에 수양은 사람은 신용이 있어야 한다면서 동생 안평이 옥새를 탐내며 이를 황보정승(황보인)과 김종서가 떠받드는 형세를 막을 묘수를 꺼낸다. 황보정승과 김종서의 아들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아무튼 명나라를 다녀오는 길은 멀기도 하거니와 시일이 많이 걸리는 일이기에 사전에 동생 안평대군에게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음을 수양은 알기에 종친들을 위한 곡연曲宴, 즉 내전에서의 잔치를 기획했다. 과거 선왕 세종시절엔 양녕, 효령, 성녕 등은 물론이고 적서嫡庶를 합하여 20인의 형제들과 오촌들까지 대궐에 들어와 세종을 알현하며 종친들이 서로 교분을 나누기도 했지만, 문종 등극 후엔 건강 문제로 종친들의 알현도 반가워하지 않았기에 날로 소원해졌었다. 수양이 기획한 자리에 안평이 참석토록 한 이유어린 왕의 보호 책임 일부를 안평에게 맡기면 엉뚱한 생각을 멈출 거란 판단에서였다.


명나라 연경을 다녀온 뒤부터 수양에겐 저절로 섭정의 지위에 서게 되었다. 이는 세상이 그렇게 만든 일이다. 그럼에도 수양이 마음 쓰이는 일이 있었다. 하나는 수양 본인은 임금의 삼촌이라는 것 외엔 아무런 실질적 권한이 없었고, 다른 하나는 왕과 수양의 신뢰 관계에 이간질을 획책하는 손길, 즉 김종서와 황보인이 중심이 된 세력이었다.


사실 안평은 스스로 앞장 서 뭔가 주동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은 되지 못했지만, 세간에 들리는 소문 중엔 '안평대군이 왕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귀가 얇은 안평이 걱정되었다. 이에 수양은 구월 어느 날 안평을 만나러 북문(창의문) 밖 무이정사武夷精舍로 향했다. 이날은 마침 안평이 활쏘기 대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양의 마음에 걸리는 점은 안평의 옷과 차일이었다. 한마디로 불쾌했다. 감히 용龍을 수놓은 차일을 치고, 안평의 옷은 용포를 본뜬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차일을 대궐에 바치고 다른 것을 지금 즉시 치라고 말했다. 안평은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용은 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문양이었기에 말이다. 앞서 걸어가던 수양은 걸음 멈추고 홱 돌아서서 팔을 뻗어 안평의 관복 흉배(용을 수놓은)를 뜯었다. 안평은 몸을 떨었다.


마침내 안평을 뒤에서 조종하려는 김종서 일파들을 모두 제거하기로 결심, 모사꾼 한명회의 거사 계획이 합류하면서 생살부가 만들어지고 김종서 일파들이 대대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계유정난 사건이 터진다. 수양의 아우 안평도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이후 어린 왕 단종은 상왕을 꿈꾸며 삼촌 수양대군에게 선위한다. 



찬탈인가, 통치인가?


나는 수양대군 이야기와 관련된 한국 영화 두 편을 관람했었다. 하나는 '내가 왕이 될 상相인가?'란 포스터로 많은 관람객을 모았던 영화 <관상>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천만 관객 기록을 세운 <왕이 사는 남자>였다. 평소 역사책을 증겨 읽는 역사 매니아인지라 단종의 폐위와 세조(수양대군)의 등극에 관한 사실史實은 익히 알고 있다.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다룬 영화는 제작자의 의도가 담기므로 때론 과장된 픽션이 가미되기도 한다. 역사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어린 단종의 폐위는 찬탈이란 감성적인 면이, 또 한편으론 구국의 결단이라는 통치라는 영웅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듯하다. 일제강점기에 쓰인 김동인의 이 소설(원제, 대수양)을 역사매니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역사소설 #조선시대 #단종 #수양대군 #대수양 #김동인원저 #이정서편저 #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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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조직 - AI First가 되려면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성준 지음 / 포르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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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치열한 생존 게임에 몰아넣는 기술입니다. 글로벌 선도 기업은 AI를 단순히 제품 일부에 반영하는 수준을 넘어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AI 중심으로 재구축하고 있습니다. 고객 집단을 분석하고 제품을 개발하며 공급망을 운영하고 그에 맞게 인력을 관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치 사슬을 AI로 재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발 빠르게 움직이는 글로벌 기업들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김성준은 조직에서 일어나는 다채롭고 흥미로운 현상에 호기심이 많은 조직 연구자이자 현장 전문가이다. 조직 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왔고, 새로운 기술이 조직과 리더십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관심을 가져왔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책엔 수많은 기업의 경영자들과 AI 전환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해 온 결과를 담았다.


AI가 바꾸는 조직 환경


시대가 변하고 상황과 맥락이 바뀌면, 리더십 행동도 달라져야 한다. AI 시대에 리더들에게 필요한 행동을 살펴보려면 먼저 AI는 업무 환경을 어떻게 바꿔 놓을 것인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즉 AI는 기존에 갖고 있던 기본 가정을 전면 재검토하도록 강제할 것이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아는 것이 힘이다"란 말을 남겼다. 산업 시대부터 정보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남들이 모르는 자료나 자식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은 핵심 경쟁력이자 권력의 원천이었다. 고급 정보를 다루는 컨설턴트, 독점적인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이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보 비대칭성' 덕분이었다.


AI는 이 근간을 허물고 있다. 방대한 지식과 정보가 AI를 통해 누구에게나 거의 무료로, 동시에 제공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지식 민주화라 할 수 있다. 숙련된 전문가 수십 명이 몇 주 동안 밤샘 작업으로 만드는 분석 보고서를 이젠 AI가 몇 분 만에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처럼 AI는 '지식과 정보가 곧 권력이다'란 가정을 허물고 있다.


조직의 AI 도입


‘우리는 어떤 회사가 되고 싶은가, AI는 그에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보다 ‘AI를 어떻게 빨리 적용할 수 있는가’에 몰두한다면 결국 대치동 학원가를 찾는 학부모들의 불안이 구체화되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움직인다. 

즉, 불안 → 도입 → 일시적 안도감 → 더 큰 불안이 순환하는 구조이다. 물론 사업과 교육, 두 영역이 다르긴 하지만, 그 안에서 작동하는 인간 심리는 상당히 닮아 있다. 사려 깊은 리더들은 이 고리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 본질을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다.

“AI는 그 목적을 더 잘 실현하게 도와줄 수 있는가?”, “AI를 통해 우리가 만드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런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 도입은 단순히 새로운 도구를 추가하는 일이 아니라, 조직의 존재 이유와 그 달성 수단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검토하는 행위이다.

AI 시대에는 파고들며 질문하는 습관이 더욱 중요해진다. AI가 많은 효율적 작업을 대체할수록, 인간 리더가 해야 할 역할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는 기계가 할 수 없는 일, 즉 일의 의미를 묻고, 방향을 설정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일이다.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인간 리더의 몫이다.

모두가 AI 도입을 선호할 리 없으며, AI는 단순한 기술 도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서 효율성을 높이는 게임에 그치지 않는다. 일을 하는 주체, 일이 갖는 의미, 나와 일 간의 관계, 내 존재감과 정체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기술 변곡점에서 변화하지 못해 망한 기업들의 사례는 많다. 코닥은 사람들이 여전히 인화한 사진을 원할 것이란 가정하에 필름을 버리지 못하고 그들이 세계 최초로 만든 디지털 카메라를 포기함으로써 망했고, 세계 1위 점유율을 자랑하던 노키아는 '휴대폰은 통화 품질과 내구성이 전부'라는 가정을 고려해 스마트폰 본질이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를 외면해서 망하고 말았다. 

AI로 조직이 실험하도록 독려하려면, 우리가 굳건히 가졌던 가정과 신념을 점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회의 자리에서 ‘AI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왜 그렇게 가정하고 있는가? 왜 그렇게 믿고 있는가?’를 먼저 따져 물어야 한다. 이런 질문은 구성원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이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면, 조직은 영원히 과거 성공 방정식에 갇히게 된다.

AI와 인간 사이

AI는 인간 협업자에게서 기대하기 어려운 몇 가지 특성을 더 갖고 있다. 언제든지 반응하고, 지치지 않으며, 거절하지 않는다. 사용자가 쏟아 낸 모호한 생각을 인내심 있게 받아들인다. 내가 말한 아이디어를 놓고 무작정 비판하지도 않고, 자기 성과로 가로채려 하는 일도 없다. 그래서 인간 협업자들보다 AI와 대화를 나눌 때 더욱 심리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AI를 ‘이상적인 동료’라 여길 수 있다. 지금보다 조직 내 AI 전환이 본격적이고 인류가 일터에서 AI를 인격체로 여기면서 협업한다면, 리더십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있다. 오랫동안 당연시했던 관리자의 정의, 역할, 책임을 처음부터 제정의하는 작업이다. AI와 협업에서 리더가 해야 할 역할은 구성원 스스로 AI를 맹신하지도, 배척하지 않도록 신뢰 조절을 연습하게 만드는 일이다.

AI 에이전트의 자동화

신입 직원에게 일을 맡길 때도 ‘이 사람에게 어디까지 맡길 수 있는가?’, ‘언제 보고하게 할 것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를 고민하듯, 에이전트 역시 동일한 설계가 필요하다. 자율적으로 일을 수행하게 하되, 어디까지는 스스로 판단하도록 두고 어디서부터는 반드시 사람에게 확인을 받도록 할지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예컨대 금액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거나, 거래 유형이 평소와 다를 때는 자동으로 알림을 보내 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할 수 있다. 또 어떤 자료를 읽고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로그를 남기게 한다면, 결과를 검토하고 오류를 수정하기에 훨씬 쉽다. 자동화의 목표는 사람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개입해야 할 지점을 더 전략적으로 재배치하는 데 있다.

조직의 장기적 경쟁력이 결국 인간의 고유한 역량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우선 당장 단기적으로는 AI 에이전트가 현재 짜인 업무 구조와 기능을 이어 받아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 그런데 사업과 조직은 스냅샷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과 환경 변화를 기민하게 감지하면서 유기적으로 변화해 가야 한다.

인간의 고유 역량이 먼저다

AI는 패턴을 학습하고 예측하는 데 탁월해도 전례 없는 상황, 모호한 맥락,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을 때 한계를 드러낸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데이터와 더 빠른 계산이 아니라 지혜와 통찰, 그리고 상황을 이해하고 책임 있게 결정하는 인간 고유의 감각인 것이다. 따라서 조직이 AI 시대에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인간이 가진 고유한 역량을 어떻게 보존하고 확장할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경제경영 #인공지능 #트렌드 #AI조직 #김성준 #포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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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배신 - 노력하면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착각
베른트 크라머 지음, 이은미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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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여부나 그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는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성과주의를 고집한다. 도대체 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째서인지 우리는 여기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중략) 어쨌건 야심은 조그마한 동물 새끼처럼 우리에게 달려들어 어디를 가든 주야장천 바짓단을 물고 늘어진다. - '머리말' 중에서


책의 저자 베른트 크라머는 독일의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현재 <쥐드도이체 차이퉁>의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성공이란 용어 속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경쟁이 얽혀 있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수상쩍은 인물들, 인정욕구 등 성공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은 책들을 썼으며,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국내에 소개되는 그의 첫 번째 책이다.


창피한 야심,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성공 문화는 우리가 평상시 은밀하게 갈망하던 것을 밖으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보통은 그렇게 자유분망하게 표출하지 못한다. 동기 부여 전문가들은 노출증 환자처럼 무대로 뛰어올라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되레 숨기고 싶어 했던 욕구를 수많은 대중 앞에 드러낸다. 우리가 비밀리에 추진했던 것들. 출세, 관심, 인정을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꺼내 보인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야심이 많다기보다는 의욕이 충만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야 인사부 담당자 마음에 더 잘 들 수 있다. 의욕은 야심보다 사회적으로 적합해 보여서다. 인사 책임자들은 자기 신분 상승에 굶주린 출세주의자가 아닌, 대의를 위해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팀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평등은 무엇보다 서로를 동등한 신분으로 간주하며 그들과 겨룰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게 노르만 귀족 가문 출신의 젊은 법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이 짚은 핵심이다. 평등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지위 쟁취를 위해 작은 싸움을 계속 벌이도록 자극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이 일어나고, 인간이 인간의 경쟁자가 된다.

능력주의의 함정

최근 굉장히 주목받는 연구, ‘트리거포인트’에서 “불균등에 대한 비판과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은 특히 하위 계층에서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라고 확신했다. 소상인, 공장 노동자, 판매업자, 청소부 들이 빈부격차를 크게 느끼고 있었는데 아이로니하게도 자기 행복은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었다. 각기 다른 두 영혼이 하나의 가슴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은 천인공노할 정도로 부당하지만 능력주의를 너무도 믿고 싶다. 그렇기에 현실에 관해 두리뭉실하게 분개할 뿐이다.

성과의 가치

요즘엔 거의 잊혀진 사회학자 구스타브 이크하이저는 "성공에 대한 비판"(1930년)이란 짧고도 냉철한 글을 썼다. 여기서 그는 한 분야에서 공식적으로 전제되는 능력과 성공에 한발 더 다가서게 만드는 비공식적 수단을 구분했다. 다시 말해, 정직한 수작업과 수작업에 포함해야 할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잡음들을 구분지었다. 그가 예시한 구두장이는 솜씨가 좋으면 더 큰 성공을 거둔다. 이는 공식적인 능력주의인 셈이다.   

그런데 이때 경쟁자가 나타난다. 그는 구두 만드는 기술 말고도 다양한 지원 체계를 동원한다. 광고에 투자했고, 지지해줄 사람들과 접촉했으며, 괜찮은 추천을 받아 전략적으로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신발만 만들지 않았다. 그만큼 브랜드에도 신경 썼다. 결국 그는 구두 제작 기술에만 충실했던 경쟁자를 밀어냈다. 자, 이는 정당한가?

안타깝지만 더 노력했어야

멜빈 러너는 젊은 의대생을 가르치던 시절 이들에게 사회 다른 편에서 부당하게 일어나는 고난과 위기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통계를 인용해 생활비다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은 돈이 충분한 사람들보다 좀 더 자주 아팠고, 좀더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을 가졌고, 필요한 의료적 처치도 덜 받았으며, 더 일찍 사망했음을 보여주었다. 또 광부로 일하다가 광산의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보면 이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러너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학생들은 러너가 내린 결론에 동의하지 못하고 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심하게 말이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봐와서 잘 안다며 그런 사람들과 같이 자랐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알기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이의를 제기했던 거다.

이에 러너는 학생들에게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석탄수요가 감소했고 노동조합은 회사와의 협상력을 상실했으며 기계들이 좀 더 쉽고 값싸게 인력들을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그 지역 산악지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당시 식솔까지 거느린 광부들이 어떻게 맞설 수 있었겠는가? 광부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에서 벗어나려 했다. 다수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동했지만 쉽사리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어렵게 구한 일자리도 금세 잃었다. 광부들은 다른 일자리에 필요한 기술이 없었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의를 제기했다. 

광부들의 빈곤이 구조 조정 때문이란 걸 명백하게 입증하는 증거까지 있는데도 학생들은 어째서 이를 광부들의 책임이라 여기는 걸까? 학생들은 깨어진 시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열정적인 젊은이였다. 그런 그들조차 극복하기 힘들었던 근본적인 착각은 무엇이었을까? 몇 가지 실험 끝에 러너는 '세상은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 내면에 박혀 있다'고 보았다.

사회적 회로들은 끊겨 있다. 다른 삶의 이야기가 다른 회로 너머에서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엄청난 부와 성공을 거머쥔 사람들은 저 멀리 있다. 괴로워하는 실패자들도 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능력주의에 대한 개념은 이러한 반증들로 방해받지 않을수록 일상적인 생활 영역에서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 사회가 더 불공정하고 더 경직되어 있을수록 우리에게는 이 사회가 좀 더 평등하고 좀 더 공정하게 비칠 수 있다.

실패 방지

실패는 성공과 다름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경험의 무게도 비슷하나 부호만 다를 뿐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심리학에선 상실을 통해 받는 상처가 승리로 얻는 기쁨보다 훨씬 더 강함을 오래전부터 증명해왔다. 성공은 멋지지만 실패는 훨씬 더 끔찍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애쓰는가? 사회적 지위를 왜 그토록 획득하려 드는가? 어쩌면 추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의 야심을 자극하는 건 눈앞에 놓인 목표가 아니라 이면에 숨겨진 몰락이다. 성공을 추구할 가치가 충분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성공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성공을 통해 우리가 막고 싶어 하는 것 때문이다. 아주 단순하게, 그저 이것 때문일 때도 많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실패 방지.

능력주의 복권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거대한 제도의 시작은 늘 감춰져 있다. 선사시대에 사람들은 심심풀이로 게임을 시작했다는 전설이 있다. 몇몇 상인이 복권을 만들어 제비뽑기 통에 행운의 번호와 불운의 번호를 몇 개 넣었다. 참여자는 행운을 바랄 수도, 잘 안되면 약간의 벌금을 내면 되었다. 복권은 잘 팔렸다.

그러나 승자는 승리에 취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패자는 자신에게 주어질 체벌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같은 사실이 곧 밝혀졌고, 그러면서 신중하게 평형을 맞추어 놓았던 이 복권 체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패자들에게 벌금을 치르게 할 조치가 필요했다. 효과를 높이고자 벌금 대신 즉시 감옥행을 추첨하도록 만들었다. 승자에 주어지는 배당금이 적지 않냐는 윤리적 논쟁도 생겼다. 빈자는 돈이 없어서 이런 제비뽑기에 소외감을 느꼈기에 당연히 반대했다.

복권 판매에서 엄청난 규모의 구가 독점 도박판, 바빌론의 복권이 생겨났다. 연고지, 지위, 가문, 성별, 피부색 등은 고려치 않는 절대적 기회 평등, 새로운 삶의 기회를 거듭 반복해서 무작위로 할당하는 배부처, 그러나 성과나 노력, 능력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 물론 바빌론의 복권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로 그려낸 것이다.    

인생은 복권 게임 같을 때가 많다. 잘 은폐된 복권 게임. 그리고 온갖 바빌론식 혼란에서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 여기에서도 우리는 제비뽑기 참가자에 불과하다. 완벽에 가까운 가상 속 능력주의 사회일지라도 우연성에 조금만 틈을 내줘도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불완전한 현실 사회는 얼마나 능력주의적이지? 

근본적으로 능력주의는 완전하게 정립되지 않은 개념이다. 끝까지 깊이 생각한 것은 아니나, 그렇기에 굉장히 실용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과 우리에게 그저 주어진 것이 뒤섞여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무관심하게 못본 척한다. 왜냐하면, 다소 다의적인 측면이 정당화를 시도해야 할 수많은 상황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241쪽)

보르헤스의 <바빌론의 복권>을 보면, 점점 더 강력해지는 복권 때문에 미개한 억측까지 금세 만들어진다. 어떤 때는 결탁 이야기도 들린다. 제비뽑기에 그 어떤 당파도 개입되지 않았다는 걸 미심쩍어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토록 중대한 사안들을 추첨으로 결정하는데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결과에 승복한다고? 이건 너무 미친 짓이다.

노력하세요. 단 성공은 보장 못함

이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유효하지 않은 듯하다. 불평등은 더 심해졌고, 기회는 소위 '수저론'으로 불리는 배경에 따라 결정되며, 우연이 승패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능성이 희박한 성공에 매달리고, 끝없이 집착한다. 과연 '우리의 노력은 성공을 보장할까?' 란 화두를 우리 모두에게 던진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착각에 빠진 모든 사람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인문 #인문교양 #사회학 #성공의배신 #능력주의 #베른트크라머 #추수밭 #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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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지지 않는 돈의 구조
박태준 지음 / 좋은땅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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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돈을 많이 버는 기술을 먼저 알려드리지 않습니다. 그보다 먼저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돈에 대한 바른 생각. 구조에 대한 이해.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기준. 기준이 생기면 선택이 달라집니다. 선택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집니다. 돈에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돈을 도구로 쓰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 그것이 이 책이 바라는 전부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박태준은 경영학을 공부했고 MBA도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주변을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 공부를 할 시간이 없어 보였다. 아침에 출근, 저녁에 퇴근, 주말엔 쉬어야 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좋다'는 게 있으면 이를 따라가고, 뉴스에서 '위기'라고 하면 불안해진다. 기준 없이 남의 정보에만 매달린다. 이렇게 해선 성공하기 어렵다. 이에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최대한 쉽게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총 6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돈의 주인이 될 것인가, 노예가 될 것인가(파트1), 주식이 도박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반만 맞다(파트2), 구조 없이 투자하면 아무리 벌어도 사라진다(파트3), 뉴스 볼수록 손해 보는 이유가 있다(파트4),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 이것만 보면 구분된다(파트5),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10년 후가 달라진다(파트6) 등을 통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가난해지지 않는 법을 이야기한다.


등장인물(꿀떡빵 가족)


꿀아빠~ 기준을 말하는 아빠

꿀엄마~ 삶으로 연결하는 엄마

떡이~ "왜요?"를 묻는 아이

빵이~ 실수하며 배우는 아이


돈의 주인 vs 돈의 노예(철학)


"돈은 좋은 하인이지만 나쁜 주인이다"

- 프랜시스 베이컨


떡이는 아빠에게 질문했다. "돈이 많으면 다 행복한 거 아닌가요?" 이에 대해 꿀아빠는 "부는 돈이 아니다. 부는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다"란 나폴레온 힐의 발언을 소개한다. 사실 돈은 교환을 쉽게 하기 위해 만든 도구였다. 돈은 삶의 목적이 아니었다.


이를 듣던 빵이는 "도구는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빠는 탈무드에 나오는 말 "돈은 소금과 같다. 없으면 음식이 맛없고, 너무 많으면 먹을 수 없다"를 인용하면서 맛있다고 소금만 퍼먹으면 몸이 망가진다면서 돈도 마찬가지로 돈 자체가 삶이 되면 오히려 삶이 망가짐을 거론한다. 또 요리 재료가 냉장고에 가득해도 이를 요리하지 못하면 다 망가지는 것처럼 돈도 많은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꿀엄마도 한 마디를 거든다. 돈이 생겼을 때 달라진 게 뭔지를 알려준다. 아이가 아플 때 일을 멈출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내일로 미루지 않아도 되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돈 때문에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므로 결국 돈은 물건을 준 게 아니라 시간을 제공했던 것이라고 말한다.(사진, 핵심 메시지)



한때 "10억 모으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꿀아빠도 마찬가지였다. 10억 이란 목표액에 집착하다 보니 그는 일만 하게 되었던 거다. 써야 할 때 쓰지도 못했다. 쉬어야 할 때 쉬지도 못했다. 결국 번아웃이 찾아왔다. 정말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 삶이 기쁘지 않았다. 그러다 독서를 시작하면서 깨달음이 찾아왔다. 10억이란 숫자 대신에 내가 원하는 삶을 먼저 정했다. 기준이 생긴 후 즐기면서 경제적 자유를 향할 수 있었다. 이렇게 돈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주식은 도박이다?


"주식 시장은 조급한 사람의 돈을 

인내심 있는 사람에게 옮겨주는 장치다"

- 워런 버핏


주식이 도박이라고 생각한다면 반은 맞는 말이다. 주식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주식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실제 사업체의 소유권이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동네에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고 배달도 늘 밀릴 정도의 삼겹살집이 있어서 친구와 함께 돈을 모아 이 가게의 일부를 샀다면 이젠 이 가게의 작은 주인이 되는 셈이다.


가게가 잘되서 계속 번창하면 이익을 함께 나누고, 잘 안되면 그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 주식의 본질이 바로 이런 것이다. 워런 버핏도 "주식을 살 때는 그 회사의 일부를 사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말했다. 단지 오르락내리락하는 숫자가 아니라, 함께 성장할 기업을 고르는 일인 것이다.


떡이가 "아빠, 유명한 회사도 망해요?"라고 질문하자 꿀아빠의 설명이 이어진다. <종의 기원>이란 불후의 저서를 남긴 찰스 다윈의 말 "살아남는 것이 강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다"를 인용하면서 투자 행위 또한 적응의 영역임을 강조한다. 이에 세 기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코닥은 한때 세계 최고의 카메라 회사였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음에도 회사 경영진은 사진 필름을 파는 것에만 주력하다가 세상이 디지털로 바뀌자 코닥은 결국 2012년에 파산하고 말았다. 변화를 알면서도 이를 외면한 결과가 파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노키아는 14년 동안 세계 1위 휴대폰 회사였다. 핀란드 수출의 20%를 책임지는 회사였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자, 회사 경영진은 스마트폰을 장난감 정도로 취급했다. 2013년, 노키아는 휴대폰 사업을 통째로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했다. 6년만에 세계 1위 회사가 사라진 것이다.


블록버스터는 전 세계 9천 개 매장을 가진 비디오 대여 회사였다. 업계의 공룡이었기에 넷플릭스라는 작은 회사가 블록버스터에 500만 달러에 자기 회사를 사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 CEO는 이를 무시했다. 10년 후, 블록버스트는 파산했다. 반면 스트리밍으로 사업 방향을 바꾼 넷플릭스는 현재 호황을 누리고 있다.(사진)



주식 투자에 입문하다 보면 '초심자의 행운'이 따라온다. 이로 인해 마치 자신이 투자의 실력자라서 투자 수익이 생겼다고 자만에 빠질 수 있다. 물론 주식투자 책을 섭렵한 후 나선 첫 투자에서 수익을 거둔 분들은 예외일 수도 있다. 아무튼 공부를 해서 배운 지식으로 주식 투자에 나선다면 도박이 아니다. 물론 투자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끝이 아니다. 계속 배워서 그 실패를 뛰어넘을 수 있다.


이밖에도 책은 재테크와 관련하여 전략, 심리, 판단, 실천 등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분산투자, 금리와 주식의 관계,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 고르기,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실행하지 못하면 10년 후가 달라진다는 꿀아빠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경제적 자유로 향하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질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주식 초보자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재테크 #가난해지지않는돈의구조 #박태준 #좋은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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