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회복 - 삶의 균열 앞에서 나를 돌보는 연습
박재연 지음 / 한빛라이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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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이라 하면 대개 죽음이나 이별을 떠올리지만, 우리가 살면서 겪는 상실은 그보다 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이별, 죽음처럼 명료한 상실이 있는가 하면, 학창 시절에 겪은 지독한 소외감과 폭력의 두려움 같은 상징적 상실도 있다. 또한 갑작스레 찾아온 사고나 질병과 같은 외상적 상실, 부모의 이혼이나 실종 같은 정의 내리기 어려운 모호한 상실이 있다. 우리는 어떤 결과를 통해 상실을 하나의 '사건'으로 정의하고 결혼 지으려 하지만, 상실이라는 것은 아주 복잡하고 모호하게 사람의 마음에 파고든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박재연은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소장이자 한국신학대학교 대학원 죽음교육상담전공 교수이고 국제공안 죽음교육상담전문가이면서 수련감독이다. 8~15주의 <연결의 대화> 워크숍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갈등 중재와 집단 대화 훈련 및 개인 대화 상담을 진행하고 잇으며 한계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세계와 상호관계의 대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된 책은 '가족이 그리울 때, 가족이 힘들 때', '주기만 해도 행복하다 생각했는데, 사랑이 고플 때', '일도 삶도 어긋났다 느낄 때', '삶의 유한함을 깨닫게 될 때' 순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상실의 사건 앞에서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는 것을 넘어 관계와 맥락 속에서의 진짜 상실을 다루고 있다.


감추어두었던 눈물이 흐르는 날 


인생의 여정에서 경험하는 상실은 우리들에게 비탄이라는 깊은 슬픔의 감정을 느끼게 하고, 그 비탄은 애도의 과정을 거치게 한다. 그러니 이 과정에서 일부러 울음을 참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상실 수업>에서 "30분 울어야 할 시간을 20분으로 줄여서 울지 말라"고 권고헸다.


"울어요?"

"아줌마가 네 나이 때는 친구가 별로 없었어. 잘 못 놀았거든"

"아, 슬펐겠다"

"그래서 너랑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보니까 아줌마가 눈물이 나네"


이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이루어진 대화이다. 어떻게 그 아이는 그토록 해맑은 얼굴로 다가와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었을까? 문득 아이의 부모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아이를 키웠길래 이토록 다정하게 아이는 말할 수 있었을까?


발달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들과 보호자 간에 애착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안정적인 애착을 지닌 아이들의 특징은 심리적 안정감, 자율성, 사회적 유능성 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주된 양육자와의 관계에 큰 영향을 받는다. 


사랑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불안은 적다. 또한 자신의 욕구에 귀 기울이는 능력이 있고 자율적이다. 앞서 예시한 아이와의 대화가 비록 잠시였지만 다정한 말씨와 함께 상대의 눈물에 대해 진실한 호기심을 가졌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사진, 생각나누기- 어린 시절의 상처)     


깊이 사랑해본 사람은 다르다 


유명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긍정심리학의 핵심 모델인 PERMA 이론에서 인간의 행복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중 하나로 관계를 꼽았다. 다른 요소인 긍정 감정, 몰입, 의미,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버티게 해주는 힘은 '깊이 연결된 사람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바쁘다", "죽겠다". "하루가 너무 짧다" 등과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며 하루를 보낸다. 속도에 쫓기고, 해야 할 일에 떠밀리며, 관계는 자꾸만 뒤로 미뤄진다. 나 또한 80년대 초중반의 직장인으로 꼭 이런 모습이었다. 회사일 때문에 갈수록 이성과의 교제는 당연히 후순위가 되는 추세였다. 결국 그 여성은 나에게 절교를 통보해왔던 것이다. 그 당시엔 이런 통보가 무덤덤했지만 한해두해 솔로 생활이 길어지면서 퇴근 후 가장 친한 친구는 사람이 아닌 술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 걸까?'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한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녀를 두고 떠났고, 남겨진 그녀는 기꺼이 사랑했던 그 모든 시간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다시는 누군가를 이토록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 결심이 너무나도 확고해서 지인들 아무도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이후 그녀는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올인했다. 결과는 정직했다. 성취는 그녀의 몫이었고, 노력한 만큼의 보상은 자존심을 다시 세워주었다. 주위 사람들은 '멋지게 혼자 잘 살아간다'라고 감탄했다.


그러나 일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을까? 마음 깊은 곳에 온기를 데워주는 존재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린 모두 잘 알고 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갚은 숨을 내쉴 때, "노 괜찮아?"라고 물어주는 단 한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 고용함 속의 공허함은 결국 일이 채울 수 없는 감정의 틈으로 남는다.


우리는 모두 혼자 살아간다고 믿기 쉬운 세상에 산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한 착가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쓰러지지 않고,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선다.

사랑은 늦게 오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그때, 당신이 마음을 열어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생각나누기 - 사랑이 떠난 상실)


베푸는 것도 선택이고 기쁨이어야 한다


남에게 베풀고 선한 행동을 많이 행하면서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에게는 '강박적인 인정 욕구'로 인해 오히려 스스로의 삶을 지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선을 넘은 무례한 언행을 그저 흘려보낸 탓이다. 마음속엔 억울함과 슬픔이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고, 침묵으로 넘겼다. 이를테면 스스로를 기만한 것이다.


"기쁘지 않다면 어떤 일도 하지 말라"

- 마셜 로젠버그, <비폭력 대화> 중에서


페르소나, 이는 타인에게 보이는 '사회적 가면'이라고 칼 융이 말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위해 다양한 페르소나를 사용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페르소나가 '진짜 나'라고 동일시하며 살아가거나 '진짜 나'와 크게 괴리될 때 발생한다. 그 페르소나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적 사고 때문에 감정을 억압하고 외부 인정에 몰입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갈등을 회피하려 하고, 심지어 화를 낼 때와 참아야 할 때를 분별하는 능력이 약화되었다. 


그렇다.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시선을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타인에게 밥을 사는 대신 나를 위해 맛있는 브런치를 사 먹고,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며 에너지를 소비하는 대신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돌보며 삶의 균형을 찾는 게 나 자신에 대한 인정이자 오히려 가장 중요한 인정인 것이다.


(사진, 생각나누기 - 페르소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죽음은 가장 고통스러운 상실의 유형에 속한다. 가족의 자살은 갑작스러운 외상적 상실에 해당한다. 자살과 같은 인위적인 이별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극도의 혼란과 죄책감을 남긴다.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상상 그 이상이다.


죽음학에서는 죽음 직전의 극심한 고통을 줄여주고 저서적 안녕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요소 중 하나가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란 사실을 반복적으로 연구해왔다. <말기 환자 돌봄 연구>에서도 가족 또는 돌보는 이가 곁에 있어주었을 때, 불안이나 공포 같은 주관적 경험이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결과들이 꾸준히 보고되었다.


죽음을 목격했고, 그 현장에 있었던 남겨진 사람의 심리적 경로를 살펴보면,

첫 번째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두 번째는 재현 기억~ 죽음의 순간이 반복해서 떠오름

세 번째는 감정의 회피~ 사건 관련 대화나 기억을 언급하지 않는 시도

네 번째는 애도와 외상의 교차~ 감정의 마비 상태를 경험


애도가 단지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가는 것이다.


(사진, 생각나누기 - 죽음)


관계에서 경험하는 상처는 유의미하다


아동기에 힘든 시기를 보낸 이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눈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랑하는 조부모를 잃은 사람은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부모로부터 학대받ㅇㄴ 남성은 따뜻한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고, 취업에 많이 실패했던 청년은 진로전문가가 되어 희망을 잃은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었다. 상처는 아픔임에 분명하지만 동시에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회복 #신간 #인생 #가족 #다정함 #조용한회복 #한빛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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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부른 아이 1 : 활 마녀의 저주
가시와바 사치코 지음, 사타케 미호 그림, 고향옥 옮김 / 한빛에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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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가 사는 마을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 열 살이 된 아이 중, 동쪽 동굴에 있는 용의 부름을 받은 아이만이 마을을 나갈 수 있다. 한 명도 부름을 받지 못하는 해도 있고, 두세 명이 부름을 받는 해도 있다. 용의 부름을 받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올해 열 살이 된 미아는 자신은 용의 부름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용의 부름을 받다' 중에서 


(사진, 책표지) 


작가 가시와바 사치코는 고단샤 아동문학신인상과 일본아동문학가협회 신인상을 수상한 후 오랫동안 어린이를 위한 문학 작품을 써 왔으며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쇼가쿠칸 아동출판문화상, 노마 아동문예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2022년 미국에서 출간된 <귀명사 골목의 여름>으로 최고의 비영어권 어린이책에 주어지는 '배첼더상'을 수상, 세계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특히, 작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책 속의 삽화들은 판타지 문학과 어린이책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사타케 미호가 그린 그림이다. 


판타지 소설이자 판타지 시리즈인 <용이 부른 아이>의 1권 '활 마녀의 저주'는 여덟 개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즉 용의 부름을 받다, 왕궁으로, 우스즈님의 정체, 모험을 시작하다, 회오리 마을, 몇백 년 만의 재회, 불타는 돌, 미아와 릴리트 등의 이야기가 펼쳐 진다. 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미아가 사는 마을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하늘로 날 수 있지 않는 한, 결코 이곳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는 특별한 지형이다. 마을 주위엔 산이 있고, 강도 흐르며, 온갖 야생화들이 자태를 뽐내는 평야도 펼쳐진다. 이런 환경 속에 살았기에 미아는 한 번도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실상은 이 마을이 죄인들의 감옥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아는 결혼하지 않은 이모의 헌신적인 돌봄 밑에서 성장해 열 살에 이르렀다. 미아의 조상은 현재 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왕족의 조상과의 전쟁에서 패한 일족의 후손이다. 비록 이 골짜기 마을이 죄인들의 집합소라지만 몇백 년 전 용과 마녀까지 합세한 그 전쟁에서 미아의 선조들이 승리했다면 오히려 이 세상을 지배했을 것이란 자부심이 가득한 가문인 셈이다. 마을에는 마녀들의 배반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미아는 두 돌이 되도록 서지도 못했고 말도 트이지 않았던 발육이 더딘 아이였다. 아빠가 죽고 혼자서 미아를 양육하던 엄마는 열이 펄펄 끓는 미아를 버려두고 사라졌다. 삶을 비관하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마을을 탈출하려 절벽을 오르다가 추락해 죽었다는 등 소문이 나돌았지만 아무도 정확한 진실을 모른다. 지금까지 둘째 이모가 정성껏 돌보았던 열살 미아가 용의 부름을 받았다.



미아는 말타기에 능숙했기에 이후 용을 타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사진. 말을 타고 가는 미아, 이를 바라보는 용) 


언젠가는 용의 부름이 있을 것을 예상한 둘째 이모는 가출(?)한 엄마를 대신해 미아를 어릴 적부터 엄하게 훈육해서 청소, 요리, 바느질, 뜨개질, 읽기와 쓰기, 곱셈 계산, 지도 보는 법, 그림 그리기, 승마, 약초의 효과, 예의범절, 식사예절 등을 두루 가르쳤기에 용의 부름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미아는 할아버지가 내어 준 말을 타고 먼저 인사를 하기 위해 용이 산다는 동쪽 동굴로 나아갔다. 


주요 등장인물 소개 


미아~ 용의 부름을 받은 열살 소녀

둘째 이모~ 친부모를 대신해 미아를 키운다

우스즈~ 저주를 받아 주머니로 변한 용의 기사

릴리트~ 미아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왕궁 여인

은빛 날개 마녀~ 숨은 활 마녀를 찾아 다닌다   


이후 용을 타고 왕궁에 도착한 미아는 익숙치 않은 세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서서히 적응한다. 릴리트, 저주에 걸려 주머니로 변한 용의 기사 우스즈, 은빛 날개 마녀 등을 만난다. 미아에게 부여된 일은 사라진 우스즈의 방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사진, 우스즈의 방에 도착한 미아)


한편, 도착한 첫 날은 금방 잠에 곯아 떨어져 몰랐지만 우스즈의 방에선 이상야릇한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로 인해 무서움과 불안감을 갖던 중 당찬 미아는 서서히 이 소리에 적응하던 차에 우연히 발견한 밑이 터진 주머니에서 그 소리가 난다는 걸 알게된다. 이에 터진 곳을 꿰메고 나자 울음 소리가 뚝 그쳤다. 이후 미아는 이 주머니를 소금을 담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나중에 은빛 날개 마녀 덕분에 '용의 기사' 우스즈가 활 마녀의 저주를 받아 작은 주머니로 변한 것임을 알게 된다.


(사진, 주머니)


(사진, 회오리 마을로 향하는 미아)


이제 주머니를 허리띠에 매달아 휴대함으로써 미아는 '용의 기사' 우스즈와 함께 동행하는 셈이 된 것이다. 왕궁 밖으로 나갈 기회를 얻은 미아는 왕궁 수비대장 아마다의 배려로 약간의 금화를 챙겨 용을 타고 우스즈가 원하는 북쪽 방향에 위치한 회오리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금광이 있었는데, 현재는 미아가 살았던 골짜기 마을과 마찬가지로 죄인의 마을로 변해 있었다. 아무튼 미아는 이렇게 '용의 기사' 우스즈가 타고 다녔던 용을 찾아 모험의 길에 나서게 되었다. 과연 우스즈가 잃어버린 용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여기에 얽힌 비밀은 무엇일까?


(사진, 릴리트와 미아의 관계)


#판타지 #판타지소설 #판타지시리즈 #용이부른아이 #센과치히로의행방불명 #가시와마사치코 #대형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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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 인연 없는 사람은 없다
묘장 지음, 소리여행 그림 / 불광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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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 회기역 연화사蓮花寺 주지인 묘장 스님은 이 책에서 ‘인연’과 ‘생명’이란 주제를 통해 삶의 지혜를 우리들에게 전하려 한다.


(사진, 책표지)


책은 세 개 파트, 즉 ‘후회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고 인연에 의해 사라진다’, ‘끝없이 넓은 세계와 나와 남이 조금도 떨어져 있지 않다’라는 소제목하에 총 38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연因緣


<능엄경>은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보리심을 얻고 진정한 경지를 체득하는 걸 강조하는 경전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인 아난의 스캔들이 소개된다. 그는 부처님을 곁에서 모신 시자侍者로 용모가 출중했다고 알려진다.


하루는 홀로 탁발에 나섰던 아난이 목이 말라 강가에서 물 긷는 여인에게서 물을 얻어 마셨다. 아난의 뛰어난 외모에 홀딱 반한 여인은 귀가해서 어머니에게 생떼를 부렸다. 첫 눈에 운명의 짝임을 느꼈다며 아난과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여인의 어머니는 인도의 하층 계층인 ‘마등가摩登伽’라는 비천한 집안 출신이었는데, 딸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기에 아난을 집으로 초대해 공양을 올리고 딸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아난은 수행자이므로 결혼은 불가하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에 이 어머니는 주술을 부려 아난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부처님이 급히 문수보살을 보내 아난을 구한다. 뒤이어 아난을 찾으려고 마등가 여인은 절 안 곳곳을 뒤지다가 부처님을 마주친다.


부처님은 이 여인에게 아난처럼 삭발하고 출가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잘 생긴 아난의 부인이 될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부처님이 아난의 외모가 모두 좋아 보이겠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예쁘지도 않고 오히려 더럽다고 부정관不淨觀을 설법하자 마침내 마등가 여인은 애욕愛慾을 버리고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사진)


생명生命


불교에서 행하는 의식 중에 ‘방생放生’이 있다. 이는 죽을 위기에 처한 생명을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선한 행위이다. 한국불교에선 예전부터 물고기 방생을 많이 해왔다. 지금도 그 전통의 맥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오히려 낚시꾼의 밥이 되게 하는 살생이라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이는 그 본질을 왜곡하는 뒤집힌 생각인 셈이다. 이를테면 <반야심경>에 나오는 귀절인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을 떠올리게 한다. 잘못을 저지른 이는 따로 있는데 이를 꾸짖지 않고 엉뚱하게 피해자를 꾸짖는 셈이 된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성추행이 발생했을 때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어서, 밤늦게 다녀서 등을 거론하며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을 탓하는 경우와 같다.


물론 생태교란종으로 평가받는 물고기를 풀어 준다면 우리들이 오래토록 즐겨야 할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일로 오히려 비난받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일로 인해 방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실수는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막무가내식으로 본질을 흐리는 지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진, 불교의 방생 의식)


#불광출판사서포터즈빛무리 #인연이아닌사람은있어도인연없는사람은없다 #나는절로 #묘장스님 #불교 #인연 #사랑 #독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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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는 고기 살 돈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 초보 농사꾼의 고군분투 영농기
김영화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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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삼년상을 치르는 마음으로 시작한 농사였습니다. 이제는 여리여리한 레이스 가득한 옷보다 고무줄 바지가 더 잘 어울리고, 흙이 묻어도, 벌레가 옷깃에 붙어도 별것 아니라는 듯 툭툭 털어냅니다. 진드기마저 익숙해졌습니다. 동물들이 싸고 간 똥을 봐도 찌푸리지 않고 거름 생겼다며 좋아하는 여유를 부립니다. 호미, 괭이, 삽 등 연장 보기를 백화점 명품 보듯 합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저자 김영화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깊은 산골에 살고 있다. 감, 호두, 벼농사까지 하는 억척스런 아가씨 농사꾼인데 시골에서의 삶을 사랑하며 농사를 통해 얻게 되는 땅의 언어를 글로 옮기고 있다. <농민신문> 영농생활수기 공모에 당선된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책은 겨울, 봄, 여름, 가을이라는 농사꾼의 사계절로 구성되어 소한 추위는 꿔다가라도 한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하지를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잔다, 입추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등의 소제목으로 계절별 농사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겨울 이야기를 첫 번째로 넣은 것은 겨울은 농사를 끝내고 쉬는 농한기農閑期가 아니라 오히려 농사를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벼농사를 짓는 논은 잘린 볏짚이 흙과 잘 섞이도록 갈아엎어 놓아야 하고, 과일을 맺는 나무들은 가지치기 작업을 마쳐야 한다.

바람과 햇빛과 물 등 환경을 잘 읽어야 하고, 꾸준히 보아야 모든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아직 생계형 농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풀인지, 작물인지 조금씩 알게 되고 농사가 손에 익어 간다. 땅으로 맺은 인연으로 기쁘고 소중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가씨 농사꾼의 이야기를 들춰본다. 

겨울 

겨울은 추워야 한다. 이 표현은 내가 어린 딸자식을 훈육할 때 늘 사용하던 말이다. 물론 농사꾼과 일반인의 의미가 동일하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어린 딸 둘은 아빠를 지독한 꼰대로 보았을 것이다. 경상북도 한 시골에서 성장한 나는 추운 겨울철도 무척 좋아서 실컷 즐겼다. 농사는 머슴 형이 하는 일이라 그 시절의 난 편안한 시골생활의 연속이었다. 일보다는 노는 것에 푹 빠져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손을 호호불며 꽁꽁 얼어붙은 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이렇게 탐닉하다 결국엔 손에 동상이 걸려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튼 농사꾼의 생각은 역시 다르다. 춥지 않으면 겨우내 죽어야 할 벌레들이 이듬해에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겨울은 농사일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계절이라서 봄이 다가오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살충, 살균해야 할 일들이 산적하다. 아가씨 몸으로 이많은 일들을 하느라 땀 흘리는 모습이 눈에 선한다. 

3월이 오기 전에 감나무, 호두나무에 기계유제를 살포한다. 기계유제의 기름 성분이 해충의 숨구멍을 막아 해충을 방제하는 효과가 있다. 나무의 새순과 꽃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4월 초순경 사용하게 되면 꽃이 피지 못하거나 수정이 되지 않고 세력이 약해지는 등의 약해藥害가 발생할 수 있어 반드시 3월이 오기 전에 방제를 마쳐야 한다.

커다란 물통에 500리터 물을 받아놓고 18리터 기계유제를 혼합한다. 그러고는 전기식 분무기를 꺼내와 약을 치려는데 기계가 너무 조용하다. 분무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호스가 들어가는 곳에 균열이 가 있다. 대안으로 텃밭에서 사용하는 밀차식 엔진분무기에 휘발유를 넣고 시동을 걸어 보는데 아무리 시동줄을 잡아당겨도 이것도 시동이 안 걸린다.
 
하필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농기계 수리센터가 쉬는지라 고칠 수도 없다. 기계유제는 물과 혼합해 놓으면 빨리 사용해야 하므로 정말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할 수 없이 손잡이가 있는 플라스틱물통에 기계유제를 담아서 작은 바가지로 퍼서 나무마다 다니며 뿌렸다. 불어오는 바람에 기계유제들이 흩날리며 골고루 뿌려진다. 물론 처녀 농사꾼도 기계유제를 뒤집어쓴다.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서야 살포작업은 끝이 났다. '다음부터는 기계 점검부터 먼저 하자'고 다짐해본다. 아무튼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이처럼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여름

농사꾼 아버지는 예초기보다는 낫으로 풀을 베었지만 날카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처녀 농사꾼은 낫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초기 사용법을 배워 틈틈이 예초 작업을 하였다.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와 진동, 휘발유 타는 메케한 냄새를 벗삼아 풀을 베었다. 

사실 난 예초기 작업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다. 고등학생 때 추석을 앞두고 가족 산소에 벌초작업을 나갔다가 예초기를 돌리던 사촌 자형이 악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움켜 잡고 나뒹굴었다. 예초기에 돌이 튕겨 하필 눈을 강타했던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서 도착했지만 이미 한쪽 눈은 복구 불능상태였다. 무척 나와 가깝게 지냈던 자형은 평생 한쪽 눈을 실명한 상태로 지내다가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자고 일어나니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다. 어떤 날은 손바닥과 손가락이 연결되는 관절 부위에 통증이 오고, 손가락은 뚱뚱하게 부었다. 손가락을 펴거나 구부리려고 할 때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손가락이 튕기듯 펴지곤 했다. 며칠 고민 끝에 찾은 병원에서 방아쇠수지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생전 처음 들어본 병명이다. 예초기나 드릴처럼 반복적으로 진동하는 기계를 만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많이 발생하는 증상이란다. 이후 통증을 완화하려고 스키장갑을 끼고 작업을 했더니 손등에 땀띠가 났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철에 스키장갑이라니.

가을

소牛처럼 일을 하는데도 수익이 일정하지 않아 계획성 있게 살기가 쉽지 않은 게 농사꾼의 삶이다. 농사가 잘되어도 언제 어떻게 가격이 폭락할지 아무도 모른다. 자연재해와 기후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수요와 공급이 들쭉날쭉해서다.

이 대목에선 신혼 살림을 시작한 조카가 경남 말양에서 토마토 하우스 농장을 해보겠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호기롭게 억대 농부를 꿈꾸며 농사꾼이 되었던 일을 소개해 본다. 농촌진흥원에서 필수 교육도 이수하고 차근차근 준비했지만 그 꿈은 결과적으로 이상에 그치고 말았다. 기후 변화로 인한 생산량도 문제였고, 판로 또한 걱정거리였다. 

비닐하우스에서 생산된 토마토의 상등품만 조합에서 매수하므로 출하가 안되는 토마토의 판매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그해 여름 조카 농장에서 토마토를 구매해 입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농사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억대 농부의 노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리라.    

그럼에도 저자는 '농사가 묘한 매력이 있다'고 옹호한다. 즉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슴이 뛰고 설렌다는 것이다. 여성이라 그런지 감수성만큼은 갑이다. 제철 작물을 심고 가꾸며 수확하는 일을 이어가면 보이지 않는 많은 소비자들이 함께 동행해 주므로 비록 육체노동의 가치가 폄하되고 농민의 삶이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흘린 땀과 노력은 정직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이다. 

농사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농사란 봄에 씨앗을 뿌려 여름을 김을 매고 가을에 추수를 하는 단순한 공식이 적용되는 게 아니다. 농사꾼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행복하게 사는 그런 형편도 아니다. 여름이면 태풍이 몰아쳐 과수 농사를 망치고, 겨울이면 폭설로 인해 비닐하우스 작물 재배가 엉망이 되기도 하는 불확실한 자영업이다. 나의 조카는 억대 농사꾼의 꿈을 중도에 접었지만 충청도 산골 처녀 농사꾼의 밝은 미래를 계속 응원하고 싶어진다.

#에세이 #시골에서는고기살돈만있으면된다면서요 #김영화 #초보농사꾼 #학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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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왈도 에머슨이 저술한 자기신뢰를 읽고 있어요. 아직 이 도서 [초역 자기신뢰]가 등록 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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