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심심해하던 유빈이랑 지난 번 <천하무적 조선소방관>을 읽으며 "아이랑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걸 실천에 옮겼다.   사실 독후활동 같은 건 거의 해보질 않았는데, 유빈이는 엄마가 색다른 걸 함께 하자니까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천하무적 조선소방관>에는 인물을 표현하는 낱말이 많이 나온다.  '쫑알쫑알 시끄러운 떠꺼머리 총각, 빈둥대다 쫓겨난 마당쇠, 천하장사 돌쇠, 굴때장군 깜상, 남산골샌님, 똥퍼 아저씨, 꺽다리, 땅딸보, 꼽꼽쟁이, 느림보, 모도리, 덜렁이, 비실이, 꺼벙이, 변덕쟁이, 쌍둥이, 비렁뱅이...' 우리 말에 그 감칠나고 재미난 면모가 잘 드러나는 낱말들인 것 같다.
이 중에서 '꼽꼽쟁이'는 얼마 전에 읽은 <신기생뎐>이라는 소설에서도 나왔던 낱말이다.  '성격이 급하고 좀스러운 사람을 놀리는 말"이다.   

다섯 살 유빈이에겐 어려운 낱말이다.  포스트 잇을 잘라서 낱말을 적고, 하나씩 주면서 낱말을 설명해줬다.  그리고 그 낱말에 어울리는 사람을 찾아서 붙여주라고 했다. 

 나름 고민하면서 이름표를 하나하나 붙여줬다.  그 결과가 이렇다.



'변덕쟁이'와 '덜렁이'를 선정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꺼벙이'가 빠졌네.. ) 아이 눈에 충실하게 붙인 건데, 꽤 잘 찾아낸 것 같다.    '똥퍼 아저씨'는 아이가 가장 즐거워하는 인물 중 하나.  똥모양의 머리스타일이 아이 마음에 쏙 드나 보다.

하는김에 옛날에 쓰던 소방기구들도 찾아보자고 했다.  책 뒷편에 '남산골샌님이 들려주는 조선 소방관 이야기'에 나오는 겹복, 급수생, 도끼, 불채, 숙마긍, 장제, 철구, 수총기를 찾아보기로 하고 같은 방법으로 포스트 잇을 붙여봤다.  








 

 

  

 이것도 설명을 일일이 읽어줘야 했지만 잘 찾아낸 편이다.  수총기는 뒤에 궁궐에 불이 났을 때 등장해서 따로 붙였는데 사진으로 찍질 못했다.   

독후활동이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는데, 유빈이가 좋아하는 걸 보니 어쩌다 한 번씩은 해줘도 괜찮겠구나, 싶다.  독후활동은 '교육','학습'으로만 생각했는데 '놀기'로 생각하고 아이랑 나랑 가끔 한 번씩 '즐긴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해보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책에 포스트 잇을 붙인 채 그냥 놔뒀더니 아이는 한 번씩 펼쳐 보고는 뿌듯해 한다.  자신의 성과물로 여기는 걸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09-12-01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이 책이었군요, 오늘 받아본 창비어린이 겨울호 표지 그림이요.
꼽꼽쟁이는 저에게 맞는 말인 것 같아서 찔끔~ ^^

섬사이 2009-12-02 18:00   좋아요 0 | URL
창비어린이, 저는 오늘 받았어요.
정말 이 책의 그림이 표지네요. ^^
hnine님이 꼽꼽쟁이라굽쇼?
제가 느낀 바로는 '빈틈없이 야무진 사람'이라는 뜻의
모도리 같은데요. ^^
 
<괜찮아 괜찮아 두려워도 괜찮아!>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괜찮아 괜찮아 두려워도 괜찮아! 어린이 마음 건강 교실 1
제임스 J. 크라이스트 지음, 홍성미 옮김, 전미경 감수 / 길벗스쿨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내가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 때는 무서운 게 참 많았다.  귀신도 무서웠지만 전쟁이 일어날까봐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그 시절이 반공을 소리높여 부르짖던 때라서 그랬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내가 어릴 때만큼 전쟁에 대한 공포가 강하진 않은 것 같다.  그 대신 환경에 대한 경고를 듣고 자라서 그런지 지구 멸망에 대한 걱정이 큰 것 같다.   

어린 시절엔 왜 그렇게 무서운 것들이 많았을까.  미숙하고 순진한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그 공포를 다 이겨내고 이제 내가 부딪치며 살아가는 이 세상이 제일 무서운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개구리가 올챙이 적 기억 못한다더니 아이들의 무서움을 이해하기 보다는 웃음거리로 삼거나 '뭐가 무섭다고 그래?'하며 무시하곤 한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때 큰 맘 먹고 비싼 커텐을 맞춰서 아이 방에 달아줬다.  예쁘다며 좋아하던 아이가 며칠 지나고 나니 커텐이 무섭다며 울상을 지었다.  저 커텐이 왜?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커텐이 무서운 삐에로로 보인다는 거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난감하던지..  몇차례 아이와 실갱이를 벌이다가 '내가 졌다'하고는 커텐을 떼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이런 책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가진 공포를 좀 더 아이 편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커텐을 맞추는 데 들어간 비용이 아깝다거나 엄마의 정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섭섭하다거나 하는 생각보다, 아이의 공포를 어루만져야겠다는 결심을 먼저 했을 것 같다.   '두려움과 걱정을 없애는 열 가지 방법'을 살펴보며 아이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좀 더 진지하게 노력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은 아이들이 두려움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만화와 그림들을 곁들여서 읽고 이해하기 좋게 되어 있는 점과 자신을 체크해볼 수 있는 간단한 자기진단표등을 갖춘 세심함이 마음에 든다.  그 반면에 두려움과 공포증을 극복한 실례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 책이 부모나 선생님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구체적인 방법이라는 게 그리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저자도 길게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어지간한 끈기와 노력과 인내를 갖추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쉽지 않을 거 같은 생각도 든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아이들의 세계를 어른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다가서는 것은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의 두려움과 공포를 엉뚱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른의 눈으로 아이의 세계를 판단하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두려움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상처받았을 큰아이의 마음이 내내 가슴에 걸렸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저자는 맨마지막 '어른들을 위한 도움말'에서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변함없이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기를 바랍니다.'라고 썼다.  아이가 공포나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슬픔에 빠졌을 때야 말로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이 가장 필요한 때라는 걸, 그 당연하고도 단순한 사실을 내가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좀 더 참을성 많고 이해심 넓은 엄마가 되어서 아이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따뜻하고 부드럽게 다가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책 뒤에 부록으로 '참을성 많고 이해심 깊은 좋은 부모되는 법 열 가지'도 나왔다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가끔 우리 남편을 “시체놀이 하는 리모콘 대마왕”이라고 부른다. 거의 매일 12시를 넘겨 귀가하고 가끔은 밤샘작업도 해야 하는 남편은 늘 피곤하다. 그래서인지 집에 들어오면 생각을 끄고 TV를 켠다. 그게 마치 세상을 사는 유일한 낙인 것처럼. 그런 남편의 모습에 때론 화가 나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그러다 슬며시 건강이 걱정스러워지기도 한다. 남편들이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 테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참고 살아가는 부분도 분명 많을 테지만, 아이들이 아빠의 정서적 부재상태에 익숙해진 채 자라나지 않게 마음을 써주었으면 하는 욕심 아닌 욕심을 부려보게 된다. 그런 생각에서 그림책 속에 드러나 있는 아빠들을 찾아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림책 속 아빠들은 현실세계의 아빠를 반영하는 동시에 아이들의 아빠에 대한 바람을 투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우리 교육현실이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져 있다는 반증이고 ‘교육’이라는 말이 흉하게 변색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제대로 돌아가는 바람직하고 건강한 사회라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아빠의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게 지극히 당연하니까. 그림책 속 아이들도 아빠의 관심을 애타게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아빠의 사랑 속에서 신나게 놀고 싶어 한다. 그림책 속 아이들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아빠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아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꿈나라로 떠나버린 아빠들   

아빠, 일어나세요 (에르하르트 디에틀 지음, 이진영 옮김, 문학동네어린이)는 우리의 일요일 아침 풍경과 너무 닮아있어서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아빠는 느긋한 아침잠에 빠져 있는데 아빠와 놀고 싶은 아이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부터 아빠를 깨운다. 귀엽고 깜찍한 아이가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는데도 아이에게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침대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걸 보면 이 아빠의 인내심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아빠를 깨워보겠다고 갖은 애를 쓰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지고 나서야 아이가 궁금해진 아빠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이를 찾아다닌다. 욕실에서 아이를 찾아낸 아빠는 이제 아이와 놀아줬을까? 천만에 말씀, 아빠는 아이를 안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 못 다 잔 잠을 청한다. 이 결말을 보는 순간, “음,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책이군.”하며 감탄할 뻔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의 일요일 아침 풍경과 비슷하긴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1) 자는데 와서 아이가 법석을 떨어대면 우리집 남편은 짜증을 낸다는 점, 2) 법석을 떨던 아이가 갑자기 조용해지면 일어나기는커녕 오히려 평화로운 깊은 잠에 빠진다는 점, 3) 아빠가 더 자자고 꼬신다고 아이가 얌전히 아빠 옆에서 다시 잠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책은 잠꾸러기 아빠에 대한 아이의 최소한의 희망사항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 희망사항이 이 책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집 아이들이 이 책을 보고 즐거워했던 것도 이 책에서 아빠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아빠, 피곤해서 아무리 잠이 많이 쏟아진다고 하더라도 저를 방해꾼으로만 여기지 말고 아빠와 놀고 싶은 제 마음을 봐 주세요. 저를 잊어버릴 정도로 잠에만 빠져있진 말아주세요.’하는 간절한 메시지. 
 

아빠 두더지의 코고는 소리 (가노도 에이코 글, 사사키 요코 그림, 지경사)는 큰아이가 어렸을 때 구입했던 책이다. 『아빠, 일어나세요』가 아이가 아빠에게 자기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희망이 깔려있다면 『아빠 두더지의 코고는 소리』는 피곤한 몸으로도 최선을 다하려는 아빠와 그런 아빠의 일을 돕다가 아빠를 더 이해하게 되는 아기 두더지가 등장한다. 가족구성원들 간의 상호 이해라는 측면에서 『아빠, 일어나세요』보다 좀 더 진일보한 그림책이라고 할까.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자기를 내어주는 일이야 부모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이며 기쁨이지만, 그래도 때로는 부모들도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속이 상하기도 하고 문득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효자가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부모입장도 헤아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니까. 이 그림책에서 두더지 아빠는 땅속 굴을 파는 일을 한다. 다람쥐의 새집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특히나 동물들의 동면기가 가까워지면 더욱 바빠진다. 곰이나 뱀, 개구리들이 겨울잠을 잘 수 있도록 집을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더지아빠에게는 다섯 명의 귀여운 장난꾸러기 아들들이 있다. 아빠가 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아이들은 아빠에게 매달려 같이 놀아달라고 떼를 쓴다. 비행기놀이 해주세요, 기차놀이 해주세요... 하지만 그 때마다 아빠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드르렁 코를 골며 곯아떨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이 꼬마 두더지들이 기특하게도 아빠 일을 돕겠다며 따라나선다. 아빠 일을 도와주는 대신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비행기 놀이를 해달라는 조건을 붙이긴 하지만. 그 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약속대로 아이들과 비행기 놀이를 시작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아빠는 여느 때처럼 잠으로 빠져들고 아이들은 아빠가 코를 골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아빠의 등 위에서 저희들끼리 비행기 놀이를 한다. 그러나 열심히 아빠를 도와준 아기 두더지들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라 어느새 코를 골며 잠이 들고 만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아빠 두더지와 아기 두더지들은 함께 코를 골며 꿈속에서 비행기 놀이도 하고 기차놀이도 한다.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위의 두 책 중 한 권을 골라 읽어줘야 한다면, 아마 이 책이 좀 더 읽어주기에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왜 늘 아빠는 피곤에 절어서 축 늘어져 있는지를 이 그림책이 아빠 편에서 설명해주니까.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 한 가지는 이 책 속 두더지 아빠는 바쁘고 힘들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 아이들에게 표현해 주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왜 늘 지쳐있는지, 왜 집에선 잠만 자려고 하는지를 이해시키기는 쉽고도 간단하다. 아이들은 착하고 마음이 넓어서 기꺼이 자기 부모를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빠들의 피곤함이 아이와 아빠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엄마와 아내로서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뭐라 설명해주기가 참 어렵다. 아이는 아빠를 이해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아빠들은 어떤지, 아이들을 이해해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바쁜 아빠들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장은수 옮김, 비룡소)는 아빠로부터 소외된 소녀 한나의 이 야기다. 내가 써놓고도 흠칫 놀랐다. ‘아빠로부터 소외’되었다니.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하지만 이 책 속에서의 한나와 아빠의 관계는 ‘소외’라는 말의 의미보다 더 끔찍할 만큼 아프게 다가온다. 그림책을 펼치다 한나의 아빠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이 아빠, 죽은 사람 같구나.’했다. 차가운 푸른 공간 안에서 창백한 얼굴로 식탁 앞에 앉아 아이와 자기 사이에 철조망처럼 신문을 펼쳐든 그 모습은 생명의 불이 모두 사그라진 사람처럼 보인 것이다. 그에 비해서 ‘나는 아직 여기 살아 있어요.’하는 표시처럼 빨간 셔츠를 입은 한나는 아빠의 곁을 맴돌지만 결국 어두운 거실 한 구석에서 자기의 외로움을 TV로 달래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아빠에게 자그마한 고릴라 인형을 선물 받은 생일날 한나에게 굉장한 일이 일어난다. 고릴라 인형이 커다란 진짜 고릴라가 되어 한나와 함께 동물원, 극장, 식당에도 가고 잔디밭에서 춤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고릴라는 한나에게 말한다. “한나야, 이제 돌아가야지? 내일 또 보자.”

다음 날 아침, 아빠에게 고릴라 이야기를 하러 뛰어 갔더니 어라, 아빠가 변했다. 한나처럼 빨간 셔츠를 입고는 한나를 ‘귀염둥이’라고 부르며 함께 동물원에 가자고 한다. 아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아빠 바지의 뒷주머니에 꽂힌 바나나가 그 힌트가 되지 않을까? 예전에 어디선가 앤서니 브라운에게 바나나는 ‘동심’ 또는 ‘상상력’의 상징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아빠들에게 필요한 것도 얼마간의 동심, 약간의 상상력이 아닐까. 그것이 창백한 푸른빛의 아빠를 생동감 있는 빨간 티셔츠의 젊고 활기찬 아빠로 변신시키는 비밀이 아닐까. 아빠들이여, 젊은 오빠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앤서니 브라운의 마법의 바나나를 꼭 챙기시길 부탁드린다.

아빠는 언제와(낸 그레고리 글, 캐디 맥도날드 덴톤 그림, 임정원 옮김, 파란하늘)에도 한나처럼 빨간 옷을 입은 엠버라는 소녀가 나온다. 표지의 파르스름한 배경 속에서 엠버는 새빨간 코트를 입고 한 손으로 머리를 괸 채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데 어쩐지 『고릴라』의 한나와 닮아있다. 자칫하면 아이들에게 아빠는 차갑고 냉정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경고인 것처럼 보였다. 다행인 것은 엠버가 한나에 비해 좀 더 밝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엠버는 ‘거의 날아가는’ 것처럼 그네를 탈 수 있고, 그림 그리기와 그림책 읽기를 좋아하고, 신발끈을 혼자서 맬 수도 있고, 눈 속에서 미끄럼타기도 잘 한다. 여러 가지로 유능하고 활달한 엠버는 경쾌한 빨간 코트와 이미지가 딱 떨어지게 잘 맞는다.

그런 엠버에게 나쁜 일이 하나 있다면 아빠가 엠버를 데리러 유치원에 늦게 오는 것이다. 강당복도에 앉아서 코트 단추를 목까지 꼭꼭 채우고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빠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기다림’이라는 거, 어른들에게도 참 힘든 일인데 4시부터 7시까지 장장 세 시간 동안의 기다림은 어린 엠버에게 너무나 가혹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기다림’이 힘든 건 기다리는 시간 동안의 지루함이나 따분함 때문이 아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유난히 더디 흐르게 마련이고, 그래서 평상시의 시간보다 몇 배는 더 길게 늘어져 버린 그 심리적 시간동안 내가 ‘기다림’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無用의 존재라는 느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버린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유기되어 버린 듯한 슬픔, 그리고 날 그렇게 버려둔 사람에 대한 미움까지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는 것이 기다림이 어렵고 힘든 이유일 것이다. 기다림의 인내를 배우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기는(?) 법을 배우기엔 앰버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 똑똑한 엠버는 금세 기다림의 방법 한 가지를 터득한다. 그건 ‘상상하기’다. 엠버는 상상 속에서 하늘을 날아 아빠를 홀로 달에 남겨둔다. 그러고는 늘 바쁘다, 힘들다, 피곤하다, 하면서 곁에 있는 ‘아주 중요한 사람’을 잊어버리곤 하는 세상의 아빠들에게 어서 빨리 ‘아주 중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은 사랑스런 퍼포먼스를 벌인다. 그동안 아빠는 달에서 ‘홀로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적막하고 외로운 일인지를 배우는 상상상이다.

앰버가 입고 있는 생생한 빨간빛의 코트와는 대조적으로 아빠가 입은 회색 코트와 바지, 검정 구두는 아빠가 얼마나 삭막한 잿빛 세계에서 살아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니 앰버가 아빠에게 가르쳐주려는 것은 단지 기다림만이 아니라 따스한 사랑과 관심이 살아 있는 생생한 감정의 세계까지도 포함된 건 아닐까? 그렇게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뺨을 부비고, 입을 맞추며, 미소를 나누고, 서로의 가슴에 사랑을 흘려보내는 시간이 앰버는 그리운 것일 터이다.

바쁜 아빠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전업주부인 나도 그림책 속 앰버의 아빠처럼 잿빛 옷을 온몸과 마음에 휘감은 채로 아이를 대한 적이 많으니까. 어른이란 게 그런가 보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합리화에 너무 능수능란한 나머지 쉽게 인정하고 고치려하질 않으니 말이다. 세상이 잿빛으로 보이는 건 내가 잿빛이기 때문일 것이다. 온 세상 모든 엄마와 아빠들이 내 마음, 내 웃음, 내 다정한 눈빛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잊는 법 없이 살아가기를 빈다.   



아빠는 괴로워

아빠는 하나 아기는 열(베네딕트 게티에 지음, 조소정 옮김, 베틀북)어쩌다 아기 열을 아빠 혼자 키우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설정 자체에서 고달픔이 배어나오는 그림책이다. 열 명이나 되는 개구쟁이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워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굵은 윤곽선에 서툴게 칠한 그림이지만 지칠 줄 모르는 장난기를 지닌 아이들 하나하나의 모습이 참 잘 드러난다. 집안일과 가족들 뒷바라지에 지친 주부들이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꿈꾸듯이 이 그림책 속 아빠도 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집과 회사를 오가야 하는 지친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저녁마다 아이들 몰래 배를 만드는 아빠에게 나는 어느새 감정이입을 하고 우리 아이들은 다소 엽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재미있어 한다.

배를 완성한 아빠는 아이들을 할머니에게 부탁하고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 고요한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아빠의 모습은 그야말로 평화롭다. 그동안의 고단함을 씻어내는 열흘간의 단잠에서 깨어나 아빠가 한 일은? ‘그릇도 열 개, 스푼도 열 개’의 아침을 차린 일. 갑자기 고요한 평화가 허전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아기 양육이 주는 피곤함, 어려움, 스트레스...하지만 그 모든 걸 넘어서는 아기들에 대한 부모들의 사랑이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이다. 이 책이 기분 좋은 이유는 바로 그 당연한 진실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아이양육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아빠라는 설정이 산뜻하고 참신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는 약간의 고소함(?)을 느끼며 더 즐거울 수 있다.

쉿쉿! (김춘효 지음, 백은희 그림, 비룡소)에서도 아빠의 고생담이 펼쳐진다. 엄마가 아파 몸져누운 날, 아빠는 집에서 밀린 집안일을 한다. 그림책 분위기 상 엄마가 며칠 동안 집안일을 못한 것 같고, 아마도 휴일인 어느 날 밀린 집안일을 아빠가 하는 중인 것 같다. 그림책을 펼치면 오른쪽 면에는 심심한 아이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왼쪽 면에는 글과 함께 집안일을 수행중인 아빠의 그림이 작게 나온다. 아이에게 아빠는 자꾸 “쉿,쉿!”하며 조용히 하라는데 아이의 인형들이 하나씩 뛰어나와 놀자고 하며 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다. 심심한 아이의 상상놀이겠지만, 서툰 집안일을 해내느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아빠에게는 아이를 이해해줄만한 여유가 없다. 그래도 이 아빠, 세탁기도 돌릴 줄 모르는 우리 남편에 비해서는 참 꼼꼼하고 능숙한 편이다. 설거지와 빨래는 물론이고 소파 밑까지 구석구석 청소도 열심히 한다. 아이 방에서 황소까지 튀어나오는 지경에 이르자 아이와 아빠의 팽팽한 대립구조가 펼쳐진다. 마침내 아빠의 입에선 “조용히 하랬잖아!”하는 고함이 터져 나오고 아이와 아빠는 같이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같이 그림책을 보던 유빈이는 아빠와 아이의 점층적인 대립구도를 내내 불안해하더니 아빠와 아이가 함께 울음을 터뜨리는 부분에서 웃음이 터진다. 긴장이 말끔히 해소되는 개운함을 맛보는 듯하다.

아빠는 아이를 이해하기로 한 걸까? 아이랑 같이 실컷 울고 난 아빠는 아이와 이불 속에 들어가 웃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엔 또 다른 걱정이 싹튼다. ‘어? 그럼 하다 만 집안일은 언제 할 건데?’ 하는.

『아빠는 하나 아기는 열』도 『쉿,쉿!』도 집안일에 무심한 아빠들에게 가사와 육아의 어려움을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진 책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는 우리가 꿈꾸는 행복의 자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직장일과 집안일로 지치고 힘들 때에도 결국 우리가 돌아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자리는 우리의 가정이고 아이들 곁이라는, 이 뻔하고 간단한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주지시켜 주는 것 같다. 어쨌든 아이들은 우리 부모들이 ‘견디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아닌가.


우리가 꿈꾸는 아빠

『코끼리 아빠다!』 (마이클 그레니엣 그림, 김정화 옮김, 파랑새)는 판타지다. 폴란드 출신 작가이면서 일본그림책 상을 받은 다소 특이한(?) 이력의 작가는 크레파스로 대충 칠한 듯 거칠 느낌의 그림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코끼리를 갖고 싶어 하는 유치원생 딸 키아라를 위해 스스로를 코끼리로 변신시키는 이야기는 이 세상 아이들에게 얼마나 감동적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앞에서 이야기한 다른 아빠들에 대한 책과는 다르게 이 책의 아빠는 생동감 있고 아이들의 세계와 아주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코끼리가 있으면 우리 키아라가 좋아서 폴짝폴짝 뛰겠지?’하며 생각에 잠긴 아빠의 모습은 어쩐지 아이보다도 더 철없어 보이기도 한다. 커다란 코끼리가 가져다 준 의문의 상자를 받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알약과 연고들을 이용해 코끼리로 변신한 아빠. 코끼리가 되어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간 아빠를 키아라는 기뻐하며 반겨 준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키아라가 코끼리 아빠의 등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장난감 가게 앞에서 말한다. “있잖아, 저 사자, 코끼리 아빠랑 친구하면 좋을 것 같지 않아?” 이 책을 읽어주던 나는, 내가 사자가 되어야 하나, 하고 순간 고민했다. 작가는 키아라의 저 말 한 마디로 이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는 모든 어른들을 코끼리 아빠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코끼리 아빠의 세계는 아이의 동심과 하나가 되는 세계가 아닐까. 그게 가능한 건지는 몰라도 아이와 놀 때만큼은 아이 수준으로 내려가 함께 즐기고 노는 아빠들의 모습은 행복하고 멋져 보인다.

놀이터의 왕 (필리스 레이놀즈 네일러 지음, 놀라 링그터 멀론 그림, 보물창고)의 아빠는 등장하는 방법부터가 심상치 않다. 다른 아빠들과는 달리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거나 세차를 하고 있다. 가정 안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 그림책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아빠의 모습이다.

‘새미’라는 아이는 ‘놀이터의 왕’이라고 불린다. 놀이터에 온 친구들을 괴롭혀 주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새미 때문에 케빈은 하루하루가 괴롭다. 용감해지기 위해 배트맨 팬티에 스파이더맨 티셔츠에 말굽 장식의 청바지를 입어도 새미는 두려운 존재다.

놀이터에 놀러나갔던 아들 케빈이 새미의 협박에 기운이 쭉 빠진 채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아빠에게 새미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고자질을 하고 있는 거다. 아빠가 나서서 새미를 혼내달라고 은근히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그림책 속 아빠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금방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놀이터로 달려가 새미라는 아이에게 발끈,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등장부터 포스가 남달랐던 이 아빠는 아이의 말을 귀담아 들어준 뒤에 새미의 협박이 실현 불가능한 협박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해준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애정 가득한 관심을 보이며 도와주는 다정한 아빠는 아이 뿐만이 아니라 엄마 입장에서도 바라는 아빠의 모습이다. 특히 아들에 있어서는 엄마의 힘만으로는 2% 부족한 뭔가가 있는데, 아들과 통하는 남성성을 지닌 아빠의 도움이 절실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빠는 어디쯤 왔을까? (고우리 지음, 문학동네어린이)에는 퇴근길에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오실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막내 아이가 서 너 살 무렵에 좋아했던 책인데,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그림책 속 아빠의 모습에 아이도 나도 반했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 중에 하나인 아이스크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말이 나올만큼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어쩌다 아이들을 데리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르면 무슨 맛을 고를까 고민하는 아이들의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표정이 얼마나 깜찍하고 귀여운지 모른다.

아이들의 그 깊은 고민을 이 책은 즐겁게 해결해 준다. 갖가지 아이스크림을 층층이 높이 쌓은 콘을 들고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는 아빠의 모습. 무너져 내릴 것처럼 휘청거리는 아이스크림. 이 책을 펴서 들여다보던 우리 막내는 아이스크림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어떤 아이스크림이 맛있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고민 끝에 “엄마, 난 이 아이스크림 먹을 거야.”하며 그림 속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늉을 하고는 행복하게 웃음 짓기도 한다.

드디어 아이가 애타게 기다리던 집으로 돌아온 아빠. 딩동~하고 초인종을 울렸는데, 아빠의 손에는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 종이가방이 하나 있을 뿐이다. 아빠를 기다리던 아이는 잠들어 버렸다. 아이가 깨어나면 아빠가 사온 아이스크림이 자기가 상상했던 그 아이스크림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식탁에 가족이 모여 앉아 단란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그림이 있다. 안심이다. 현실의 아빠가 상상 속 아빠보다 좀 못해도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아이들이라 참 다행이다. 내가 엄마라는 걸, 내가 아빠라는 걸 즐기며 살려고 노력하다보면 조금은 좋은 아빠, 좋은 엄마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9-11-3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페이퍼네요. 어디에 칼럼을 쓰니나요? 멋집니다

섬사이 2009-11-30 14:15   좋아요 0 | URL
칼럼이라니요.. 그냥 재미삼아 쓴 거예요.
멋지다고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

순오기 2009-12-01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훌륭해요. 별찜!
내가 읽은 건 두 권 뿐이네요.ㅜㅜ

섬사이 2009-12-01 18:35   좋아요 0 | URL
아빠에 관련된 그림책을 찾아보니까 그 양도 많고 굉장히 다양하더라구요.
돌아가신 아빠, 장애를 가진 아빠, 새아빠, 기러기 아빠 등등...
다 올리기도 그렇고, 몇 권만 뽑아서 글을 써봤어요.
아빠들의 사랑고백에 대해서도 쓰려다가 그만뒀답니다. ^^

토토랑 2009-12-0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멋지네요 ^^;;
저희 집에 있는건, '아빠를 어떻게 깨우지' 와 '고릴라' 뿐인데
보고싶네요

섬사이 2009-12-01 18:36   좋아요 0 | URL
가벼운 마음으로 산뜻하게 읽을 수 있는 건
<아빠, 일어나세요>, <코끼리 아빠다!>, <아빠는 어디쯤 왔을까?>인 것 같아요. <놀이터의 왕>에 나오는 아빠는 정말 멋져요. ^^

마노아 2009-12-0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아빠표 책이에요! 울 형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 권 선물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됩니다.^^ㅎㅎㅎ 좀 반성을 느낄까요? 으캬캬캬^^

섬사이 2009-12-02 18:01   좋아요 0 | URL
반성....
울 냄푠은 <돼지책>같은 건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해요.
기분 나쁜가 봐요. ^^;;
 
천하무적 조선소방관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8
고승현 지음, 윤정주 그림 / 책읽는곰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읽는 곰'이라는 출판사가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문화 그림책 온고지신 시리즈의 경우 우리문화를 지식정보 전달에 치중하지 않고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로 잘 녹여내고 있는 것 같다.   

<천하무적 조선소방관>은 사실 비슷한 류의 문화 시리즈 그림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 참신한 소재다.  해태라든가 드므라든가 하는 화마를 물리치기 위한 장치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조선시대에 '멸화군'이라는 소방관들이 있다는 것을 나도 이 그림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연이네 설맞이>, <거울 속에 누구요?> 그리고 며칠 전에 읽었던 <내가 보여?> 등에 그림을 그린 윤정주 님의 익살스러운 그림들도 재미있다.  그런데 책마다 그림의 분위기가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그림작가님들은 그 특유의 화풍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이 분은 끊임없이 글과 잘 어우러질 새로운 타입의 그림을 연구하시는 분인 것 같아서 계속 관심있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조선의 도성 한양을 배경으로 자주 발생하는 화재를 막기 위해 멸화군을 모은다는 방이 나붙는다.   저 '傍文'(방문)을 보고 감탄했다.  대부분 휘리릭 한자 비슷하게 흉내를 내고 말텐데, 참 꼼꼼하게도 한자 하나하나를 공들여 썼다.  '작금 한양도성내 화재빈발야 분소민가 사상백성...'하며 써붙인 방문에 감탄했다.  남산골 샌님이 잘난 척하며 읽어주는데 사람들 반응은 시큰둥.  



그러나 훈련원 앞마당엔 떠꺼머리 총각에 빈둥대다 쫓겨난 마당쇠, 천하장사 돌쇠, 굴때장군 깜상, 남산골 샌님, 똥퍼아저씨, 꺽다리, 땅딸보, 꼽꼽쟁이, 느림보, 모도리, 덜러이, 비실이, 꺼벙이, 변덕쟁이, 쌍둥이, 비렁뱅이...  어중이 떠중이 다 모였다.  아이와 함께 이름 하나하나에 어울리는 인물찾기 게임을 벌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을 만큼, 캐릭터가 잘 살아있다.  우리아이도 '똥퍼 아저씨'를 찾아보라고 했더니 똥머리를 한 인물을 찾아내곤 깔깔 거렸다.

 



 

 

 

 

   



 

 

 

 

그런 어중이 떠중이들이 모여 훈련을 받는데 그 훈련과정을 통해 조상들이 어떻게 화재에 대비했는지를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가 있다.  불이 번지지 않도록 돌담을 쌓고, 화재시에 사람들이 오가기 좋도록 길을 넓히고, 길가 군데군데 웅덩이도 파고, 집집마다 항아리에 물도 채워두고, 가짜집을 만들어 정말로 불을 놓고는 불끄는 훈련도 하고, 순찰을 돌거나 높은 종루 위에 올라가 밤마다 보초도 서고..  그 뿐인가.  나중에는 대나무를 잘라 물총과 물주머니를 던질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오합지졸이었던 멸화군은 궁궐에 나타난 불귀신을 무찌르는 믿음직한 멸화군이 된다.     



 맨 마지막에 '남산골샌님이 들려주는 조선 소방관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 소방관이 썼던 겹보, 급수생, 도끼, 불채, 숙마긍, 장제, 철구, 수총기, 완용펌프와 같은 장비들에 대한 설명이 있고, 또 화재대비 시설로 드므, 방화장, 철쇄, 해태상, 취두와 용두에 대한 설명글도 있다.  조선시대 소방관들이 썼다는 장비들은 이 그림책 속에서 다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도 아이들과 함께 찾아보기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화재대비 시설의 하나인 방화장은 불이 다른 곳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건물 벽 바깥에 쌓은 두꺼운 벽을 말하는데 덕수궁 돌담길도 방화장의 하나란다.  철쇄는 궁궐 지붕 위에 늘어뜨려 놓는 쇠사슬로 지붕 위에서 불을 끄다가 미끄러져 다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세종 대왕께서 불끄는 이들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 달았다고..  세종대왕의 어질고 세심한 마음이 느껴져 감동했다.   



내가 감동한 부분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이 오합지졸 멸화군들의 협동이라고 해야할까.. '협동'이라는 말이 너무 고리타분해서 좀 그렇지만, 아무튼 모자르고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치고 열정적으로 매달려 끝내 일을 이루는 걸 바라볼 때의 그런 감동 말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마지막 그림에서 나와 아이는 함께 뿌듯함을 느낀다.  행진하는 멸화군을 향해 박수를 치는 길가의 사람들 속에 끼어서 나랑 아이도 '멸화군 만세!'를 외치며 '짝짝짝짝짝..'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는섬 2009-11-28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고지신 시리즈 정말 괜찮은 것 같아요.^^

섬사이 2009-11-29 10:20   좋아요 0 | URL
예, 마음에 드는 그림책 시리즈예요.
그 시리즈의 책들 중에 리뷰를 쓰고 싶은 책이 몇 권 더 있어서
생각날 때마다 한 권씩 쓰려고요. ^^

꿈꾸는섬 2009-11-29 21:10   좋아요 0 | URL
오~~~기대되요.^^
 
엄마 머리에 이가 바글바글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16
크리스틴 스위프트 지음, 엄혜숙 옮김, 헤더 헤이워드 그림 / 봄봄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그림책에서 이를 만난 건 처음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가 가려웠다.  새빨간 바탕의 겉표지를 넘기면 속표지에 이들이 바글바글하다.  꽤 의인화된 이들은 모자를 쓰거나 안경을 쓰거나 넥타이를 매는 등 꽤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실 이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지독하고 징그러운 해충이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다섯 살 딸아이는 '이'라는 새로운 생물체와의 만남이 인상깊었나 보다.  읽고 또 읽고 자꾸 읽어달란다.  읽어줄 때마다 난 머리를 긁적이게 되고.  엄마 머리에 생긴 이를 발견한 꼬마는 이를 없애주기 위해 나름 고심을 한다.  얼른 나가라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잠자리채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 엄마 머리를 덮치기도 하지만, 모두 실패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엄마 머리 감기기.   



결국 이들이 못 견디고 엄마의 머리에서 이사하기로 결심하지만 새 집으로 선택한 머리는 바로 그 꼬마의 머리다.   엄마가 대견한 꼬마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고 있지만, 옆 페이지에서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꼬마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우습다.





 

 

 

 

 

 

 

 

사실 머릿니는 머리를 감는다고 사라지진 않는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 머릿니가 퍼졌다.  어느 날 아이가 머리를 빗다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엄마, 내 머리에서 뭐가 떨어져!"해서 봤더니 벌레들이 떨어져 세면대 위를 꼬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웃엄마가 약국에 가면 샴푸 타입의 약이 있다고 하기에 얼른 가서 약을 사왔는데,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다 보니 부작용에 잘못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 나와있는 거였다.   뭐야, 머릿니 잡으려다 애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이 약을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주 소량을 써봤는데 정말 머릿니가 싹, 없어졌었다.  나중에 아이 머리 속을 샅샅이 뒤져가며 머리카락에 달라붙어 있는 서캐들을 떼어내야 했지만 말이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독극물에 가까운 약을 가지고 있다.  함부로 버렸다간 큰일이 날 것만 같아서...)

'이'라는 해충이 너무 미화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 그림책에 과학적 설명을 곁들이는 것도 웃긴 일이 될 것 같다.  이런 곤충도 세상에 있다는 걸 아는 정도에서 만족하면 될 것 같고, 아이는 그냥 이 이야기라는 것에 흡족하며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이 그림책을 읽고 아이가 '이'에 대해 궁금해한다면 '이'에 관련된 경험을 이야기해 주거나 자료를 찾아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만 말이다.  

이 책의 글을 쓴 크리스턴 스위프트도 '2007년에 머리에 이가 생겼던 끔찍한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벌레들이 그림책 속에 등장했지만 '이'가 등장한 그림책은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어떤 벌레보다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벌레인데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