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온 우리 딸 지니.
"엄마, 오늘 반장 선거 했는데 부반장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꽉꽉이가 됐어."
"그래? 잘 아는 친구가 부반장이 돼서 좋았겠다, 야."
"근데 반장은 나야."
"뭐? 어쩌다가?"
우리딸 지니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교 2학년 때 모둠장 한 번 해보고는 애들이랑 선생님 심부름만 해야 한다며 귀찮다고 투덜거리더니 그 뒤로 무슨 '장'자 들어가는 건 죽어라고 싫어하던 아이였다. 나 또한 아이가 반장이나 부반장 되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편이라 은근히 그런 아이의 말에 동조해 왔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웬 반장?
지니가 잘 알지도 못하고 그냥 말 몇마디 나누어 본 아이가 지니를 추천했고, 지니는 그동안 추천을 받아도 다행히(?) 반장으로 선출되지는 않았던 경험이 몇 번 있어서 '설마 내가 되겠어?'하는 마음으로 그냥 있었단다. 안될 게 뻔한데 '저 안할래요'하며 빼는 것도 우스운 것 같았다나? 거기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도 서너명 밖에 없으니까 마음 놓고 있었던 게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장으로 당선되었다는 거다. 이게 웬 날벼락? 지니랑 뽀가 반장 경험이 없으니 나 또한 당연히 반장 엄마 경험이 없다. 갑자기 난감해져 온다.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교실에 뭐 필요한 거 없냐고 여쭤봐야 하는 건 아닌지, 요즘은 반장이 되면 반장턱이라고 피자나 햄버거 같은 걸 반 아이들에게 돌린다던데 꼭 그래야 하는 건지.. 아이고, 이거 참.. 이럴 줄 알았으면 반장 엄마들이랑 좀 친하게 지내 보는 거였는데..
그런데 지니가 이어서 연타를 날린다.
"그리고 엄마. 나 환경미화 담당도 맡게 됐어."
나더러 어쩌라구요.. 고심 끝에 나온 한마디.
"니네 반에 화분이나.. 학급 비품 필요한 게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 뭐, 그런 거는 하나 해 줄게."
"선생님이 시계가 있었으면 하셔서 내가 가져오겠다고 벌써 얘기 했어."
"그래, 시계 하나 사지, 뭐."
"아니, 새시계 말고 집에서 안쓰는 헌시계 가져오라셨어. 우리집에 안쓰는 시계 있잖아."
와, 그 선생님 정말 맘에 든다. 얼른 창고에서 안쓰고 있던 십자수 시계를 꺼내 걸레로 싹싹 닦고 건전지도 새로 껴서 딸에게 주었다.
"교실 커튼도 빨아야 된다고 하셨는데, 반애들이 반장 부반장 시키라고 그랬더니 우리 선생님이 반장 부반장이 니들이 부려먹는 애들이냐 하시면서 딴애들 시키셨어."
와, 그 선생님 정말 정말 정말 맘에 든다.
딸래미는 좀있으면 가게 될 수련회를 걱정한다. 그러게.. 그 때 선생님 도시락이라도 싸야 하는 건가? 나도 좀 고민이 된다. 딸래미는 수련회 때 아이들 통솔하라고 할까봐 너무 싫단다. 그리고 장기자랑 시간에 반장들 나와서 춤 추라고 그런다나?
"야, 그래도 너에 대해 잘 모를텐데도 애들이 널 좋게 봐줘서 반장으로 뽑아줬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잘 해봐. 얼마나 고맙냐? 그리고 반장들 나와서 춤추라고 할 땐 그냥 미친듯이 춰. 잘추든 못추든 그런건 중요하지 않고 친구들이 널 보고 재밌어 하게 창피하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추는 거야. 미적미적거리면 보는 사람 짜증난다, 너. 왜 코믹댄스라는 장르도 있잖아.ㅎㅎㅎ"
우리 딸래미 싫지는 않은지 씩 웃는다. 많이 변했구나. 작년에도 반장도 아닌데 남아서 선생님 일 도와드리고(우리 딸이 학원을 다니지 않아서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지니에게 일을 자주 맡기셨었다) 문제집도 여러 권 받아오고, 학용품도 받아오고 그러더니.. 이제 어릴 때처럼 선생님이나 반 친구들 심부름 하는 일이 귀찮고 싫지는 않은가 보다. 반장 경험도 지니가 성장하는 데 좋은 거름이 되겠지. 반애들과 대립도 하고 어울리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런데 우리 딸 점심시간에 아직도 운동장에 나가 얼음땡 놀이를 한다던데.. 자칭 자기는 똥춘기 개중딩이라나?
졸지에 반장엄마가 되어버린 나는 그냥 나대로 독창적인 노선을 걷는 반장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학교 2학년씩이나 되었는데 엄마가 나서는 것도 우습고... 그냥 울딸이 뭐 해달라고 부탁하면 그것만 열심히 해주기로 했다. 다행히 반장턱을 내는 일에 대해서 우리딸은 이렇게 말했다.
"그걸 뭐하러 해?"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