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에 있는 너는 캄캄한 지하 역 플랫홈에 서 있어. 내가 너의 손을 잡아 끌고 여기로 왔지. 어쩌면 역을 이렇게 삭막하고 어두컴컴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공기도 탁하고. 잠시라도 머물기 싫은 곳이구나. 저기, 기차가 들어온다. 길고 긴 기차.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우리 앞에 섰어. 기차 안에 사람이 참 많기도 하다. 다들 피곤하고 지친 모습.. 핏기 없고 파리한 무표정의 얼굴들, 모두 화가 나 있는 것 같아.
난 너를 기차에 태웠어.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을 외면하고 싶었어. 잔뜩 겁을 먹고 긴장한 표정으로 낯선 이들 사이에 서있는 너의 모습이 내 마음 속에 와서 박혔단다. 그래서 더욱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려면 그 기차를 타야만 한다고 너에게 말하면서 나 자신을 더 다지고 있었던 거야. 안그러면 내가 다시 너를 잡아 끌어 그 기차에서 내리게 할 것만 같았지.
기차가 출발하고 곧 너의 목소리가 들렸어. 어둡고 답답하다고. 창밖을 내다봐도 캄캄한 철로 벽뿐이라고. 내리고 싶다고, 당장 내리고 싶다는 너의 울먹울먹한 목소리가 들렸어. 기가 질려서 큰소리도 못내고 혼자 중얼거리는 듯한 그 목소리가 나를 더 아프게 했어. 네 곁엔 내가 있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지. 네가 힘들 땐 언제라도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어.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겨우 '조금만 더 참아봐.. '
지금은 캄캄한 지하철로 벽밖에 보이지 않지만 지하철로를 벗어나고 나면 강도 보이고 숲도 보일 거야. 창문을 열면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때도 있을 걸. 기차를 타는 일이란 그런 거야. 가다 보면 터널도 지나고 매캐한 매연 내뿜는 공장지대나 복잡한 대도시도 지나고 황량한 벌판을 지날 때도 있겠지만, 그러다 또 경치좋은 숲도 보고 호수도 보고 초원도 보는 날도 있는 거야.
너무 답답하고 숨막힐 땐 밖을 보지 말고 기차 안을 가만히 살펴봐. 같이 타고 가는 사람들 중에 분명 피식 웃음이 나올만큼 재밌는 사람도 있을 걸? 어느 날 네 곁에 다가와 친구가 되어줄 사람도 있을 테니 너무 긴장하지 말라구. 함께 같은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것도 이담에 너에게 좋은 추억이 될거라고 믿어.
그래도 너무 힘들거나 하면 언제든지 내리렴. 나는 언제라도 널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기차에서 내려 네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얼굴로 내게 달려와 준다면 난 네가 어려울 때 나를 찾아주었다는 것에 감사할거야. 기차타고 끝까지 가지 못한 찝찝함 따위 내가 꼭 안아줄 테니 내 품안에서 아기 때처럼 푹 자고 일어나 툭툭 털어버리면 그만이지, 뭐. 그 기차 말고도 세상엔 탈 수 있는 기차가 얼마나 많은데.
얼마전에 고맙게도 웃는 얼굴로 네가 말했지.
"이제 캄캄한 지하철로는 벗어난 거 같아. 지금은... 글쎄.. 공장지대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아." 라고.
사랑한다. 나의 딸아. 네가 견뎌내고 있는 그 시간들이 너에게 보람으로 돌아오기를 난 기도하고 또 기도할게.
*** 종합학원에 다니면서 무척 힘들어 하던 우리 큰 딸 지니에게 사랑하는 엄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