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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중학생 34명 지음,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장현실 그림 / 보리 / 2001년 12월
평점 :
서른 네명의 중학생들의 글이 담겨 있는 책이다. 거리에서 만나는 중학생 아이들은 고등학생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 든다. 그들의 나이 자체가 워낙 어정쩡한 나이여서 그럴까? 마냥 철없어 보이고 섣부른 반항기가 느껴지고... 무슨 생각들을 하고 살고 있을까.. 하는 노파심이 일기도 한다.
그래도 나의 중학시절을 돌이켜 보면 한창 예민해져가는 감성의 결을 만들어가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길에서 만나는 중학생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누군가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줘야 할 예민한 감성의 결이 만들어지고 있을 터였다.
이 책 속에서 만나는 중학생들의 글을 읽으며 꽁꽁 감추고 있는 그들의 마음 속을 살며시 들춰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듬어지지 않고 글의 기교 따위는 아예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쓴 아이들의 글들이 내 마음 속에 콕콕 와서 박히는 건 글 속에 아이들의 진솔함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과 학교, 사회 속에서 맞닥뜨리는 폭력과 부조리에 아이들이 상처받는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 전체가 부끄러워할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이야기들을 만날 때마다 왜 좀 더 행복한 세상을 아이들에게 만들어 줄 수 없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워 한다. 아이들의 순수한 눈으로 바라본 사회는 그다지 곱질 못하다. 아이들은 그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힘있는 아이들은 결코 왕따를 당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우리 사회다. 돈과 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세상. 돈과 힘이 없으면 죽은 사회. 그게 사람 사는 곳일까?......(중략)...... 날마다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이랍시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게 될 턱이 없다. .....(중략)..... 만약 신경이 예민한 아이들이 그런 일을 당하게 된다면, 그래서 사회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그 아이의 인생은 어디서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언제나 우리 학생들이 안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다니게 될까?"
"나는 교무실 청소를 할 때마다 선생님들의 종이 된 기분이다. 우리도 당연히 제자가 된 도리로 교무실을 쓸고 닦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컵이나 선생님 책상을 닦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이 든다.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된다고, 모범을 보여 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이런 글을 읽고 부끄럽지 않을 어른들이 어디 있을까? 그 밖에도 아버지가 잘못 선 보증 때문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빚쟁이들에게 맞서다 오히려 몰매를 맞은 아이, 집을 나가 버린 엄마를 대신해서 집안 일을 다하고도 아버지에게 트집 잡히고 사랑 받지 못하는 아이, 엄마의 언어 폭력 수준의 잔소리에 집이 편안치 않은 아이,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형을 의지해서 크는 아이처럼 저마다 자기의 그늘들을 글로 펼쳐놓고 있다.
내 아이만 잘 자라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모든 아이들이 다 같이 잘 자라야 내 아이도 밝고 행복한 사회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넓고 짙은 그늘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조차도 교육이네 입시네 하고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 책을 덮으며 기도말 한마디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우리의 십대들 위에 드리워진 저 그늘 좀 어서 거두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