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15주년을 맞아 방한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나라 기업을 방문하는 '세일즈 리더십'을 보였고, 하는 말들도 일본의 밉살맞은 고이즈미나 아베신조 총리와는 다르게 꽤 날카롭고 예의를 갖추기에 실리를 취하고자 하는 정치적 아부성 발언이겠거니 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었다. 신문에서 소개한 그의 이야기를 읽고는 그런 총리를 가진 중국 국민을 부러워 하기도 했었다.
"'평민총리' 원자바오 중국 국무원 총리에게는 늘 붙어 다니는 별명이다. 평민 가정 출신이기도 하지만 그의 수수한 행보와 서민을 사랑하는 그의 친민 정신에 감동을 받은 중국 국민이 붙여 준 별호다. 그는 2003년 3월 총리로 취임한 이후 재해가 나면 산간벽지를 불문하고 달려가 그들을 부둥켜 안았다. 춘제 땐 꼭 시골에 내려가 서민과 함께 새해를 맞았다.
지난해 1월엔 허름한 잠바 하나로 11년간 지방 시찰을 다닌 사실이 알려지면서 13억 중국인이 눈시울을 적셨다. 또 지난해 7월엔 밑창이 떨어진 운동화를 몇 년째 기워 가며 신고 다닌 일화가 소개돼 중국인을 울렸다.
중국의 서민들은 그에게 '제2의 저우언라이(周恩來)'라고 별칭을 지어 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우리나라에도 저런 정치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신문에 실린 그의 사진을 한참을 바라보았었다.
그런데 오늘 신문 칼럼에 실린 글....
홍콩에서 나온 중국 인명록에 따르면 원자바오 총리의 아내가 중국보석혐회 부회장, 아들이 정보기술업체인 유니허브 총재, 딸은 그레이트월 컴퓨터사 전무, 사위는 60개가 넘는 자회사를 거느린 달리아샤이드그룹 총재란다. 뭐, 그럴 수도 있나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워낙 훌륭한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자녀들이 유능하고 똑똑한 인재로 자라나 사회에 나가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그렇게 집안 식구들이 모두 번듯한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그건 부모의 덕과 지혜로움, 넉넉하고 곧은 성품이 일궈낸 정당한 결과일 뿐이니까.
그런데 그 뒤에 덧붙여진 글.
"능력만 있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억만장자 91%가 당 간부의 친인척이라는 홍콩의 싱타오일보까지 보고 나면 감동이 달아난다. 주로 금융 해외교역 부동산 같은 황금 알 분야에서 외국인투자 커미션을 받거나 독점 수입, 특혜 대출을 통한 부동산 개발로 부자가 됐다는 거다. 중국인들은 이런 공공연한 비밀을 알기 힘들다. 지난해 후진타오 국가 주석의 외아들 후하이펑이 총재로 있는 기업이 중국 147개 전 공항에 스캐너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AP보도 같은 건 런민일보에 안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가 지향하는 '조화로운 사회'를 위해선 언론통제가 핵심이다.'
내참... 그럼 11년간 입었다는 허름한 잠바나 밑창이 떨어진 운동화가 정치적 제스처였단 말이야?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그놈이 그 놈, 그 밥에 그 나물, 도토리 키재기, 오십보 백보...' 등등의 말들이 입안을 맴돌면서 씁쓸해지고 만다. 역시 진실은 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진실을 알려면 시간과 공을 들여서 단단하게 싸고 있는 껍데기를 벗겨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 장농안에 10년 쯤 된 옷들이 꽤 있다. 11년 입었다는 원자바오 총리의 잠바가 참 시시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