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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몬의 바다 ㅣ 힘찬문고 15
스콧 오델 지음, 김옥수 옮김, 민애수 그림 / 우리교육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바다. 그 이름만으로도 신비로 가득찬 곳. 비밀을 품고 누워있는 바다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다. 한편으로는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론 신비함 그 자체로 고이 보존하고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야기가 그러한 드넓고 신비한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더 흥미진진했다.
일곱척의 파란 진주잡이 배를 가지고 있는 라몬의 집. 라몬의 아버지는 진주를 채집하고 판매하는 상인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열여섯살의 라몬이 아버지의 진주사업에 동업자가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라몬은 어릴 때부터 쥐가오리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라지만 실제로 있을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 라몬이 쥐가오리 신이 머무는 지역 바다에 들어가 천상의 진주를 캐내면서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다. 원주민 노인 소토 루존의 경고대로 라몬의 아버지는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배 일곱척과 함께 죽음을 맞고, 성당의 마돈나에게 바쳐진 천상의 진주는 비열하고 탐욕스런 허풍쟁이 세빌라노에게 빼앗기고 만다. 세빌라노에게 잡혀서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돌게 된 라몬은 쥐가오리신과 대면한다.
라몬이 자연신(쥐가오리신)의 고유영역 속으로 헤엄쳐들어가 전설의 "천상의 진주"를 손에 쥔 그 댓가에는 라몬이 모험과 도전이라는 과정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도 포함되고 있다. 어른이라는 것이 원래 동화와 신비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그 대신 현실의 무게를 짊어져야 될 수 있는 것이니까. 어른이 된 라몬의 바다는 쥐가오리신이 없는, 그래서 그만큼 신비함이 사라진, 진주를 캘 수 있는 채집의 공간이 되어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내가 어른이 된 날은 내가 살라자르 진주 판매 회사의 동업자가 된 날도, 천상의 진주를 발견한 날도 아니었다. 내가 어른이 된 날은 바로 그 날이었다. " 라는 라몬의 말은 참으로 쓸쓸하게 들린다.
나의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소년의 모험 성장기라기 보다 자연의 신비함을 거칠게 벗겨내고 망가뜨려 놓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와 닿았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세상의 비밀이 모두 벗겨져 버린 것 같은 요즘,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환타지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영화, 문학작품, 음악, 미술, 하다못해 TV 드라마나 만화, 인터넷 게임을 통해서라도.
그러니 비밀은 그냥 비밀로 남아 있어주었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쥐가오리신도 라몬의 엄마 말처럼 "몸통이 라파스 항구에 있는 제일 커다란 배보다 더 커다랗고, 호박색을 띠고 있는 눈은 초승달같이 생겼는데 무려 일곱개나 되고, 입에는 이빨이 일곱 줄이나 달려 있는데 이빨 하나하나가 아빠가 가지고 있는 날카로은 칼보다 크기 때문에 그 이빨로 물으면 뼈가 나무조각처럼 으스러"지는 존재로 남아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 라파스 주민들은 쥐가오리신을 잃은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까 궁금해진다.
우주선이 달에 갔다온 뒤로 우리는 달의 실체를 알게 되었지만, 그 뿐이지 않은가. 우리는 아름다운 계수나무와 떡방아를 찧고 있는 예쁜 토끼 두마리를 분화구가 숭숭 뚫린 삭막한 공간과 바꿔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그게 우리에게 이득이었을까.. 달나라 토끼가 만든 떡은 어떤 떡일까 궁금해하며 입맛다시던 쪽이 훨씬 더 행복했다. 정말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