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나의 고전 읽기 7
박지원 원작, 고미숙 지음, 이부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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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 학생시절 국사교과서 안에서, 또는 국어교과서 안에서 "배운" 인물이다.  이순신장군이나 세종대왕만큼의 정치적 중요도를 갖고 있지 않아서였는지, 연암 박지원은 미이라와 다름 없었다. 

요즘 우리나라 고전문학과 인물에 대한 출판이 활기를 띠면서, 정치적 중요도를 떠나 우리 나라의 과학, 문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빛나는 행보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분들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지고 또 그 분야의 전문가 뿐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과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정말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아이세움 출판사의 '나의 고전 읽기' 시리즈를 선택하기 전에 잠시 망설였었다.  아이세움 출판사는 내게 '보물찾기'나 '살아남기'시리즈 등의 학습만화를 출판하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화를 출판하는 회사에서 '열하일기'를 너무 가볍게 다루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였다. 저자를 보니 고미숙님이었다.  이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을 쓰신 걸로 알고 있고, 연암 박지원에 대한 강의를 곳곳에서 맡고 계시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출판사를 떠나 "이 분이 쓰신 책이라면.."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책이다.   중학생 딸 아이도 언젠가 읽어두어야 할 책이고, 나 또한 언제까지나 연암 박지원을 미이라로 남겨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열하일기 맛보기용으로 딱 좋은 책인 것 같다.  맛보기용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나로서는 좀 미진한 부분이 남는다.  중고등학생들에겐 알맞은 깊이와 내용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함께 구입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기 전에 가볍게 오리엔테이션의 시간을 가졌다 생각하면 억울할 건 없겠지만 연암 박지원과 열하일기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면 다른 책을 좀더 찾아서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중학생 이상의 아이들이 읽기에는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암튼 이 책을 통해 미이라 상태의 연암 박지원을 조금은 깨워놓은 것 같다.  그 경직되고 고지식한 명분중심의 시대에 그처럼 유연하고 막히지 않은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 있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좀 더 연암에 대한 책을 읽으며  내 마음 속의 연암이라는 인물에 뼈와 살이 돋게 하고 피가 돌게 해야 겠단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 고전을 새로이 접할 수 있다는 게 고마울 뿐이다.  부끄럽게도 내 마음 속에는 미이라로 남아 있는 옛 분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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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21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너무 인상적으로 본 기억이 있는지라 많이 궁금한데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하게 되네요.

향기로운 2007-05-2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해지네요..^^

섬사이 2007-05-2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님, 홍수맘님 / 출판된 연암에 관한 책들이 몇 권 있더라구요. 저자 고미숙님은 <나의 아버지 박지원>(박종채 지음, 박희병 옮김, 돌베개), <비슷한 것은 가짜다>(정민, 태학사),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홍대용지음, 김태준 외 옮김, 돌베개), <조선의 협객 백동수>(김영호, 푸른역사),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박지원, 박희병 옮김,돌베개)등을 더 읽어보라고 책 뒷부분에서 추천하고 있어요.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열하일기> 전 3권짜리도 있구요. 관심 있으시면 참고하세요. ^^

향기로운 2007-05-2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참고할게요~^^*

섬사이 2007-05-28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님의 저 웃음마크, 매력적이야요~^^
 
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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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농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국민학교 6학년 시절 장래희망을 의사라고 적어낸 영빈과 광에게 선생님이 어떤 의사가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광은 돈없어 병원에 못가는 사람들을 거저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겠다고 했고 영빈은 돈을 많이 버는 유명한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하면서 시작되었던 거였다.   두번째 농담을 말해줄까?  두번째 농담은 그런 영빈과 광이에게 현금이, 고 나쁜 년이 분홍빛 혀를 날름거리며 자기는 돈많은 의사랑 결혼할 거라고 하고는 나풀거리고 사라진 거였다.

그게 무슨 농담이냐고?  이 책을 읽다보면 사는 게 다 농담같단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깔깔거리고 웃으며 읽을 수있는 우스개책이라고 넘겨집지는 마라.  읽을 수록 엄숙해지고 진지해지는 책이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사가 되겠다던 광은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아들딸 가려 낳게 해주는 재주(?)로 돈 많은 의사가 되었고, 영빈은 A대학병원 과장으로 실력과 학식을 겸비한 의사가 된다.  물론 과장이 될 때까지 고생 무척 많이 하고..  현금은 의사는 커녕 돈 많은 사채업자 아들이랑 결혼했다가 이혼한다.  이게 농담이지, 뭐냐?

처음 농담은 그렇다고 치지만, 세번째 네번째...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농담이 되고 만다.  (그러게, 사는 게 농담이라니까..  ) 영빈의 어머니가 고집스레 남편이 부패한 공무원이 아니었음을 강조하고 도덕적 열등감을 갖는 것도 농담이고,  영빈의 동생 영묘가 그 기구한 운명을 예쁘장한 천사의 얼굴과 영특함으로 포장하고 태어난 것도 농담이다.   영빈이 현금과의 불륜을 아내 수경에게 숨기는 것 또한 인생 속에 끼어든 허망한 농담이고 아내 수경이가 영빈 몰래 아들을 잉태하는 것도 농담같은 음모같지 않냐.
영묘의 남편 송경호의 병과 죽음을 두고 벌이는 송씨 집안의 질펀한 농담 짓거리는 그야말로 농담의 절정이이고 영빈의 형 영준의 재력으로 송회장네 기죽이기는 농담의 카타르시스 아니겠냐?

영빈과 현금의 관계는 서로 속이는 것이 없었지 않냐고?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분명한 농담의 관계도 없었다.  박완서님이 영빈과 현금의 만남을 유열愉悅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확실해진다.  유열 -유쾌하고 기쁨 - 그야말로 농담의 첫째가는 특징이다.  농담은 자고로 무조건 유쾌하고 기뻐야 한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서 영빈은 현금을 만날 때의 무책임과 자유스러움이 좋다고 말한다.  무책임, 자유스러움, 그 가벼움,, 그것 또한 농담의 특징이다.  그러니 영빈의 아내 수경이가 비록 간접적으로라도 영빈과 현금의 관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농담의 관계는 깨져 버리는 거라구.  더이상 유열할 수도 무책임하거나 자유스러울 수도 없으니까.

그러니 책을 덮고 나면 사는 게  다 허망한 농담같을 수밖에... 송경호처럼 마지막 죽는 순간에나 눈 부릅뜨고 인생의 진담을 들어볼 수 있으려나.. ?

어릴 적에 아버지 따라서 이발소에 가면  벽에 걸려 있는 액자가 있었어.  유화물감인지 페인트인지 모를 조악한 색과 필치로 그려진 초가지붕의 물레방앗간 그림이거나 아니면 새끼들에게 다닥다닥 젖을 물리고 누워있는 암퇘지 그림이거나, 아니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푸쉬킨의 시거나....    그래서 난 아직도 키치스러운 느낌의 그림을 볼 때면 "키치스럽다"하지 않고 "이발소 그림같다"고 표현하곤 한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사는 것도 다 이발소 그림같이 보인다.  사는 게 이발소 그림같다면서도 마음은 사뭇 엄숙하고 진지해지는 걸 보면 박완서님의 이야기에서 흘러나오는 주술적 마력이 상당히 세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발소에 붙어 있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던 그 시는 살아가면서 돈 때문에 혹은 인간관계 때문에 아니면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라도 삶이 쳐놓은 농담의 덫에 걸렸을 때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누구라도 이 허망한 농담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억울해하며 사는 것보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에서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며 삶을 마감짓는 쪽으로 살고 싶을 거다.  근데 삶을 즐거운 농담처럼 여길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소풍이 가능한 거 아니겠냐?아무튼 박완서님의 연륜과 깊이가 묻어나는, 참담할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였어. 

그나저나 서로에게 허망한 농담이 되지 않게나 살아봐야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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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 2007-05-2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년 전이네요..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의 의미를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짧은 생각 탓에 겉만 빙빙 돌고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죠. 님의 리뷰를 읽으니..그때 그 답답했던 제 맘이 조금 풀리네요. 다시 한번 이 책을 읽고, 님의 리뷰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섬사이 2007-05-25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allin님, 제 리뷰가 도움이 되셨다니 기쁘네요. 하지만 저건 그냥 제 느낌을 적은 리뷰일 뿐이고 fallin님께는 또 다른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fallin님의 리뷰를 기다려도 될까요? ^^

fallin 2007-05-26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이 책을 읽고 리뷰를 남겼었답니다. 그때..리뷰에 제목에 대한 궁금증을 써놓았었거든요. 섬사이님의 리뷰를 읽으며..그 궁금증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여서 반가운 맘이였어요. 어느것이 정답인지는 몰라도...제겐 반가웠답니다 ^^

섬사이 2007-05-2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군요. 정답이야 없겠지요. 저도 책을 읽고 리뷰를 제 느낌 위주로 쓰다보니까 의도적인 오류에 빠질 위험이 크니까요. 분명히 나도 모르게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있을 거에요. fallin님 리뷰를 찾아서 읽어봐야겠네요.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보면 오류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도 있잖아요. ^^

알맹이 2007-05-30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못 읽고 있던 책인데.. 방학 때 꼭! 읽을 테에요. ^^;

섬사이 2007-05-31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시간은 쪼들리고.. 님도 그러신가 봐요. 저도 읽고 싶은 책은 밀려 있는데 하루에 책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요. ㅠ.ㅠ
 
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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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틈엔가 "결혼"이라는 게 전공필수에서 교양선택 쯤으로 바뀌는 것 같다.  얼마 전 뉴스에도 결혼 연령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며 결혼을 꼭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미혼들의 비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낭만을 짧고 생활은 길다"는 광고문구나 "결혼은 무덤이다"라는 경구를 빌리지 않더라도 결혼이라는 게 사랑의 성공적인 행복한 완결이라는고 볼 수 없다는 걸 모두 인정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데, 그렇다고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은 일처일부의 결혼제도를 무시하고 다른 방법을 과감히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을 가진 사람도 흔치는 않으리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이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이 되는 이유는 일처일부제에 대한 비판때문이라기 보다 내집마련의 어려움과 양육과 직장생활의 병행에 대한 부담, 거기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감당해야하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 여성의 사회적 능력의 신장 등등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이 책은 세 가지 방법으로 결혼을 논한다.  첫번째는 "결혼제도"와 사랑에 대한 사회학적 관점의 고찰.
모노가미, 폴리아모리, 폴리가미, 폴리기니, 폴리안드리, 폴리피델리티 등등의 결혼의 다양한 방식과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종류 - 열정적 사랑, 낭만적 사랑, 합류적 사랑 - 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무슨 사회학 이론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나름 흥미롭긴 했다.

두번째는 축구 이야기다.
사실 개인적으로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아서 책에서 언급되는 세계축구구단의 이름과 축구용어와 선수들의 이름들이 오히려 이야기 진행을 어지럽히는 요소였다.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남녀간에 결혼을 투고 티격태격 벌이는 논쟁보다 이 축구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와 선수와 감독들의 다분히 아포리즘적인 말들에 더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번째는 가장 소설다운 부분, 덕훈과 인아, 그리고 인아의 두번째 남편 재경의 밀고 당기기식 좌충우돌 결혼 이야기.
인아, 참 독특한 매력과 확실한 주관, 그리고 과감한 실천력까지 두루 겸비한 여자다.  그런 인아와 사랑에 빠져 꼼짝없이 폴리가미의 선구자가 되어버린 덕훈과 그런 덕훈을 불안에 떨게 하며 인아의 결혼관에 공조하는 부드러운 심성의 재경의 이야기인데,,,   이 책이 가진 소재와 이야기 서술방식에 대한 새로운 발상이라는 장점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늘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덕훈의 계속되는 징징거림과 넋두리가 책의 중반쯤을 넘어서면서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뭐, 그 징징거림과 넋두리가 관습타파의 어려움과 선구자적 외로움에 대한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   이야기의 구성과 서술을 위해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이 사용된 게 아니라, 주객전도식으로 첫번째와 두번째를 말하기 위해 소설의 형식을 빌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폴리가미, 폴리아모리, 폴리기니 등등의 혁신적인 결혼제도와 뿌리깊은 관습으로 자리잡은 모노가미의 충돌이 분명 핵폭탄만큼이나 위력적인 파괴력을 동반할 것 같건만 덕훈의 투덜거림 몇 번, 인아의 눈물 몇 방울, 재경이의 예의바른 접근과 시도 몇 번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어물쩡어물쩡 넘어가버리는 듯해서 소설 읽은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거기다 결국 뉴질랜드로의 도피가 유일한 해결방안으로 제시된 것도 찜찜함을 더한다. 

내가 뭘 바라는 건가.  소설 한편에 결혼제도의 일대 혁명이라도 일어나기를 기대하겠다는 말인가.  당연히 그건 아니다.  결혼제도를 익숙한 관점에서가 아니라 새롭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한 논의와 선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주인공들을 뉴질랜드로 떠나보낸 작가의 센스도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노가미와 폴리가미가 소설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현실감있게 충돌하지 않는 이 소설을 환타지장르로 분류해야 하는 건 아닌지, 이 책이 소설인지 축구이야기인지 사회학 설명서인지, 아니면 그 셋을 모두 합친 새로운 퓨전 장르인지  잠시 고민하게 되는 건 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뭐, 내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이 책의 작가의 말대로 "아니면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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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7-05-17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이 책일 거라 생각했어요^^*

섬사이 2007-05-1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 특이한 면이 있긴 해요, 그쵸?

알맹이 2007-05-1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저도 향기로운 님과 똑같이 생각했답니다 ^^*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섬사이 2007-05-1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와 결혼의 복잡다난한 과정을 축구와 접목시켰다는, 요란한 광고 덕분인 것 같아요. 여러가지로 파격적이긴 했어요. 소재도 그렇고 서술방식도 그렇구요.

fallin 2007-05-3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는 분이 빌려줬는데...손이 안가네요^^;;; 책읽고 리뷰 다시 읽어볼래요^^

섬사이 2007-05-3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축구얘기가 나오는 걸 알았다면 저도 안읽었을 거예요. 제가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제 경우엔 꼭 읽어보세요, 하고 권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어요.

fallin 2007-06-0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좀 미뤄놔야지 ^^ 제가 귀가 얇아요ㅋㅋㅋ

섬사이 2007-06-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allin님, 저도 귀 얇아요, 제 개인적으론 팔뚝이랑 배둘레가 좀 얄팍해졌으면 좋겠는데..^^ ㅋㅋㅋ~
 

비니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다.  단지로 나서자 "윙~~"거리는 기계음.  놀이터에 가보니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입주자 대표, 동대표, 경비아저씨들까지 모두 나와 나무들 가지를 치고, 울타리처럼 빙 둘러있는 쥐똥나무를 전기톱 처럼 생긴 기계로 다듬고 있었다.  너무 위로 도드라지게 치켜 올라온 가지들이나  옆으로 축 처지게 삐죽 나온 가지들을 잘라내서 맞닿아 크고 있는 쥐똥나무들끼리 키도 몸집도 똑같아지게..

비니가 놀이터에 미끄럼틀도 그네도 방방이도 잊어버리고 한동안 서서 아저씨들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기 처음 이사와서 관리사무소 직원들이랑 경비아저씨들 일하는 걸 보고 관리비에서 일반관리비로 나가는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단지 화단의 풀을 베어내거나 나무 가지를 쳐내는 일들을 모두 용역업체에 맡겼었다.  그런데 지금의 이 아파트에서는 이런 화단 정리 작업은 물론이고 화단에 비료를 주는 일이나 여름에 단지 내 연막소독하는 일까지 전부 관리사무소에서 맡아서 직접 한다.  단지 내 연막소독은 여름이면 비만 오고나면 매번 한다 싶을 정도로 자주 하는 편이다. 그렇게 직영체제(?)의 관리를 해서인지 관리비도 생각했던 것보다 저렴한 편이다.

입주자 대표직을 맡은 분들의 성실함도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우리 동 앞에 있는 소나무들의 가지 하나라도 누렇게 말라죽으면 얼마안가 그에 대한 조치가 들어간다.  누렇게 말라죽은 가지를 쳐내는 건 물론이고, 작년엔 소나무마다 링거를 꽂고 있을 정도였다.  아파트 외부 벽에 에어컨 실외기가 하나도 달려 있지 않은 것도 처음에 인상적이었다.  우리집은 1층이라 화단 한켠에 실외기가 나와있지만 2층 이상의 세대에서는 에어컨 실외기를 모두 베란다 안쪽에 놔두어야 한다.  그래서 아파트 외관이 깔끔해보인다.  이 에어컨 실외기 외부벽 설치 금지도 입주자 대표들이 적극적으로 나섰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암튼, 참 열심히 일해주시는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고(이건 스승의 날, 스승님들께 가져야 할 마음인데) 놀이터에 나온 다른 아줌마, 할머니들과 함께 그분들 일하시는 모습을 잠시 지켜봤었다.

비니와 놀고 집에 들어오고 나서 얼마후 바로 우리 집 앞에서 그 "윙~~~"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베란다에 나가 보니 전기톱을 든 아저씨가 우리집 화단을 울타리처럼 빙 둘러선 쥐똥나무를 또 네모반듯하게 다듬어 내고 있었다. 

갑자기 조마조마해진다.  아저씨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아슬아슬하다.  속으로 '아저씨, 조심하세요, 그 쪽에 산수국 싹이 나오고 있거든요. '  '아저씨, 그 쪽엔 패랭이 씨앗을 심어놓은 곳인데..'  하며 마음을 졸였다.

아저씨가 내 불안한 기색을 눈치채셨는지, 날 돌아다 본다.

"저,,, 아저씨, 저쪽에 아무것도 안 심은 것처럼 보이는 땅에요, 제가 도라지 씨앗을 심어놓았거든요.  요즘 싹이 조그맣게 올라오고 있는 것 같으니까 저쪽으로 가실 때 조심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저 쪽이요?  아, 예.."

열심히 일하시는 분한테 잔소리하며 감시하는 듯해서 너무 죄송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기가 뭐해서 집안으로 들어와 점심 설거지를 마저했다.

요란한 기계음과 아저씨가 사라진 뒤 화단으로 나가보았는데... 허걱~~~  큰꿩의 비름 세포기 중에서 가장 잘 자라고 있는 포기의 줄기 하나가 뚝 부러져 있었다.   아... 가슴이 쓰리다.   부러진 줄기를 부여잡고 이파리 하나하나를 쓰다듬어주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흙을 파고 밑동을 묻어줘본다.  다시 뿌리를 뻗고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다시 일어나 화단을 빙 둘러 보는데 ,,, 허걱~~~~ 금낭화가 뿌리 윗부분이 뎅겅 잘린 채로 누워있다.  아이고`` 이를 어째.. 금낭화 꽃이 달린 줄기가 힘겹게 흐느적거린다.  하늘하늘한 이파리들이 기운을 잃고 축 처져있다.  아.... 가슴이 또 쓰리다.  다시 또 동료들이 모여있는 곳 근처의 흙을 파고 심어주었다.  마찬가지로 다시 뿌리를 뻗고 생명의 끈을 이어가기를 바라면서..

지니랑 뽀도 속상해한다.  아저씨가 나쁘다고 투덜거린다. 

"아저씨도 커다란 톱 들고 열심히 일하시다 보니까 그렇게 된거야. 그 분도 자기 일  열심히 하시다 그런 걸 가지고 나쁘다고 그러면 못쓰지.  아까 보니까 얼굴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더라.  음료수라도 시원한 게 있었으면 한 잔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는 못할 망정 나쁘다 그러면 안되는 거야. " 라고 어른답게, 점잖게, 위엄있게, 사려깊게 꾸짖었다. 

그런데,,, 지니야, 뽀야,  마음이 아프긴 아프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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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7-05-15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속상해요.. 물론 모르고 그러셨겠지만 속상한건 속상한거네요..
질긴 생명력밖에 믿을것이 없네요..

섬사이 2007-05-15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속상해요.. 이제 기다려 봐야지요. 왜 꺾꽂이로 번식하는 꽃나무들이 있잖아요. 금낭화랑 큰꿩의비름도 그 방법이 먹혀들기를 기다려보는 수밖에요..ㅠ.ㅠ

치유 2007-05-15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우는 이들처럼 조심스러움이 덜하는것 같아요..이번주일에 소라아빠도 화분정리하며 몇녀석 날개를 부러뜨려 놓았더군요..보며 안스럽다고 눈길 한번 더 주고 ..
화단에 핀 금낭화가 참 이쁘더이다..아이들의 맘이 참 여리고 이뻐요..

홍수맘 2007-05-16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 속상하네요. 모르고 하신 일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섬사이 2007-05-16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부러진 큰꿩의 비름 이파리들이 마치 파르르 떨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어찌나 가엾고 측은하던지.. ㅠ.ㅠ

홍수맘님, 네, 속상했지만 뭐라 할 수 없었죠. 그 분도 자기가 맡은 일 열심히 하다가 실수하신 게 틀림없는데, 제가 뭐라 할 수 있겠어요... 화단을 볼 때마다 속상한데 어쩔 수 없죠. 살살 마음을 달래야죠, 뭐..
 
어느 할머니 이야기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지음, 세르주 블로흐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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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코트를 입고 한손에는 가방을 한 손에는 우산을 든 할머니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그림을 만난다.  연필로 그린 것인지, 콘테로 그린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흑백의 톤으로 작고 왜소하게.. 세상에서 몇발자국 물러서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다음 장을 펼치면 시장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수채화로 맑게 채색된 그림 속에서 할머니를 찾는다.  아, 가운데 아랫부분, 빨간 코트를 입은 할머니가 시장가방에 물건을 담으려 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가 독자에게 이 할머니를 소개해주는 듯한 문체로 쓰여져 있다.  할머니는 아파서 힘들고 관절염 때문인지 신경통 때문인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걷는 것도 힘에 겨운 일흔 다섯살의 할머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할머니의 과거와 현재 속을 오갈 수 있다.  책을 좋아했지만 이제 눈이 좋지 않아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바느질도 뜨개질도 수놓기도 손이 말을 안들어서 할 수가 없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는 일조차도 힘에 겹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도 자기 가정을 꾸리느라 가끔 차 마시러나 들르는 쓸쓸한 집에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하면 된다고." 

그런 할머니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할머니가 "수많은 이야기들과 수많은 시들, 수많은 걱정들 그리고 한 줌의 농담으로 치장한 자기 얼굴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당신의 얼굴에 생긴 주름살에 대해  "어떤 건 재미있는 얘기들 때문에 생겼고, 어떤 건 힘들었던 날들의 눈물과 근심 때문에 생겼지.  어떤 주름들은 또 부드러운 사랑의 흔적이란다."하며 애정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건 곧 당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애정과 같은 것이기에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주름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것일게다.   비록 "세상의 사탕이란 사탕을 다 모아도 마음의 상처 때문에 생기는 쓴 맛을 없앨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더라도 말이다.

"힘든 시절을 견딜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좋은 날을 맞이 할 수 없다는 걸, 깜짝 선물과도 같은 기쁜 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터득한 이 할머니의 삶의 추억들이 잔잔한 물결처럼 마음을 적신다.

"할머니, 다시 한 번 젊어지면 좋으시겠어요?"라는 손자들의 질문에 생각할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이 할머니는 "아니, 내 몫의 젊음을 살았으니 이젠 늙을 차례야.  내 몫의 케이크를 다 먹어서 나는 배가 불러."라고 대답한다. 

할머니의 대답에 이어 작가는

  "할머니는 아름다운 경치도 보았고 험난한 길도 보았어.  할머니의 여행은 힘들기도 했고 달콤하기도 했지.  할머니는 똑같은 길을 다시 가고 싶지 않아.  게다가 할머니는 길이라는 건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거든.  자기가 선택하는 길 말이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하고 묻는다.

갑자기 슬퍼진다.  나도 모르게 눈 앞이 흐려진다.  삶이, 하루하루가 새털처럼 가벼웠던 나날들을 지나서 여기 이만큼 와버린 내 모습을 만난다.  내 몫의 케이크를 먹으며 그 맛을 제대로 느끼고나 살아왔는지,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내 주름살에 대해, 내 삶에 대해 애정을 갖고 돌아볼 수 있을지.. 그래서 :"이제 난 배가 불러"라고 말할 수 있을지..

할머니가 삶을 통해서 얻게 된 지혜들이, 그리고 언젠간 우리도 책 속에서 만난 이 할머니처럼 늙어가리라는 생각에 잔잔한 감동과 씁쓸함을 함께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초등학생들 뿐아니라 청소년들에게도 읽히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어른들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아름다운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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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15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동화에 대한 아름다운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

섬사이 2007-05-1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관심을 갖고 읽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