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니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다. 단지로 나서자 "윙~~"거리는 기계음. 놀이터에 가보니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입주자 대표, 동대표, 경비아저씨들까지 모두 나와 나무들 가지를 치고, 울타리처럼 빙 둘러있는 쥐똥나무를 전기톱 처럼 생긴 기계로 다듬고 있었다. 너무 위로 도드라지게 치켜 올라온 가지들이나 옆으로 축 처지게 삐죽 나온 가지들을 잘라내서 맞닿아 크고 있는 쥐똥나무들끼리 키도 몸집도 똑같아지게..
비니가 놀이터에 미끄럼틀도 그네도 방방이도 잊어버리고 한동안 서서 아저씨들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기 처음 이사와서 관리사무소 직원들이랑 경비아저씨들 일하는 걸 보고 관리비에서 일반관리비로 나가는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단지 화단의 풀을 베어내거나 나무 가지를 쳐내는 일들을 모두 용역업체에 맡겼었다. 그런데 지금의 이 아파트에서는 이런 화단 정리 작업은 물론이고 화단에 비료를 주는 일이나 여름에 단지 내 연막소독하는 일까지 전부 관리사무소에서 맡아서 직접 한다. 단지 내 연막소독은 여름이면 비만 오고나면 매번 한다 싶을 정도로 자주 하는 편이다. 그렇게 직영체제(?)의 관리를 해서인지 관리비도 생각했던 것보다 저렴한 편이다.
입주자 대표직을 맡은 분들의 성실함도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우리 동 앞에 있는 소나무들의 가지 하나라도 누렇게 말라죽으면 얼마안가 그에 대한 조치가 들어간다. 누렇게 말라죽은 가지를 쳐내는 건 물론이고, 작년엔 소나무마다 링거를 꽂고 있을 정도였다. 아파트 외부 벽에 에어컨 실외기가 하나도 달려 있지 않은 것도 처음에 인상적이었다. 우리집은 1층이라 화단 한켠에 실외기가 나와있지만 2층 이상의 세대에서는 에어컨 실외기를 모두 베란다 안쪽에 놔두어야 한다. 그래서 아파트 외관이 깔끔해보인다. 이 에어컨 실외기 외부벽 설치 금지도 입주자 대표들이 적극적으로 나섰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암튼, 참 열심히 일해주시는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고(이건 스승의 날, 스승님들께 가져야 할 마음인데) 놀이터에 나온 다른 아줌마, 할머니들과 함께 그분들 일하시는 모습을 잠시 지켜봤었다.
비니와 놀고 집에 들어오고 나서 얼마후 바로 우리 집 앞에서 그 "윙~~~"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베란다에 나가 보니 전기톱을 든 아저씨가 우리집 화단을 울타리처럼 빙 둘러선 쥐똥나무를 또 네모반듯하게 다듬어 내고 있었다.
갑자기 조마조마해진다. 아저씨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아슬아슬하다. 속으로 '아저씨, 조심하세요, 그 쪽에 산수국 싹이 나오고 있거든요. ' '아저씨, 그 쪽엔 패랭이 씨앗을 심어놓은 곳인데..' 하며 마음을 졸였다.
아저씨가 내 불안한 기색을 눈치채셨는지, 날 돌아다 본다.
"저,,, 아저씨, 저쪽에 아무것도 안 심은 것처럼 보이는 땅에요, 제가 도라지 씨앗을 심어놓았거든요. 요즘 싹이 조그맣게 올라오고 있는 것 같으니까 저쪽으로 가실 때 조심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저 쪽이요? 아, 예.."
열심히 일하시는 분한테 잔소리하며 감시하는 듯해서 너무 죄송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기가 뭐해서 집안으로 들어와 점심 설거지를 마저했다.
요란한 기계음과 아저씨가 사라진 뒤 화단으로 나가보았는데... 허걱~~~ 큰꿩의 비름 세포기 중에서 가장 잘 자라고 있는 포기의 줄기 하나가 뚝 부러져 있었다. 아... 가슴이 쓰리다. 부러진 줄기를 부여잡고 이파리 하나하나를 쓰다듬어주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흙을 파고 밑동을 묻어줘본다. 다시 뿌리를 뻗고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다시 일어나 화단을 빙 둘러 보는데 ,,, 허걱~~~~ 금낭화가 뿌리 윗부분이 뎅겅 잘린 채로 누워있다. 아이고`` 이를 어째.. 금낭화 꽃이 달린 줄기가 힘겹게 흐느적거린다. 하늘하늘한 이파리들이 기운을 잃고 축 처져있다. 아.... 가슴이 또 쓰리다. 다시 또 동료들이 모여있는 곳 근처의 흙을 파고 심어주었다. 마찬가지로 다시 뿌리를 뻗고 생명의 끈을 이어가기를 바라면서..
지니랑 뽀도 속상해한다. 아저씨가 나쁘다고 투덜거린다.
"아저씨도 커다란 톱 들고 열심히 일하시다 보니까 그렇게 된거야. 그 분도 자기 일 열심히 하시다 그런 걸 가지고 나쁘다고 그러면 못쓰지. 아까 보니까 얼굴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더라. 음료수라도 시원한 게 있었으면 한 잔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는 못할 망정 나쁘다 그러면 안되는 거야. " 라고 어른답게, 점잖게, 위엄있게, 사려깊게 꾸짖었다.
그런데,,, 지니야, 뽀야, 마음이 아프긴 아프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