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머니 이야기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지음, 세르주 블로흐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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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코트를 입고 한손에는 가방을 한 손에는 우산을 든 할머니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그림을 만난다.  연필로 그린 것인지, 콘테로 그린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흑백의 톤으로 작고 왜소하게.. 세상에서 몇발자국 물러서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다음 장을 펼치면 시장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수채화로 맑게 채색된 그림 속에서 할머니를 찾는다.  아, 가운데 아랫부분, 빨간 코트를 입은 할머니가 시장가방에 물건을 담으려 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가 독자에게 이 할머니를 소개해주는 듯한 문체로 쓰여져 있다.  할머니는 아파서 힘들고 관절염 때문인지 신경통 때문인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걷는 것도 힘에 겨운 일흔 다섯살의 할머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할머니의 과거와 현재 속을 오갈 수 있다.  책을 좋아했지만 이제 눈이 좋지 않아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바느질도 뜨개질도 수놓기도 손이 말을 안들어서 할 수가 없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는 일조차도 힘에 겹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도 자기 가정을 꾸리느라 가끔 차 마시러나 들르는 쓸쓸한 집에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하면 된다고." 

그런 할머니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할머니가 "수많은 이야기들과 수많은 시들, 수많은 걱정들 그리고 한 줌의 농담으로 치장한 자기 얼굴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당신의 얼굴에 생긴 주름살에 대해  "어떤 건 재미있는 얘기들 때문에 생겼고, 어떤 건 힘들었던 날들의 눈물과 근심 때문에 생겼지.  어떤 주름들은 또 부드러운 사랑의 흔적이란다."하며 애정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건 곧 당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애정과 같은 것이기에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주름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것일게다.   비록 "세상의 사탕이란 사탕을 다 모아도 마음의 상처 때문에 생기는 쓴 맛을 없앨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더라도 말이다.

"힘든 시절을 견딜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좋은 날을 맞이 할 수 없다는 걸, 깜짝 선물과도 같은 기쁜 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터득한 이 할머니의 삶의 추억들이 잔잔한 물결처럼 마음을 적신다.

"할머니, 다시 한 번 젊어지면 좋으시겠어요?"라는 손자들의 질문에 생각할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이 할머니는 "아니, 내 몫의 젊음을 살았으니 이젠 늙을 차례야.  내 몫의 케이크를 다 먹어서 나는 배가 불러."라고 대답한다. 

할머니의 대답에 이어 작가는

  "할머니는 아름다운 경치도 보았고 험난한 길도 보았어.  할머니의 여행은 힘들기도 했고 달콤하기도 했지.  할머니는 똑같은 길을 다시 가고 싶지 않아.  게다가 할머니는 길이라는 건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거든.  자기가 선택하는 길 말이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하고 묻는다.

갑자기 슬퍼진다.  나도 모르게 눈 앞이 흐려진다.  삶이, 하루하루가 새털처럼 가벼웠던 나날들을 지나서 여기 이만큼 와버린 내 모습을 만난다.  내 몫의 케이크를 먹으며 그 맛을 제대로 느끼고나 살아왔는지,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내 주름살에 대해, 내 삶에 대해 애정을 갖고 돌아볼 수 있을지.. 그래서 :"이제 난 배가 불러"라고 말할 수 있을지..

할머니가 삶을 통해서 얻게 된 지혜들이, 그리고 언젠간 우리도 책 속에서 만난 이 할머니처럼 늙어가리라는 생각에 잔잔한 감동과 씁쓸함을 함께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초등학생들 뿐아니라 청소년들에게도 읽히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어른들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아름다운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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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15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동화에 대한 아름다운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

섬사이 2007-05-1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관심을 갖고 읽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