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틈엔가 "결혼"이라는 게 전공필수에서 교양선택 쯤으로 바뀌는 것 같다.  얼마 전 뉴스에도 결혼 연령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며 결혼을 꼭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미혼들의 비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낭만을 짧고 생활은 길다"는 광고문구나 "결혼은 무덤이다"라는 경구를 빌리지 않더라도 결혼이라는 게 사랑의 성공적인 행복한 완결이라는고 볼 수 없다는 걸 모두 인정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데, 그렇다고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은 일처일부의 결혼제도를 무시하고 다른 방법을 과감히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을 가진 사람도 흔치는 않으리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이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이 되는 이유는 일처일부제에 대한 비판때문이라기 보다 내집마련의 어려움과 양육과 직장생활의 병행에 대한 부담, 거기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감당해야하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 여성의 사회적 능력의 신장 등등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이 책은 세 가지 방법으로 결혼을 논한다.  첫번째는 "결혼제도"와 사랑에 대한 사회학적 관점의 고찰.
모노가미, 폴리아모리, 폴리가미, 폴리기니, 폴리안드리, 폴리피델리티 등등의 결혼의 다양한 방식과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종류 - 열정적 사랑, 낭만적 사랑, 합류적 사랑 - 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무슨 사회학 이론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나름 흥미롭긴 했다.

두번째는 축구 이야기다.
사실 개인적으로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아서 책에서 언급되는 세계축구구단의 이름과 축구용어와 선수들의 이름들이 오히려 이야기 진행을 어지럽히는 요소였다.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남녀간에 결혼을 투고 티격태격 벌이는 논쟁보다 이 축구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와 선수와 감독들의 다분히 아포리즘적인 말들에 더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번째는 가장 소설다운 부분, 덕훈과 인아, 그리고 인아의 두번째 남편 재경의 밀고 당기기식 좌충우돌 결혼 이야기.
인아, 참 독특한 매력과 확실한 주관, 그리고 과감한 실천력까지 두루 겸비한 여자다.  그런 인아와 사랑에 빠져 꼼짝없이 폴리가미의 선구자가 되어버린 덕훈과 그런 덕훈을 불안에 떨게 하며 인아의 결혼관에 공조하는 부드러운 심성의 재경의 이야기인데,,,   이 책이 가진 소재와 이야기 서술방식에 대한 새로운 발상이라는 장점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늘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덕훈의 계속되는 징징거림과 넋두리가 책의 중반쯤을 넘어서면서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뭐, 그 징징거림과 넋두리가 관습타파의 어려움과 선구자적 외로움에 대한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   이야기의 구성과 서술을 위해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이 사용된 게 아니라, 주객전도식으로 첫번째와 두번째를 말하기 위해 소설의 형식을 빌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폴리가미, 폴리아모리, 폴리기니 등등의 혁신적인 결혼제도와 뿌리깊은 관습으로 자리잡은 모노가미의 충돌이 분명 핵폭탄만큼이나 위력적인 파괴력을 동반할 것 같건만 덕훈의 투덜거림 몇 번, 인아의 눈물 몇 방울, 재경이의 예의바른 접근과 시도 몇 번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어물쩡어물쩡 넘어가버리는 듯해서 소설 읽은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거기다 결국 뉴질랜드로의 도피가 유일한 해결방안으로 제시된 것도 찜찜함을 더한다. 

내가 뭘 바라는 건가.  소설 한편에 결혼제도의 일대 혁명이라도 일어나기를 기대하겠다는 말인가.  당연히 그건 아니다.  결혼제도를 익숙한 관점에서가 아니라 새롭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한 논의와 선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주인공들을 뉴질랜드로 떠나보낸 작가의 센스도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노가미와 폴리가미가 소설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현실감있게 충돌하지 않는 이 소설을 환타지장르로 분류해야 하는 건 아닌지, 이 책이 소설인지 축구이야기인지 사회학 설명서인지, 아니면 그 셋을 모두 합친 새로운 퓨전 장르인지  잠시 고민하게 되는 건 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뭐, 내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이 책의 작가의 말대로 "아니면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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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7-05-17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이 책일 거라 생각했어요^^*

섬사이 2007-05-1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 특이한 면이 있긴 해요, 그쵸?

알맹이 2007-05-1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저도 향기로운 님과 똑같이 생각했답니다 ^^*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섬사이 2007-05-1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와 결혼의 복잡다난한 과정을 축구와 접목시켰다는, 요란한 광고 덕분인 것 같아요. 여러가지로 파격적이긴 했어요. 소재도 그렇고 서술방식도 그렇구요.

fallin 2007-05-3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는 분이 빌려줬는데...손이 안가네요^^;;; 책읽고 리뷰 다시 읽어볼래요^^

섬사이 2007-05-3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축구얘기가 나오는 걸 알았다면 저도 안읽었을 거예요. 제가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제 경우엔 꼭 읽어보세요, 하고 권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어요.

fallin 2007-06-0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좀 미뤄놔야지 ^^ 제가 귀가 얇아요ㅋㅋㅋ

섬사이 2007-06-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allin님, 저도 귀 얇아요, 제 개인적으론 팔뚝이랑 배둘레가 좀 얄팍해졌으면 좋겠는데..^^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