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신비한 능력을 가진 도코노 일족. 그 사는 모습이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으론 무척 고달프고 쓸쓸해 보인다.  두 번째 도코노 이야기 <민들레 공책>을 먼저 읽은 나는 첫 번째 책 <빛의 제국>에서 도코노 일족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넣고’ ‘울리고’ ‘뒤집고’ ‘앞일을 예지하고’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하늘을 날고’ ‘잡초를 제거하고’ ‘불꽃을 피우고’ ‘뮤즈의 음악을 연주’하는 그들의 능력은 이 책 안에서 주목의 목표대상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도코노 일족의 능력은 작가가 자기의 말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쓰인 장치이거나 아니면 작가의 말을 재미있게 감싸는 포장지이지 않을까.

요란스런 유니폼을 입고 악의 무리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영웅적 행위를 만인 앞에 한껏 드러내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과는 다르게 오히려 남의 눈에 띄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고 조용히 움직이는 그들이 굳이 세상 사람들 안에 섞여 살면서 이루려는 게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빛의 제국>에서 도코노 사람들은 어떤 흐름을 타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민들레 공책>에서처럼 역사의 흐름일 수도 있지만, 인연이나 주어진 천명 같은 운명의 흐름이기도 한 것 같다.  이를테면 ‘오셀로 게임’의 에이코와 도키코, 또 ‘잡초 뽑기’의 잡초 뽑는 남자, ‘역사의 시간’과 ‘검은 탑’의 아키코, ‘빛의 제국’과 ‘국도를 벗어나’의 미사키 등이 모두 운명의 흐름 속에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그날이 올 것을 아키코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것 자체는 두렵지 않았다.  그 외에도 깨달은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커다란 흐름 속에 살고 있다는 것.  아득한 시간과 사람들의 행위가 켜켜이 쌓인 위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기라는 존재를 허비할 수 없다는 것.’(p.280)


이 글 속에 작가 온다 리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민들레 공책>에서도 이런 글이 등장했었다.

 
“저는 세계는 보다 극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세찬 물결 같은 것이 있고, 그곳에 던져지기도 하고 뛰어들기도 하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는 물결 가운데 있습니다.  자기도 함께 흘러가기 때문에 물결의 속도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민들레 공책>.p.133)


어쩐지 ‘흐름’과 그 ‘흐름을 타고 가는 인간’이라는 것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 안에 남았다.  생각해볼수록 그 ‘흐름’ 속의 인간이 결코 수동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마치 강물이 수많은 생명체들의 눈부신 생애를 품고 있는 것처럼 우리 개개인은  각각 다른 빛깔의 비늘조각처럼 반짝이며 흐름을 아름답게 만드는 주체적인 존재인 것은 아닐까. 그렇게 우리 모두는 ‘하나는 모든 것 위해서, 모든 건 하나를 위해서, 그리고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병행해서 존재’(p.186) 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 기미코가 말하던 능동적으로 흐름에 합류하는 ‘계속의 힘'(p.183)은 바로 그 흐름을 타면서도 자기의 빛깔을 잃지 않고 반짝이며 모두와 함께 가는 데서 얻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 반짝임을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경고가 사람의 몸에서 잡초가 자라고 세상이 넝쿨과 잡초로 뒤덮이는 이야기 ‘잡초 뽑기’나 인간이 갑자기 갖가지 식물을 섞어놓은 듯한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이야기 ‘오셀로 게임’인 것 같다.  사람을 흉측한 괴물이나 짐승으로 변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온다 리쿠는 왜 사람의 몸에 잡초가 돋고 딸기로 변하고 입에서 양치류 잎사귀가 뻗어 나온다는 설정을 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가 식물의 수동적 이미지에서 생각이 멈췄다. 

 

그래, 어쩌면 그것은 자기만의 빛깔을 잃고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그저 ‘흐름’ 위를 부유하는 인간, 심지어 선한 ‘흐름’을 역행하는 악에 대한 상징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사람의 몸에 돋아난 잡초는 ‘분명히 존재하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p.209)이고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p.212)이라고 묘사된다.  그리고는 “매일을 소중하게 살아.  눈을 크게 뜨고, 귓속도 깨끗하게 후비고.  시야 끄트머리에서 일어나는 일도 놓치지 마. 그러면 자네 등에는 잡초가 안 나.  잡초가 안 나는 사람이 세상에 난 잡초를 뽑을 거야.”(p.215)라고 충고의 말을 던져 놓는 것이다.

흐름. 그 흐름을 타고 반짝이며 흘러가는 개개인의 소중한 삶. 그 모두를 오래도록 지켜보고 보살펴온 두루미 선생이 있다. 장수長壽의 능력을 타고난 두루미 선생은 흐름을 여행한 내가 돌아갈 고향 같은 이미지의 인물이다. 실제로 <빛의 제국>에서 회귀, 돌아감에 대한 글이 보인다.  회귀의 그 곳은 기억의 원천인 것 같기도 하고 따뜻하고 평화스런 고향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그 곳엔 ‘본연의 나’ 또는 ‘치유된 나’가 있다. 

이 책에서 회귀는 흐름의 역행이 아니다.  흐름의 끝이 곧 나의 회귀의 장소인 동시에 새로운 흐름의 시작이다.  환생한 미사키가 두루미 선생으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는 곳이며(‘국도를 벗어나’) 야스히코가 자신의 사랑과 상실을 동시에 깨닫고 본연의 나를 발견하는 장소(‘다루마 산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두루미 선생이 데라사키 교지로에게 나타나 “응. 난 늘 있다네.  어디에나 있어.  늘 자네들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디선가 또 만날 일이 있겠지.”(p.133)라고 말했듯이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장소(‘편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지금 사는 곳하고 내가 돌아갈 곳을 향해 기도’(p.299)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흘러가야 하는 것일 게다.  언젠가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참 평화롭고 따스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제 세 번째 이야기 <엔드 게임>이 남았다.  ‘오셀로 게임’의 에이코와 도키코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하는데 기대가 된다.  도코노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로 끝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쩐지 낚였다든가 말려들었다는 기분이 든다.  요즘 계속 일본작가의 책을 읽게 되는데, 일본에 부는 한류열풍보다 우리나라에 부는 일본문화의 열풍이 훨씬 크고 거세다는 느낌이다.  문화의 교류라는 건 좋은 거지만, 일본의 문화에 우리의 문화가 잠식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위기감이 들기도 한다. 

사족 하나. 
이 책을 읽다가 발견한 글.
“거울을 봐라. 지금 자기가 얼마나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잘 봐둬.  자기가 지금 얼마나 시시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지? 응? 안그러냐? 그야 세상에는 시시한 사람이 수두룩해.  그런 사람들 때문에 네가 불쾌한 일을 많이 당한 것도 인정하마.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시시한 사람이 되어도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  그런 건 누구보다도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냐?‘ (p.150)
이 글을 탈레반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족 둘.
얼마 전 오쿠타 히데오의 <오!수다>를 읽었다.  거기서 작가와 나 사이에 민족감정의 마찰이라는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했는데 이 책에서 온다 리쿠의 자국 역사에 대한 부끄러움을 담고 있는 부분이 보여서 오쿠타 히데오와의 마찰 경험을 상쇄했다. ‘빛의 제국’에서 온다 리쿠는 전쟁 중에 사람을 죽이기 위해 생체실험을 하는 자국의 잔인한 역사를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반전이라든가 평화라든가 하는 메시지가 강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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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02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족 하나,에도 추천합니다, 섬사이님 ^^

섬사이 2007-08-03 05: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비로그인 2007-08-0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이거 일본서점에서 봤어요! (한동안 이런 말 하고 다닐것 같다는 느낌이....^^;;; 용서하시와요)

섬사이 2007-08-07 23:49   좋아요 0 | URL
일본여행은 즐거우셨어요? 그리고 일본 소설을 일본 서점에서 보신 게 뭐가 미안하시다고 용서하라 하세요? ^^ ㅋㅋ
 
민들레 공책 도코노 이야기 2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부드러운 동양적 판타지,  요란스럽지 않고 고요하며 순수하고 따스하고 아련한 느낌을 주는 글이었다.  이 책을 나보다 앞서 읽은 딸은 글이 너무 ‘나긋나긋하다.’고 표현해서 내 공감을 얻었다.  

소설의 앞부분을 읽을 때 내 머리 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들은 그림이 고운 순정만화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과 소피가 공중산책을 하는 장면을 보는 느낌과 비슷했다. (공중 산책하는 장면이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조차도 어쩌면 그렇게 만화적이던지, 하긴 판타지니까....,하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일본은 판타지 영역마저도 이렇게 밝고 아기자기하고 공손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첫 부분, ‘어느 시대든 새로운 것은 배를 저어 나아가는 바다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연다.  이 비유적 표현은 서서히 주변 열강들에게서 근대화를 강요받기 시작하는,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다는 기대와 함께 두려움과 불안이 공존하는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인데, 소설에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커다란 축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두 사람, 전통 일본화에 염증을 느끼고 서양화를 공부하는 시나와 일본 전통 예술을 고수하는 불상을 조각하는 불사 에이케이는 개방과 전통이라는 양립되는 개념이 충돌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지만 작중화자의 역할을 담당한 미네코는 “두 분 사이에 어떤 심오한 것이 오갔다”(p.56)고 하면서 그것이 “험악한 것이 아니라 정감 넘치는 진실한 것”(p.56)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작가는 개방화, 근대화의 거센 물결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밀려난 전통문화에 대한 안쓰러운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이 시선은 마키무라 집안의 병약하고 아름다운 아가씨 사토코를 통해서 드러나는데 사토코는 전통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에이케이에 대한 사모의 시선을 거두지 않으며 종국엔 ‘마을을 지킨다.’는 가문의 사명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일에 절정의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전통에 대한 애정,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빠르게 잊혀져가는 정신적 가치들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부분이었다.

‘역사의 물결은 개인의 삶을 난폭하게 휘저으며 흘러간다.’ 라는 주제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어느 시대에도 혼란은 있었고, 세계는 늘 어딘가에서 이어져 있었네.  하지만 앞으로는 전혀 다른 의미의 혼란이 일어날 테지.  세계는 보다 가까워지고 보다 좁아지고 있어.  어딘가에서 태풍이 발생하면 바람을 피할 수 없게 돼.  세계는 일련탁생이 되어가고 있는 걸세“(p.87 一連托生 죽은 뒤에 극락정토에서 같은 연꽃 위에 다시 태어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선악이나 결과에 대한 예견에 관계없이 끝까지 행동과 운명을 함께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네이버 사전)라는 도코노 일족인 요타로의 말이라든가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아픔을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으로 대신하는 이케하타의 기행, 마지막 미네코가 전하는 에필로그 같은 부분 등이 그것이다.

 

 

역사의 거대한 힘 앞에 나약하고 무력한 개인의 가치와 꿈이 지켜지고 간직되었으면 하는 희망이 도코노 일족의 ‘넣을 수 있고 울릴 수 있는’ 판타지적 능력을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네코는 “그분들이 저희들의 마음을 남겨줄 것이다. 저희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지 깨달은 것입니다.”(P.273)라고 말한다. 도코노 일족의 그런 능력과 방법으로 개인의 가치와 꿈, 삶의 이유들이 지켜지고 따뜻한 연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내가 도코노 일족이 아닌 다음에야 그게 가능할까?

소설의 뒷부분은 다분히 최루적인 내용이고 감성을 자극하는 문체로 엮어진다. 너무 감상적이다, 하고 내 이성적 부분이 판결을 내리고, 이런 최루적인 감상에 대책 없이 빠져드는 건 유치한 일이라고 경고하는데도 불구하고 콧등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게다가 미네코는 미약하기 짝이 없는 개인의 힘으로 ‘만들어나갈 나라가 정말 있기는 할까요?’(P.280)라고 묻는다. 더 나아가 도코노 일족에게 ‘저희가 이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지’(P.281)를 물어보고 싶어 한다. 개인의 순수와 꿈이 존중되고 보호되는 나라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의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낸 날들 중에 지인의 첫 번째 기일이 있었다.  지인의 묘소 주변에는 한창 바쁜 여름날의 개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개미들은 무심하게 내딛는 우리의 발걸음에, 또는 의도적인 발짓에 희생되었다. 마치 인간 개인이 역사의 횡포에 희생되는 것처럼.

묘소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인간의 장례나 제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만이 죽음을 기억하려 애를 쓴다.  이미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이들의 끝나버린 삶을 남아서 살아 있는 이들은 놓치지 않으려고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형식과 절차를 전통과 관습이라는 도구로 묶어 놓았다.  인간의 영혼만이 숭고한 것일까, 그렇다면 묘소 앞에서 희생된 그 개미들은? 인간만이 숭고한 영혼을 지녔기에 그래서 우리는 떠나버린 영혼까지도 정성을 기울여 보살피려는 것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다보니 지인의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도코노 일족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런 절차와 형식을 통해 그 지인의 삶과 마음을 우리 마음의 서랍 안에 넣어두고 간직하며 오래도록 울릴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인간이란 ‘타인은 볼 수 있지만, 자기 자신만은 절대로 볼 수 없는 존재’(P.181)이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할 수 없고, 따라서 서로 타인의 기억 속에 저장되기를 본능적으로 간절히 소망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은 도코노 일족의 “넣고 울리는” 능력과 비슷한 ‘기억’이라는 능력을 통해 따스한 연대를 이루고 서로를 지켜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약간 씩은 도코노 일족의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하고 그 능력을 발휘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도 들었다.

판타지의 홍수 속에서 고요하고 부드러운 동양적 판타지를 만나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판타지 소설이지만 이 소설 안에는 맞서 싸워 이겨야할 괴물도 없고 목숨을 걸고 대항해야만 하는 악마적 존재도 없다.  그런 면에서 여성적 판타지라는 생각도 든다.  도코노 이야기 첫 번째인 <빛의 제국>과 <엔드 게임>을 주문해놓고 배송되어오기를 즐겁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  오타 발견 : P.53  '어차피 나는 셋째 아들이라 가어을 이으려야 이를 수도 없지만.'
                               '
이을 수도 없지만.’ 으로 교정해야 할 듯. 
 **   의문 ; ‘빵’이라든가 ‘홀’같은 외래어 등을 굵은 글씨로 인쇄해 놓았다.  아마도 외래어 표기를 가타가나로 표기하는 일본글을 옮기면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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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 책입니다. 잔잔한 분위기에 술술 읽히는 책이에요.^^
민들레 공책에 대한 전체적인 평이 별로여서 후회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약간 걱정스러웠는데.. 마음이 놓이네요.ㅎㅎ 귀가 얇은지 읽으면서도 다른 분들의 의견에 마음이 왔다리 갔다리 하네요.ㅋ 이책 읽고 빛의 제국과 앤드 게임 시작해야 겠군요.
지인의 명복을 빕니다.

섬사이 2007-08-02 11:22   좋아요 0 | URL
짱돌이님, 반갑습니다. 처음 뵙는 것 같아요. 온다 리쿠의 책들 중에 처음 읽은 책인데 뭐 그렇게 아주 나쁘진 않았어요. 너무 감상적이랄까,, 하는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것도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래요.
그리고 지인의 명복을 빌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 수다 - 나를 서재 밖으로 꺼내주시오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진원 옮김 / 지니북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위해 먼저 <공중그네>를 읽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중그네>에 대해 참 많은 서평들이 올라왔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아직까지 이유 없이 미루고 딴청을 부렸었다.  그런데 <오! 수다>란 책이 나에게 떨어지자, 이 작가의 대표작품 하나 읽지 않고서 작가의 여행기를 덥석 잡아 읽는다는 게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래,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단 <공중그네>부터 읽는 게 순서다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길 참 잘했다. 만약 <공중그네>를 읽지 않고 <오! 수다>를 읽었더라면 작가 스타일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너무 싱겁고 가볍다고 여겼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공중그네>의 유쾌함이 <오! 수다>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라부와 함께 여행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공중그네>를 사전에 읽어둔 덕이다.

오쿠타 히데오의 글은 솔직하고 담백하고 즐겁다.  작가랍시고 잔뜩 폼 잡고 위엄을 부리며 유식을 자랑하는 일 따위 하지 않는다. 그냥 편한 마음으로 그를 따라 나서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만 생각하면 착각이다. 꽤 진지한 사안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니까.

작가의 일상적인 면모와 취향을 엿보는 게 즐거웠다면 관음증 환자라고 오해받을까? 일본 삼경 중 하나라는 비경을 눈앞에 두고도 괭이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져 주는 재미에 몰입하는 모습이나 갑판에서 멋진 바다 풍경에 취해서 껑충거리며 춤을 추는 장면,  고토에서 지네에 물린 상처를 치료받으러 병원에 가서는 미녀 의사에게 반해서 마음으로만 작업 멘트를 날리는 거라든가, 칼로리를 걱정하면서도 식탐을 이기지 못해 변비에 걸려서도 과식하는 모습, 겨울 혹독한 추위가 몰아친 여행지에서 눈싸움도 하고 빙판 위에서 미끄럼을 타며 즐기는 모습들은 작가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작가로서의 특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은근한 서운함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투정부리고 여행에 동행한 사진가들이 날씨 때문에 촬영에 곤란을 겪자 “글을 쓰는 작업은 그다지 제약이 없고 편하다. 얼마든지 거짓말을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잔뜩 흐린 하늘을 청명한 하늘이라고 얼버무릴 수 있는 멋진 작업이다.”(p.102)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나 여행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항해 시대인 19세기까지다.  그 이후에는 불필요한 대중화가 진행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맹렬하게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도로만 혼잡해질 뿐이다.  자연만 파괴될 뿐이다. 저 야마모토 나츠히꼬 선생도 말하지 않았나.  여행을 떠난다고 당나귀가 말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고...”(p.67) 하면서 여행에 대해 독설을 퍼붓다가도 “여행은 비뚤어진 마음을 정화시켜 주며, 자신의 성격까지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멀리 여행을 떠나 솔직해지고 싶다.”(p.69) 또는 “여행의 효용은 지방을 알고 겸허해지는 것이다.  평소에는 오만하므로.”(p.221) 하면서 여행의 가치를 드높이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양쪽 모두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하는 자, 길 위에 있는 자의 마음과 생각이 어떠냐에 따라서 여행의 질과 가치는 다르게 변화할 테니까.

정답은 없고 결단만이 필요할 뿐이라는 원자력발전소문제와  국제 보호 조류인 따오기를 보며 느끼는 인위적인 야생동물 보호의 필요 여부 문제, 그리고 사도 지방의 전통 축제를 통해 글로벌리즘의 허황됨에 대해 성토하는 부분들에서는 사뭇 숙연해지기도 한다. 진지하게 따지고 들었다면 오히려 식상했을 수도 있으련만, 오쿠타 히데오는 그런 민감하고 심각한 문제들을 간단하게 툭툭 치고 지나칠 뿐이다.  완전히 이라부 수법이군, 했다. 문제를 툭 던져놓고는 나머지는 니들이 알아서 생각해봐라, 하는 식이다.

이 책을 읽다가 삐걱대는 부분이 조금 있긴 했다.  그건 오쿠타 히데오가 일본인이고 나는 한국인이라는, 어쩔 수 없는 민족적 견해 차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오쿠타 히데오의 이런 글,
“내가 왜구의 후예라면 큰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역사를 현재의 기준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5백 년도 더 전에 카미고토에는 드넓은 저 바다로 배를 저어 나간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다.”(p.108)
이게 무슨 소리야, 싶었다. 노략질을 일삼고 선량한 타국의 백성들을 납치했으며 온갖 만행을 저지른 왜구의 후예라는 걸 자랑스러워 할 거라는 게.. 그렇다면 독일국민은 나치의 후예라는 걸 자랑스러워해야겠군, 하며 빈정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물론 자국의 역사에 대해 그 나라의 국민들은 긍정적인 견해와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왜구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해왔던 나라의 후예의 입장에서 나는 절대로 납득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또 하나, 작가가 부산 여행길에서 때밀이 관광을 하는 장면이다.  알몸으로 누워 때를 밀면서 “전라의 자세는 비참한 자세”(p.197)이고 그런 자세로 누워 다른 사람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한 것 같아서 줄곧 마음이 편치 않았다.”(p.197)고 말한다. 때밀이 젊은이의 손이 몇 번이나 일행 중 한 사람의 그곳을 스쳤다면서 때밀이 청년들을 “게이 잡지 <장미족> 분위기의 청년”(p.196)으로 몰아가는 데는 좀 흥분되기도 했다. 

인간의 존엄성 훼손 좋아하네, 731부대와 마루타, 위안부 얘기는 들어보셨나, 하면서 공연히 부아가 났다. 
하나 더 이야기 할까.. 후쿠라는 곳은 우리 한반도와 아주 근접해 있어서 “제주도가 바로 옆”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차량 라디오를 틀면 깨끗한 한국어 방송이 튀어나온다나..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바로 뒤에 덧붙인 말, “하지만 이곳은 일본 땅이므로 영토권 주장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p.75)  독도 문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덤터기를 쓰고 벌레 씹은 기분이랄까.

그런 민감한 민족적 정서와 입장의 차이에서 오는 껄끄러움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민감한 글들을 통해서 일본의 극우세력은 아닐 듯한 오쿠타 히데오를 통해 일반적인 일본 국민의 의식을 들여다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하나, 내가 일본 지리(일본이 4개의 커다란 섬으로 되어있다는 것 말고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나 여행지, 음식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하다는 게 좀 아쉬웠다.  일본 지명이나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에 제대로 공감할 수만 있었다면 책 읽는 재미가 스무 배쯤 더 껑충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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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 2007-07-25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마지막 부분이 맘에 걸리네요. 실망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런 차이..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섬사이 2007-07-26 21:56   좋아요 0 | URL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다시 실감했어요. 그냥 보통의 일본인의 생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사실 오쿠타 히데오는 평범한 사람도 아닌데 말이죠.^^

알맹이 2007-07-25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이 이 정도 리뷰를 쓰신 걸로 봐서는 왠지 실망스러울 것 같아요.. 저도 ^^

섬사이 2007-07-26 21:57   좋아요 0 | URL
어느 관점에서 책을 읽느냐 하는 문제일 것 같아요. 민족적인 견해 차이나 일본의 지리, 음식들에 대한 것들에 예민하지만 않다면 전체적으로 즐겁고 유쾌한 독서였어요.

홍수맘 2007-07-25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고민 됩니다.
그나저나 님 페퍼에는 댓글을 달 수 없어서리....
잘 지내고 계신거죠?

섬사이 2007-07-26 21:59   좋아요 0 | URL
네, 홍수맘님, 잘 지내고 있어요. 홍수맘님도 잘 지내시죠? 애들 방학해서 집에 있고 비니는 갈 수록 밖에 나가 살자고 하고.. 정신도 없고 시간도 부족하고 그러네요. 다른 님들 서재 나들이도 제대로 못하고 지내요. ㅠ.ㅠ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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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오른 과학적 사실, 질량과 무게.

질량은 지구에서건 달에서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게는 변한다.  무게는 중력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달에서는 같은 질량이라도 무게는 훨씬 가벼워진다는 건 아주 기초적인 상식이다.  무게는 변한다. 변할 수 있다. 
나는 지구에 살고 이라부는 달에 산다.  살아가는데 느끼는 고통, 아픔, 정신적 압박감 등등의 문제들이 감당키 어려운 심각한 무게로 내 어깨를 내리누르는데, 이라부에게만 가면 마치 달에 간 것처럼 같은 질량의 무거운 문제들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이다.
왜 그럴까.
똑같은 질량의 삶의 무게가 왜 이라부에게만 가면 쉽고 간단하게 정리되어 가벼워져 버리는 걸까..
나는 왜 이라부처럼 가볍게 살지 못할까.
이라부가 있는 곳은 왜 달이 되어버리는 걸까.

몇 가지 해답.
나에겐 있지만 이라부에겐 없는 것들이 있다.  체면, 자기연민, 굽힐 줄 모르는 자존심과 그것과 똑같은 크기의 열등감, 대책 없는 피해의식, 근거 없는 의심과 경계심, 적의, 기득권에 대한 집착, 실패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물질적 충족 또는 출세를 향한 강박과 경쟁의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작용하는 중력을 더욱 커지게 만들고, 그럴수록 모든 문제들은 더더욱 무겁고 심각하고 찐득하게 눌어붙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러다간 공기의 무게에도 헉헉거리며 힘겹게 살게 될 판이다. 

두 번째, 열림과 닫힘. 공중그네 이야기에서 곡예사 고헤이가 했던 말. “다른 사람 가슴속으로 뛰어들 수가 없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다른 사람 가슴 속으로 뛰어들기가 겁이 난다.  이것도 중력을 높이는 의심과 적의, 과도한 방어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이라부는 열려있다.  그는 어디든 뛰어든다. 공중 곡예의 모험이든 유명인의 명성이든 권위에 대항하는 장난이든, 조폭들 조직세계의 살벌함이든, 그런 것들 따위 가리지 않고 벗겨버리고 날려버린다.  모든 것을 향해 열려 있고 모든 것을 향해 돌진하는 그의 뻔뻔함은 불쾌하기는커녕 대리만족의 유쾌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와 함께라면 망설이지거나 머뭇거리는 법 없이 세상을 향해 나를 활짝 열어 보이며 그 안으로 뛰어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라부가 가지고 있는 열린 마음, 유머, 장난끼, 호기심, 순수함, 동심, 아이다운 뻔뻔함, 심지어 요괴스러움이나 엽기적인 면 같은 것들까지도 그를 달의 중력으로 살게 한다.

세 번째 핵심파악 또는 정곡 찌르기. 이라부는 중심을 본다.  <3루수>에서 볼의 제어력을 잃어버린 야구선수 반도 신이치에게 ‘제구력’이란 게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놓기도 하고, <여류작가>에서는 인기작가 호시야마에게는 “간판을 내리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장인의 가발>에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본래의 쾌활한 성격을 잃어버린 의대 동기 친구 다쓰로에게 “성격이란 기득권이야.(p.151)“라거나   “인생, 길지 않다.  지금 당장 내뱉어야 할 걸 쏟아내지 못하면.” (p.177)이란 충고로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아니, 말만 하는 게 아니다. <공중그네>에서 이라부는 그 육중한 몸으로 가꺼이 공중그네의 바를 잡고 포물선을 그린다.  자기의 온 몸을 던져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의 생활 안으로 뛰어들어 환자와 섞인다. 환자는 그런 이라부를 보며 자기의 정신적 장애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느끼고 깨닫는 경지로 올라서는 것이다.  느끼고 깨닫는다는 건 중심과 본질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다.  중요한 중심과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들은 너그럽고 여유있게 받아들일 수도 있게 된다.  중력은 그렇게 약해지고 가벼워지는 것이다.

이 책이 내가 읽은 오쿠타 히데오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너무 가볍다할 정도로 유쾌하게 웃으며 페이지를 빠르게 넘길 수 있는 책이었지만, 그것이 또 이 책만의 매력이란 생각이 든다.  인생의 무게에 대해, 삶의 고통에 대해 눅진눅진한 언어로 내 머리카락 한 올의 무게까지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세심하게 파고든 작품들이야 너무 많으니까. 

지금 읽고 있는 오쿠타 히데오의 <오!수다>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찾아냈다.
" ‘보람’이나 ‘자아 찾기’와 같은 것은 현대병의 일종이다.
언론이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달콤한 말을 속삭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인간은 새로운 고통을 안게 되었다.
" (p.55)

모두가  주인공이 되려고 기를 쓰다 보니 경쟁도 심해지고 사는 모습도 각박하고 메말라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내가 몸담고 있는 자리, 내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서 벗어나 아웃사이더만의 자유롭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중력을 벗어난 클리나멘의 힘으로 변환될 수도 있는 것이고, 매끄러운 공간을 질주하는 노마드의 강인한 능력으로 우리를 이끌지도 모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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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라부는 2권 읽고나니 맨처음의 재미가 퇴색되어버린 듯했어요. 그래도 참 신선했지요. 인간의 고민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게 못된다는 것을요. 전 가볍게 가볍게 살래요~

섬사이 2007-07-25 02:45   좋아요 0 | URL
아직 <면장선거>는 읽어보지 못했어요. 요즘 오쿠타 히데오의 새 책이 나온 것 같기도 한데,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서지는 않네요. <공중그네>,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책이었어요. 하지만 저도 가볍게 살고 싶어요. 중력의 힘을 덜 받으면서. ^^

fallin 2007-07-2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력과 연결지으니 참 신선할 걸요^^ 마지막 "주인공"이야기는 좀 찔리네요ㅋㅋㅋ 저는 내가 주인공이다!생각하며 살자고 다짐하는데^^;근데 너무 나만 들여다보기 보다는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필요하다 싶어요. 예전에 읽은 '무탄트메시지'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부족이야기인데 그곳엔 거울이 없다고..그래서 자신보단 상대의 맘을 더 바라볼 줄 안다고..뭐 그런 얘기였던 거 같아요..

섬사이 2007-07-26 22:01   좋아요 0 | URL
거울이 없다.. 특이하네요. 호기심이 동하지만, 꾹 참아야겠어요. 읽을 책들이 너무 밀려있어서..^^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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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비극적 이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칙칙함이나 음습함 없이 이렇게 반짝일 수도 있는 거구나.
유난히 '빛'이라는 낱말이 많이 나오긴 하더라.
'무지개 빛으로 번지는 오솔길'이라든가, '깊은 빛을 발하는 눈동자', '마음 속에서 따뜻한 빛이 잔상처럼 여리게 반짝'거린다는 표현도 있었고, '온 방안이 온실처럼 빛으로 가득했다'고도 했지.
오죽하면 '암울하고 쓸쓸한 이 산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가 빛나는 것'이라고 했을까. 햇빛마저도 '금빛 달짝지근'하고 빌딩의 나란한 창문들이 '저녁 빛으로 파랗게 물드는' 이야기.

그게 바로 바나나의 키친이야. 끈끈한 혈친의 정을 잃은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를 배려하고,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가슴을 내어주고, 마음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고름을 핥아주며 서로의 마음에 조금씩 '빛과 바람이 통하여'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는 이야기.  냉소도 적의도 없이 오직 삶을 사랑하고자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도 난 생뚱맞게 창가에 서서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  자꾸 되풀이해서 나오는 '빛', '투명', '반짝이다'란 낱말에 내 마음이 전염된 걸까?

에리코, 부인을 잃고는 자기의 성정체성까지도 바꿔가며 적극적으로 상실의 상처를 극복하고 삶을 사랑하려 노력한 사람이야.  그 모습이 아름답고 정겹고 애잔해서 빛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사람이지. 닮고 싶단 생각도 들었어. 이 사람만큼 살아가는 일에 덤빌 수 있다면, 집착이라든가 성공이라든가 하는 것들 때문이 아니라, "아무쪼록 살아갈 수 있도록"하는 절실함만으로 씩씩하게 덤벼볼 수 있다면, 삶의 비극적 이면 따위도 서늘하게 빛나는 달빛쯤으로 승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더라구.

추운 겨울밤 미카게가 유이치에게 돈까스 덮밥을 배달하는 장면에서처럼 '특별한 이유도 없이 포기하지 못하고' 무모하고 바보스러울 필요도 있는 거잖아.  오히려 그런 것들이 마음에 더 세게 부딪치고, 언제든 살아 빛나는 추억이 되어서 '더 힘들고 더 밝은 곳으로 가자' 며 힘을 내게 해주는 거니까.  

슬픔, 고통, 아픔, 쓰라림, 절망 같은 걸 조금 가볍게 하고 싶어지면 바나나의 키친을 읽듯이 빛이라든가 반짝임이라든가 투명하다라는 말들을 주문처럼 외어볼까봐. 말이 씨가 된다는데, 그렇게 하면 캄캄절벽처럼 답답하던 마음에도 어느날 반짝 빛이 들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지도 모르잖아.

가볍고 예쁘고 읽기도 쉽지만, 작은 힘을 가진 소설은 아니더라.  하지만 그렇게 큰 힘을 가진 소설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가가 애용하는 낱말처럼 이 소설이 '반짝'하고 어느 날 저 뒤편으로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살짝 들었지만, 문학사적인 평가야 그 쪽 분야의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겠지.

오늘은 그저 모든 것을 빛나게 해놓고서 그 속에 조용히 앉아 있고 싶어.  그러고 보니 부엌이라는 장소가 그러네.. 깨끗이 문질러 닦아놓은 조리대나 칼 같은 것들은 차갑고 서늘하게 빛나지만,  온기가 있고, 나눠먹을 음식이 있고,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식탁이 있고, 누군가에게 건네줄 따끈한 차 한 잔을 끓일 수 있는 곳이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부엌이 되어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슬퍼도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미카게가 부엌에서만은 편히 잠들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너의 부엌은 누구지?  또 나의 부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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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7-16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이란 단어가 그리 힘을 주진 않았나보군요.
나의 부엌은? 무얼까? 여기 알라딘마을일까, 아님?

섬사이 2007-07-17 21:07   좋아요 0 | URL
유이치와 미카게, 그리고 에리코는 서로에게 서로의 부엌이 되어주었던 것 같아요. 마음의 부엌을 찾는 일이 쉽진 않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잔잔한 아름다움이 깃든 소설이었어요.

홍수맘 2007-07-1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통해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를 처음 알았답니다. 그리고 금요일에 어느분의 책방출로 <티티새>라는 책을 얻게 되었답니다. 괜히 반가운거 있죠? 갑자기 "통하였는냐"라는 단어가 떠 올랐어요.
며칠전 6촌오빠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컴 앞에 앉을 시간이 없었어요. 잘 지내고 계시죠?

섬사이 2007-07-17 21:08   좋아요 0 | URL
네, 저야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우리 홍수맘님이 너무 힘든 날들을 보내고 계신 것 같아 걱정이 되네요. 너무 힘들어 병나지 않게 조심하세요.

알맹이 2007-07-17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돈까스 덮밥 부분을 너무 좋아해서 저 부분을 읽을 때마다 온몸이 짜릿해요. ^^ 님의 리뷰는 언제나 '빛'을 발하네요~

섬사이 2007-07-17 21:0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돈까스 덮밥 부분에서 감동했어요. 소설로서가 아니라 그 스토리 자체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참 따뜻하게 감동하며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fallin 2007-07-2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많이 들어본 책인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네요..리뷰 읽으니 궁금해지네요 ^^

섬사이 2007-07-23 16:15   좋아요 0 | URL
저도 뒤늦게 읽은 책이에요. 하루키와 겐자부로 외에 다른 일본작가 작품은 읽어보질 못해서요. ^^

유스케 2007-07-29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리뷰를 쓰신 분이 섬사이님이셨군요.. 리뷰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사실 키친에 리뷰달러 들어갔다 이 글 보고 포기하고 나왔거든요.. 제 일본소설 홀릭의 동기가 된 책입니다. 일상적인 장소가 이렇게 위안이 될 수 있구나..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일로도 위로받을 수 있구나 하며 따뜻한 봄볕 아래서 정말 아쉬워하며 책장을 넘기던 그런 책이었더랬죠..

섬사이 2007-07-30 09:31   좋아요 0 | URL
유스케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제 리뷰를 보고 쓰기를 포기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저도 그냥 내가 좋은대로 써가는 막무가내형 리뷰거든요. ^^;; 감동을 받으신 작품이라니까 유스케님의 느낌도 궁금해지는데,, 사실 전 리뷰쓰기 전에 다른 분들 리뷰 절대 안봐요. 다른 분들 리뷰 읽고 나면 기가 죽어서 쓸 용기가 안나더라구요. 용감하게 쓰시고 보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