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득 떠오른 과학적 사실, 질량과 무게.

질량은 지구에서건 달에서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게는 변한다.  무게는 중력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달에서는 같은 질량이라도 무게는 훨씬 가벼워진다는 건 아주 기초적인 상식이다.  무게는 변한다. 변할 수 있다. 
나는 지구에 살고 이라부는 달에 산다.  살아가는데 느끼는 고통, 아픔, 정신적 압박감 등등의 문제들이 감당키 어려운 심각한 무게로 내 어깨를 내리누르는데, 이라부에게만 가면 마치 달에 간 것처럼 같은 질량의 무거운 문제들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이다.
왜 그럴까.
똑같은 질량의 삶의 무게가 왜 이라부에게만 가면 쉽고 간단하게 정리되어 가벼워져 버리는 걸까..
나는 왜 이라부처럼 가볍게 살지 못할까.
이라부가 있는 곳은 왜 달이 되어버리는 걸까.

몇 가지 해답.
나에겐 있지만 이라부에겐 없는 것들이 있다.  체면, 자기연민, 굽힐 줄 모르는 자존심과 그것과 똑같은 크기의 열등감, 대책 없는 피해의식, 근거 없는 의심과 경계심, 적의, 기득권에 대한 집착, 실패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물질적 충족 또는 출세를 향한 강박과 경쟁의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작용하는 중력을 더욱 커지게 만들고, 그럴수록 모든 문제들은 더더욱 무겁고 심각하고 찐득하게 눌어붙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러다간 공기의 무게에도 헉헉거리며 힘겹게 살게 될 판이다. 

두 번째, 열림과 닫힘. 공중그네 이야기에서 곡예사 고헤이가 했던 말. “다른 사람 가슴속으로 뛰어들 수가 없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다른 사람 가슴 속으로 뛰어들기가 겁이 난다.  이것도 중력을 높이는 의심과 적의, 과도한 방어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이라부는 열려있다.  그는 어디든 뛰어든다. 공중 곡예의 모험이든 유명인의 명성이든 권위에 대항하는 장난이든, 조폭들 조직세계의 살벌함이든, 그런 것들 따위 가리지 않고 벗겨버리고 날려버린다.  모든 것을 향해 열려 있고 모든 것을 향해 돌진하는 그의 뻔뻔함은 불쾌하기는커녕 대리만족의 유쾌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와 함께라면 망설이지거나 머뭇거리는 법 없이 세상을 향해 나를 활짝 열어 보이며 그 안으로 뛰어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라부가 가지고 있는 열린 마음, 유머, 장난끼, 호기심, 순수함, 동심, 아이다운 뻔뻔함, 심지어 요괴스러움이나 엽기적인 면 같은 것들까지도 그를 달의 중력으로 살게 한다.

세 번째 핵심파악 또는 정곡 찌르기. 이라부는 중심을 본다.  <3루수>에서 볼의 제어력을 잃어버린 야구선수 반도 신이치에게 ‘제구력’이란 게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놓기도 하고, <여류작가>에서는 인기작가 호시야마에게는 “간판을 내리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장인의 가발>에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본래의 쾌활한 성격을 잃어버린 의대 동기 친구 다쓰로에게 “성격이란 기득권이야.(p.151)“라거나   “인생, 길지 않다.  지금 당장 내뱉어야 할 걸 쏟아내지 못하면.” (p.177)이란 충고로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아니, 말만 하는 게 아니다. <공중그네>에서 이라부는 그 육중한 몸으로 가꺼이 공중그네의 바를 잡고 포물선을 그린다.  자기의 온 몸을 던져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의 생활 안으로 뛰어들어 환자와 섞인다. 환자는 그런 이라부를 보며 자기의 정신적 장애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느끼고 깨닫는 경지로 올라서는 것이다.  느끼고 깨닫는다는 건 중심과 본질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다.  중요한 중심과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들은 너그럽고 여유있게 받아들일 수도 있게 된다.  중력은 그렇게 약해지고 가벼워지는 것이다.

이 책이 내가 읽은 오쿠타 히데오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너무 가볍다할 정도로 유쾌하게 웃으며 페이지를 빠르게 넘길 수 있는 책이었지만, 그것이 또 이 책만의 매력이란 생각이 든다.  인생의 무게에 대해, 삶의 고통에 대해 눅진눅진한 언어로 내 머리카락 한 올의 무게까지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세심하게 파고든 작품들이야 너무 많으니까. 

지금 읽고 있는 오쿠타 히데오의 <오!수다>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찾아냈다.
" ‘보람’이나 ‘자아 찾기’와 같은 것은 현대병의 일종이다.
언론이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달콤한 말을 속삭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인간은 새로운 고통을 안게 되었다.
" (p.55)

모두가  주인공이 되려고 기를 쓰다 보니 경쟁도 심해지고 사는 모습도 각박하고 메말라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내가 몸담고 있는 자리, 내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서 벗어나 아웃사이더만의 자유롭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중력을 벗어난 클리나멘의 힘으로 변환될 수도 있는 것이고, 매끄러운 공간을 질주하는 노마드의 강인한 능력으로 우리를 이끌지도 모르는 거니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7-2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라부는 2권 읽고나니 맨처음의 재미가 퇴색되어버린 듯했어요. 그래도 참 신선했지요. 인간의 고민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게 못된다는 것을요. 전 가볍게 가볍게 살래요~

섬사이 2007-07-25 02:45   좋아요 0 | URL
아직 <면장선거>는 읽어보지 못했어요. 요즘 오쿠타 히데오의 새 책이 나온 것 같기도 한데,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서지는 않네요. <공중그네>,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책이었어요. 하지만 저도 가볍게 살고 싶어요. 중력의 힘을 덜 받으면서. ^^

fallin 2007-07-2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력과 연결지으니 참 신선할 걸요^^ 마지막 "주인공"이야기는 좀 찔리네요ㅋㅋㅋ 저는 내가 주인공이다!생각하며 살자고 다짐하는데^^;근데 너무 나만 들여다보기 보다는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필요하다 싶어요. 예전에 읽은 '무탄트메시지'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부족이야기인데 그곳엔 거울이 없다고..그래서 자신보단 상대의 맘을 더 바라볼 줄 안다고..뭐 그런 얘기였던 거 같아요..

섬사이 2007-07-26 22:01   좋아요 0 | URL
거울이 없다.. 특이하네요. 호기심이 동하지만, 꾹 참아야겠어요. 읽을 책들이 너무 밀려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