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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수다 - 나를 서재 밖으로 꺼내주시오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진원 옮김 / 지니북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위해 먼저 <공중그네>를 읽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중그네>에 대해 참 많은 서평들이 올라왔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아직까지 이유 없이 미루고 딴청을 부렸었다. 그런데 <오! 수다>란 책이 나에게 떨어지자, 이 작가의 대표작품 하나 읽지 않고서 작가의 여행기를 덥석 잡아 읽는다는 게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래,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단 <공중그네>부터 읽는 게 순서다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길 참 잘했다. 만약 <공중그네>를 읽지 않고 <오! 수다>를 읽었더라면 작가 스타일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너무 싱겁고 가볍다고 여겼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공중그네>의 유쾌함이 <오! 수다>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라부와 함께 여행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공중그네>를 사전에 읽어둔 덕이다.
오쿠타 히데오의 글은 솔직하고 담백하고 즐겁다. 작가랍시고 잔뜩 폼 잡고 위엄을 부리며 유식을 자랑하는 일 따위 하지 않는다. 그냥 편한 마음으로 그를 따라 나서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만 생각하면 착각이다. 꽤 진지한 사안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니까.
작가의 일상적인 면모와 취향을 엿보는 게 즐거웠다면 관음증 환자라고 오해받을까? 일본 삼경 중 하나라는 비경을 눈앞에 두고도 괭이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져 주는 재미에 몰입하는 모습이나 갑판에서 멋진 바다 풍경에 취해서 껑충거리며 춤을 추는 장면, 고토에서 지네에 물린 상처를 치료받으러 병원에 가서는 미녀 의사에게 반해서 마음으로만 작업 멘트를 날리는 거라든가, 칼로리를 걱정하면서도 식탐을 이기지 못해 변비에 걸려서도 과식하는 모습, 겨울 혹독한 추위가 몰아친 여행지에서 눈싸움도 하고 빙판 위에서 미끄럼을 타며 즐기는 모습들은 작가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작가로서의 특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은근한 서운함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투정부리고 여행에 동행한 사진가들이 날씨 때문에 촬영에 곤란을 겪자 “글을 쓰는 작업은 그다지 제약이 없고 편하다. 얼마든지 거짓말을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잔뜩 흐린 하늘을 청명한 하늘이라고 얼버무릴 수 있는 멋진 작업이다.”(p.102)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나 여행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항해 시대인 19세기까지다. 그 이후에는 불필요한 대중화가 진행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맹렬하게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도로만 혼잡해질 뿐이다. 자연만 파괴될 뿐이다. 저 야마모토 나츠히꼬 선생도 말하지 않았나. 여행을 떠난다고 당나귀가 말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고...”(p.67) 하면서 여행에 대해 독설을 퍼붓다가도 “여행은 비뚤어진 마음을 정화시켜 주며, 자신의 성격까지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멀리 여행을 떠나 솔직해지고 싶다.”(p.69) 또는 “여행의 효용은 지방을 알고 겸허해지는 것이다. 평소에는 오만하므로.”(p.221) 하면서 여행의 가치를 드높이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양쪽 모두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하는 자, 길 위에 있는 자의 마음과 생각이 어떠냐에 따라서 여행의 질과 가치는 다르게 변화할 테니까.
정답은 없고 결단만이 필요할 뿐이라는 원자력발전소문제와 국제 보호 조류인 따오기를 보며 느끼는 인위적인 야생동물 보호의 필요 여부 문제, 그리고 사도 지방의 전통 축제를 통해 글로벌리즘의 허황됨에 대해 성토하는 부분들에서는 사뭇 숙연해지기도 한다. 진지하게 따지고 들었다면 오히려 식상했을 수도 있으련만, 오쿠타 히데오는 그런 민감하고 심각한 문제들을 간단하게 툭툭 치고 지나칠 뿐이다. 완전히 이라부 수법이군, 했다. 문제를 툭 던져놓고는 나머지는 니들이 알아서 생각해봐라, 하는 식이다.
이 책을 읽다가 삐걱대는 부분이 조금 있긴 했다. 그건 오쿠타 히데오가 일본인이고 나는 한국인이라는, 어쩔 수 없는 민족적 견해 차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오쿠타 히데오의 이런 글,
“내가 왜구의 후예라면 큰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역사를 현재의 기준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5백 년도 더 전에 카미고토에는 드넓은 저 바다로 배를 저어 나간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다.”(p.108)
이게 무슨 소리야, 싶었다. 노략질을 일삼고 선량한 타국의 백성들을 납치했으며 온갖 만행을 저지른 왜구의 후예라는 걸 자랑스러워 할 거라는 게.. 그렇다면 독일국민은 나치의 후예라는 걸 자랑스러워해야겠군, 하며 빈정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물론 자국의 역사에 대해 그 나라의 국민들은 긍정적인 견해와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왜구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해왔던 나라의 후예의 입장에서 나는 절대로 납득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또 하나, 작가가 부산 여행길에서 때밀이 관광을 하는 장면이다. 알몸으로 누워 때를 밀면서 “전라의 자세는 비참한 자세”(p.197)이고 그런 자세로 누워 다른 사람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한 것 같아서 줄곧 마음이 편치 않았다.”(p.197)고 말한다. 때밀이 젊은이의 손이 몇 번이나 일행 중 한 사람의 그곳을 스쳤다면서 때밀이 청년들을 “게이 잡지 <장미족> 분위기의 청년”(p.196)으로 몰아가는 데는 좀 흥분되기도 했다.
인간의 존엄성 훼손 좋아하네, 731부대와 마루타, 위안부 얘기는 들어보셨나, 하면서 공연히 부아가 났다.
하나 더 이야기 할까.. 후쿠라는 곳은 우리 한반도와 아주 근접해 있어서 “제주도가 바로 옆”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차량 라디오를 틀면 깨끗한 한국어 방송이 튀어나온다나..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바로 뒤에 덧붙인 말, “하지만 이곳은 일본 땅이므로 영토권 주장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p.75) 독도 문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덤터기를 쓰고 벌레 씹은 기분이랄까.
그런 민감한 민족적 정서와 입장의 차이에서 오는 껄끄러움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민감한 글들을 통해서 일본의 극우세력은 아닐 듯한 오쿠타 히데오를 통해 일반적인 일본 국민의 의식을 들여다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하나, 내가 일본 지리(일본이 4개의 커다란 섬으로 되어있다는 것 말고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나 여행지, 음식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하다는 게 좀 아쉬웠다. 일본 지명이나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에 제대로 공감할 수만 있었다면 책 읽는 재미가 스무 배쯤 더 껑충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