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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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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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할 책은 작년 말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기에 맞춰 출간된 여러 책들 중에 하나란다. 루스 윌슨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 할머니가 쓴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 라는 책이란다. 책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은이 루스 윌슨의 이력부터 이야기해야겠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삶을 살고 계시더구나. 지은이 루스 윌슨은 예순 살까지 평범한 가정을 일구며 살아왔단다. 그러다가 예순 넘어서 가까운 사람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등 외로움이 느껴지고 지난 자신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뭔가 잘못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시골에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홀로 지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어. 나이 70살에 졸혼을 하고 혼자 시골집에 혼자 칩거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그때 루스가 선택한 것이 바로 제인 오스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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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

가족과 일 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뭘까 생각하니 예나 지금이나 소설 읽는 즐거움만 한 것이 없었다. 읽은 소설을 통틀어 내 즐거움이 비교 기준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오스틴의 여자 주인공들에게서 내가 되고 싶은 여성상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 작품들에 대한 향수가 가슴에 밀려들었다. 그래서 나는 재활 치료라 생각하고 다시 독서에 열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우선은 오스틴의 소설 여섯 편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나를 오스틴의 애독자로 만들어준 그 촌철살인의 위트와 귀가 닳도록 인용되는 문구들과 생기 넘치는 대화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당시에는 미처 몰랐지만, 나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독서법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오스틴의 작품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그 세계관의 프레임에 비추어 내 인생의 만족과 불만족을 탐색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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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 시절 처음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70대가 되어 다시 읽은 지은이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 장편 소설 6편을 다시 읽으면서 침체되었던 삶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고 했어. 그리고 다시 대학에 진학하여 88살에는 독서 관련된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90살에는 이 책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자기인생의 첫 번째 책을 나이 아흔에 낸 사람이 있을까 싶구나. 기네스북에도 기록될 만 기록이 아닐까 싶구나.

아빠 이 책을 산 것은 지난 연말인데 막상 이 책을 읽으려고 하니 제인 오스틴의 책을 너무 적게 읽어서 공감하지 못하는 내용이 많을 것 같아서 먼저 제인 오스틴의 책을 좀 읽고 읽어야겠다고 미뤄두었어. 그 이후 <설득>, <이성과 감성>을 읽었어. 이제 그 전에 읽은 <오만과 편견>까지 포함하여 세 권을 읽었으니 이제 이 책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를 읽어봐도 될 것 같아서 읽었단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섯 권을 모두 읽고 읽으려면 너무 늦어질 것 같기도 해서 지금 읽은 거야. 물론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지 않고 이 책을 읽어도 문제되지는 않지만 읽고 나서 읽으니 지은이의 어떤 의견에는 공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의견에는 공감하지 않으면서 읽다 보니 책 읽기에 도움이 많이 되더구나. 좀 늦어지더라도 나머지 세 권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나머지 세 권은 <에마>, <노생거 수도원>, <맨스필드 파크>란다.

 

1.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지은이의 자서전이기도 해. 제인 오스틴의 책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해주었어. 1932년생인 지은이는 15살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처음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는구나. 그러면서 10대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해주는데 엄청 자세히 당시 있었던 대화까지 이야기를 해주었어. 기억력만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고, 아무래도 일기를 꾸준히 썼을 것 같구나. 지은이는 영어교사를 하다가 은퇴를 했고 1974년부터 5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었대. 지은이는 유대인이었지만, 2차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어서 다행히 유대인 핍박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했어. 하지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같은 민족들이 핍박 받고 희생당하는 것에 슬프고 힘들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민족들이 오늘날은 이웃 나라에 무자비하게 폭격을 가해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니…  악마는 멀리 있지 않는 것 같구나. 지은이는 지금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의 악마와 같은 만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득 궁금해지는구나. 이스라엘에 이주할 때 원래 그곳에서 살다가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이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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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소개된 여섯 편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 각 챕터 별로 소설들의 줄거리도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가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대충 읽었단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의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지. 소설 속 주인공들을 이야기하면서 지은이의 주변 사람들과 매칭해보기도 했어. 그리고 이 책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책들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기 좋아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도 소개되어 반가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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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이 60대에 들어선 지은이의 불안한 마음을 제인 오스틴의 소설로 완전 치유가 되었대.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통해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관계의 복잡성, 우정의 가치, 사랑의 의미, 삶의 균형 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졸혼했다고도 했는데 그렇다고 남편과 헤어진 것은 아니고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졌다고 하는구나. LAT(live-apart-together)족 생활을 했다는구나. 따로 살면서 같이하는 삶을 실천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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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가능성의 영역이고, 현실의 우리는 우리 나름의 선택을 내리고 이럭저럭 그 선택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보면 내가 한때 나의 남주인공으로 착각했던 사람, 그러나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나의 친밀한 동반자가 된 사람과 따로 또 같이 사는 지금의 내 인생에는 소중한 우정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편과 내가 공유하는 관계도 있고 애정의 방향이 갈라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나한테 더 중요한 건 정녕 진실로만족스러운 인생을 꾸려갈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준 일등 공신이 지금도 내 책상에 앉아 있는 나의 길잡이 제인 오스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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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꼼꼼한 책읽기를 보면서 아빠의 책읽기도 생각해보았어. 어린 시절에 책을 거의 읽지 않던 아빠는 이십 대 중후반 문득 책 좀 읽어볼까 하고 시작한 독서생활은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단다. 하지만 내적 성장이라든가, 글솜씨가 좋아졌다든가, 지적 성장이 있었다든가, 하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더구나 ㅎㅎ 아빠의 독서법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냥 재미있으니 읽는다는 생각으로 읽어서 그런가. 힘들고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책이 치유를 해준다기보다 오히려 책읽기가 힘들어지고 독서생활에 슬럼프가 찾아오는데 말이야. 아니면 힘들 때 고른 책들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제인 오스틴의 책들을 골랐어야 했나?^^

...

이 책에서 지은이가 한 것 중에 아빠도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단다. 지은이는 오랜 친구와 함께 책을 낭독해서 읽기를 했단다. 아빠는 함께 읽기를 너희들과 함께 하고 싶은데 너희들은 지금 너무 바쁘니 뒤로 미뤄둬야겠구나. 아무튼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픈 것은 늦은 때라는 것은 없다는 것. 아빠도 나이가 들고나서 무엇인가 새로 배우거나 새로 시작하는 것에 거부감이 생겼는데 반성해야겠구나.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한 아직 읽지 않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세 편도 올해 안에 꼭 읽도록 하마.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행복이 대체 뭐란 말인가.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준 일등 공신은 지금도 내 책상에 앉아 있는 나의 길잡이 제인 오스틴이다.

 


제인 오스틴이 보여준 언어의 가능성을 활자로, 또 내 귀로 발견했을 때 내 앞에 소설로 통하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다른 문이 닫혔다. 어머니와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울타리 너머에서 우리 앞마당에 던져놓고 가는 잡지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어머니는 유명 인사의 가십에 대한 갈증을 채우고 나는 틈새에 실린 단편소설을 읽어치우던 그런 시절이 안녕을 고했다. 클리셰니 스테레오타입이니 하는 말은 모를 때였지만, 햄릿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작법과 인물들이 어딘지 "식상하고 밋밋하고 쓸모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아침에 흥미가 사라져버렸다. - P51

사춘기에 접어든 그때 나는 현실에서처럼 빛과 그림자가 불가분하게 뒤섞인 세상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체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신이 창조한 세상이 아닌 한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세계였다. 그가 소리와 인격과 생각을 불어넣어 완성한 정연한 패턴 안에 단순한 결혼 플롯을 뛰어넘는 인생의 비전이 담겨 있었다. 내가 평생 이어갈, 궁극적으로 내 삶의 암흑기에 빛을 비춰줄 허구의 경험 읽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P157

나는 세월이 쌓이고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게 느껴질수록 소설 안에서 역사가 다뤄지는 방식에 관해서 관심이 증폭되다 못해 이제는 역사적 호기심의 노예라고 해도 될 판이다. 소설이 어떻게 과거로 현재를 재구성하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고 소설 안에서 인생살이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발견하는 유익한 효과도 따라온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캐서린은 역사책이 온통 "짜증 나고 지루한" 이야기뿐이라고 불평을 늘어놓는데, 그 말을 듣고 있는 틸니 양은 친구의 의견을 받아주는 것 같으면서도 역사를 집필하는 사람들 쪽으로 슬쩍 주제를 선회한다. "역사가들은 기꺼이 공상의 나래를 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군요. 흥미를 자아내지 않더라도 그들도 상상력을 발휘하긴 하죠."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리저리 튀며 두 아가씨의 정신세계를 비춰 보인다. - P167

그리하여 나는 팔십 줄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모든 여학생들이 졸업 앨범 방명록을 간직하던 시절, 브레인 선생님으로 짐작되는 이가 내 졸업 앨범 방명록에 대략 이런 의미의 글귀를 남겼다. 공중에 누각을 지은들 어떠랴, 토대만 단단히 세우면 그만이지. 글귀 아래에는 철학자 소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이미 나만의 누각에서 살고 있었고, 어쩐지 앞으로 10년 안에 그럭저럭 토대를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어떤 예감이 찾아오고 있었다. 흔히들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그런 황홀한 도취가 다시 한번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 이번 상대는 인생이라는 것도. - P225

어떻게 해야 더 명료하게 내 뜻이 전달되려나.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였다. "까놓고 말하자면 관습의 틀 안에 살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스스로를 기망한 거야. 안전한 삶에 안주한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튕겨 나가고 있더라. 내 자리를 지키기는커녕 밖으로 밀려나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라니, 내가 고작 이 정도인가, 인생에서 얻은 게 고작 이 정도인가 싶어서 감당하기 힘들 만큼 좌절했어."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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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노인들은 도망치지만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그들의 집은 다달이 오르탕시아 요양원의 거주비를 대느라 매물로 나왔다. 그들의 정원은 텅 비고, 그들의 고양이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이제 그들의 집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그들 각자의 서가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그 각각의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157-158)

빨간색 윗도리를 입었어야지, 그게 더 어울리는데, 오늘은 머리가 엉망이네, 방 좀 정리해라, 물건들 좀 여기저기 두지 마, 네가 내 립스틱 가져갔었구나, 그래, 알았어 우리 강아지, 이건 벗기는 것 좀 도와주렴, 가게에 같이 가자, 오후 4시에 데리러 갈게, 네가 물어봐서 대답한 거야, 시간이 없구나, 숙제는 했니, 이게 다 뭐니, 저것 봐, 너무 예쁘지, 그건 안 돼, 이걸 사줄게,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 식탁 좀 차려줘, 아니, 안 돼, 안 돼, 좋아, 알았어, 정말 이번 한 번뿐이다,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마, 저녁 6시 이후엔 초콜릿이나 탄산음료 금지야, 아침 안 먹으면 못 간다, 외투 입어, 밖이 추워, 이 난장판이 다 뭐니, 양치질은 했니, 언제 다 클래, 가서 샤워해, 염려 마, 괜찮으니까, 사랑해, 잘 자렴, 오늘 아침엔 왜 이렇게 예쁠까, 그거 너한테 아주 잘 어울린다, 네 역사지리 선생님이 전화하셨더라, 늦었다, 이제 그만 자렴,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데, 괜찮아, 우리 아기, 저 남자애는 누구니, 넨가 독서 싫어하는 거야 알지만 그대로 이 책은 좋아할 거야, 몇 시에 데리러 갈까, 그 애 부모님은 뭘 하시니, 전깃불 꺼, 맨발로 걷지 마, 병원 가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토 달지 말고, 이리 와서 안아줘, 말 안 들으면 아빠 부른다.


(297)

루이 할아버지네 카페를 매각한다는 소식은 밀리에 폭탄을 투하한 듯한 충격을 안겼다. 남자들 대부분이 거짓 루머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카페 앞에 모여들었다. 엘렌 엘이, 자기들의 엘렌 엘이 자기들의 카페를 판다니! 너나없이 모두 모였다. 늙은 사람들, 젊은 사람들, 은퇴자들, 알코올의존자들, 한창때의 노동자들, 농부들, 용감한 사람들, 게으른 사람들, 퇴역 군인들, 수공업자들, 사제, 노동자들, 관리반장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녀가 그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그녀 없이 그들은 어쩌라고? 이제 그들의 바짓단 길이는 누가 맞춰주고, 주중에 그들이 먹고 마실 것은 누가 제공하며, 그들의 똑 같은 푸념은 누가 들어주고, 담배는 누가 팔고, 보들레르는 누가 돌보고, 1등처럼 3등까지 경주마 순위는 누가 예상해주고, 누가 그녀처럼 웃어준단 말인가? 그들 모두가 아침과 정오와 하루 끝의 진액을 잃은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일상의 골칫거리, 돈 걱정, 아이들, 아내, 꼬박꼬박 가져와야 할 월급의 압박 속에서, 카페 문을 밀고 들어와 두서너 마디 흰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만큼, 이 술병들의 정원에 들어서는 것만큼 위안이 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루이 할아버지 카페는 그들이 마주치고, 악수를 나누고, 공장과 납품과 가축과 고용주의 수확에 대한 정보와 최신 뉴스들을 교환하는 교차로였다. 그곳은 겨울에도 늘 따뜻했다. 엘렌 엘이 직접 난로의 장작을 지켰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에선 늘 좋은 냄새가 났다. 그것이 정오에 제공되는 단일 메뉴의 냄새든 장미 향이든. 좀 취했다고 장미 향 좋은 걸 모르는 건 아니니까. 라디오가 뉴스와 사랑 노래를 흘려 보내며 시간에 리듬을 부여했고, 그들이 한 잔의 커피나 술에 입술을 적시는 사이 삶은 제각각 흘러갔다. 가볍게, 너무나 가냘파서 한 손가락으로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상화된 여인 엘렌 엘만큼이나 가볍게.


(308-309)

그동안 그녀는 이 순간을 수천 가지 상황으로 상상해왔다. 낮에, 잠에, 저녁에, 겨울에, 정오에, 일요일에, 여름에. 하지만 그녀가 카페 밖에 있고 그가 안에 있는 이런 상황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카페 문을 미는 것이 그가 아닌 그녀가 되리라는 것은. 그녀는 자신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면 그가 그녀를 안아 올려 빙 돌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폭발하여 찬란한 광휘와 환희가 분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왜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일들은 우리가 그것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결국 타이밍의 문제일까?


(402)

그녀가 명언을 남기고 떠났다. 세상엔 사람 수만큼의 새들이 있다. 그리고 사랑이란, 여러 사람이 같은 것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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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플라이트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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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줄리 클라크라는 미국 작가의 <라스트 플라이트>라는 소설을 이야기할게. 작년에 신간 코너에서 <투 오브 어스>라는 책소개를 보고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해서 지은이 소개를 보다가 검증된 이전 작품을 먼저 읽어봐야겠고 생각하고 읽은 책이 오늘 이야기할 <라스트 플라이트>라는 책이란다. 속도감 있고, 초반의 얽힌 실타래가 시원하게 풀려가는 것이 도파민 발산하는 소설이더구나. 영화로도 만들어졌을 법한 스토리인 것 같아 검색을 해봤더니 이름만 같은 다른 영화가 한편 있긴 하더구나. 아무튼 아빠는 한 편의 영화를 본듯한 소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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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1. 주인공 클레어는 거물급 정치계 가문의 로리 쿡의 아내야. 로리 쿡은 정치인답게 대외적으로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가정폭력범이야. 사실 로리는 이번이 두 번째 결혼이었는데, 로리의 전 부인 매기도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았고, 의문의 화재사고로 죽었다고 하는구나. 물론 당시 로리도 조사를 받긴 했지만 아무런 혐의도 없었단다. 하지만 수상한 냄새가 짙게 풍기는구나. 클레어는 오랫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왔고 남편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지만, 남편의 주변에는 클레어를 감시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어. 친구들과 만남도 남편의 측근들에게 모두 감시 당하고 있었어. 감옥이 따로 없구나.

고등학교 때 친구 페트라만이 남편이 모르는 유일한 지인이었어. 2년 전 피트니스 클럽에서 우연히 만나 그 이후 가끔씩 피트니스 클럽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 그리고 페트라와 함께 탈출 계획을 짰단다. 클레어와 페트라의 또 다른 고등친구 니코가 있었는데.. 니코는 마피아 보스인 아버지로부터 조직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었어. 니코에게 가짜 신분증을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니코에게 부탁하여 가짜 신분증을 만들고 클레어가 실종되는 계획을 세웠단다. 그런 기회가 찾아왔어. 정치인의 아내의 역할을 위해 혼자 디트로이트 출장을 가게 된 거야. 클레어는 디트로이트에서 묵을 호텔에 미리 가짜 신분증과 현금을 보내서 맡겨두고 그곳에 출장을 가게 되면 그 가짜 신분증과 현금을 가지고 사라지려고 했어. 그런데 마지막에 변수가 생겼어. 당일 아침 로리가 직접 디트로이트에 간다고 하는 거야. 그러면서 클레어에게는 푸에르토리코로 가라는 거야. 난리 났네... 디트로이트로 보낸 가짜 신분증과 현금이 있는데 그걸 로리가 보게 될 텐데. 공항에서 클레어는 패트라에게 전화해서 이 위급함을 알렸어. 페트라도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으니 일단 푸에르토리코로 가라고 했어. 그런데 이 전화통화를 유심히 듣던 이바라는 여자가 있었어.

이바는 클레어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자신도 어디론가 도망을 가야 한다면서 서로 신분증을 바꾸고 비행기를 서로 바꾸어 타자는 은밀한 제안을 했어. 클레어도 이바의 생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둘은 신분증뿐만 아니라 소지품이랑 핸드폰이랑 옷까지 바꿔 입으면서 철저하게 서로의 신분을 바꾸고 사라지려고 했어. 클레어는 이바의 비행기 티켓을 받아 오클랜드로 날아갔단다. 이바는 푸에리토리코 행 탑승 대기하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줄에서 이탈했어.

...

오클랜드에 도착한 클레어.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어. 클레어가 타려고 했던 푸에르토리코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야. 남편 로리의 소행으로 깊게 의심되는구나. 클레어는 자신 때문에 이바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죄책감이 일었어. 갈 곳이 없는 클레어는 일단 이바의 집으로 갔단다. 페트라에게 전화를 해보았는데 연결이 안되었어. 그런데 이바의 전화로 문자가 왔단다. 무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단다.

...

 

2.

이번에는 이바의 이야기를 해보자. 6개월 전. 이바는 버클리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남자친구한테 속아서 마약을 만들어주다가 발각이 되어 퇴학을 당하고 말았어. 그 이후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다가 덱스라는 남자를 만났고, 마약을 제조하고 거래하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어. 이것 때문에 마약단속반의 추격을 당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덱스의 조언으로 2주 동안 잠적하기로 했단다.

그때 이웃 리즈라는 초로의 노인과 친하게 되었단다. 리즈는 버클리대학교에 교환 교수로 와서 잠시 머무르고 있었어. 이바는 리즈로부터 선한 영향을 받게 되어 예전에 희망하던 삶을 다시 꿈꾸게 되었어. 하지만 마약 조직의 협박과 감시로 무작정 떠날 수는 없었어. 그 조직의 우두머리는 피시라는 의문의 사람인데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어. 이바는 덱스와 함께 피시로부터 도망치려는 계획을 세웠어. 그런 와중에 마약단속반의 카스트로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피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피시를 잡는데 도움을 준다면 이바의 죄는 경감해주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데 도와주겠다고 했어.

이바는 이상하게 생각했어. 자신은 피시를 본 적도 없는데, 자신에게 찾아온 이유그리고 잘못되면 피시에게 살해당할 것이 두려웠어. 그래서 증인보호프로그램을 요청했어. 이젠 많이 친해진 이웃 리즈는 이바를 걱정하면서 고민거리를 이야기해보라고 했지만, 이바는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어. 리즈는 버클리대학교에서 일정을 마치고 원래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단다. 이바에게 언제든지 자신을 찾아오라는 이야기를 했어.

카스트로는 상부와 검토한 결과 증인보호프로그램은 어렵다고 했어. 하지만 불구속으로 해줄 수도 있다고 했어. 그러나 이바에게는 피시의 복수가 너무 두려웠어. 카스트로는 피시와 만날 때 도청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바는 피시를 만난 적이 없고 만날 일도 없다고 했어. 그러자 이미 여러 번 만났다면서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건 피시가 아니고 덱스였어. 그러니까 덱스가 피시였던 거야. 이바가 친하게 지냈던 덱스가 악명 높은 조직의 보스 피시였다니그러자 더욱 두려워졌어. 그래서 이바는 어떻게든 버클리를 떠나 도망하기로 마음먹었단다. 우선 리즈를 만나기 위해 뉴어크로 날아갔단다.

 

3.

, 다시 클레어의 이야기를 해보자. 오클랜드에 있는 이바의 집에 잠시 머물기로 했어. 이바를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이바의 서류를 읽어보았어. 이바는 클레어에게 암투병을 하던 남편이 죽어 여행가는 일이라고 했었는데 그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바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집 이곳 저곳 조사를 해보았단다. 그리고 중간중간 뉴스를 보면서 여객기 추락 사고도 확인해 보았단다. 클레어가 남편 로리 계정을 알고 있어서 로리의 메일과 메신저를 몰래 보면서 상황을 체크했단다. 로리는 디트로이트 호텔로 보냈던 클레어의 가짜 신분증을 확보하고 클레어의 계획을 알아챘고 협력자를 찾으려는 듯했어. 이것을 로리의 측근 데니엘이라는 여자가 맡고 있었단다. 그렇게 뉴스를 체크하다가 뉴스 속에서 로리의 기자회견장소에서 이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설마 이바가 비행기를 안 탄 것인가? 그럼 그나마 다행일 텐데

클레어는 언제까지 이바의 집까지 머물 것인가도 고민이었어. 친구 페트라와 연락이 닿으면 같이 고민해 볼 텐데, 페트라는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았어. 여객기 사고를 생각하다가 문득 예전에 로리의 고모 메리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어. 로리의 전 부인 매기의 죽음은 로리의 짓이라고 클레어에게 이야기했었거든. 당시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객기 사고를 자신을 노렸다는 생각에 매기의 죽음도 우연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어.

클레어는 이바의 집에 머물면서 돈도 떨어졌어. 조심스럽게 신분을 알리지 않아도 되는 파트타임 일자리도 알아보았어. 로리의 계정으로 메일과 메신저를 감시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어. 그리고 비행기에서 클레어의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로리도 알게 되었다고는 클레어도 알게 되었어. 이바가 정말 그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던 것일까? 클레어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단다. 그리고 메신저를 통해 의심만 하고 있던 매기의 죽음에 로리가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도 알게 되었어. 클레어는 위험하긴 했지만 돈이 부족해서 파트타임을 하게 되었어. 어떤 만찬 행사의 서빙 일이었는데, 함께 일하던 켈리의 난처한 상황을 도와주다가 카메라에 찍히고 SNS에 게시되었어. 누군가 그 사진을 보고 로리의 아내를 닮았다는 댓글을 달게 되었어. 이제 오클랜드는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닐 수도 있어. 파트타임에서 함께 일했던 켈리는 클레어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걱정해주었어. 그런데 이바의 전화로 로리의 측근 다니엘의 전화가 왔어.

다니엘이 어떻게 이바의 전화를 알고 있지? 이제 로리도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 거기에다가 임대할 집을 찾고 있다면서 낯선 남자가 이바의 집 근처를 서성였어. 그 남자가 말을 걸어와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어. 점점 좁혀오는 감시망클레어는 이바의 집을 둘러보다가 지하실로 내려가는 비밀 문을 발견했어. 그곳에 내려가 보니, 이바가 만들었던 마약과 각종 약물들, 그리고 이바의 진술서와 녹음 기록을 듣게 되었어. 그런데 그 녹음 속에 집 근처에서 서성이던 남자의 목소리도 있었어. 이제서야 이바가 클레어에게 거짓말을 하고 오클랜드를 도망가려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어.

클레어는 이바의 진술서와 녹음 등을 챙겼어. 클레어가 로리의 계정으로 메일과 메신저를 감시하다가 실수로 흔적을 남기고 말았어. 이후 로리의 계정 비밀번호가 바뀌어 더 이상 로리를 모니터할 수 없었어. 그런데 다니엘은 계속 전화를 해왔어. 계속 받지 않았더니, 다니엘은 음성을 남겼는데 약간을 뜻밖의 내용이었어. 다니엘은 자신이 도와주겠다면서 연락을 하라고 했어. 자신이 클레어에게 연락하고 있는 것은 로리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어. 그리고 로리가 클레어를 찾으러 캘리포니아로 가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고, 로리의 음모가 담겨 있는 녹음파일을 보낼 테니 이용하라고 했어.

.. 대니엘의 말은 진심일까? 믿어도 될까? 대니엘이 보낸 녹음 파일을 들어보니 로리의 육성 맞았어. 로리는 그 파일을 방송국에 제보했어.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그 파일로만은 증거가 부족하고 방송에 출현해 달라고 요청했어. 그리고 방송국에서 클레어를 태우러 오겠다면서 안심하라고 했어. 로리의 일행이 먼저 클레어를 납치할까 조마조마한 순간들이 있었으나, 클레어는 방송국에 도착을 하고 로리의 만행을 모두 폭로할 수 있었단다. 자기 대신 죽게 된 이바의 명복도 빌었단다. 로리는 매기의 죽음과 여객기 사고에 대해 조사를 받게 될 것이고, 클레어는 드디어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단다. 클레어의 방송 출현 이후 페트라와 다시 연락이 닿았어. 클레어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 줄 알고 핸드폰을 해지했다고 했어. 클레어의 가짜 신분증 때문에 자신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로리의 측근 다니엘이 왜 클레어를 도와준 것일까. 그 이야기를 하려면 다시 이바의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이바가 오클랜드를 떠나 뉴어크에 있는 리즈의 집에 들렀다고 했잖아. 그날이 비행기 사고가 일어나기 하루 전이었어. 이바는 리즈를 만나 지난날에 대해 모든 것을 이야기했어. 그러면서 이제 외국으로 도망가려고 한다고 했어. 리즈는 이바를 이해하면서 설득해서 카스트로에게 가서 협력하라고 했고, 결국 이바는 리즈의 말을 듣기로 하고 다시 오클랜드로 가기로 했단다. 그때 리즈의 딸 엘리가 방문했어. 그런데 엘리의 지금 이름은 다니엘이었단다. 그 로리의 측근 다니엘 맞아. 다니엘은 로리의 측근이지만 로리가 아내 클레어를 폭행하고 괴롭히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나중에 클레어가 오클랜드에 숨어 지내는 것을 알고 그제서야 도와주겠다고 마음 먹은 거야. 다니엘은 이런 고민을 엄마 리즈에게 이야기를 했어. 이 이야기도 이바도 듣게 되었고, 이바는 클레어가 비행기를 하고 푸에르토리코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머릿속에서 새로운 계획이 생겼단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이바가 클레어를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란다. 그렇다면 이바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소설은 다시 비행기 사고 당일로 돌아간단다. 무슨 마음에서 비행기 탑승 줄에서 벗어난 이바…. 그러나 다시 고민 끝에 탑승 줄에 서게 되었단다. 소설 읽는 내내 이바도 어디선가 안전하게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허를 찔렸구나. 이바는 안타깝게도 그 비행기를 그대로 탔고, 클레어 대신 죽고 말았구나. 소설 속 반점을 위해 그런 설정을 했을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이바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소설을 그렇게 끝이 났단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스릴러 영화 한편을 본 듯했어. 지은이 줄리 클라크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줄리 클라크의 최신작 <투 오브 어스>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4번 터미널은 사람들로 끓어 넘친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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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그러니 가족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고, 법에 호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안나는 경찰과 법정이 자신을 돕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남편이 하는 짓은 대부분 법적으로 정당하며, 정당하지 않은 일들? 그런 것들은 안나가 입에도 담을 수 없다. 주님 앞에서조차. 로마에서는 어떤 경우 남편은 아내를 죽여도 된다. 순간적인 격정에서 비롯된 행위라면 죄가 되지 않는다. 여자의 생명에는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다. 아니, 법은 그녀를 돕지 않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혼인 무효 청구를 할 수 있지만, 변호사를 고용할 돈도 없을뿐더러 그럴 돈이 있다 해도 서류가 도착하자마자 필리프는 그녀를 죽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누가? 어떻게 빠져나갈 길을 찾을 수 있을까?


(234)

어째서지?” 지롤라마는 옆에서 몸을 말고 있는 고양이에게 묻는다. “로마의 총독은 아내를 죽도록 패거나 아예 죽이는 남자를 벌할 시간은 없으면서, 젊은 처녀의 명예를 짓밟는 남자를 벌할 시간은 없으면서, 어째서 남자 하나는 죽어 나자빠지면 이토록 어마어마한 수사를 벌이고 경찰을 잔뜩 동원해 감옥 하나를 용의자로 가득 채운단 말이냐? 어째서 남자의 목숨이 수레 가득한 여자들의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이냐??


(269)

뇌를 쉬게 하고 잠을 청하는 법:

빨간 장미 케이크 하나, 화이트와인 식초 한 숟가락, 달걀흰자 하나, 여성의 젖 세 숟가락을 섞여 가열 접시에 올려 숯불에 데운 뒤 장미 케이크를 접시 위헤 올리고 같이 데운다. 육두구 하나를 케이크 위에 올리고, 두 겹 천 사이에 놓은 뒤, 열기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뜨겁게 하여 이마에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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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만들기 - 성형외과의의 탄생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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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류가 생겨난 이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단다. 그 많은 전쟁 중에 1차 세계대전은 규모도 규모지만 전쟁사에 있어 안 좋은 쪽으로 전환점이 되었단다. 가스전이 시작되었고 탱크 등 강력한 신무기들이 대거 등장하였단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이야기야. 그런 사람들 중에는 목숨은 건졌지만 얼굴을 다친 사람들도 많았단다. 얼굴은 한 인간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얼굴을 다쳐 흉측한 모습이 되었다면 그 상처는 육체를 넘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갖게 된단다. 삶의 의지를 잃은 사람들도 있었어.

1차 세계대전 때 그렇게 얼굴을 다친 군인들을 치료하고 고쳐준 의사들이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영국의 해럴드 길리스라는 사람이란다. 아빠가 오늘 이야기라는 하려는 책 <얼굴 만들기>는 바로 해럴드 길리스와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 다루고 있단다. 전쟁의 참혹함에서 살아났지만 다친 얼굴로 또 다른 전쟁을 치뤄야만 했던 이들에게 삶의 의지를 다시 심어 주었던 해럴드 길리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단다.

지은이 린지 피츠해리스는 영국의 의학 연구자이자 작가라고 하는구나. 이 책 이전에는 <수술의 탄생> 등을 출간했대. 오늘 이야기할 <얼굴 만들기>의 부제는 성형외과의의 탄생이란다. 앞서 짧게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성형외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 1차 세계 대전 중에 얼굴을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해주면서 성형외과가 시작한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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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5)

클레어에게는 다행히도 헤럴드 길리스라는 선견지명을 지닌 외과의사가 얼마 전부터 영국 시드컵의 퀸스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얼굴 재건만을 전담하는 세계 최초의 외과의사 중 한 명이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길리스는 기존에 초보적인 성형 수술 기법들을 개선하고 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끝에 완전히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오로지 지옥 같은 참호에서 망가진 얼굴과 정신을 복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흔들림 없이 일에 매달렸다. 이 엄청난 도전 과제를 해내기 위해서 그는 사람들을 모아 독특한 의료진을 조직했다. 그들은 찢겨 나간 부위를 복원하고 파괴된 것을 재창조하는 일을 맡았다. 외과 의사, 내과 의사, 치과 의사, 방사선 의학자, 화가, 조각가, 가면 제작자, 사진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재건 과정을 도왔다. 길리스의 주도하에 성형 수술 분야는 진화를 거듭했고 새로 개척된 방법들을 표준화하면서 이윽고 현대 의학의 한 분야로 적법하게 자리 잡기에 이른다. 그 뒤로 이 분야는 전 세계 성형외과 의사들의 재건과 미적 혁신을 통해 우리 자신과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방식에 도전하면서 점점 번창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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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책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꾸나.

 

1.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13년만 해도 해럴드 길리스는 골프를 좀 잘 치는 평범한 의사였단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와 결혼하여 아이도 낳으며 평범하게 지냈지.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해럴드 길리스도 1915년 봄부터 전장의 간이 병원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는 일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살려냈어. 해럴드가 있는 병원에 마리 퀴리도 병원에 방문했었다고 하는구나. 자신이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엑스선 기계 등을 고안해서 부상병 치료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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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그 해 봄에 새로운 이들이 길리스와 모리슨만은 아니었다. 저명한 과학자 마리 퀴리도 병원을 방문했다. 퀴리는 라듐을 발견한 유명 인사했다. 1903년에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고 1911년에 또 한 번 받았다. 전쟁이 터졌을 때 퀴리는 연구를 중단하고서 자신이 연구하던 방사성 원소를 모두 납으로 코팅된 용기에 담아 보르도의 안전 금고로 옮겨 독일군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치했다. 그런 뒤 자신의 재능을 전쟁 쪽으로 돌려 병상, 발전기, 엑스선 기계, 사진 현상 암실 설비를 갖춘 차량을 고안했다. <꼬마 퀴리>라는 별명이 붙은 이 차량은 전쟁터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화학자는 전시에 엑스선 기계를 갖춘 진료소 200곳을 세우고, 여성 방사선학 전문가 150명을 훈련하여 운영을 돕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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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는 전쟁터의 병원에서 미폴리트 모레스탱이라고 하는 프랑스 의사가 능숙하게 피부 이식을 하는 것을 보고 성형외과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성형은 자신과 같은 외과의사 뿐만 아니라 치과의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수술진도 모집하였다고 하는구나. 그의 수술진에는 의사 출신 화가인 통크스도 함께 했단다. 당시 사진은 흑백사진기뿐이어서, 그것보다는 통크스가 세밀하게 그린 칼라 그림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어. 통크스는 수술 전후 환자의 얼굴을 그림으로 일을 맡았다고 하는구나.

….

피부 이식하는 것은 당시 생소한 수술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단다. 그래서 좀 쉬운 방법으로 가면 등으로 얼굴의 다친 부분을 덮는 시술도 많이 했었대. <오페라의 유령>처럼 그렇게 티가 나는 마스크는 아니고, 얼굴색과 비슷한 색상으로 해서 최대한 얼굴과 비슷하게 가면을 만들었어. 조각가들이 이 작품에 참여해서 감쪽같이 만들기도 했대. 하지만 그 가면의 최대 단점늘 같은 표정의 얼굴이었고, 늙지 않는다는 점이야. 얼굴을 대체하기에는 너무나 큰 단점이었던 거야. 그래도 조각가들도 성형에 참여했단다. 성형 수술이라는 것이 대충 피부를 덮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환자들의 삶의 의지도 살려주기 위해서는 미적인 것도 고민을 해야 했기 때문이야. 조각가들은 그런 것에 도움을 주었단다.

이 책에는 당시 부상병들의 수술 전후 사진이 실려 있단다. 아빠가 생각한 것보다 수술은 훨씬 잘 된 것 같구나. 수술 전 사진을 보면 도저히 복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사진들도 있는데, 수술 후 사진을 보면 수술의 흔적이 조금은 남아 있지만, 환자들의 자존심을 되살리는데 충분해 보였단다. 부상병들에게 해럴드 길리스는 또 다른 부모가 아닐까 싶구나. 그들은 해럴드 길리스에게 깊이 감사의 말을 전했단다.

======================

(309)

그 소식이 알려지자 수십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한 사람은 길리스가 기사 작위를 받자 이렇게 썼다. <선생님께서 제게 보여 준 경이로운 친절과 제 삶을 살 가치로 있게 만들어 준 모든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또 한 환자는 자신의 위턱 일부가 사라진 적이 있다고 말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편지를 보냈다. <너무나 멀쩡해 보여서 11년 전에 거의 불에 다 죽을 뻔했다고 말하면 믿으려 하지 않아요.> 길리스의 노련한 손이 닿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삶이 과연 어찌 되었겠느냐고 말하는 편지도 많았다. 이렇게 쓴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가기 전의 나 자신을 생각하면 정말로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길리스는 그들의 얼굴을 복원했지만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워낙 많았기에 그에게는 얼굴 없는 이들로 남았다. 한 병사는 이렇게 썼다. <선생님이 저를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부상병 중 한 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우리가 선생님을 기억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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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환자들의 부상 정도를 설명하기 위해 전쟁터에서 벌어진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하는데 너무 처참한 장면들이란다. 전쟁은 이렇게 잔인하고 처참한 것이기에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오늘날도 여전히 전쟁의 공포 살고 있구나. 그것도 무식하고 노망든 두 노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말이야. 또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을까. 자신의 결정으로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죄책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을까? 그런 사람은 싸이코패스밖에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이야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샜구나.

 

2.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아이러니하지만 의료계도 많은 발전이 있었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성형외과의 큰 발전이 있었고, 마취학도 발전하여 독립적인 학문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구나. 그리고 수혈에 대한 연구와 발전도 있었대. 그 전까지는 피를 저장하지 못했는데, 이때부터 피를 저장하는 기술도 생겼다고 했어. 그렇게 의료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전쟁은 절대 안 되지.

1918 6 28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드디어 종전 선언을 했단다. 이제 총으로 얼굴을 다칠 일도 없었어. 그렇게 되자 성형 수술의 미래는 불투명했다고 하는구나. 오늘날 성형 외과가 이렇게 성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나 보구나. 해럴드 길리스 등 전쟁 중에 성형을 했던 이들은 민간 성형외과를 시작했는데, 예상과 달리 무척 잘 되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해럴드 길리스는 돈에 욕심 없이 치료를 해주었다고 하는구나.

======================

(316-317)

성형수술로 돈을 벌었든 못 벌었든 간에 길리스는 미용 수술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대중뿐 아니라 의료계 내부에서 나오는 의문들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오로지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수술을 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들어 줄 코가 헛수고가 된다면 내가 이런 일을 굳이 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길리스가 때때로 내면의 갈등을 느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얼굴의 주름을 제거하다가 문득 내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면서도 수술을 받은 이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환한 표정을 볼 때면 과연 환자를 거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길리스는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에게는 사소해 보일 일탈이 당사자에게는 심한 고민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당시의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미용 수술이 원하는 이에게 약간의 추가 행복을 안겨주기에 정당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그는 그렇다고 결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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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후 또 한번 큰 전쟁이 일어났단다. 2차 세계 대전. 그때도 해럴드 길리스는 전쟁터에서 얼굴 다친 부상병을 치료해주었고, 그 동안 성형외과는 더 발전하여 2차 세계 대전 때는 생식기를 다친 사람들도 치료해 주었대. 전쟁 때 생식기 재건 수술이 발전하면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는 음경성형술이 발전하고 성전환수술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구나. 성정체성을 겪는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 같구나.

평생 성형외과 발전에 큰 공을 세운 해럴드 길리스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까지 수술을 하시다가 1960 78살 때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우리가 가진 평범하지만 상처 없는 이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구나.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 얼굴에 새겨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얼굴을 소중히 다루기 위해서는 생각도 올바르게 가져야 한다는 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잔소리가 된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캉브레의 동쪽 하늘에 붉고 노란 빛줄기가 환하게 뻗으면서 날이 밝았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런 수술이 과학적 사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1차 세계 대전 때 해럴드 길리스와 직원들이 성형 수술 쪽으로 흔들림 없이 일구어 나간 성취 덕분이다.

 

 


거기에 악취까지 동반되어 공포스러운 광경은 더욱 끔찍하게 와닿았다. 썩어 가는 살에서 나오는 역겨우면서 달착지근한 냄새가 사방으로 수 km까지 뒤덮었다. 다가가는 병사는 시신을 눈으로 보기 전에 냄새부터 맡을 수 있었다. 악취는 그가 먹는 상한 빵에도, 마시는 고인 물에도, 입고 있는 넝마가 된 군복에도 배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싸운 로버트 C. 호프먼 중위는 20여 년 뒤 미국이 두 번째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죽은 지의 악취를 맡아본 적이 있나요? 모래알 하나를 보고서 애틀랜틱시티의 해변을 떠올린다고 상상해 보세요. 생지의 악취와 오래 전에 죽어 쌓여 있는 병사들에게서 나오는 악취의 차이가 그 정도는 될 겁니다." 호프먼은 시신을 묻은 뒤에도 <여전히 악취가 지독해서 몇몇 장교가 심하게 알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 P14

길리스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칼을 움직여 환자의 가슴에서 특징이 사라진 얼굴에 이식할 피부를 떼어 내기 시작했다. 그 의료진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가슴에 그려진 얼굴 전체를 떼어내어 손상된 얼굴을 덮을 거예요. 코는 갈비뼈에서 떼어낸 연골을 넣어 만들 거고요. 살아있는 진짜 피부로 덮을 겁니다. 피부 조직은 자연적으로 공급되는 피를 받아서 이식편처럼 새 자리에서 자랄 거예요. 그런 뒤 남은 흉터를 다 없앨 겁니다." - P193

길리스는 으레 그랬듯이 수술을 앞두고 자신의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는 발라디에의 편지를 옆에 두고서 벨의 얼굴을 재건할 계획을 마음속으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코였다. 코는 감염되었음에도 기적처럼 남아 있었다. 하지만 코가 허약해진 상태이기에 사소한 실수만 해도 아예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술 시간이 다가오자 길리스는 자신이 적고 스케치한 내용들을 살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을 시간이 되었을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전 프로그널 땅의 중심이었던 본관을 나섰다. 그는 새로 깎은 잔디밭을 가로질러서 새로 지어진 건물로 향했다. 환자들이 지내고 있는 병실과 그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수술실이 거기에 있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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