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1 - 왕건에서 서희까지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1
KBS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이익주 감수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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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을 마무리하고 올해는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아빠가 역사에 취약한 편인데, 특히 고려는 더욱 그렇단다. 조선시대에 책이나 영상 매체를 다뤄서 접할 기회가 많다 보니 주워 들은 것들도 있곤 한데, 고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단다. 고려를 다룬 책들을 읽은 적도 있긴 한데, 아주 오래 전이라서 기억에서 희미해졌어. 그래서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을 읽으면서 고려 500년 역사를 정리해보려고 했단다. 중간중간 재미있는 내용들이 있으면 너희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말이야.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는 모두 4권으로 이루어져 있어. 오늘은 1권을 이야기해줄게. 자 그럼 고고~


1.

고려 이전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가 있었고, 통일 신라 말기 정권이 무너지면서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생겨나면서 우리나라는 전쟁의 도가니에 빠지게 되었단다. 먼저 후백제부터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후백제는 견훤이라는 사람이 세웠는데, 진훤이라고 읽기도 한대. 지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구나. 견훤은 경상도 상주 출신으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를 했다고 볼 수 있어. 당시 지방의 권력을 잡고 있는 호족이 되었거든. 견훤은 전라지역의 장군으로 복무하다가 전라지역을 지반으로 후백제를 건국했단다. 자신의 고향이 아닌 곳에서 나를 세운 것이 특이했는데, 그 지역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인지 견훤은 반신라정책을 펼쳤단다. 무너져가는 신라의 반기를 든 것이지.

...

후고구려는 승려 출신 궁예라는 건국했는데, 그 밑에 있던 왕건이 민심을 잃은 궁예를 처단하고 고려라는 나라를 세웠단다. 918년이었어. 왕건의 아버지는 호족 출신으로 금수저라고 할 수 있어. 고려를 세운 왕건은 견훤과 달리 친신라 정책을 펼쳤단다. 당시 신라는 이름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고, 후백제와 고려의 기세가 비슷하였단다.

견훤과 왕건은 대구 지역에서 큰 전투를 벌였는데, 왕건은 이곳에서 대패를 하고 휘하에 있던 장군 여덟 명이 죽었다고 했어. 그들이 전투를 벌여 여덟 명이 죽은 산을 그때부터 팔공산이라고 했다는구나. 전세가 견훤으로 넘어오나 했는데, 견훤은 집안이 화목하지 못했나 봐. 견훤의 아버지가 상주 지역의 호족으로 있었는데, 왕건에게 귀부하였다고 하는구나. 귀부라는 말은 스스로 와서 복종하는 것을 뜻한단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번에는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쫓겨나 왕건에게 투항하는 일이 벌어진단다.

후백제를 세우고 왕건과 전투에서 대승을 한 견훤이 아들에게 쫓겨났다고? 견훤이 왕위를 둘째 아들에게 주려고 했는데, 이에 첫째 아들 신검이 반란을 일으켰던 거야. 그리고 신검이 아버지 견훤을 죽이려고 하자 견훤은 왕건한테 도망을 간 것이지. 후백제는 이미 집안 싸움으로 인해 자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어. 대세는 고려로 넘어왔어. 신라도 고려에 투항했지. 고려는 대대적으로 신검의 후백제를 공격하였고, 결국 신검은 항복하고 만단다. 왕건은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게 돼. 견훤의 집안 싸움이 없었다면 어쩌면 견훤의 후백제가 후삼국을 통일했을 수도 있었던 거야. 그랬다면 그 이후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평행우주가 있다면 후백제가 통일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볼 수 있을까?


2.

우리나라 왕 중에서 가장 많은 아내를 둔 왕은 누구였을까? 그건 바로 고려 태조 왕건이야. 무려 29명의 아내를 두었대.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하던 그 즈음 지방 호족 세력이 엄청나게 컸고, 그들과 관계 개선을 하기 위해서는 정략결혼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는구나. 그래서 그렇게 많은 아내를 두었다고 하는구나. 그래도 많아도 너무 많은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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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이익주) 제가 왕건을 위해 변명을 좀 하겠습니다. 너무 개인사적 측면으로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요. 왕건이 스물아홉 명의 아내를 거느린 것, 사실은 거느렸다고 하기도 뭣하지만, 아무튼 스물아홉 번이나 결혼한 것은 여자가 좋아서라기보다는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치적인 계산을 한 것이죠. 왕건은 그 자신이 호족이고, 전국의 호족들은 왕건과 대등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왕건은 궁예의 부하로 경력을 시작했죠. 이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견훤과 싸우며 신라를 계속 의식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각 지방에서 독립 세력으로 존재하던 호족들의 지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력한 호족과 가장 믿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동맹을 맺는 방법이 바로 결혼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아까 지도에 봤던 것처럼 전국 곳곳에 있는, 각 지역의 가장 유력한 호족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그 호족의 지지를 끌어내려 합니다. 그 결과 스물아홉 번이나 결혼했던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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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건은 29명의 아내를 통해 아들 25, 9명을 낳았대. 벌써 왕위 계승 싸움의 피 냄새가 나는 것 같구나. 조선에서는 왕을 이을 아들을 태자라고 하는데, 고려에서는 정윤이라고 했다는구나. 1왕후는 아들이 없어서 제2왕후의 장남 왕무를 정윤으로 삼았는데, 2왕후는 배경이 별로라서 세력도 약했다고 하는구나. 배경도 좋고 세력이 좋기로는 제3왕후가 좋은데, 3왕후는 아이도 많이 낳았다고 하는구나. 아들 다섯에 딸 둘이었지.

943 5, 왕건이 67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단다. 일단 제2대 왕은 왕무가 되었어. 혜종이었지. 그런데 혜종은 제3왕후의 아들들인 왕요, 왕소와 대립을 이뤘어. 혜종은 세력이 약했는데, 몸도 허약했단다. 거기에 왕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아우들도 있고...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진단다. 혜종의 장인인 왕규가 혜종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역모를 꾸민 거야. 왕의 장인이 역모를 꾸민다? 뭔가 석연치 않구나. 아무튼 왕규는 혜종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냈다고 했어. 그리고 이 난을 혜종의 동생인 왕요가 진압을 했다고 했대. 일명 왕규의 난이지.

하지만 이것은 왕요가 다 꾸민 것으로 추정된대. 왕요가 자신의 기반을 더 다지기 위한 작전. 역사는 승자의 기록. 이 일이 있고 얼마 안 되어 혜종 마저 34살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단다. 즉위한 지 2년만이었어. 그런데 혜종에는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요가 왕규의 난을 진압한 공을 들어 왕위에 오르게 된단다.

그가 고려 3대 왕 정종이란다. 정종은 왕위에 오르고 서경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했어. 백성들과 호족들이 모두 반대를 했지. 그러면서 호족들은 왕요의 동생 왕소 밑으로 줄을 섰단다. 그런데 정종도 젊은 나이에 죽게 돼. 기록에 의하면 번개에 놀라 병을 얻게 되어 죽었다고 하는데, 의문의 죽음이지. 그리고 후계에 자신의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인 왕소에게 왕을 물려주었단다. 왕소가 제4대 왕이 되었으니 광종이란다. 고려 광종 왕소와 조선의 태종 이방원이 동생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고, 그 이전 왕이 고려와 조선 모두 정종이라고 하는구나. 그러면서 고려의 정종과 조선의 정종이 닮은 점도 지적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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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110)

(신병주) 고려의 정종과 조선의 정종이 정말 닮았다고 했잖아요. 왕으로 재위한 기간은 두 사람 다 매우 짧아요. 근데 조선의 정종은 동생 태종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 무서운 동생이 정몽주와, 정도전, 방석 등을 죽이는 것을 다 봤거든요. 자기까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싶으니까 동생에게 왕위를 깔끔하게 물려주고 격구와 사냥 같은 취미 생활을 하면서 여생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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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려 4대왕 광종은 예전에 시험 문제에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구나. 노비안검법과 과제제도 시행으로 말이야. 광종은 26년간 재위하면서 고려라는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왕권 강화하는데 힘썼다고 하는구나. 노비안검법은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양인으로 해주는 것으로, 호족들이 관리하던 노비들을 양인으로 풀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호족의 반발이 심했다고 하는구나. 노비안검법을 시행한 것이 광종 7년이라고 하는데, 왕위에 즉위한 7년 동안 호족들의 눈치를 보면서 왕권을 강화를 해서 팡 터뜨린 것이란다. 광종은 중국에서 귀화한 쌍기를 사람을 등용해서 그 사람의 조언을 정책으로 많이 삼았다고 하는구나.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과거제도인데, 이 때 만들어진 과거 제도는 인재 등용의 산물로, 조선말까지 약 1000년간 이어지게 된 것이란다.

그리고 관복을 제정하여 위계 질서를 세우려고 했고, 호족 세력의 힘을 빼기 위해 최측근 호족도 숙청했다는구나. 워낙 많은 사람을 죽여서 광종의 이 빛날 광()이 아니라 미칠 광()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대. 그래서 고려 광종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의 제목도 빛나거나 미치거나였다나그런 드라마가 있었구나.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제목인데

고려 시대 유명한 사람, 어쩌면 악명 높다고 해야 할지도 모를 천추태후란 사람이 있었단다. 예전에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었는데, <천추태후>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많이 유명해졌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이 사람 가족 관계가 좀 복잡하단다. 고려 초기에는 왕족 내에서 근친혼이 일상이라고 하긴 하지만, 천추태후는 복잡해도 너무 복잡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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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신병주) 천추태후는 드라마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웬만큼 역사를 아는 사람조차도 잘 몰랐던 인물입니다. 5대 왕 경종에게는 아내가 되고, 6대 왕 성종에게는 동생이 되고, 7대 왕 목종에게는 어머니가 되고, 8대 왕 현종에게는 이모가 되는 인물이에요. 천추태후를 거치지 않고는 고려 시대의 왕 네 명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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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왕은 경종이고, 아내로는 헌애왕후 황보씨와 헌정왕후 왕보씨 이렇게 둘이었는데, 둘은 자매라고 하더구나. 이 중에 헌애왕후 황보씨가 바로 나중에 천추태후가 되는 사람인데, 왕건의 손녀이기도 했대. 경종은 즉위한 지 1년만에 죽고 동생이 왕위에 오르는데 제6대 왕 성종이란다. 헌애왕후 황보씨는 아들이 하나 있었고, 남편이 죽고 난 다음 천추궁에 머무르게 되었단다. 그런데 그곳에 있으면서 승려 출신 김치양이라는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되었대. 그 사실을 알게 된 성종은 김치양을 유배 보냈다고 하는구나.

이때까지는 조용하게 있었는데, 성종이 죽고 헌애왕후 황보씨가 낳은 경종의 아들이 왕위에 올랐으니 제7대 왕 목종이었어. 당시 목종의 나이가 18살이라서 자신이 직접 친정을 해도 될법한데, 어머니인 천추태후가 섭정을 하였단다. 그러면서 유배 갔던 김치양을  데리고 오기도 했어. 다시 김치양과 천추태후는 사랑을 하게 되었고, 천추태후는 마흔 살에 아들을 낳았단다. 그리고 목종은 자식들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동성연애를 했다는구나. 오호이런 상황이 되자, 천추태후는 김치양과 낳은 아들을 왕위에 세우려고 했는데, 왕족들이 반대를 하고 나섰단다.

왕족들은 대량원군이라는 사람을 다음 후계자로 세우자고 했어. 그런데 대량원군이라는 사람도 흠이 있는 사람이었어. 대량원군은 누구냐면, 경종의 둘째 부인이자 천추태후의 동생인 헌정왕후 황보씨가 숙부인 왕욱과 불륜으로 애를 낳았는데 그 애가 바로 대량원군이었어. 불쌍했던 것은 헌정왕후 황보씨는 대량원군을 낳다가 그만 죽었단다. 천추태후가 낳은 김시양의 아들과 대량원군누가 후계자가 되었을까?

이때 막강 군대를 가지고 있던 강조라는 사람이 정변을 일으켰단다. 그래서 목종을 폐위시키고 대량원군을 왕위에 올렸어. 그가 제8대왕 현종이란다. 강조라는 사람이 후계 정리를 싹 해버린 거지. 강조는 목종, 김치양, 천추태후이 낳은 김치양의 아들을 모두 죽였단다. 그리고 천추태후는 멀리 유배를 보냈어. 그렇게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천추태후의 세상도 막을 내렸단다.


4.

고려 초기 외세 침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거란이란다. 우리나라 북쪽 이민족들인 거란족, 여진족, 말갈족, 만주족 등이 헛갈리곤 하는데 그것을 간단하게 정리해 주어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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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이익주) 거란과 여진은 분명히 다릅니다. 거란은 몽골 계통의 유목민입니다. 우리가 아는 요라는 나라를 건국하죠. 여진은 거란보다는 우리와 좀 가깝습니다. 발해가 건국되었을 때 고구려의 유민이 지배층이 되고 말갈족이 피지배층이 됐다고 알고 있는데, 그 말갈이 발해가 망하고 거란에 점령된 다음에 여진으로 불린 거죠. 그리고 이 여진이 1115년에 금을 건국하고 더 나중인 1616년에는 후금을 세웠다가 1636년에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만주족으로 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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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년 성종 때 거란의 침입이 있었어. 신하들 대부분은 거란의 요구를 들어주어 땅을 떼어주는 것을 지지했는데, 서희라는 사람은 홀로 반대를 했단다. 그리고 서희는 거란의 소손녕과 담판을 짓고, 오히려 강동6주를 얻어냈단다. 전쟁 한번 하지 않고 말로써 땅을 얻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던가. 서희는 강동6주를 얻는 대신 송과 관계를 끊고, 거란과 사대관계를 유지한다는 조건이 있었대. 하지만 말이 쉽지 송과 관계를 그렇게 쉽게 끊게 되면 이번에는 송으로부터 공격을 받지는 않을까? 그런 것을 대비해서 서희는 송나라에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대. 거란의 침입에 대해 송나라에게 도움을 청하는 척하고, 송나라도 도와줄 여력이 없어서 고려를 도와주지 않게 되었고, 고려는 송에서 도와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거란과 사대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했대. 이게 다 너희 송나라 때문인 것처럼 이야기해서 송나라가 책임감을 느끼게 말이야. 정말 멋진 작전이구나.

….

강조의 정변의 이후 천추태후가 물러나고 목종이 폐위되었을 때 거란은 이것을 빌미로 고려를 쳐들어 오게 되는데 이것을 거란의 2차 침입이라고 한단다. 강조라는 사람이 강동6주에서 방어를 했지만 고려군은 패배를 하고 개경까지 함락되는 위기에 빠지게 된단다. 당시 왕이었던 현종은 나주로 천도를 한단다.

여기까지가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1>의 이야기란다. 고려 역사도 다이나믹하고 흥미진진하구나. 편지를 쓰기 전에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대략 해주었더니 너희들도 재미있게 들었잖니. 이 책에서 읽은 기억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고려 역사에 대한 지식으로 머리가 꽉 찬 느낌이구나. 조만간 2권도 읽고 이야기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신라 말 정치는 도탄에 빠졌고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책의 끝 문장: 개경은 불바다가 됐고, 서희도 죽고 양규도 죽고, 그럼 고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익주) 고려가 건국된 지 100여 년 정도 지난 다음에 김관의라는 사람은 <편년통록>을 씁니다. 이 책에는 왕건의 조상에 관한 설화가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용왕 등 바다와 관련된 이미지가 계속 나옵니다. 이것은 왕건의 집안이 예성강을 통해 개성에서 중국의 산동반도를 왕래하며 무역했다는 것을 암시하죠. 그런데 작제건(왕건의 할아버지)이나 그 선대가 활동하던 시기를 거꾸로 추론해 보면 남쪽에서 장보고가 활동하던 시기와 거의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통일신라 시대에 남쪽 해상에서 큰 세력을 이루었던 장보고와는 별도의 독립된 세력으로 왕건의 가문이 활동했다고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 P20

(이익주) 안 주는 것보다는 주는 게 나았겠죠. 그리고 왕건의 가장 큰 선물은 호족이 지방에서 가지는 세력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왕건이 견훤보다 훨씬 앞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왕건은 자기에게 귀부해 오는 호족들의 세력을 그대로 인정해 주겠다고 약속하죠. 이처럼 왕건은 중폐(重幣), 즉 선물을 많이 하고, 비사(卑辭), 즉 자기를 낮추는 말을 쓰는 태도를 보입니다. 될 수 있으면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거죠. 왕건도 호족이거든요. 여러 가지 동맹의 관계로 호족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는 정책이 왕건에게서 나왔던 것이죠. 견훤 역시 그 지역의 호족들과 연합도 하고 결혼 정책도 펼치지만, 호족들을 지배하려는 속성이 왕건보다 강한 편이었습니다. 여기서 왕건과 견훤의 차이가 나타나죠. - P39

(신병주) 조선 시대에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도 기록을 보면 "정도전 등이 먼저 군사를 준비했으므로 우리는 정당방어다."라는 식으로 나오거든요. 근데 정작 난을 일으켰다는 정도전 등에게서는 군사적인 움직임을 전혀 찾을 수가 없죠. 그래서 왕규의 난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겁니다. "왕규가 난을 일으켰으므로 우리는 정당하게 진압한 거다." 그런데 실체가 없죠. 하지만 역사는 왕규의 난이라는 이름으로 남았고요. - P98

(이익주) 고려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의 이혼과 재혼이라는 문제는 여성의 지위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지요. 재산상속 문제부터가 조건과는 다릅니다. 고려에서 부모가 사망하면 제산이 어떻게 상속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사정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원칙은 "자녀를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나누어 준다."입니다. 재산을 똑같이 나누어 준다는 것은 자녀들에게 부모에 대한 의무도 똑같이 요구하는 것이고요. 예를 들어 제사는 조선 시대처럼 장남이 지내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지냅니다. 그리고 부모가 살아 있을 때 봉양하는 의무도 장남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녀에게 똑같이 있습니다. - P157

(신병주) 거란의 제1차 침입 당시의 상황과 제2차 침입 당시의 상황을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제1차 침입 당시의 고려는 성종이라는 왕을 중심으로 왕권이 상당히 안정돼 있었죠. 시스템이 안정되어 있는 상황이니까 서희와 같은 명장을 배출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제2차 침입 때는 강조라는 인물이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왕위에 올리면서 정치 체제가 불안정해졌죠. 결과적으로 크게 보면 정치가 안정되고 지지 기반이 확실했을 때는 국방이라든가 외교에서 힘을 받을 수 있는데, 제2차 침입 때는 고려 자체가 정치적으로 무너진 것도 패배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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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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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을 읽었단다.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들은 대체로 재미가 있었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작품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단다. 인터넷 서점을 들러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202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카지노 베이비>를 읽었단다. 지은이는 강성봉이라는 분인데, 이번 <카지노 베이비>가 첫 번째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잡지 기자로 일하시면서 글쓰기의 내공을 기르신 것 같구나. 그리고 어렸을 때 잠시 살았던 곳을 모티브라고 한 것 보니, 정선에서 사셨던 것 같구나. <카지노 베이비>라는 소설 속에서 카지노가 있는 마을의 이름을 '지음'이라는 가상의 이름으로 하였지만,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정선을 떠오르게 될 거란다.

탄광 산업이 저물고 더 이상 그 마을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강원랜드를 유치해서 명백을 이어가게 된 정선. 아빠가 그곳에 살고 있었다면 그것을 반대했을지 찬성했을지 쉽게 결정을 못하겠더구나. 반대쪽으로 좀 기울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아빠도 오래 전에 친구들과 정선 인근에 있는 산에 갔다가 강원랜드에 가 본적이 있어. 정식 사업으로 하는 곳이긴 한데, 카지노가 아닌 도박판 특유의 찌든 냄새가 났던 기억이 있단다. 아빠는 일행과 함께 그곳이 어떤 곳인가? 하고 잠깐 들렀던 곳이고 도박의 확률을 믿지 않는지라, 그 이후에는 가 보질 않았단다. 그런 강원랜드와 주변 마을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 바로 <카지노 베이비>라는 소설이란다. 지은이 강성봉 님의 첫 소설이라고 하는데, 나쁘지 않았단다.


1.

지음이라는 곳은 예전에는 탄광으로 유명했던 도시이지만, 지금은 카지노로 유명한 곳이란다. 책의 앞 부분에 지음이라는 마을의 구성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림으로 설명해주고 시작했단다. 서쪽에는 카지노인 랜드와 리조트가 있고, 지장산이 자리잡고 있는데, 지상산에 절이 있어서 이 서쪽을 웨스트 부다스라고 불렀단다. 동쪽에는 지음 읍내가 있고, 교회, 도서관, 시장 등이 있었는데 교회가 있어서 이 동쪽을 이스트 지저스라고 했어. 그리고 웨스트 부다스와 이스트 지저스가 겹치는 중간 지역이 있는데, 이 곳에는 전당포와 모텔 등 숙박시설들이 모여 있어서 슬립 시티라고 불렀단다.

...

오래 전에 갓난 아이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려갔던 어떤 남자가 있었단다. 그 남자는 아이를 찾으러 오지 않았고, 아이는 전당포에서 자라게 되었고, 어느덧 열 살이 되었어. 그 아이의 이름은 동하늘, 성은 동이고 이름은 하늘이었어. 전당포의 사장 할머니와 딸은 하늘을 잘 보살펴 키웠단다. 돈에 찌든 이들만 보다가 어린 갓난 아이를 보았으니 얼마나 귀엽고 예뻤겠니. 하늘은 전당포 사장할머니를 할머니로 부르고, 사장할머니를 엄마로 불렀어. 그리고 사장할머니의 아들도 한 명 있는데, 동하는 삼촌이라고 불렀어.

할머니는 오래 전에 할아버지와 결혼해서 외지에서 지음에 왔다고 했대. 할아버지는 탄광 일을 했고.. 당시 탄광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였대. 그런데 탄광 산업이 내리막에 들어섰고, 결국 폐광까지 하게 되었대. 아무런 정부는 대책 없이 폐광하게 되자, 지음 탄광에 다니던 사람들은 시위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경찰차에 치인 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후유증으로 얼마 못 가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그 이후 할머니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 했어. 처음에는 다방을 차렸어. 당시 88 서울 올림픽이 열릴 즈음이라서, 올림픽 다방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수입이 괜찮았단다. 그리고 랜드가 들어서고 나서는 전당포를 차렸는데, 당시 2002 월드컵이 열릴 즈음이라서, 월드컵 전당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전당포도 수입이 괜찮았단다. 할머니는 지음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챙기셨어. 쪽박 공원이라는 곳에 잇단 자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굿이라도 해서 해결하려고 했던 것도 할머니였단다.

엄마는 예전에는 랜드에 있는 호텔에서 청소 일을 하면서 돈을 받고 손님의 아기들도 봐주곤 했는데, 그 일로 잘리고 지금은 공공근로자 자격으로 지음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단다. 삼촌은 마지막 광부로 일했던 사람인데, 카지노가 생기고 나서 카지노에 출입을 했지. 그랬다가 돈을 잔뜩 잃고 지금은 백수로 지내고 있었어.

...

할머니가 운영하는 월드컵 전당포 앞에는 용사장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스피드 전당포가 있었어. 용사장은 홀아비에 아들만 셋이 있다고 하는구나. 월드컵 전당포는 아주 오래된 전당포인데 반해 앞집 스피드 전당포는 새로 건물을 올려 최신식으로 운영하는 전당포란다.


2.

하늘은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인지 울긋불긋한 환상을 보기도 하고, 낯선 남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어. 그곳이 랜드에 있는 카지노인지 무척 궁금했단다. 할머니나 엄마한테 카지노에 데려다 달라고 하면 안 해줄 것 같고, 가끔 들르는 스피드 전당포의 용사장님한테 부탁을 했어. 그때 용사장님과 친구들이 전당포 2층에서 불법 도박을 하고 있었는데, 하늘의 부탁을 흥미롭게 생각했어. 카지노는 하늘처럼 어린 아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거든. 용사장님과 친구들은 하늘이가 카지노에 들어갈 수 있네, 없네를 두고 내기를 했단다. 그래서 용사장님과 친구들은 하늘을 데리고 카지노의 비밀 통로를 통해 카지노 안으로 데리고 갔단다. 하늘이는 그곳에 환상에서 보던 그곳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 갑자기 랜드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 발생했단다.

옛날 탄광에 세운 건물이라 그런 것인지 인근 골프장 개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싱크홀이 생겨서 건물은 그래도 땅속으로 무너져 내렸단다. 그때 하늘이도 실종되었어. 그날부터 할머니는 하늘이를 찾느라 잠도 자지 않고 여기저기 찾아 다니셨단다. 다행히 하늘이는 죽지는 않고 다치기만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 할머니도 하늘이를 찾느라 고생하다가 병이 나서 같이 입원을 했단다.  할머니의 병은 생각보다 큰 병이었어. 숨기고 있던 치매도 더 심해졌어. 그리고 얼마 못 가서 할머니는 돌아가셨단다.

전당포의 사장이자 이 집의 기둥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아직 철 든 삼촌과 엄마가 할머니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랜드 건물이 무너져서 카지노도 못하니 전당포도 당분간 수입이 없을 텐데.. 그런데 할머니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떠나셨단다. 자신이 치매 걸린 걸 알았을 때부터 준비를 하신 것 같아. 부동산을 통해 이자를 받아서 생활비를 쓸 수 있게 했고, 하늘이가 호적에 올라가 있지 않아 학교를 못 다니고 있었는데, 그것도 다 조치를 해서 하늘이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이상하게 생겨 쓸모 없어 보이는 땅도 하나 사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제 2 랜드 부지였던 것이란다. 소위 말하는 알박이용 땅으로 랜드 공사가 시작되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땅이었단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하늘 나라로 가셨던 것이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열 살 하늘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전당포 사장 할머니가 주인공인 듯싶더구나. 지음이라는 마을의 발전과 쇠락을 함께 했던 할머니의 이야기.

여기까지가 <베이비 카지노>의 이야기란다.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인 카지노 인근에 살면서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여 살아가긴 하지만, 가장 인간미를 보이는 주인공들의 역설적인 삶을 재미있게 잘 그려낸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

책의 끝 문장: 나는 지음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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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 인도 우화집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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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류시화 님을 좋아한단다. 류시화 님의 글들도 좋아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계신 것 같아 좋아하지. 류시화 님은 오래 전부터 인도 여행을 자주 하셨어. 인도라고 하면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여 그로 인한 사회 문제가 많은 나라, 여러 종교들이 시작한 나라, 노상 강도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여 여행하기 어려운 나라, 영어를 모국어로 채택한 이후 소프트웨어로 IT 강국이 된 나라 등으로 아빠는 알고 있단다.

그러면서 그 내용들이 참 연관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다르게 이야기하면 여러 다양성이 있는 나라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 위에서 이야기한 것은 아빠가 생각하고 있는 인도의 이미지를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에 아빠가 잘못 알고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어. 인도라는 나라를 가본 적은 없으니까.

그런데 위에서 이야기한 이미지 외에 명상의 나라이자 지혜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것은 순전히 류시화 님의 책들을 통해서 알게 된 인도의 이미지란다. 류시화 님은 인도 여행을 자주 하시고 기행문도 여럿 쓰시고, 인도에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자주 소개해 주었단다. 아빠가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인도의 또 다른 이미지를 하나 만들게 된 것이지. 이번에 읽은 류시화 님의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라는 책도 인도 관련된 책이란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우화, 신화 등을 모은 책이란다. 책이 좀 두꺼운데 인도의 우화가 이렇게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이 긴 생각을 하게 하는 경우도 많았단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많고 재미있어서 너희들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너희들이 공부하는 시간이 늘면서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말이야. 류시화 님은 이 책의 지은이는 자신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셨어. 자신은 이야기를 수집하고 엮었을 뿐이라고 말이야. 류시화 님 덕분에 좋은 이야기들을 만나고, 그로 인해 힐링도 하고 깊은 생각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단다.


1.

읽을 때는 몰랐는데, 책 소개를 다시 보니 이 책에 100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 심심할 때 책을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 짤막한 이야기를 하나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책에서 실린 이야기 몇 편을 소개해 볼게. 자신이 가르쳐주는 내용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아이를 혼내는 선생님. 그 아이는 자신이 배운 산스크리트어의 책의 첫 문장만 알고 있다고 했고, 어쩌면 두 번째 문장도 배운 것 같다고 했어. 공부한 양이 적다고 더 혼내시는 선생님. 그런데 그 아이가 배웠다고 하는 문장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었단다. 무조건 많이 아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야. 지혜로운 삶의 진리 한두 개만 알아도 나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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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그때 구루의 시선이 소년이 배웠다고 말한 첫 번째 문장에 꽂혔다. 인도의 초급 교과서는 고양이같은 단어들로 시작하지 않는다. 인생의 조언으로 시작한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책의 알파벳 뒤에는 다음과 같은 첫 문장이 적혀 있었다.

화내지 말라. 결과 흥분하지 말라. 이성을 잃지 말라.’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은 이것이었다.

진실을 말하라.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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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실력이 좋다 해도 누군가를 이기려는 욕망을 갖게 되는 순간 그 재능으로는 경지에 오르지 못한다는 글도 좋았단다. 경쟁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그런데 그것이 쉽지는 않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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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그대에게는 뛰어는 음악적 소질이 있는데, 단 한 가지가 문제다. 누군가를 이기려는 욕망이 그것이다. 훌륭한 음악성과 재능을 가졌음에도 그대의 가슴은 음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욕망은 그대를 음악과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다. 이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결코 탄센과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탄센에게는 남을 이기려는 마음이 없다. 이것이 그가 계속 이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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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골프장에 원숭이가 들어와서 말썽인 적이 있단다. 원숭이가 골프공을 집어 던지거나 공을 들고 도망가기도 했어. 골프장에서는 원숭이를 내쫓으려고 온갖 방법을 사용했지만 소용이 없었지. 그리고 누군가 내놓은 해결책으로 그 골프장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구나. 그 해결책은 원숭이를 골프의 룰에 포함시키는 것이었어. 친 공을 원숭이가 잡아서 다른 곳에 던지면 그 곳에서 다음 공을 치고, 원숭이가 공을 집어 홀에 넣으면 홀인원이 될 수도 있고 말이야. 그 골프장에서는 예외적인 상황이 생겨서 골프에 더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이지. 마치 우리 삶처럼 말이야. 우리 삶이 우리 생각한대로만 흘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어. 원숭이가 있는 골프장처럼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잖아. 그렇다고 그걸 취소하고 다시 할 수도 없는 게 우리 인생이잖니. 이 원숭이 골프장 우화를 통해서 그런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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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206)

삶은 우리가 의도한 대로 진행될 의무가 없다. 기차가 지연되고, 차는 진창길에서 고장 나며, 면접 일정은 틀어지고, 멋진 계획은 엉망이 된다. 잘나가고 있던 중에 갑자기 원숭이가 튀어나와 공을 홀컵에서 멀리 던져 버리고 그동안의 노력이 무효화된다. 그럴 때 우리는 절망하고, 자신과 타인을 비난하며, 운명을 탓한다. 자신이 이 경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포기하려는 마음까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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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간혹 회피해보려고 하는 적이 있단다. 아빠도 일생생활이나 회사생활에서 그런 적이 있어. 그런데 결국에는 더 큰 문제가 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단다. 그럴 때마다 문제를 회피하지 말자고 하면서, 또 어려운 문제에 닥치면 회피할 생각부터 하곤 했단다. 그런 아빠에게 경종을 울리는 문구가 하나 있어 적어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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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문제에 맞서기보다 회피했을 때 문제는 더 커지고 단단해져 우리를 위협한다. 자갈과 모래 정도의 문제를 바위의 크기로 스스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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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이렇게 간단히 이야기 몇 개를 소개하는 것으로 맺을게. 아빠가 가끔씩 이 책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고 바쁜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도록 해볼게. 장담은 못하지만 말이야.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나는 이야기를 수집하며 살고 싶었다.

책의 끝 문장: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작가이지만, 과녁을 맞히는 소년의 일화를 포함해 이 책에 실린 모든 이야기 속에서 주제를 재발견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그대는 그대의 이야기이다. 그대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진리를 그대의 이야기에 담아야 한다. 그대의 진리를 곧바로 주장하면 사람들은 관심 갖지 않을 것이다. 고집 세고 에고가 강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그대의 진리에 그대만의 이야기로 옷을 입혀라. 그때 그 진리는 설득력을 지닐 것이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대는 먼저 삶을 경험해야 한다. 이야기는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P13

"나는 특별한 진리나 비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목발을 집어던지고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대들도 나처럼 목발을 내려놓으면 된다. 나에게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쉽고 간단한 일이다." - P86

차이는 각 개인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즉, 우리 각자가 다른 인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일어난다. 이것은 또한 각 개인이 어떤 성품인가에 달려 있다. 선한 사람은 그가 만나는 사람의 선한 자질을 보려 하고, 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악한 면만 본다. 이것은 각 개인의 타고난 자질이다. - P252

문제로부터 영원한 해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문제들은 우리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며 그곳에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들을 신중하게 다뤄야 하지만, 그것들로 인해 잠들지 못해서는 안 된다. 낙타를 자신에게 묶어 놓았기 때문에 자신도 낙타에게 묶인 것이다. 문제들에 맞닥뜨리면서도 깊이 휴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낙타들이 앉아 있든 서 있든 방해 받지 않고, 기나긴 사막을 건너기 위해 밤에는 휴식을 취하는 유목민들처럼. 여행자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앞에 놓인 길이 아니라 신발 속 모래이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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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킴의 세계사 완전 정복 - 패권전쟁으로 이해하는 역사의 흐름
썬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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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즐겨 드는 팟캐스트가 하나 있어. <썬킴의 세계사 완전 정복>이라고세계사를 이야기해주는 팟캐스트인데, 재미있으면서도 쉽게 잘 설명해주어 즐겨 듣거든. 너희들도 함께 들으면 세계사 상식을 쌓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같이 듣자고 했는데, 너희들 취향은 아닌가 보구나 ㅎㅎ 뭐 어쩔 수 없이 아빠 혼자 들어야지.

<썬킴의 세계사 완전 정복>의 팟캐스트의 기반으로 해서 책이 출간되는데 두 번째 책 <썬킴의 세계사 완전 정복>을 아빠가 이번에 읽었단다. 첫 번째는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라는 제목을 나왔는데, 이번에는 팟캐스트와 같은 제목으로 책이 나왔구나. 책의 내용은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내용인데, 들은 지 한참 지나서 내용이 어렴풋했단다. 그런데 책으로 다시 읽으니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내용들이 다시 기억이 났어. , 복습 효과라고나 할까? 아빠도 복습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단다. 메모도 하면서 말이야. 그 메모를 바탕으로 다시 너희들에게 독서 편지를 쓰는데 다시 한번 복습하는 것 같구나. 이렇게 여러 번 복습을 해도 또 얼마 못 가서 다 잊혀지고 마는 두뇌가 서글프구나.

이번 <썬킴의 세계사 완전 정복>이라는 책에서는 미국과 러시아, 한 때 세계의 투탑(two top)이었던 두 나라의 역사를 다루고 있단다. 어떻게 두 나라가 강대국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있지.

 

1.

, 그럼 먼저 미국의 역사부터 이야기를 해줄게.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것은 1492년 콜럼버스였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아메리카 대륙의 조금한 섬들이고,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그 섬들이 아메리카 대륙이 아니고 인도의 섬들이라고 생각했대. 애초에 그가 항해를 나선 것도 인도를 찾아나선 거니까. 그래서 그 섬들을 서인도 제도라고 부르는 것이고. 1584년 영국 윌터 롤리라는 사람이 북미 대륙을 발견하고 자신이 발견한 지역의 이름을 버지니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식민지 건설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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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584년경, 영국인 탐험가 월터 롤리는 지금의 미국 플로리다주 북구 해안을 탐사하던 중 영국인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땅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땅에 당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별명을 따 버지니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왜 버지니아냐고요? 엘리자베스 1세는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라고 선언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처녀 여왕(virgin queen)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이 당시 버지니아에는 특정한 경계가 없었기에 지금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플로리다에 이르는 지역을 대부분 버지니아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의 버지니아주와는 위치가 다르니 기억해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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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년 다시 시도한 끝에 제임스 타운에 첫 식민지를 만들게 돼. 하지만 이것은 환경이 좋지 않아 도착했던 104명 중 38명만 살아남게 돼. 그곳에서 그들은 담배 농사를 하게 되고, 농경지를 확대하다 보니 원주민들과 충돌하게 되고, 원주민들을 많이 죽이게 되는데, 이것이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역사의 시작이란다. 폰카혼타스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이 시절 실제 있었던 아메리카 원주민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구나. 담배 농사를 하게 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노예제도가 시작되었다고 하는구나. 제임스타운에 정착한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정착민인데, 그들이 원주민들을 학살한 어두운 역사가 있어서 미국의 역사에서는 그들을 배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구나.

그 대신 1620년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온 102명의 청교도들을 첫 정착민으로 여기려고 한대. 그들은 보스턴 플리머스 지역에 도착을 해서 그곳을 뉴잉글랜드라고 불렀어. 그들이 도착한 시기가 겨울이고 식량이 없어서 힘들어했는데 원주민들의 도움을 주어 살아났단다. 다음해인 1621년 추수를 한 곡식들을 원주민들에게 고맙다고 전달해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시작이라고 하는구나. 하지만 정착민들과 원주민들이 서로 돕는 아름다운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단다. 그로부터 약 50년 후 정착민들은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단다. 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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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질병과 굶주림으로 힘들었던 청교도들은 원주민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마음이 들까요? 그래서 다음 해인 1621, 옥수수를 수확한 청교도들이 고마운 마음을 담아 원주민들에게 칠면조 등을 잡아서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의 시작이라고 미국인들은 주장합니다. 아주 아름다운 미덕으로 포장해 매년 114번째 목요일이 되면 전국적으로 칠면조를 잡아 가족끼리 기도를 하며 그날의 아름다운 미덕을 기리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대부분이 아는 미국 추수감사절의 아름다운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50년 후, 청교도 정착민들의 태도가 돌변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원주민들을 모조리 학살합니다. 왜 갑자기 은인들을 학살했느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점차 영국에서 사람들은 밀려 들어오고, 땅은 부족했습니다. 제임스타운의 경우와 똑같이 자신들이 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원주민과 충돌한 것입니다. 청교도들을 도운 원주민들은 왐파노아그족(Wampanoag)이란 부족이었는데 1675, 중무장한 영국인들에게 거의 몰살당해요.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미국이 숨기고 싶어 하는 건국 초기의 흑역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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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국이 북미대륙에서 식민지 건설을 박차를 가하자 프랑스도 식민지 건설에 뛰어들게 돼. 1754년 프랑스인 자크 자르티에와 그의 일행들은 캐나다 퀘백에 도착했단다. 그곳은 겨울에 너무 춥다 보니 프랑스인들은 미시시피강의 서쪽을 따라 남으로 내려왔어. 그리고 그곳을 자신들의 땅이라고 하고, 루이 14세의 이름을 따서 루이지애나라고 했단다. 그 당시 영국은 미시시피강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지. 미시시피강을 두고 동쪽은 영국, 서쪽은 프랑스. 뭔가 이뤄질 것 같지 않니? 그래 맞아 그들은 둘이 전쟁을 하게 돼. 원주민들에 호의적이었던 프랑스인들은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게 돼. 하지만 영국 본토로부터 막강 군대를 후원 받은 영국이 승리를 하게 된단다.

영국 본토에서는 이 전쟁에 들어간 돈이 많았다면서 식민지로부터 많은 세금을 받아갔단다. 그러자 식민지 정착민들은 반발을 하게 되었고, 그런 시위는 계속 이어져 보스턴에 들어온 차()를 바다에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단다. 영국 사람들은 홍차를 즐겨 마셔서 이 홍차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거든. 원래 차는 밀수업자들이 몰래 반입해서 싸게 먹을 수 있었어. 그런데 영국 정부는 동인도회사에 차에 대한 독점권을 주고, 차에 많은 세금을 붙여서 팔았단다. 이에 정착민들이 화가 나서 보스턴에 들어온 동인도회사의 차를 바다에 다 버린 것이란다. 이것을 발단으로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단다.

식민지 정착민들과 영군 본토 사이의 전쟁. 결국 식민지 정착민들이 승리를 하면서 그들은 더 이상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로 거듭나게 된단다. 이때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 동부 연안을 중심으로 13개 주로 이루어져 있었단다. 처음 수도는 뉴욕 맨해튼이었는데, 워싱턴 DC로 수도를 옮겼어. 수도의 이름은 독립전쟁을 승리를 이끌고 초대 대통령이 된 워싱턴이라는 이름과 처음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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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1)

1790년 본격적으로 이 늪지대에 새 수도 건설이 시작됩니다. 이제 새 수도의 이름을 정할 시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해 워싱턴이란 이름을 일단 붙이고 그 뒤에 D.C.란 타이틀을 하나 더 추가합니다. 여기서 D.C.District of Columbia의 준말인데 우리 말로 번역하면 콜롬비아 특별구라는 뜻입니다. 콜롬비아는 당시 유럽 대륙에서 미국을 부르는 또 하나의 별명이었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한 콜럼버스의 땅이란 뜻이었지요. 결국 미국 수도 이름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미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이름이 들어간 워싱턴 D.C.로 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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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국은 땅을 점점 넓혀가게 되는데, 1817년 먼저 프랑스 땅이었던 루이지애나를 돈을 주고 사게 된단다. 돈이 궁했던 프랑스가 아주 싼 값에 넘겨버린 거지.

한편 이 즈음 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전운이 감돌았단다. 이때 영국의 탈영병들이 미국으로 도망 오는 일이 생기는데, 이 일로 인해 영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었단다. 결국 전쟁까지 가게 되는데,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합의하에 전쟁은 끝이 났단다. 이것이 2차 독립 전쟁이라고 하는구나. 1차 때와 달리 2차 독립 전쟁 때는 영국에서는 전력을 다했는데도 미국을 이기지 못했단다. 미국은 그만큼 짧은 시간에 막강한 힘도 갖게 된 거야.

2차 독립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다시 영토를 확장해 나갔단다. 텍사스가 원래 멕시코의 땅이었는데, 독립선언을 하고 텍사스란 나라가 되었단다. 그런데 얼마 후 텍사스는 미국에 합병되어 텍사스도 미국 땅이 되었단다. 때는 1845년이었어. 이제 서부 지역 캘리포니아로 눈을 돌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역시 멕시코 땅이었어. 이번에는 전쟁이었단다. 미국과 멕시코는 전쟁을 벌였고,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여 캘리포니아를 비롯하여 서부 대부분의 땅이 미국의 땅이 되었단다. 1848년이었지.

 

3.

이렇게 확장만 해 가던 미국에도 위기가 찾아왔단다. 남북전쟁으로 더 유명한 미국 내전이란다. 남북전쟁은 영어로 내전이라는 뜻의 civil war라고 하는데, 너희들은 어벤저스 영화 제목으로 더 익숙하겠구나. 당시 미국 북부는 철강의 중심지로 거듭나서 오대호까지 운하를 뚫어서 대서양까지 곧바로 배로 이동이 가능했어. 일자리도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어. 한편 남부는 목화 농장을 중심으로 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서 이전부터 많은 노예들을 이용하고 있었단다. 북부 지역은 자신들의 철강 중공업 보호를 위해 수입 관세를 대폭 높여서 유럽에서 들어오는 철강을 견제하였는데, 이렇게 되자 유럽에서는 그것에 맞서 미국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는 주요 수입 품목인 목화에 관세를 엄청 높이게 되었어. 그렇게 되니 미국 남부에서는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지.

그렇게 노예제와 관세 문제로 남부와 북부는 갈등을 겪게 되었고, 결국 둘로 나뉘어 전쟁까지 벌이게 되었단다.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는 모두 11개 주였고,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도 모두 11개 주였어. 노예 해방론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링컨을 떠올리겠지만, 그 외에 존 브라운이라는 사람도 기억하면 좋겠구나. 존 브라운은 남부의 노예를 빼돌리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는 노예를 빼돌려 북부 지역으로 보내거나 원래 그들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보내주기도 했대. 그렇게 아프리카로 돌아간 이들이 나라도 세웠대. 라이베리아라는 나라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그들의 국기는 미국 성조기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어. 나름 고마움의 표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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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817년엔 노예해방론자들이 아예 흑인 노예 수만 명을 배에 태워 다시 그들의 고향인 서아프리카로 돌려 보냅니다. 이들에 의해 미국을 탈출한 수만 명의 흑인 노예들은 서아프리카에 새로운 나라를 만듭니다. 이것이 1822년 서아프리카에 설립되어 1947년에 독립한 라이베리아(Liberia)’에요. 라이베리아의 국기를 보면 미국 성조기와 아주 비슷한데요. 자기들을 탈출시키고 고향 아프리카에 그들만의 나라를 만들어 준 미국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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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의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꾸나. 남부는 북부에 비해 군사력이 좀 약했어. 전면전이 어렵다고 생각한 남부는 워싱턴 DC를 우회해서 공격하려고 했지. 하지만 북부도 그것을 알아채고 그 길을 차단하고 전투를 벌였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전투란다. 남부군 7만과 북부군 10만의 격돌. 이 전투에서 남북부군 합쳐 5만명이 죽고 남부군이 패배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곳에서 링컨으로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하게 된단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18631119일이었지. 전쟁은 좀더 이어졌지만 전세는 북부로 완전히 기울어졌어. 186549일 남부는 최종 항복을 하고 링컨은 종전 선언인 리치몬드 선언을 했어. 그리고 414일에 백악관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저녁 존 부스라는 사람에 의해 총에 맞고, 다음날인 415일에 죽고 만단다. 그렇게 남북전쟁은 링컨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슬프게 끝이 났구나.

1869년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었단다. 그동안 서부 지역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이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면서 사람들과 물류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단다. 그렇게 서부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그곳에 있던 원주민들은 또 학살당하고 쫓겨나게 되었단다. 원주민들의 역사는 눈물의 역사로구나.

미국은 영토 확장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데, 알래스카 땅을 러시아로부터 싼 값에 구입하는데, 얼어서 아무 쓸모 없는 땅을 샀다고 당시에는 여론이 좋지 않았지만, 나중에 석유가 발견되면서 그야말로 대박을 쳤단다. 이 즈음부터 미국도 제국주의 노선을 걷게 된단다. 북미 대륙 바깥의 식민지 건설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어. 쿠바에서 스페인과 격돌하여 미국 스페인 전쟁이 벌여졌는데,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여 괌, 하와이, 필리핀 등 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차지하게 된단다. 그리고 미국은 아시아로 눈을 돌린단다. 청나라에서 목사들을 죽인 의화단 사건이 있는데, 이 사건을 핑계로 미국은 청나라를 간섭하게 되고, 러일전쟁 당시 뒤에서 일본을 지원하여 일본 승리에 일조하게 된단다.

일본이 러일전쟁을 승리하고 나서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는데, 이 밀약을 통해 일본은 대한제국을 차지하고 미국은 필리핀을 차지하는 것을 서로 인정하게 된단다. 미국은 이후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하면서 세계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단다. 그렇게 미국은 세계 최강국 중 하나가 된 거야.


4.

자 이번에는 러시아의 역사를 알아보자꾸나.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활약하던 시기부터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나폴레옹이 영국을 제재하기 위해서 영국봉쇄령을 내린 적이 있는데, 러시아는 이에 반발하여 영국과 농산물 교류를 했단다. 이에 화가 난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하게 되는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많은 희생을 한 끝에 모스크바를 점령하게 된단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추위와 러시아군의 반격으로 60만 군인들 중에 30만명만 돌아오는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단다. 이 일로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가게 돼.

러시아에서도 전쟁의 후유증이 컸어. 특히 농노들의 불만이 커지고 농노해방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런 와중에 마르크시즘이 들어오게 된단다. ‘인민 속으로라는 뜻의 브나로드 운동이 일어났다가 실패했지만, 이 실패 이후 더욱 개혁의 움직임이 커졌어. 이 운동을 이끄는 이들은 당시 러시아 황제인 알렉산드로 2세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여섯 번 시도를 했는데 여섯 번 모두 실패하였단다. 결국 암살에 성공하여 알렉산드로 2세가 죽고 알렉산드로 3세가 즉위했는데 그 또한 알렉산드로 2세와 다른 것이 없었어.

그를 뒤이어 1894년 니콜라이 2세가 즉위를 했어. 이 황제는 조선과도 연관이 있는데, 그가 즉위할 때 조선에서도 그의 즉위를 축하하는 축하사절단을 보냈대. 당시 국내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도와달라고 간 거라고 하는구나. 국내 사정이 어땠는지 좀 이야기를 해보면청일전쟁 후 명성황후는 러시아와 친분을 쌓게 된단다. 그런데 당시 일본은 청일전쟁으로 얻은 랴오둥 반도를 러시아에게 빼앗겨 러시아에 감정이 안 좋은 상태였어. 그런데 명성황후가 러시아와 친분을 쌓자 열 받아 명성황후를 시해하게 된 거야. 일본은 러시아에 빼앗긴 랴오둥 반도를 다시 차지하기 위해 1904년 뤼순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함대를 기습한단다.

준비가 안 된 러시아 함대는 밀리게 되고, 이에 발트해에 있던 최강 러시아 함대를 파견하기로 한다. 하지만 발트해에서 일본까지 오려면 너무 멀어.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쳐 도착을 하긴 했는데, 긴 항해로 지치고 군비로 부족해진 상태야. 그런 상태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던 일본군과 싸웠으니, 결국 지고 말았지. 러일전쟁 이후 포츠머스 조약이 성사되고, 조선의 모든 권한을 일본이 갖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어. 그래서 그 해(1905)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만단다.

 

5.

, 이 즈음 러시아 현대사에 중요한 인물 레닌이 등장한단다. 원래 이름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율리아노프. 레닌의 형은 알렉산드로 3세 암살 사건으로 연루되어 교수형을 당했단다. 레빈은 형이 역적으로 몰리면서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했어. 이후 본격적으로 마르크스 사상에 빠졌고, 페테르부르크로 갔단다.

190519일 일요일, 먹을 것이 없어 빵을 달라면서 시위를 하는 시민들. 그런데 그들이 받은 것은 빵이 아니고 총격이었단다. 피의 일요일이라고 불렀어. 이때부터 민심은 더욱 악화되었단다. . 그러다가 1917223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번에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군인들도 함께 동참했단다. 군인들은 황제 편을 드는 장교들을 죽이고 시민편에 섰어. 결국 니콜라이 2세를 죽이고 혁명이 성공하는 듯 했단다. 당시 혁명을 주도했던 이들은 시민들뿐만 아니라 자본가들도 있었는데, 니콜라이 2세를 몰아내고 그 자본가들이 권력을 잡았단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임시정부를 만들더니 다시 만행을 저질렀단다. 황제에서 자본가들로 바뀌었을 뿐 일반 시민들은 여전히 어려움의 연속이었단다.

이때 스위스에서 망명 중인 레닌이 귀국을 한단다. 그런데 이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나라가 있으니 바로 독일이란다. 당시 러시아가 독일의 적국으로 제1차세계대전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레닌이 러시아에서 혁명을 하게 되면 전쟁에서 빠지겠다고 했거든. 레닌이 러시아에 도착을 했고, 군대들도 레닌을 지지했단다. 그 군대들이 자본가들의 임시정부를 공격하여 혁명의 마침표를 찍게 된단다. 191710월이었어. 레닌은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기고 소비에트 연방을 탄생시킨단다. 소비에트 연방은 한동안 미국과 세계 2강의 강력한 나라가 된단다.

여기까지가 책의 이야기란다. , 한참 이야기했는데 제대로 설명했는지 모르겠구나.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은 100년도 못 가서 붕괴하고 다시 여러 나라로 된단다. 러시아는 예전부터 못한 파워를 갖게 되었지. 거기에 무식한 지도자가 작년에는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가 전쟁을 일으켜서,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단다. 일 년이 넘었는데 끝나지 않은 전쟁에 체면도 구길 대로 구겼는데, 더 이상 끌지 말고 이제 조용히 물러나야 하지 않나 싶구나. 러시아 시민들은 악랄한 독재를 하는 황제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 시민들인데, 푸틴은 무섭지도 않은가 보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썬킴의 세계사 완전정복>이라는 팟캐스트는 여전히 인기가 좋은 것 같으니 책도 계속 출간될 것 같구나. 앞으로도 팟캐스트로 한 번 듣고 책으로 복습해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책의 끝 문장: 짧지만 많은 내용을 다룬 러시아의 역사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현재 미국인들이 자기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첫 북미 대륙 정착민’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들은 바로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 플리머스 항구를 출발해 약 65일 뒤 지금의 보스턴 부근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도착한 102명의 청교도인이랍니다. 이들은 오늘날의 뉴욕이 있는 허드슨강을 목적지로 영국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현재 보스턴 지역인 플리머스였습니다. 목직지가 달라졌으나 플리머스에 도착한 이들은 그곳을 ‘새로운 영국’이라는 뜻의 뉴잉글랜드(New England)라고 이름 짓고 일단 살아보기로 합니다. - P29

카르티에가 프랑스령이라 선언한 지역이 바로 지금의 퀘백 지방입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대부분 영어를 쓰지만 퀘벡에서는 아직도 프랑스어를 씁니다. 퀘백의 중심 도시 몬트리올에는 중앙 광장이 있는데요. 바로 ‘자크 카르티에 광장’입니다. 프랑스어가 쓰인다는 걸 잘 알 수 있지요. 카르티에가 그 동네 원주민에게 이곳의 이름을 물었더니 원주민은 ‘카나다, 카나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카르티에는 그곳의 이름을 카나다로 알고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곳 원주민 말로 ‘마을’이란 뜻이었거든요. 결국 그 카나다가 나라 이름인 캐나다(Canada)가 되었답니다. - P50

미국 백인들은 수족을 학살한 것도 모자라 더욱 잔인한 일을 벌입니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 가보면 러시모어산이 있는데, 그 산에 역대 미국 대통령 네 명의 얼굴이 크게 조각되어 있어요. 관광지로도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중서부 단체 여행 중 꼭 방문하는 미국의 성지거든요. 그런데 그 백인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러시모어산은 바로 수족의 터전이었고 그 산은 수족의 성지(聖地)였던 것입니다. 백인들이 자신들에게 덤비고 얼굴을 새겨 넣은 겁니다. 수족의 입장에선 부족의 성스럽고 상징적인 산에 백인 정복자 네 명의 얼굴이 새겨진 것이지요. 이건 마치 광화문 광장에 이토 히로부미 동상을 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수족에게 치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 P137

러시아 역사 가운데 여러분과 함께 시작할 시대는 로마노프 황족이 군림하던 ‘로마노프 황조’시대랍니다. 로마노프는 조선을 다스렸던 전주 이씨와 같이 당시 러시아를 다스리던 왕족의 이름이랍니다. 유럽 변두리 국가였던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유럽사에 당당한 주요 국가로 등장한 시기도 이 로마노프 황조 때였어요. 이 로마노프 황조, 우리와도 관계가 깊어요. 고종이 수도 서울 안에서 도망간 러시아 외교 공관은 로마노프 황조의 외교 공관이었고, 한반도 주도권을 놓고 일본과 대판 싸운 러일전쟁도 로마노프 황조 때 일어났답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으로 쫄딱 망한, 즉 러시아 역사의 마지막 황조 또한 로마노프 황조입니다. - P170

쇼스타코비치가 1957년에 작곡한 <교향곡 제11번>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곡 연주에 한 시간이 넘을 정도로 장대하고 거대한 음악 작품입니다. 여섯 개의 혁명가를 인용한 것 또한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의 악장마다 ‘궁전 앞 광장’, ‘1월 9일’, ‘추도’, ‘경종’ 등 피의 일요일 사건의 순서를 나타내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1악장은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나기 전 민중의 모습, 2악장은 학살 장면, 3악장은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 4악장은 비극을 딛고 일어나 전진하는 민중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피의 일요일 사건이 낯설고 멀게 만 느껴진다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들어보면 어떨까요?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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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처음 듣는 당신에게
박종호 지음 / 풍월당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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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풍월당 박종호 님의 클래식 관련된 책들이 있단다. 그래서 박종호 님의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보게 되면 반갑고 그렇단다. 이 책도 그렇게 인터넷 서점에서 알게 된 책이란다. 책 제목은 <클래식을 처음 듣는 당신에게> 란 책이란다. 책 제목만 보면 예전에 쓰신 책과 살짝 중복되는 느낌도 있어 보였어. 그래도 오랜만에 박종호 님의 책이라는 생각이 펼쳐 들었단다. 아빠가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가? 예전의 박종호 님의 책을 읽을 때의 그런 재미는 없었단다. 책 분량도 적은데, 그 분량을 채우기 위해서인지 글이 약간 늘어지는 기분도 들었단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일반적인 지은이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하셨어. 지은이 박종호 님의 남다른 클래식 사랑은 그 전에도 알았지만 이번 책에서는 절절함마저 느껴졌단다. 중학교 때부터 집에 오면 클래식 음반을 듣기 시작해서, 75장 전집을 다 듣고, 고등학교 때에는 용돈을 모아 LP를 직접 사 모으셨다고 하더구나. 아빠의 중딩, 고딩 때와는 전혀 다른 취미 생활을 하셨구나. 그런데, 책 내용이 그리 새로운 것은 많지 않아 조금 아쉬웠단다. 클래식을 좋아하거나 전공한 다른 사람들이 전해주는 책이나 블로그 등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1.

클래식이라는 음악은 왠지 모를 장벽이 있는 것 같구나. 클래식 작곡가가 많고, 많은 곡들이 있지만, 클래식이라는 것은 1700년부터 1950년까지 약 250년 동안 집중되어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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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그것은 클래식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클래식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1700년에서 1950년 사이의 250년에 집중되어 있다고 했지요. 1950년 이후의 음악은 일반적인 콘서트의 레퍼토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론 그 이후의 음악들만 연주하는 음악회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연구나 학술활동 혹은 특정 예술가를 위한 기념이거나 특정 청중을 대상으로 한 활동인 경우가 더 많고 관객 일반을 위한 공연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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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의 범위를 너무 좁게 잡은 건 아닌가 싶었단다. 그런 기간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 삽입된 클래식 음악도 더 이상 클래식이 아니고, 쇼 프로에서 나온 성악가가 부른 노래도 클래식이 아니라고 하더구나. 클래식을 어려워하지만 클래식을 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귀에 익숙한 클래식부터 쉽게 접하면서 흥미를 생기면 좀더 깊고 넓게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고 아빠의 생각과 좀 다르구나. 지은이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의도는 알겠지만 가뜩이나 클래식 진입 장벽이 있는데, 이것도 클래식이 아니다, 저것도 클래식이 아니다... 하는 것은 너무 클래식의 정의를 좁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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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7)

그러니 클래식 음악을 차용한 영화음악이나 TV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아무리 클래식이 나와도 그것을 클래식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축하 행사장이나 결혼식 피로연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웃음꽃을 피우는 동안에 저만치 뒤에서 존재감 없이 울려 나오는 <사랑의 인사>는 더 이상 클래식이 아닌 것입니다. 쇼 프로에서 테너가 핏대를 세우며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고음을 성공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클래식의 정신과 하등의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 성악가에게 일말의 박수를 보낸다면, 그것은 공중제비 넘기에 성공한 곡예사에게 보내는 박수와 같은 등급의 의미입니다. 베토벤은 청중들로부터 그러한 박수를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그가 연주 대신 작곡에 더 집중하려고 했던 뜻이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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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처럼 클래식을 처음 듣는 이에게 조언을 해주는 듯한 책이긴 한데, 너무 적극적인 방법으로 시작하도록 가이드를 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시간을 투자하고, 다른 것 하지 말고 오롯이 클래식만 집중해서 들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하시니 말이다. , 오히려 클래식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것만 다시 새삼 깨닫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빠는 지금까지 클래식을 들어왔던 것처럼 좋아하는 클래식 듣고, 어떨 때는 온전히 들을 때도 있지만, 가볍게 책을 읽으면서도 듣고 차를 마시면서도 듣고 그러려고 한다.

너희들도 엄마의 영향으로 클래식을 즐겨 듣곤 하는데, 너희들만의 방식으로 클래식을 듣고 보길 바란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클래식을 듣는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는 것 같구나.


PS:

책의 첫 문장: 적지 않은 분들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어 하고, 알고 싶어 합니다.

책의 끝 문장: 그들을 만나게 될 여러분에게 정말 축하를 보냅니다.


그런 클래스에서 ‘클래식’이라는 말이 나와서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클래식은 어떠한 분야에서 최상위의 가치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클래식이란 말은 "가치가 불변하고 영구적이며,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품위가 있으며, 절제되고 모범적인"이라는 뜻을 내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음악이나 문학이나 저술에서의 그런 것들을 일러 클래식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죠. 즉 클래식이라는 말에는 각 분야에서 가장 높은 자리의 것이며, 최상의 걸작이며, 영구불변의 가치를 가진 것이라는 뜻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 P52

처음에는 귀족을 중심으로 성행했지만, 고전음악은 1800년을 전후하여, 음악 소비의 새로운 중심계층이 되었던 시민계층의 성원을 받게 되고, 점점 모든 계층을 아우르고 통합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징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 <환희의 송가>라고 할 것입니다. 교향곡 역사상 최초로 가사를 붙일 수밖에 없었을 만큼 베토벤과 실러가 전하려는 뜻은 위대했습니다. 그 가사를 유념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요약하자면 "신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그러니 차별 없이 모든 인류가 손잡고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이르지 못한 고매한 이상입니다. - P64

음악은 다릅니다. 윤동주나 채만식은 활자를 통하여 나와 바로 연결되고, 비록 복사본으로 감상하여도 피카소나 이중섭의 그림은 나와 바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장르의 특징은 여기서 두드러지게 다릅니다. 즉 창작자와 감상자인 나 사이에는 재현이라는 과정, 즉 연주자가 있는 것입니다. 한 단계가 더 있는 것입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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