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 서울편 4 - 한양도성 밖 역사의 체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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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 : 서울편 4>를 읽었단다. 이번으로 서울편은 마무리가 되었단다. 4권에서는 성북동, 선정릉, 봉은사, 겸재정선미술과 허준박물관, 망우리역사문화공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다들 유명한 동네이고 장소여서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곳에 깃든 역사는 모르고 있었단다. 먼저 나온 성북동은 <성북동 비둘기>라는 유명한 시 때문에 알고 있는 동네이지, 가본 적이 없는 것 같구나. 그런데 그 성북동은 근대 사회를 거치면서 형성된 동네로 근현대사의 역사적인 동네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곽에 위치하여 성북동이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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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곽과 맞붙어 있는 산동네로 북악산(백악산) 구준봉에서 발원한 성북천의 산자락에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집들이 무리 지어 들어서 있다. 타동네 사람들은 성북동이라고 하면 번듯한 외국 대사관저와 높직한 축대 위의 대저택들이 들어서 있는 부촌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드라마에서 부잣집 사모님이 전화를 걸 때 여기는 성북동인데요라는 대사가 나오곤 한다. 그러나 이 집들은 1970 12 30, 삼청터널이 개통된 이후 양지바른 남쪽 산자락을 개발해 꿩의 바다라는 길을 중심으로 들어선 신흥 저택들이다. 성북동에는 이곳 외에도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되어온 묵은 동네들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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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사람들 거주를 금지하던 곳이었는데, 18세기 영조 때부터 살기 시작했고 성북둔이라는 둔전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근현대로 오면서 이곳에 별장과 별서가 많이 들어왔다고 하더구나. 이곳 주민들이 복숭아나무를 심어서 봄이면 복사꽃이 만발하여 복사꽃 마을로 부르기도 했다는구나. 성북동과 관련된 인사들인 이태준, 김환기, 박태원, 한용운, 윤이상, 김광섭 등의 일화도 들려주었단다. 그리고 대원각이라는 요정의 주인 김자야라는 분이 법정 스님께 기증하여 길상사로 다시 태어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길상사도 이곳 성북동에 있단다.

이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백석 평전>을 이야기할 때도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단다. 왜냐하면 김자야라는 분이 바로 백석과 사랑에 빠졌던 진향이라는 기생이었거든.. 본명은 김영한이었고자야라는 이름도 백석이 지어준 이름이었다고 하는구나. 대원각의 재산이 아깝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의 자야가 어떻게 답변했는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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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2)

일선에서 물러난 김자야는 스승 하규일의 일대기와 가곡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펴냈다. 그러다 1987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다가 불현듯 대원각을 절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도움을 청할 생각으로 법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법정은 주지를 맡아본 경험이 없고 아무것에도 메이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라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거절했다. 이후 자야가 10년을 두고 부탁하자 법정은 마침내 이 곳을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이자 맑고 향기롭게운동의 근본 도량으로 삼기로 했고, 대원각은 1997년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자야게는 길상화라는 법명이 주어졌다.

당시 대원각의 재산은 시가 1천억 원이 넘는 것이었다. 기자간담회 때 그 많은 재산이 아깝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야는 “1천억은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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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시구나.

1.

서울 한양도성 밖에는 왕릉이 많이 있단다. 그중에 선정릉을 소개해 주고 있단다. 선정릉은 선릉과 정릉을 함께 부르는 말인데, 선릉은 강남 근처에 있는 왕으로 2호선 지하철 역으로 유명하고, 정릉은 아빠가 알기로는 서울 북쪽 국민대학교 근처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걸 왜 함께 선정릉이라고 부르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정릉은 성북구에 있는 정릉이 아니고, 선릉 옆에 함께 있는 정릉이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선릉역 말고 선정릉역이라는 지하철도 있다고 하는구나. ㅎㅎ 아빠가 시골 촌놈 티를 팍팍 냈구나.

선정릉은 그럼 누구의 릉이냐먼저 선릉은 성종과 성종의 왕비인 정현왕후의 릉이라고 하는구나. 보통 부부는 합장해서 하나의 릉으로 조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종과 정현왕후의 릉은 각각 떨어져서 조성했다고 하는구나. 그래도 두 개의 릉을 합쳐서 선릉이라고 부른대. 예전에 이곳에 정릉까지 포함해서 묘지가 일단 세 개가 있으니, 누군가 잘못 알고 삼릉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고 하는구나. 여긴 엄연히 릉은 선릉과 정릉, 두 개가 있어 삼릉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하는구나. 그럼 정릉은 누구의 릉이냐면, 바로 중종의 릉이란다.

왕릉들이 누구의 왕릉인지는 외워도 시간이 지나면 늘 헛갈리는구나. 지은이 유홍준 님도 그래서 문화재청장 시절에 왕릉을 부를 때 왕의 이름과 같이 부를 것을 제안했다고 하더구나. 성종대왕 선릉, 중종대왕 정릉, 세종대왕 영릉, 정조대왕 건릉 이렇게 말이야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당시 국회의원과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 거절을 했다고 하는구나. , 왜 그랬을까. 이름 조금 길어지는 것이 그렇게 불편했을까? 국회의원과 전문가들 중에 유홍준 님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았을 수도

선정릉 다음으로는 봉은사를 소개를 해주었단다. 강남 한복판에 왠 절이 있나, 싶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곳은 그저 한양도성 밖의 마을이었던 것이란다.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가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 할 때 불교를 중흥시키려고 세웠던 절이라고 하는구나. 강남 개발이 한창일 때 사라질 뻔 했는데 당시 주지 스님인 영암 스님의 노력으로 살아남았다고 하는구나.

2.

다음은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을 소개해주었단다. 이 두 곳은 너희들과 함께 외가댁을 갈 때 늘 이정표만 보던 곳이란다. 아빠는 그 이정표들을 볼 때마다 왜 이곳에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이 있을까, 생각하고 한번도 방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단다.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이 있는 곳은 서울 강서구인데, 겸재 정선은 그곳에서 양천현 현령으로 일한 적이 있고, 허준은 그의 관향(管餉), 즉 시조의 고향이 그곳이었다는 인연이 있다고 하는구나.

책에서는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의 관람기와 겸재 정선과 허준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대부분 새로 알게 된 내용들인데,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넘어갈게. 허준이 <동의보감>을 쓰면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하더구나. 첫째는 병을 고치기 앞서 수명을 늘리고 병에 안 걸리게 하는 방법을 중요시했고, 둘째는 처방은 요점만 간추려서 하고, 셋째는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약초 이름을 한글로 쓴다는 것이었대. 허준의 배려심을 느껴지는구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의 마지막은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이었단다.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은 오래 전에는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렀단다. 이곳에는 시인 박인환, 화가 이중석, 조봉암, 안창호의 가묘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묻혀 계신단다. 예전에는 서울 곳곳에 공동 묘지가 있었는데, 1933년 도시 계획을 하면서 망우리 한 곳에 모았고, 그렇게 이장하면서 연고 없는 분들의 합동묘들도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유관순 누나도 그런 합동묘에 계셔서 따로 묘지가 없다고 하는구나. 안타까운 일이구나.

유럽에는 그 나라의 유명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 공원을 관광 코스로 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망우리 역사문화공원도 그런 곳과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어. 그러면서 우리 나라를 위해 애쓰시고, 희생하신 분들을 한번 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될 수 있게 말이야. 이곳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에는 어린이날을 지정하신 방정환 님도 잠들어 계신대. 1922 5 1일 처음으로 어린이날을 지정했는데, 노동절과 겹쳐서 5월 첫째 일요일로 바꾸었다가 1937년 일제 탄압으로 어린이날 행사가 중단되었고, 해방 후 5 5일로 어린이날로 다시 지정했다고 하는구나. 방정환 님이 어린이라는 말과 어린이날을 만드신 분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운동도 많이 하셨다고 하는구나. 몸이 허약하셔서 1931 31살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셨다고 하니 무척 안타깝구나.

….

여기까지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 : 서울편 4>의 이야기를 간추려서 이야기해 보았단다. 서울은 주로 친구들을 만나거나 행사가 있을 때만 주로 가곤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 탐방으로도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서울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서 가끔씩 역사탐방 하러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서울편 총 4권의 각 챕터에 나와 있는 장소들을 책과 함께 가면 더 좋을 것 같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곽과 맞붙어 있는 산동네로 북악산(백악산) 구준봉에서 발원한 성북천의 산자락에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집들이 무리 지어 들어서 있다.

책의 끝 문장: 우리는 홍어 대신 코다리(명태)회를 무친 비빔냉면을 맛있게 먹으면서 계속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받은 감동을 되새김하듯 답사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동아일보> 1930년 4월 6일자에 실린 김동섭의 <성북의 향기>는 이런 사실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성북동에 별장이 많다. 그것은 예전 일이려니와 요새는 없던 집에 들어서곤 또 들어선다. 늙은 울송(鬱松) 밑에 양관(洋館)이 있는가 하면 좌청룡 우백호를 서로 응하고 화해서 네 귀를 든 조선식 건물이 있다. 그 뒤로 빠근히 내다뵈는 아담한 모던 빌딩이 보인다. 성북동은 이렇게 기(氣)를 피우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십 년 뒤 평(坪) 값까지 구구(九九)를 치기도 한다. 집거간(부동산 중개업자)이라는 새 직업이 마전으로 먹고 사는 이 동리에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 P42

또 내가 존경하는 문학평론가 형님께 "형님이 해방공간에 있었으면 어떻게 처신하셨겠어요?"라고 묻자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남에 있었으면 북으로 올라갔을 거고, 북에 있었으면 남으로 내려왔겠지."
일제강점기라는 불우한 시대를 살다가 마침내 희망찬 해방을 맞이했으나 어지러운 해방공간에서 길을 잘못 들어 결과적으로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그분들과, 동족상잔의 전란 속에 남에서 북으로, 혹은 북에서 남으로 올라가고 내려오고 한 지식인들의 삶이 안타깝게 다가오기만 한다.
- P91

봉은사는 명종 5년(1550) 문정왕후(중종의 왕비)가 어린 명종을 대신해 대리청정하면서 보우(1509~65) 스님을 앞세워 조선불교를 중흥하며 선교 양종(兩宗)을 부활시킬 때 선종의 수사찰(首寺刹)이 되었다. 그때 교종의 수사찰은 세조 광릉의 능사인 남양주 봉선사였다. 그리고 보우 스님은 판선종사 도대선사로 봉은사 주지를 맡으면서 사실상 오늘날 봉은사의 중창조가 되었다. - P193

본래 불상이란 그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반영한다. 삼국시대 청동불이 절대자의 친절성을 나타내는 미소가 특징이고, 통일신라 석불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 절대자의 근엄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고, 나말여초의 철불에 힘있고 현세적인 능력이 강조되어 있고, 고려시대 철불 석불이 파격적인 괴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반하여 조선시대 불상은 이 봉은사 삼존불상처럼 거의 다 조용히 앉아 있는 침묵의 좌상 모습을 하고 있다. - P219

압구정 정자를 세운 한명회는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계유정란의 일등공신으로 이후 세조대부터 줄곧 정승 자리를 차지하고 두 딸을 예종과 성종의 왕비로 시집보낸 당대의 권세가였다. 압구정이라는 정자 이름은 한명회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예겸이라는 당대의 문인에게 부탁하여 기문과 함께 받은 것이다. 뜻인즉, 송나라 때 한 재상이 정계를 떠나 갈매기와 벗하며 지냈다는 고사를 이끌어 만년에 자연과 벗하면서 지낼 만한 곳이라고 지어준 것이다. 이후 압구정은 한강변의 뛰어난 명소로 수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시문을 남겼다. - P263

선조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을 겪었기 때문에 간혹 의주로 피란한 무능한 임금으로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선조는 문예를 아끼고 키운 인문군주였다.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펴내게 지시하며 왕실 소장본까지 내준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한석봉을 만년에 조용한 곳으로 가서 편안히 작품활동 많이 하라며 한직인 가평군수로 내려보낸 것도 감동적이다. 또 율곡 이이에게는 매월당 김시습 전기를 지어오라고 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정조 시대 문인들은 선조의 치세를 일컬어 그의 능 이름을 따서 "목릉성세(穆陵盛世)’하고 칭송했다. 풀이하자면 선조대왕 문예부흥기라는 뜻으로 명문이 나오면 ‘목릉성세’에도 이런 문장은 없었다’라며 칭송하곤 했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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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 : 서울편 3 - 사대문 안동네 : 내 고향 서울 이야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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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시리즈 서울편 3권을 읽었단다. 코로나 시절 서울편 1, 2권을 몇 년 전에 재미있게 읽으면서 코로나 끝나면 그 책에 나왔던 곳들을 너희들과 함께 가봐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가 그 마음먹은 것까지 잊고 말았구나. 이번에 3, 4권을 읽으면서 그때 마음 먹었던 것이 기억났어. 이번에 읽은 3, 4권에서 나온 곳들도 너희들과 함께 가보고 싶구나.

몇 달 전인가 코로나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을 때 너희들과 함께 인사동 나들이를 간 적이 있었잖니. 이 책을 읽고 인사동에 갔다면 너희들에게 좀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3권에서 인사동도 이야기해주었거든. , 서울이 그리 먼 곳도 아니고 또 가면 되지...

서울은 조선왕조 600년의 수도로써 역사적인 유물이 많이 있는 곳이잖니. 조선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에도 중심지이다 보니 아픈 역사의 현장도 많이 남아 있는 곳이 서울이란다. 이번 3권의 부제목은 <사대문 안동네 : 내 고향 서울 이야기>더구나. 지은이 유홍준 님은 사대문 안에서 태어나서 자란 순수 서울 토박이라고 하시는구나. 글 속에서 서울 토박이에 대한 자부심도 크신 것 같았어. 그래서 3권의 이야기는 다른 책과 달리 자신이 자라온 이야기와 경험담이 많이 실려 있었단다. ‘서울의 문화 유산 이야기플러스 유홍준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나 할까. 3권에서는 북악산, 서촌, 인왕산, 북촌, 인사동, 북한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1.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단다. 멀리 한강이 앞에 흐르고 북악산이 병풍처럼 막고 있는 서울의 옛 사대문 안은 무학대사가 아니라도 누가 봐도 명당 자리인 것 같구나. 일제 시대는 조선총독부가 있었고, 해방 후에는 청와대가 있다 보니 오랫동안 금단의 지역이었는데 최근에 전면 개방된 곳이란다. 그래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도 안 가본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구나. 아빠는 청와대를 개방한 사람을 싫어하고 개방한 이유도 마음에 안 들어서 더욱 안 가려고 한단다.

역사와 문화유산의 측면에서 봤을 때, 북악산 인근에는 많은 역사 유물이 많다고 하더구나.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한 육상궁이 있고, 이 육상궁을 포함하여 나중에 왕을 낳은 일곱 명의 후궁의 사당인 칠궁도 이곳에 있다고 하는구나. 육상궁, 칠궁 모두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궁이로구나. 조선의 역사는 긴 만큼 유물도 다양하고 많구나. 그밖에 북악산 근처에 있는 여러 문화유산들을 이야기해주고 발길을 서촌으로 돌린단다.

서촌은 인왕상 아랫동네를 부르는 말인데, 원래는 청운동이니, 효자동이니 동 이름으로 불렀는데, 최근에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 북촌과 비슷하게 서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아빠도 서촌이라는 말을 최근에 많이 들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이곳 서촌은 지은이 유홍준 님의 고향으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어린 시절에는 보존되었다가 지금은 없어진 건물이나 장소 등도 많이 이야기해주었단다. 예전에 아빠도 결혼하기 전에 서울에서 일 보다가 본가에 갈 때 이쪽에 있는 자하문 터널을 이용했었단다. 이쪽 길을 하다 보면 오래된 집들이 많아서 고풍스러우면서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

서촌의 대표적인 명소인 통인시장, 자하문로, 자교교회, 국립서울맹학교 농학교뿐만 아니라 그곳 출신 아니면 모를 것 같은 형제상회라는 곳도 사진과 함께 소개해 주더구나. 서촌에는 인왕산 경치를 볼 수 있는데, 인왕산 하면 유명한 화가 겸재 정선이잖니, 그 정선도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하는구나. 서촌 지역에 유독 친일파 집도 많았다고 하는데, 매국노 이완용이 살았던 집도 이곳 옥인동에 있었고, 이완용보다 더 심한 매국노인데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 윤덕영이라는 악질 친일파도 인왕산 자락에 벽수산장이라는 프랑스식 3층 건물을 짓고 살았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벽수산장은 2만평의 땅에 이 프랑스식 3층 건물을 포함해서 18채의 건물을 짓고 떵떵거리면서 살았다고 하는구나. 이 벽수산장은 아빠가 재작년에 읽은 심윤경 님의 <영원한 유산>이라는 소설의 배경으로 알게 된 곳이기도 하지. 그 벽수산장의 주인인 윤덕영이 친일파라는 것은 알았는데, 얼마나 악덕한 친일파라는 것은 이번에 새롭게 알았단다. 1910년 경술국치 때 옥새를 치마폭에 숨겼던 순종의 황후 순정효황후. 그 황후의 치마폭에서 옥새를 빼내어 도장을 빼낸 이가 바로 윤덕영이라는 놈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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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윤덕영(尹德榮, 1873~1940)은 순종황제의 부인인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로 1910년 경술년 강제 한일합병 조인 때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치마폭에 숨기고 내놓지 않는 것을 알고 강제로 빼앗아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넘겨준 인물이다. 윤덕영은 그 공로로 조선귀족 자작이 수여되어 일제로부터 당시 5만 엔의 은사공채금을 받아 옥인동 일대를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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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남자들이 나라를 팔아 먹으려고 할 때 옥새를 빼앗아 치마폭에 넣었다는 순정효황후의 이야기는 가슴을 아프게 하는구나. 심윤경 님의 소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해방 이후 벽수산장은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줄여서 언커크의 건물로 사용되었고, 나중에 보수공사 중에 화재로 전소되었다고 하는구나. 이것도 심윤경 님의 <영원한 유산>이라는 소설에서 이야기되었었지.

….

인왕산에 송성원이라는 추사 김정희가 쓴 암각 글씨가 있었다고 하는구나. 오래 전에 찍은 사진도 있는데, 그것이 지금은 사라졌대.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못 찾고 있다고 하는데, 안타까우면서 어디선가 불쑥 짠~ 하고 나타났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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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송석원 바위에는 추가 김정희가 큰 글씨로 쓴 송석원이라는 암각 글씨가 있었다. 글씨 옆에 정축 청화월 소봉래 서(丁丑淸和月小蓬萊書)’라고 관지가 쓰여 있어 추가 31세 때인 1817 4월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소봉래는 추사의 또 다른 호이다. 이 바위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데, 최종현은 <오래된 서울>에서 박노수미술관 뒤쪽에 계단식 바위벽에 새겨져 있었는데 지금은 흙에 묻힌 상태로 추정하고 있고, 혹자는 지금은 폐업한 술집 마당에 이 암벽이 있는데 시멘트로 덮여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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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촌은 그야말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곳이란다. 전통 한옥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도 현대식 건물의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곳이 있어서 서울의 옛모습과 오늘날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으로 외국 관광객의 필수코스가 된 곳이란다. 그냥 단순히 북쪽에 위치해서 북촌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정확하게는 종로 이북에 위치해서 북촌이라고 불렀고, 종로 남쪽은 남촌이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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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북촌이라고 하면 우리는 막연히 조선왕조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 동네를 떠올리기 쉽다. 북촌이라는 말의 유래 때문이다. 예부터 한양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청계천과 종로를 중심으로 남쪽 남산 아랫동네는 남촌, 북쪽 동네는 북촌이라고 불러왔다. 매천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고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고 하는데 소론, 남인, 북인 삼색(三色)이 섞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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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노론들이 살던 북촌이 개화기로 넘어오면서는 신문화를 이끌던 개화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는구나. 박지원의 손자이자 개화파를 이끌었던 박규수가 이곳에 살았는데, 박규수의 제자들 중에는 김옥균, 서재필, 홍영식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갑신정변의 주역들이었단다.  비록 실패했지만그밖에 여운형, 유길준, 현상윤 등도 이곳에 살았대. 아빠가 유홍준 님을 좋아하긴 하지만, 현상윤에 대한 유홍준 님의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구나. 유홍준 님은 현상윤이 교육자로써 존경할 만하다고 했는데, 아빠가 알기로는 현상윤은 변절한 친일파로 알고 있거든. 그리고 현상윤의 생몰년을 1893~1945로 기록하면서 한국전쟁 중에 사망했다고 해서 어떤 것이 잘못되었나 찾아봤더니 생몰년이 잘못되었더구나.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사망했다고 하는구나. 오타 발견. 아무튼 현상윤은 친일파.

….

북촌 다음으로 인사동은 3개 챕터에 걸쳐서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그만큼 사연도 많고 유물도 많고 역사도 많이 깃든 곳인가 보구나. 삼일절 기미독립선언서를 읽었던 태화관도 이곳에 있는데, 아빠가 얼마 전에 <만세열전>이라는 책을 읽고 이야기한 것처럼 기미독립선언서는 이곳 태화관이 아닌 종로 거리에서 많은 백성들 앞에서 낭독했어야 옳은 것이라 생각한단다. 인사동이란 이름은 일제시대 행정 지역을 개편하면서 생겼다고 하는구나. 이후 인사동은 출판사와 서점의 거리로 시작해서, 고서점과 헌책방의 거리, 고미술상과 민예품을 파는 거리, 화가들이 전시회를 여는 거리 등으로 변해왔다고 하는구나. 지은이는 이런 인사동을 시대별로 구분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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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나의 체험에 입각해보건대 인사동길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의 거리로 변해온 발자취는 대략 다음과 같다. 1960년대는 고서점, 1970~80년대는 화랑과 고미술상, 1980~90년대는 전통찻집과 카페, 2000년 이후는 쌈지길과 관광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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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지막으로 사대문 안은 아니지만, 서울의 대표적인 명도 북한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서울에 북한산이 있는 것은 서울 사람들에게는 큰 축복이라고들 한단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산을 갈 수 있으니 말이야. 산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풍경 또한 멋지고아빠는 서울 사람이 아니지만 북한산을 여러 번 올랐는데 갈 때마다 좋았단다. 나중에 너희들과도 함께 오르고 싶구나.

북한산의 비봉이라는 곳에 가보면 진흥왕 순수비가 놓여 있단다. 아빠도 이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사촌형님이랑 같이 갔는데, 그 형님께서 진흥왕 순수비가 국보 3호라고 알려주어서 그제서야 진흥왕 순수비가 국보 3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라서 국보 1호만 알았지,

국보 3호도 모르고 있었다니그런데 국보 2호는 뭐였지? 그러면서 그때 국보 2호를 찾아봐서 아빠는 국보 2호가 원각사지 십층석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단다. 이렇게 알게 되어서 그런지 국보 2, 3호는 잘 안 까먹게 되는구나.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에 대해서 이번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 두 가지가 있단다. 첫째는 이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라고 확인한 분이 추사 김정희였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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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진흥왕 순수비 3기는 모두 세월의 흐름 속에 잊혔다. 황초령 순수비의 존재는 조선 중기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북한산 순수비를 사람들의 무학대사비라고 했다. 세상에 전하기로 무학대사가 한양 도읍 자리를 물색하기 위해 비봉에 올라오니 무학이 잘못 찾아와 이 비에 이르렀다라고 쓰여 있어 놀라서 내려갔는데 세월이 흘러 글씨가 안 보인다고 전해온 것이다. 이것이 다시 진흥왕 순수비임을 확인한 이는 추사 김정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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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북한산 비봉에 있는 진흥왕 순수비의 복제비를 문재인 대통령님이 참여정부 때 민정수석으로 계시면서 제안을 했고,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님이 추진해서 만들었다는 것이란다. 진짜 진흥왕 순수비는 훼손의 이유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원래는 작은 안내 표지석만 세워져 있었는데, 2006년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 제안, 유홍준 문화재청장 실행으로 복제품을 만들어 세웠다고 하는구나.

이상으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 3권에서 소개한 서울의 이야기 중 일부를 이야기해보았단다. 최근에 서울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무척 많이 늘어난 것 같더구나. 한류의 열풍에 힘입어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이 부쩍 는 것 같구나. 거기에 코로나도 끝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찾는 것 같아. 그리고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대표도시인 서울을 먼저 찾지 않을까 싶구나. K-, K-영화, K-드라마, K-푸드 등에 맞춘 여행 코스가 많이 차지하겠지만, K-역사를 알리는 코스도 많았으면 좋겠구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서울편 시리즈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구나. 영문판으로 번역을 하면 어떨까, 싶다가도.... 외국인들에게 읽기에는 너무 내용이 깊은 것 같기도 하고... ㅎㅎ 자, 오늘은 여기까지조만 간에 서울편 4권도 이야기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북악산은 높이 342미터의 화강암 골산으로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책의 끝 문장: 아무튼 진흥왕 북한산 순수비의 복제비 건립은 그에게나 나에게나 큰 보람이자 자랑이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는 대통령 집무실에 반드시 필요한 지하 벙커와 헬기장 등의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관저만 삼청동에 있는 안가 두세 채를 합쳐 옮길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위해서는 또 예산을 들여야 하고 공사가 완료되자면 시간이 걸려 실제로 살 수 있는 기간이 얼마 안 된다며 자신은 소박하게 옮기고 싶으나 다음 대통령에게 멀쩡한 관저를 두고 작은 집으로 가서 살라고 하는 셈이 된다고 거부했다. - P41

현실적으로 이미 개방한 청와대의 문을 다시 닫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나아가서는 최종적인 개방 형태에 대해서는 명확한 그림을 제시해야 한다. 청와대라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을 앞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이라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는 대통령 혹은 문화부장관이나 문화재청장 개인의 상식적인 소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단편적이고 아이디어 제공이라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P56

이후 조영석의 증언대로 그(겸재 정선)는 그림을 그릴 때면 백악산과 인왕산을 바라보며 우리 산천의 생김새를 탐구했고, 그가 그리면서 쓴 붓을 내다 쌓으면 무덤이 된다고 할 정도로 끊임없는 수련과 연찬을 통해 이루어낸 것이 겸재 예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겸재 예술의 자산은 좋은 스승, 벗들과의 어울림, 학문, 문학과 미술의 만남, 그리고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천 리를 여행하는 것이 문인의 길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한 결과였다. - P96

서촌의 공간적 가치는 기에 있고 그 길 중간중간에는 작은 한옥들이 담장을 맞대고 있는 골목이 있고 그 골목엔 역사 인물의 자취가 있고 길끝에는 유적지가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인왕산이라는 아름답고 듬직한 산이 받쳐주고 조금만 올라가도 명승이 나온다는 점에서 매력과 가치가 더해진다. - P106

인사동 민예품 가게 진열장에 있는 그 흔한 신라토기, 가야토기의 경우 시가로 몇 십만 원이면 살 수 있는데 반출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실상 거래가 막혀 있는 것이다. 이는 심각하게 재고되어야 한다. 영국 사람이 가야토기를 사가면 영국 토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국 사람도 가야토기를 통해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 귀중한 유물은 당연히 반출이 금지되어야 하지만 민예품 가게 진열장에 있는 평범한 것까지 규제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국제적 홍보를 막는 행위이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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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7-05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을 더욱 깊게 알수 있어서 좋네요. 젊을 때 더 많이 다녀볼 걸... 후회도 되네요. 칠십대 중반 나이에 가난에 밀려 이젠 경기도로 나왔으니 점점 그 길이 멀어 보이네요.ㅠㅠ

bookholic 2023-07-05 09:51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 님께서 이 책을 읽으시면 추억도 함께 읽으실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요...
 
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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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피에르 르메르트의 신간을 읽었단다. 아빠의 독서기록을 찾아보니 피에르 르메트르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이 2013년이고, 이번이 여섯 번째이니 약 2년에 한 작품씩 읽은 것이구나. 그렇다면 아빠는 피에르 르메트르를 좋아한다고 할만할까? ㅎㅎ 이번에 읽은 책은 일명 오르부아르 삼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우리 슬픔의 거울>이라는 작품이란다. 먼저 읽은 이들의 평점이 하늘을 찌를 듯했단다. 아빠는 오르부아르의 삼부작의 이전 작품들 <오르부아르> <화재의 색>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먼저 읽은 이들의 평점은 <우리 슬픔의 거울>이 더 좋더구나. 남의 목소리에 많이 흔들리는 아빠는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단다.

책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펼쳐 들었어. 재미있더구나. 줄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하면서 읽었단다. 이제 그 메모를 보면서 너희들에게 독서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눈이 침침하구나. 작년부터 급격히 침침해진 눈, 서글프구나. 내가 쓴 글씨가 내가 잘 안 보이다니...

아빠가 줄거리를 까먹지 않기 위해서 책의 마지막까지 더 너희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 책은 적극 추천이니 나중에 이 편지를 보더라도 책을 먼저 읽었으면 좋겠구나.


1.

1940 4 6일 전운이 감도는 파리. 아이를 낳고 싶었던 루이즈는 불임을 진단 받은 이후로는 쭉 남자를 안 사귀고 혼자 지냈단다. 낮에는 초등학교 선생이었고, 저녁에는 쥘 씨가 운영하는 카페 종업원으로 일했어. 나이는 서른이었지. 그 카페에 늘 같은 창가 자리에 앉는 의사선생이라고 부르는 단골손님이 있었어. 어느날 그 손님은 루이즈에게 이상한 부탁을 했어. 그냥 보기만 할 테니 자기 앞에서 옷을 벗어달라는 부탁. 점잖은 노신사가 그런 변태 같은 부탁을 하다니루이즈는 무응답으로 답변했어. 노신사는 원하는 돈을 이야기하라고 했고, 루이즈는 거절의 의미로 엄청나게 큰 돈인 만 프랑으로 장난하듯 이야기했어. 그런데 의사는 바로 알겠다고 했단다.

이후 루이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을 했어. 그냥 알몸만 한번 보여주고 만 프랑이라니결국 루이즈는 노신사가 알려준 호텔을 찾아갔고 그의 앞에서 옷을 벗었단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자마자 노신사는 권총 자살을 했어. 깜짝 놀란 루이즈는 혼비백산하여 옷 벗은 그 상태로 밖으로 도망을 갔고, 길거리에서 경찰에게 체포 당했단다.

수학교사 출신으로 지금은 병참대 통신병으로 근무하는 가브리엘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가브리엘은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와 반대의 성향을 가진 라울 랑드라드라는 사람이 가브리엘과 같은 내무반에 있었어. 라울은 똘마니 2명을 데리고 다녔고, 군대 내에서 온갖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벌고 있었어. 라울과 똘마니들은 가브리엘을 괴롭혔어. 그들 때문에 가브리엘은 피를 토한 일도 있었는데, 다행히 의무반에서 진료를 받고 군의관의 도움으로 특별 보급관으로 전출을 갔단다. 보급관이라는 직책은 군대의 각종 보급품을 사병들에게 나눠주는 직책이야. 라울이 찾아와 협박을 하여 보급품을 빼돌리는 것에 협조를 할 수 밖에 없었어. 올바른 생활만 하던 가브리엘에게는 내키지 않은 일이지만, 당장의 라울의 협박이 무서웠던 것이지.

한편 루이즈는 경찰에 체포된 이후 노신사의 죽음에 대해 조차를 받았어. 하지만 루이즈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잖아. 심지어 그 노신사의 이름이 티리옹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결국 그 사건은 노신사의 자살로 종결되었고, 루이즈는 집으로 돌아왔단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루이즈는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단다. 작년에 엄마를 잃을 슬픔을 간신히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겪어야 했어.

그렇게 자살로 사건이 종결되었는데 며칠 뒤 다시 재판소에서 소환장이 날라왔단다. 재판장이 죽은 노신사의 부인도 같이 소환을 했단다. 티리옹 부인에게 루이즈를 죽은 티리옹을 협박했을 있다면서 협박죄로 기소를 할 수 있다고 제안을 했어. 오지랖 넓은 재판장이구나. 하지만 티리옹 부인은 거절을 했고, 루이즈는 다시 풀려나서 집으로 돌아왔단다. 이 사건으로 학교 선생님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카페에도 나가지 않았단다.

또 한 명 주요 인물 데지레 미고에 대해 소개해줄게. 그는 제빵사 아가씨의 살인사건을 정당방위라는 논리를 집행유예를 이끌어낸 유능한 변호사였다. 아니 변호사인줄 알았단다. 데지레는 가짜 변호사 행세를 했어. 그런데 가짜 변호사 행세 이전에는 가짜 선생님, 가짜 파일럿, 가짜 외사의사를 했던 이력이 있구나. 마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라는 영화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맡은 역처럼 말이야. 가짜 변호사라는 사실이 들통이 날 것 같게 되자 그곳을 떠났단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가짜 신분으로 외교부에서 검열관으로 일하게 되었어.

….

소설은 아빠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해주게 된단다. 읽다 보면 이 사람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또는 이 사람들이 언제쯤 만나게 될까? 하는 호기심을 갖고 읽었단다.


2.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꾸나. 1940년이면 세계2차대전이 막 시작되어 유럽 전체로 전쟁이 퍼져나가려고 하는 시기였단다. 일반 국민들도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에 두려워하고 있었지. 결국 독일은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로 쳐들어왔단다. 가브리엘은 아르덴 숲 근처에 배치를 받고 55보병사단을 지원하는 200명에 선출되어 뮈즈강에 전진 배치되었단다. 최전선에 배치를 받은 것인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가브리엘은 독일 전차들의 예상 경로에 있는 교각에 폭탄을 설치하는 일을 하게 되었어. 이 일에 라울도 같이 차출되어 있더구나. 그들이 설치한 폭탄의 도화선이 그만 오작동해서 터지지 않았단다. 이를 어째다른 이들은 다 후퇴하는데 가브리엘은 총으로 폭탄을 사격했어. 그리고 결국 성공하여 폭탄을 터뜨리는 성과를 냈단다. 역시 모범생이구나. 가브리엘과 라울은 독일의 전차 공격이 있은 후로 무조건 도망을 갔단다.

가브리엘은 어쩌다가 자신을 괴롭히던 라울과 함께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단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던 프랑스 군일들이 흩어져 각자 알아서 도망을 갔어. 가브리엘은 라울이 훔친 차를 타고 빈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음식을 먹고 그랬어. 가브리엘은 이런 일들이 옳지 않은 일이라서 불편했지만, 라울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군대를 이탈해서 도망가는 것이 탈영이 아닌가 하고 걱정도 했단다. 그와 달리 라울은 이런 불법적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했어.

….

한편, 루이즈는 전쟁이 나고 난민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단다. 그런데 어느날 노파가 찾아왔는데, 노파는 자신이 호텔 주인이라고 했어. 그 노신사가 자살하고, 루이즈가 혼비백산되어 뛰쳐나왔던 그 호텔의 주인. 왜 찾아왔을까? 루이즈는 호텔 주인으로부터 호텔이 손해 본 것에 대해 배상하라고 했어. , 이것을 루이즈가 배상을 해주어야 하는 게 맞는 건가? 그러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했어. 오래 전에 루이즈의 엄마와 그 의사가 한동안 자신의 호텔을 자주 찾았었대. 그게 정확히 언제냐면 1905년에서 1906년이라고 했어. 그때면 루이즈의 엄마가 결혼하기 전이었지. 루이즈의 엄마는 결혼하기 전이라고 해도 티리옹은 결혼을 한 상태였을 텐데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불편했어. 그런데 루이즈의 엄마가 결혼하고 나서인 1912년부터 1914년까지도 왔었다는 거야.

1914년에 1차세계대전이 일어났는데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그들은 오지 않았다고 했어. 그 시기라면 루이즈의 엄마가 결혼도 하고 루이즈도 낳은 다음인데 말이야. 루이즈는 이런 사실을 당연히 전혀 몰랐지. 도대체 엄마와 자살한 티리옹과는 무슨 관계였던 것일까. 적절한 관계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의사가 카페에 와서 앉은 창가자리는 루이즈의 집에 잘 보이는 위치였단다. 그렇다면 그가 그 카페에 처음부터 온 이유도 루이즈의 집을 보기 위해서어쩌면 루이즈의 엄마를 보기 위해서그리고 카페에서 일하던 루이즈를 보기 위해서?

루이즈는 엄마와 티리옹 씨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확인해 보려고 티리옹 부인을 찾아갔단다. 티리옹 부인도 알고 있었어. 티리옹과 루이즈의 엄마가 불륜 사이라는 것을심지어 루이즈의 엄마가 티리옹의 아들을 임신한 적도 있었고, 그 아들은 1907년 태어났는데, 티리옹이 그 아들을 보육원에 버렸다고 했어.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그렇다면 그 티리옹의 아들은 지금까지 등장했던 이들 중에 한 명일 가능성이 높겠구나. 그렇게 등장인물들이 이어지는구나. 누굴까? 모범생 가브리엘?  불법을 많이 저지르는 라울? 캐치 미 이프 유 캔 데지레?

한편 전쟁이 나고 데지레는 공보국 대변이 되어 전쟁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맡았어.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모호하게 소식을 전했단다. 어떻게 보면 사기를 치는 거잖니. 그리고 사기를 치는 거는 데지레가 잘 하는 일이고적성에 맞는다고 해야 할까, 데지레는 이 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단다. 인정을 받으면 시기를 하는 사람이 생기는 법. 데지레에게 이전 이력에 대해서 캐묻는 사람이 있었어. , 자칫하면 이 일을 또 그만두어야 할 수도 있겠구나.


2.

가브리엘과 라울은 계속 도망을 갔단다. 훔친 자동차의 기름이 떨어지자 차를 버리고 이번에는 자전거를 훔쳐서 도망을 갔어. 라울은 빈 술집에 들어가 술도 먹고, 가브리엘은 이런 라울을 불편해 하고하지만 그와 헤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고그렇게 길을 가다가 그들은 다른 프랑스군을 만나 체포되고 만단다.

루이즈는 티리옹이 버린 아이를 추적했어. 1907년에 태어났다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오빠였단다. 아빠는 다르지만 엄마가 같은 오빠. 그리고 보육원에 가서 그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된단다. 라울 랑드라드. 오호, 라울이었구나.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라울을 입양해 간 사람이 다름 아닌 티리옹이었단다. 그러니까 티리옹은 루이즈의 엄마와 불륜으로 낳은 아들을 보육원에 버렸다가 나중에 자신이 다시 입양한 것이야. 이런 사실을 루이즈의 엄마는 평생 몰랐어. 알았다면 삶이 더 괴로웠을려나.

루이즈는 티리옹의 딸 앙리에트도 만났단다. 앙리에트는 라울보다 15살이나 많았어. 티리옹이 라울을 입양을 했으니 앙리에트는 라울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사람이지. 티리옹 부인은 라울을 멸시했대. 그 아이가 티리옹의 사생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 그래도 앙리에트는 나이 차 많이 나는 라울을 잘 보살펴 주었대. 라울에게 유일하게 잘 해준 사람이 아닐까 싶구나. 라울은 지금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군대에 갔다고 했어. 그러면서 라울의 사진도 주고, 루이즈의 엄마가 티리옹에게 보냈던 편지들도 전해주었단다.

페르낭이라는 헌병대원이 있었어. 그는 아내 알리스와 파리에 살고 있었고, 알리스는 몸이 허약해서 먼저 누나가 살고 있는 시골집으로 피신시켰단다. 페르낭은 어느날 세르슈미의 교도소로 집합하라는 명령어를 받았단다. 세르슈미의 교도소에는 체포되었던 라울과 가브리엘이 수감되어 있었어. 루이즈도 라울이 세르슈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을 알고 면회하려 왔었지만, 허가가 나지 않았단다. 라울과 가브리엘은 다른 죄수들과 함께 모두 어디론가 이감하게 되는데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인솔하는 헌병대원들도 몰랐단다.

그 헌병대원들 중에 페르낭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루이즈는 라울이 파리의 남쪽 오를레앙으로 이감된다는 소문을 듣고 오를레앙으로 향했단다. 루이즈가 일하던 카페의 사장 쥘 씨가 도와주겠다고 했어. 쥘 씨의 차를 파리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지만, 파리를 떠나려는 수많은 피난민들 때문에 계속 정체되었단다. 피난길을 그야말로 고생길이었어. 노숙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단다. 루이즈는 쥘 씨와 함께 라울의 부대를 쫓아가면서, 엄마의 편지들을 읽어보았단다. 뜨겁고 진정 담긴 사랑이 담겨 있는 편지였어. 루이즈는 라울의 우연히 이감을 담당하고 있는 페르낭을 만나게 되어 편지를 전달해 주었단다. 라울에게 보내는 편지. 페르낭은 그 편지를 라울에게 전달하였고, 라울도 자신에게 이부 여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

페르낭은 수인들을 인솔하는데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사항들에 불만이 많았어. 수인들에 대한 처우가 상당히 열악했거든. 시설들은 둘째 치고라도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수인들은 불만이 터지기 직전이었어. 그들은 죄수들이었으니 언제 어떻게 터져도 이상할 게 없었지. 라울은 탈출을 계획했단다. 가브리엘도 어쩔 수 없이 동참했어. 이제 라울은 가브리엘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동료였단다. 페르낭은 주변 농장에서 먹을 것을 징발하였단다. 그리고 시골에 있는 아내가 걱정이 되어 우체국에 들러 누나의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아내는 근처 예배당에서 지낸다고 했어.

알리스는 예배당에서 난민들을 보살피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어. 그런데 이 예배당의 신부가 누구인지 아니? 바로 데지레 신부였어. , 웃음이 나오더구나. 데지레가 공보국에 더 있다가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까 봐 그곳을 도망쳐 나와 신부로 변장하고 이곳 시골 예배당으로 온 것이야.

...


3.

루이즈와 쥘 씨도 공습 때 헤어지게 되었어. 루이즈는 가는 길에 어떤 보육원 보모가 공습에 죽은 걸 봤단다. 그런데 그 보모가 보살피던 아이 셋은 살아 있었어. 그 아이들을 버릴 수 없어서 루이즈는 그 아이 셋을 데리고 갔단다. 루이즈는 아이 셋을 데리고 피난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았어. 전쟁통에 아이 셋 있는 여자를 도와주려는 이는 많지 않았어. 그러다가 한 신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신부는 루이즈와 아이 셋을 자기가 관리하는 예배당으로 데려갔단다. 그 신부가 누구인지 알겠지? 그래, 너희들도 예상했겠지만 데지레야.. 데지레가 비록 가짜 신부였지만,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마음은 진심이었던 것 같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데지레가 가짜 변호사일 때는 억울한 빵집 아가씨를 정당방위로 집행유예를 이끌어냈고, 가짜 외교부 대변인으로 일할 때는 그 자리에서 나름 인정을 받았고, 신부가 되었을 때는 또 신부 역할을 잘 하는 것 같구나. 그를 사기꾼이라고 보면 안 될 것 같구나.

….

라울이 이감되는 동안 공습이 잦아지고 있었고, 그 공습에 가브리엘이 허벅지 관통상을 당하고 말았어. 페르낭도 계속된 공습에 수인들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시도 없고, 먹을 것은 또 떨어지고 불만이 가득했어. 그 와중에 상부에서 지시가 떨어졌는데, 수인들을 도보로 30km 이동시키라고 했고, 낙오자들이 있으면 도망자로 취급해서 죽이라고 했어. 페르낭은 부상자들이 있다며 도보로 이동이 어렵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라울은 부상당한 가브리엘을 들쳐 업고 걸어갔다. 그리고 결국 그들을 몰래 행렬에서 이탈해서 도망을 갔단다. 가브리엘은 부상당했지 먹을 것은 없지 언제 공습이 또 올지 모르지, 쉽지 않은 도망길이었단다. 그들이 가는 길에 어떤 시골집에서 노파를 한 명 만났는데 노파는 그들이 불쌍해서 데지레 신부의 예배당을 알려주었단다. 그렇게 라울과 가브리엘도 데지레의 예배당에 도착했단다. 가브리엘은 부상이 덧나서 정신을 잃었고, 라울은 가브리엘을 엎고 오느라 탈진해서 정신을 잃었어. 그곳에 이부 여동생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겠지.

그렇게 출발점이 달랐던 주인공들은 예배당에서 모두 모이게 되었단다. 라울은 휴식을 취하고 정신이 들고 나서 드디어 이부 여동생인 루이즈와 생애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단다. 이런 역경을 겪으면서 만났으니 앞으로 평생 사이 좋은 남매가 될 것 같구나.

페르낭의 이야기도 해줄게. 페르낭은 수감자들의 수송 임무를 모두 마치고 알리스가 있는 예배당에 왔단다. 페르낭은 그곳에서 라울과 가브리엘을 보았지만 이젠 다 같은 전쟁 피해자일뿐이지. 그런데 아빠가 한창 칭찬을 했던 데지레 신부가 사라졌단다. 페르낭이 가지고 온 거금이 들어 있던 가방과 함께ㅎㅎ 데지레는 마지막까지 웃음을 주는 캐릭터로구나. 지은이의 이런 블랙 유머가 마음에 드는구나. 그런데 에필로그를 보니 데지레가 나중에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는 이야기도 했대.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났단다.

오르부아르 삼부작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지은이 피에르 르메르트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의 배경으로 하는 소설도 3부작으로 계획하고 있다는구나. 그 중에 1부는 벌써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 열심히 번역 중이겠구나. 그 시리즈도 무척 기대되는구나.

이상. .


PS:

책의 첫 문장: 전쟁이 곧 시작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시들해져 있었고, 누구보다도 쥘 씨가 그랬다.

책의 끝 문장: 지금 우리는 롤랑 바르트가 <데지레의 신화>라고 부른 것의 심화된 연구(출판사 사람들의 말로는, 굉장한 사실들을 밝혀 줄 것이라고 한다)를 예고한 용감한 역사가의 작업을 몹시 궁금해하며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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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9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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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영혼의 집> 2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1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블랑카가 아버지 에스테반에 의해 장 드 사티니와 강제 결혼을 하고 북부 지역으로 이사를 갔잖니. 강제 결혼한 것 치고는 블랑카는 신랑이랑 비교적 원만하게 지내고 있었단다. 하지만, 장 드 사티니의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사진 암실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그의 실체를 확인하고 나서 그 길로 도망쳐서 수도에 있는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단다.

엄마 클라라는 마치 블랑카로 올 것이라도 예상을 한 듯 다정하게 받아주었단다. 블랑카는 그곳에서 딸 아이를 낳았고 이름은 알바로 지었어. 알바는 엄마, 외할머니, 외삼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단다. 비록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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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알바는 그때까지 죄악이라든가 젊은 요조숙녀들이 지켜야 할 바른 몸가짐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고,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도 구분할 줄 몰랐다. 외삼촌 한 명은 복도에서 벌거벗은 채 가라테를 한답시고 뛰어다니고, 다른 외삼촌 한 명은 책 더미 속에 파묻혀 지내고, 외할아버지는 지팡이로 전화기와 테라스에 있는 화분들을 박살내고 다니고, 엄마는 촌스러운 가방을 들고 몰래 나갔다 들어오고, 외할머니는 삼각 테이블을 저절로 움직이게 하고, 피아노 뚜껑을 열지 않은 쇼팽을 연주했다. 그런 것만 보고 자란 알바이니 당연히 틀에 박힌 학교 일과가 지겨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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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가끔씩 만나는 외할아버지 에스테반도 알바를 좋아했단다. 누구나 미워할 수 없는 천사 같은 아기였지. 하지만 에스테반은 다른 식구들과는 거의 교류를 하지 않고 농장에서 혼자 지냈단다. 알바가 혼자 다닐 만큼 크고 나서 혼자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농장에 갔단다.

블랑카는 페드로를 다시 만났어. 페드로 기억나지? 에스테반의 소작농의 아들로 블랑카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가 에스테반가 휘두른 도끼에 손가락 세 개가 날라간 사람, 바로 알바의 아빠잖니. 다시 만난 페드로는 가수가 되어 있었단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어.

알바가 일곱 살 때 외할머니 클라라가 죽고 말았단다. 예지력이 있던 클라라는 자신의 죽음도 예견하고 있었고, 죽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등 죽음을 준비했단다. 클라라가 죽고 나서 수도 있던 그들의 집은 그야말로 쇠락하고 말았단다. 재정은 늘 적자에 시달리고, 집 관리는 제대로 안되어 지저분했지.


1.

농장에서 혼자 지내는 에스테반에게 누군가 찾아왔어. 자신은 소작농의 아들이라고 밝힌 에스테반 가르시아라는 사람이었어. 이름이 에스테반과 같았는데, 에스테반은 자신을 존경한 어떤 소작농이 아들의 이름을 자신과 같게 지었나 하고 생각했단다. 사실은 사생아였어. 에스테반은 젊은 시절 난봉꾼이라서 사생아가 엄청 많았다고 했잖아. 에스테반 가르시아는 그 중에 한 명이었단다. 가르시아는 당돌하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는데 그 당돌한 자신감이 마음에 들어서 에스테반은 돈을 빌려주었단다.

에스테반은 정치도 계속 하고 있어서 계속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단다. 어느덧 보수당의 정치 거물이 되어 있었어. 에스테반은 보수당답게 공산주의 사상뿐만 아니라 좌파 세력을 용납하지 않았어. 그의 첫 번째 정치적 목표는 공산주의를 척결하는 거야.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대부분 좌파였단다. 알바의 외삼촌인 하이메도 좌파였는데, 좌파 정치 세력의 리더이자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사람과 친분도 있었어. 알바도 대학생이 되고 나서 만난 미겔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단다.

미겔이라는 이름 1권에서 나왔었는데 혹시 생각나니? 알바의 쌍둥이 외삼촌 중에 한 명인 니콜라스의 여자친구 아만다의 어린 동생. 클라라의 집에도 자주 왔었다고 했었지. 알바라 어렸을 때도 몇 번 미겔이 찾아왔었어. 그러니까 어렸을 때 그들은 이미 만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당연히 기억을 못하지. 알바는 미겔의 영향을 받아서 노동자 시위에도 참여를 했어.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외할아버지 에스테반은 분노하다가도 알바를 걱정하기도 했단다. 아무리 평생을 나쁜 놈으로 살았어도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다들 비슷한가 보구나.

미겔로부터 누나 아만다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알바는 의사인 하이메 외삼촌에게 도움을 청했어. 하이메는 그렇게 아만다와 재회를 했단다. 1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하이메는 남몰래 쌍둥이 형제 니콜라스의 여자친구 아만다를 짝사랑했었잖아. 당시 니콜라스는 해외로 나가서 소식이 끊겨 있었단다. 위중이라고 하는 아만다는 지나친 약물로 폐인이 다 되었고,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였단다.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알 수 있었어.


2.

나라에서는 대통령 선거에서 몇 번 고배를 마신 좌파 대통령이 드디어 당선되었단다. 이 소설에서는 대통령의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1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란다. 좌파를 지지했던 알바와 블랑카 집안은 축제분위기였단다. 보수당 정치 거물이었던 에스테반만 빼고 말이야. 좌파 대통령이 집권을 하고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기대도 컸어. 하지만 야당이 된 우파가 그냥 앉아서 좌시하지 않았어. 그들은 좌파 정권을 다시 뒤엎으려는 음모를 꾸몄어. 언론을 이용해서 사회 혼란은 야기해서 사람들은 물건 사재기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물가가 폭등했단다. 그로 인해 국민 여론은 크게 분열되고 말았단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에스테반도 직격탄을 받았어. 소작농들 중에 과격한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에스테반을 인질로 잡고 난동을 부렸단다. 블랑카와 알바는 페드로에게 도움을 요청했단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페드로는 당시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었거든. 페드로는 직접 농장을 찾아갔단다. 페드로와 에스테반은 수십 년 만에 대면을 했단다. 마지막 대면이 에스테반이 도끼를 들고 페드로의 손가락을 잘랐을 때였단다. 아무튼 페드로의 도움으로 에스테반은 안전하게 풀렸단다.

….

사회 분열의 양상은 수그러들지 않고 더 심해졌단다. 얼마 후 우파의 야당과 군 수뇌부가 연합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단다. 이 소식을 들은 알바의 외삼촌 하이메는 대통령궁으로 갔단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으니 혹시 부상자가 생기면 치료하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의 세력은 막강했단다. 대통령궁에 폭탄을 날려 무너뜨렸어. 결국 대통령은 쿠데타를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단다. 방송을 통해 전한 그의 마지막 말은 다시 읽어봐도 절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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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217)

대통령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앞으로 박해받을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나 역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심에 내 목숨 다 바쳐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 조국과 조국의 운명을 믿습니다. 이 순간을 잘 극복하십시오. 그러면 조만간 보다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자유인이 지나갈 수 있는 드넓은 가로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입니다. 나는 내 희생이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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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로 인해 좌파를 지지했던 블랑카의 집안도 쑥대밭이 되었단다. 대통령궁에 있었던 하이메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만 죽고 말았단다. 알바는 집에 있으면서 몸을 사렸어. 미겔이 실종되었는데 찾아 나서지도 못했어. 장관직을 역임했던 페드로도 도망자 신세가 되어 블랑카의 비밀 골방에 피신해 있었어.


3.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사람(책에는 실명이 안 나왔지만 피노체트)은 국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여러 가지 선심 정책을 펼쳤지만 나라는 계속 속으로 썩고 있었단다. 피노체트는 강력한 독재 정치를 준비하고 있었어. 에스테반은 이런저런 이유로 자기 세력에서도 점점 배제되어 가고 있었어. 그런 정치판에 이제 신물이 났어. 이제서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단다. 에스테반이 변한 것을 알게 된 블랑카는 한 가지 부탁을 했어. 페드로와 자신이 망명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어. 에스테반은 아직 영향력이 있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페드로와 블랑카를 교황청대사관으로 빼돌리는데 성공했단다.

이 일을 같이 계획하면서 블랑카는 아버지 에스테반과 화해를 하게 된단다. 그리고 페드로와 블랑카는 그렇게 해외로 망명을 하게 된단다. 이후 에스테반은 자신의 집을 도피자들의 임시 피신처로 만들었어. 그가 정치를 그만두었지만, 보수당 정치 거물이었던 집을 함부로 수색할 수 없었거든.

어느날 미겔이 찾아왔어. 미겔은 다시 정권을 잡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게릴라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어. 알바는 살림살이를 팔아서 군자금으로 미겔에게 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쳐 알바를 강제 연행해 갔단다. 그 자리에 에스테반도 있어서 자신의 지위와 이름을 걸로 군인들을 협박했지만 군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알바를 연행해갔단다. 이 일은 에스테반 가르시아 대령이 꾸민 짓이란다. 기억나지? 에스테반에게서 돈을 빌려가 사생아 에스테반 가르시아. 그는 사실 에스테반에게 강한 복수심을 갖고 있었고, 복수를 이런 식으로 했던 것이란다.

끌려간 알바는 너희들에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참혹한 고문을 받았단다. 이것은 에스테반 가르시아의 개인적인 복수의 방법인 거야. 한편 에스테반은 외손녀 알바를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단다. 에스테반이 젊었을 때 사창가의 한 여인한테 진심으로 도와준 적이 있었어. 그 여인은 트란시토 소토라는 여자인데, 1권에서도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단다. 트란시토가 지금은 홍등가의 사장이 되어 정부 거물급 인사와 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에스테반은 트란스토에게 도움을 청했고, 트란스토가 도와줘서 마침내 알바를 찾아내 빼낼 수 있었단다.

그렇게 풀려난 알바는 외할아버지 에스테반의 마지막을 함께 한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다 서사시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더구나. 아빠가 소설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적어두는데, <영혼의 집> 1권의 첫 문장과 2권의 마지막 문장, 그러니까 소설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똑같더구나.

바라바스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이렇게 의도적으로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같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단다. 마치 아빠 같이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기록해 두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신 것 같거든.

….

지은이 이사벨 아옌데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너무 좋았고, 마지막에 가족 간의 갈등이 해소되는 것도 좋았지만,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힘들었던 점에 가슴이 아프구나. 소설 속 주인공들과 삶을 살았던 이들이 칠레에도 많이 있었을 텐데지은이 이사벨 아옌데도 망명생활을 했었잔니. 작년에 <바다의 긴 꽃잎>을 읽고 이사벨 아옌데의 책들을 몇 권 사 두었는데 이번에 <영혼의 집>을 읽고 나니 이사벨 아옌데의 책들을 더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너희들도 나중에 커서 이사벨 아옌데를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클라라와 블랑카가 서로 주고받은 편지들이 없었더라면 그 시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빛이 바래고 희미해진 기억들로 뒤죽박죽 되었을 것이다.

책의 끝 문장: “바라바스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


블랑카는 알바 나이에 맞지 않는 책들도 있으므로 독서도 가려서 해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렇지만 하이메 외삼촌은 사람들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책은 절대 읽지 못하며, 만약 그 책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건 이미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성숙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메 외삼촌은 목욕과 식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론을 갖고 있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알기 때문에, 만약 알바가 목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건 목욕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이며, 애가 배가 고플 때는 뭐가 됐든지 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48

알바는 군인들의 행동 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중간 계급이나 노동자 계급 출신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극우 쪽보다는 좌파에 더 가까웠다. 알바는 나라가 왜 내전 상태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쟁은 군인들의 작품으로, 그들이 받은 훈련의 결정체이자 그들 직업의 빛나는 훈장이라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군인들은 평화 시에는 빛을 발할 수가 없었다. 쿠데타는 군인들이 병영에서 받았던 훈련과 맹목적인 복종, 무기 사용법, 그리고 일단 양심의 가책을 외면하고 나면 습득이 가능한 다른 기술들을 실제로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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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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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이사벨 아옌데의 <바다의 긴 꽃잎>을 재미있게 읽고 이사벨 아옌데의 팬을 자처했단다. <바다의 긴 꽃잎>을 읽고 쓴 독서편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조카로 이사벨 아옌데를 알게 되었다고 했잖아. 이젠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삼촌이 살바도로 아옌데 대통령이라고 이야기하게 되는구나. 그만큼 한 작품이지만, 너무 인상 깊고 재미있었단다. 그래서 그 이후 이사벨 아옌데의 책들을 몇 권 구입했단다.

여성 주인공이 등장해서 이사벨 아옌데의 여성 3부작으로 부르는 <영혼의 집>, <운명의 딸>, <세피아빛 초상> 중에서 이번에 <영혼의 집>을 읽었단다. 이 책은 칠레의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란다. 아참, 소설에서는 나라 이름이 한번도 안 나온 것 같았어. 하지만 누구나 소설 속 나라가 칠레라는 것을 알 거야. 아빠가 전에 읽은 칠레 현대사에 관련된 책들,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의 <살바도르 아옌데>, 이사벨 아옌데의 <바다의 긴 꽃잎>, 루이풀 세풀베다의 <역사의 끝까지> <영혼의 집>을 읽는데 도움이 되었단다.

이번에 읽은 <영혼의 집>도 재미와 감동을 모두 주었단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가끔 읽기 어려운 책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 책은 재미있어서 술술 넘어가는 몇 안 되는 책이었단다. 더욱 이사벨 아옌데의 찐팬이 된 듯싶구나. <영혼의 집>은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늘은 1권을 먼저 이야기해줄게.


1.

그럼 바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세베로 델 바예는 전직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란다. 의회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지. 그의 아내는 니베아이고 아이들을 15명을 낳았는데, 11명이 생존했단다. 소설의 첫 부분의 시대적 배경이 1900년대 전반기로 낳기도 많이 낳고 영아 사망률도 높던 시대였단다. 세베로 델 바예의 첫째 딸 로사는 열여덟 살로 뛰어난 미모로 유명했단다. 로사는 에스테반 트라에바라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지금은 북쪽 지방의 광산에서 일하고 있었어. 세배로 델 바예의 막내딸 클라라는 열한 살인데 미래를 예언하는 등 영적인 능력을 갖고 있었고, 조숙했단다. 클라라는 외삼촌 마르코스와 무척 친했단다. 마르코스는 모험심이 강해서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하였고,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니고 그랬어. 직접 비행기를 만들어서 그 나라에서 최초로 비행한 이력도 있었어. 불시착해서 몇 달 만에 돌아와서 가족들을 걱정시키기도 했지만 말이야. 조카 클라라가 영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둘이 점술사업을 하기도 했는데 세베로가 이를 알고 반대하여 그만 두었단다.

그런 마르코스가 아프리카 여행 중에 전염병에 걸리고 말았어. 전염병에 걸린 마르코스는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그만 집에 도착하기 전에 죽고 말았단다. 클라라의 집안은 온통 슬픔에 잠겼지. 클라라는 마르코스와 함께 온 개 바라바스를 정성껏 보살폈단다.

세베로 델 바예 집안의 불행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란다. 클라라가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고 했잖아. 누군가 실수가 죽을 것이라고 식구들에게 이야기를 했으나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단다. 마르코스가 살아 있다면 클라라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을 텐데그가 없으니 클라라의 말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어. 얼마 후 세베로를 죽이려고 정치적 반대파에서 독이 든 술을 선물로 보내왔단다. 그런데 그것이 술이라고 생각하고 그만 큰 딸 로사가 먹고 죽고 말았단다.

클라라의 집은 또다시 비통에 빠졌어. 클라라는 이 충격으로 말을 잃고 말았단다. 로사의 남자친구 에스테반도 광산에서 이 소식을 듣고 비탄에 잠긴 채 돌아왔단다. 그 술을 보낸 사람은 끝내 잡지 못했어. 에스테반은 여자 친구 로사를 잃은 슬픔에 광산에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부모님의 땅이지만 관리를 하지 않아 황무지가 된 트레스 마리아스라는 농장에 가서 농장 일을 시작했단다.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아픔도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농장에 있는 저택을 보수하고 일꾼을 고용해서 농장을 다시 일으켰어. 그 농장이 황무지가 된 이유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지병으로 침대에만 계시고, 그 엄마를 누나 페룰라가 도시에서 보살피고 있었거든. 에스테반은 농장을 다 보수하고 소작인들이 살고 있는 트레스 마리아스 마을 전체를 보수했단다. 학교도 짓고 상점도 세우고 그랬어. 트레스 마리아스는 다시 번창하게 되었고, 농장에서도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단다. 당시는 무척 귀했던 라디오도 하나 장만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도 챙기고 그랬어.

한편 로사의 죽음 이후 말을 잃은 클라라. 클라라의 부모님은 클라라를 치료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어. 하지만 고칠 수 없었지. 그도 그럴 것이 클라라는 의식적으로 말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구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것일까? 아마도 자신이 누군가 죽는다고 이야기를 해서 언니가 죽었다고 죄책감 말이야. 클라라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기록을 했단다. 엄청난 양의 메모를 노트에 쓰기 시작했어.

아버지 세베로는 로사가 죽고 나서 정치도 그만 두었어. 오히려 어머니 니베아가 정치판에 뛰어들어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성인권 운동에 힘썼단다. 클라라는 나이를 먹으면서 영적인 능력은 더 강해졌어. 로사가 죽고 나서 9년이 지난 어는 날, 클라라가 갑자기 말을 시작했어. 그 한마디가 자신의 미래를 예언하는 듯한 말이었어. 자신은 도시에서 온 약혼남과 결혼하겠다고다들 클라라가 다시 말했다는 것이 관심이 있었지. 클라라가 내뱉은 말의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들이 없었단다.


2.

시간은 흘러 10년이 지났단다. 농장은 크게 번성하여 돈은 많은 벌었지만 에스테반은 무섭고 악명 높은 농장주가 되었단다.  무서운 것뿐만 아니라 난봉꾼이 되어 소작인들의 딸들을 겁탈해서 사생아가 몇 명이나 되는지도 모를 정도였어. , 나쁜 사람이구나. 로사와 결혼을 했다면 달랐을까?

에스테반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누나의 전보를 받았어. 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어쩔 수 없지 가게 되었어. 그가 자리를 빈 사이 농장과 트레스 마리아스는 소작인 중에 능력 있고 똘똘한 페드로 세군도에게 맡기고 어머니가 계시는 수도로 갔단다. 에스테반은 어머니의 임종을 함께 하고, 장례식도 치렀단다. 그래도 아들의 역할은 한 것 같구나.

장례식이 끝나고 에스테반은 세베로의 집에 찾아왔단다. 로사의 옛 남자친구로서가 아니었어. 그 집안에 결혼 적령기에 든 여자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는 클라라에게 청혼했단다. 클라라는 좋다고 했고, 아버지는 반대하지 않아서 그들의 결혼을 성사되었단다. 수도에 신혼집을 새로 지었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누나 페룰라도 에스테반과 클라라와 함께 지냈단다. 페룰라는 올케인 클라라와 사이가 무척 좋았단다.

시간은 흘러 클라라는 딸 블랑카를 낳았어. 그리고 그들은 농장으로 이사를 갔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농장 생활이었단다. 특히 도시에서만 생활하던 페룰라는 특히 힘들어했단다. 클라라는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을 위해 다시 도시로 갔단다. 이번에는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 클라라가 예지력이 있다고 했잖아. 꿈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꿈을 꾸고 힘들어했는데, 역시도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클라라는 아들 쌍둥이를 낳았고 이름을 하이메와 니콜라스라고 지었단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유모가 있었는데, 클라라는 유모에게 함께 지내자고 해서 유모도 클라라네 집으로 왔고, 유모는 아이들을 보살펴 주었단다. 앞서 페룰라가 올케인 클라라와 사이가 좋았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정도가, 뭐랄까 지나치다고나 할까? 선을 넘었다고 할까? 클라라를 목욕을 시켜주기도 하고, 클라라가 혼자 자고 있는 침대 옆에 몰래 와서 자기도 했어. 그런 모습을 에스테반이 보고 질투도 느끼고 혐오감도 느끼게 되어 누나인 페룰라를 내쫓았단다. 누나의 정 때문에 생활비는 계속 보내 주었어.

페룰라가 집을 나가사 집안은 엉망진창이 되었단다. 그동안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페룰라가 집을 나가서 집이 온통 엉망이 된 거야. 에스테반의 생활도 총각 때의 난잡함으로 돌아갔어. 사창가를 드나들고 처녀들을 겁탈하고사창가에서 만난 트란시토 소토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와는 나중에도 계속 인연을 이어간단다. 한편 클라라는 자신처럼 염력을 가진 모라 자매들을 알게 되었고, 모라 자매들과 자주 모임을 갖고 염력과 점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이런 엄마와 아빠를 둔 블랑카가 한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3.

시간은 또 흘러 블랑카의 나이 10살이 되었어. 농장에서 많은 시간을 지내다 보니 같이 어울릴 또래가 별로 없었어. 소작인의 아들 페드로 테르세로와 친해지게 되었단다. 점점 나이를 먹어 사춘기가 되면서 블랑카와 페드로는 첫사랑이 되었단다. 하지만 공부를 위해서 블랑카가 수도에서 지내고, 페드로는 농장에서 지내면서 멀어지게 되었단다.

예지력이 있는 클라라의 눈에 페룰라의 죽음도 예측을 했고, 대지진도 예측했단다. 대지진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는 심한 발작도 일으켰어. 대지진이라는 대재앙이 몰려오지만, 클라라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지. 아빠가 알기에 칠레는 지진이 많은 환태평양 지대에 있는 나라로 지진이 많이 일어난단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역사의 끝까지>라는 소설에서도 큰 지진이 있었잖아. <영혼의 집>의 시대적 배경이 1900년대 전반부라고 했으니 그 때쯤 큰 지진이 있었는지 검색을 해보았단다. 1939 1 24일 칠레에 대지진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 소설에서 클라라가 예측한 지진은 이 지진인 듯싶구나. 이 대지진으로 유모가 죽고 말았어. 그리고 남편 에스테반도 무너진 집에 깔려 온 몸의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죽을 뻔 했으나, 장님이었던 페드로의 할아버지가 치료해주어 회복할 수 있었단다.

….

블랑카의 첫사랑 페드로 테르세로는 공산주의 사상을 알게 되고, 농장에 있는 소작농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퍼뜨렸단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에스테반은 페드로를 쫓아냈단다.

농장이 있는 마을에 장 드 사티니 백작이라는 프랑스 사업가가 왔단다. 에스테반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블랑카에게 청혼을 했지만, 블랑카는 거절했단다. 어느날 장 드 사티니 백작은 블랑카와 페드로의 밀애 장면을 목격하게 돼. 이걸 치사하게 에스테반에게 고자질을 하고, 에스테반은 블랑카를 심하게 때렸단다. 이를 변호하던 클라라도 때렸어. 이 일로 클라라는 딸을 데리고 농장을 떠나 수도에 있는 집으로 와버렸단다. 에스테반은 혼자 남겨졌고, 분노를 참을 수 없어 페드로를 찾아내 죽이려고 했어. 페드로를 찾아낸 에스테반은 도끼를 휘둘렀고 페드로는 간신히 도망쳤단다. 하지만, 페드로는 손가락 세 개가 도끼에 잘리고 말았단다. 에스테반은 정치도 시작하여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보수당의 상원의원이 되었단다.

….

수도에 온 블랑카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았어. 당연히 페드로의 아이였지. 이 소식을 들은 에스테반은 자신의 딸이 사생아를 낳을 수는 없다고 했어. 정치 인생에 도움도 안되고 말이야. 에스테반이 생각해 낸 수는 장 드 사티니 백작이었어. 돈을 밝히는 장 드 사티니 백작에게 돈을 잔뜩 쥐어주고 블랑카와 얼른 결혼시키는 것이었어. 클라라는 당연히 반대를 했지만, 에스테반의 무식한 힘을 이길 수 없었단다. 결국 블랑카는 강제 결혼을 하고 장 드 사티니의 집이 있는 북부로 이사를 갔단다.

여기서 잠깐 블랑카의 쌍둥이 동생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이름 기억나니? 하이메와 니콜라스. 하이메는 공부를 엄청 잘해서 의대생이 되었단다. 금욕주의를 몸소 실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보살피는 봉사활동도 열심이었어.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서 몰래 페드로 테르세로를 만나 사회주의를 함께 공부하기도 했어. 니콜라스는 하이메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단다. 니콜라스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엉뚱한 사업들을 많이 했어. 춤교습소라든가, 열기구 사업, 닭 키우기 등

여자친구 아만다가 있었는데 아만다 또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지. 아만다는 다섯살짜리 동생 미겔이 있었는데 부모님 없이 둘이 살고 있었어. 아만다와 미겔은 클라라의 집에 자주 놀러왔는데, 클라라는 어린 미겔을 잘 보살펴 주었단다. 니콜라스와 클라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말았고, 니콜라스는 의대생이었던 하이메에게 아만다의 중절 수술을 부탁했단다. 의대생이니 아직 의사는 아닌데 그런 수술을 어떻게 하겠니하지만 니콜라스와 아만다의 간곡한 부탁에 첫 수술을 중절수술로 집도하게 되었단다. 사실 하이메는 아만다를 짝사랑하고 있었단다. 짝사랑하는 여자가 동생과 자유연애를 하는 것도 속이 쓰릴 텐데, 임신까지 하고 중절수술까지 자기 손으로 해야 하다니

….

여기까지 <영혼의 집> 1권의 이야기란다. 등장인물들이 다들 평범하지 않구나. 지은이는 어떻게 이런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족으로 만들었을까. 2권에서는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갈까. 2권도 곧 이야기해줄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바라바스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

책의 끝 문장: 그렇지만 에스테반은 자기집 지붕 아래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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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6-28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꾸준히 잘 쓰십니다. 부러워요!!!

bookholic 2023-06-28 23:04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기억력이 점점 떨어져서,
이렇게라도 적어놓아야
책읽을 때의 느낌과 줄거리를 알수 있어서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