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류시화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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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류시화 님의 신간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라는 책 이야기를 해줄게. 류시화 님은 시인이지만, 시만큼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수필도 많이 쓰신단다. 아빠도 류시화 님의 산문집을 여러 권 읽었는데, 새로 산문집이 나와서 무척 반가웠단다.

아빠가 책을 읽을 때 좋은 구절이 나오면 해당 페이지를 책 앞면지에 적어두고 그것을 타자기로 다시 한번 두들기면서 마음에 새기는 독서습관이 있어. 나중에 이 책을 다시 펼 때도 앞면지에 적혀 있는 페이지만 간단히 읽어볼 수도 있고그런데 지금껏 류시화 님의 책의 앞면지에는 늘 많은 페이지가 적혀 있었단다. 이번 책은 어땠냐고? 이번 책도 시작부터 계속 페이지 적느라고 앞면지와 읽고 있는 페이지를 오갔단다. 시작부터 마음에 새겨야 할 글을 던져주었는데, 공부하기 힘들어 하는 너희들도 읽어보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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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힘든 시기일수록

마음속에 아름다운 어떤 것을 품고 다녀야 한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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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책을 대변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도 책 제목만 읽어도 힘을 얻게 되더구나. 책 제목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는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수필의 제목과 같은데, 실패하거나 불행한 일을 겪었을 때 지은이가 건네주고 싶은 말인듯했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원래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

아빠도 젊었을 때는 왜 인생이 이렇게 안 풀리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공자가 왜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을 이야기했는지 조금씩 이해가 가더구나. 인생은 내가 생각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진리. 문득 이 글을 읽다가 작년에 너희들과 많이 들었던 아이브의 <I AM>이라는 노래 가사도 생각나는구나.

어느 깊은 밤 길을 잃어도 차라리 날아올라 그럼 네가 지나가는 대로 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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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삶에서 불행한 일을 겪은 후, 그 불행 감정을 오랫동안 껴안고 있는 사람들의 결론을 압축하면 이번 생은 틀렸어.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라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 감정은 확증 편향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한다. 또한 그 확증 편향이 진리인 양 마음을 닫아 건다. 왜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살면서도 자기 삶의 심리학자가 되지 못할까? 우리는 한때 얼마나 옳았는가? 또 나중에 돌아보면 얼마나 틀린가?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그 다른 인생의 기쁨은 부스러기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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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도 그렇고 너희들도 그렇고 좀 예민한 사람들이잖니. 예전에 읽은 책 일레인 N. 아론의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라는 책을 비롯하여 민감하고 예민한 성격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고, 그런 사람들로 인해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내용에 힘을 얻기도 했는데, 류시화 님의 글에서도 앙리 마티스의 말을 빌어 예민한 사람이 더 세상을 심층적으로 보고 감응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하는구나. 그러니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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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예민한 영혼으로 태어난 것은 신의 실수가 아니라 축복이다. 관계 심리학자들이 말하듯이, 예민함은 바로잡아야 할 심리 상태가 아니라 특별한 재능이다. 섬세한 감각으로 다른 이들의 놓치는 현상의 이면을 보고, 울림 있는 내면세계를 가지며, 문학과 예술에 감동받는다. 그런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도 뛰어난 감응력을 갖는다. 예민한 사람은 그 예민함으로 인해 고통받기도 하지만 그 예민함 덕분에 세상을 더 심층적으로 바라본다.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디에서 꽃이 보인다. 화가 앙리 마티스의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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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후회의 동물인 것 같구나. 결혼을 고민하는 이에게 결혼을 해도 후회이고 안 해도 후회이니 하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있단다. 이렇듯 어떤 것을 함에 있어 해도 후회할 것 같고, 안 해도 후회할 것 같은 경우가 있을 때 너희들은 어떻게 할 것 같니? 류시화 님께서는 해 버리라고 하는구나. 아빠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특히 너희들처럼 청소년들은 처음 해보는 것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류시화 님은 해 버린 후회는 날마다 작아지고, 하지 않은 일의 후회는 날마다 커진다고 말씀하시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 경험상 정말 그랬던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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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23)

해 버린 일에 대한 후회는 날마다 작아지지만, 하지 않은 일의 후회는 날마다 커진다.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생의 저녁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은 하지 않은 일이다. 하찮은 일들과 소란한 만남들 때문에 언제까지나 뒤로 미룬 일, 주위의 만류와 일반화의 논리 때문에 포기한 일, 안전한 영역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진짜 감정과 진실을 감춘 일이 그것이다. 그렇게 해서 흥미진진하고 의미로 채워진 영화 같은 삶을 유예시키고 관객석에서만 살아간 것이다. 나의 삶은 내가 최초로 시도한 삶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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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자라면서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을 거야. 그 중에는 너희들의 직업과 관련 있는 일도 있겠지. 하고 싶은 것들은 많지만, 그것들을 모두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란다. 평행우주가 있고, 그 우주에 있는 나와 소통을 할 수 있다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다른 길을 간 나를 볼 수 있겠지만 우리 인생은 그렇지가 않네. 많은 길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가끔은 잘못된 길인가, 하면서 다른 길을 선택을 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그 잘못된 길에 나를 맞추면서 가는 경우가 있단다.

나에게 맞지 않는 상자에 나를 맞추고, 나에게 맞지 않는 길에 나를 맞추는 일이 책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단다. 상자 안이 맞지 않으면 상자 밖으로 나오라고, 죽지 않는다이 충고는 아빠가 생각하기에 이삼십 대 젊은이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빠의 경우 그 당시에 그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 지금 하는 일들이 맞지 않는 옷을 입을 기분이 많이 들었어. 결국 아빠는 그 옷들을 벗지 못했지만 말이야. 이제는 그 옷이 편안해지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 옷에 아빠를 맞춘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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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87)

사람들은 상자 안에 살면서 그 상자에 맞추지 못하는 사람을 문제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감수성이 날카롭고 낯가림이 심해 사회 적응자처럼 살아갈 수 없을 때, 아무리 해도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에 접근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터무니없이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여긴다. 상자 안에 맞지 않으면 상자 밖으로 나와야 한다. 나간다고 죽지 않는다. 강물은 강폭이 좁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저 넘쳐 자신의 길을 만들 뿐이다.

세상의 기분이 자신의 갈망을 채워 주지 못한다면 그때가 바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자신과 맞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자신을 그 사람에게 맞출 것이 아니라 자신과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보다 자기 자신이 되어 미움받는 것이 덜 위험하다. 다른 사람들을 잃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현실 적응자가 되지 말고 마법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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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빠는 계획하지 않고 무작정 떠난 여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민한 성격이라서 그럴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많은데, 그렇다 보면 실패를 맛보는 경우도 있단다. 하지만 그 여행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여행을 간 것을 잘했다고 생각할 거야. 실패를 통해서 얻은 값진 경험들이 있으니계획을 잘 짜고 그것에 맞춰 떠난 여행도 아빠는 참 좋더구나.  그런 여행도 계획과 틀어지면서 실패를 겪기도 하지만, 아빠의 계획 속에서도 그런 실패도 고려되어 있기 때문에 플랜 B를 향해 나아간단다. 여행은 무엇이든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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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나는 곳 그 도시를 떠났기 때문에 그 후 두 사람이 어떤 여행을 펼쳐 나갔는지 알지 못한다. 낯선 여행을 주저하던 여성도 잘못된 여행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배낭끈을 단단히 여미고 떠났을 것이다. 훗날 자신의 여행을 뒤돌아 볼 때, 망설이며 시간을 보냈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여행이 불완전한 자유라 불리는 이유는 여행은 실패의 연속이지만 그 길들이 우리를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실패를 포함하지 않는다면 여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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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님은 재미있는 우화도 많이 알고 계시는데, 이 책에서 소개해준 우화 중에 기억하는 우화가 하나 있어. 속 좁은 아빠가 귀담아 들으면 좋을 것 같았어. 어떤 힘든 일이나 불행한 일이 생겨도 그것을 담는 그릇이 크다면 불행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가르침. 아빠도 그릇을 키워야겠구나. 주식이 폭락해도 의연할 수 있는 큰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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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248)

어느 날 스승이 그를 불러 물 한 잔을 가져오게 시켰다. 그리고 그 물에 소금 한 줌을 타서 마시게 하고는 물었다.

물 맛이 어떤가?”

제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너무 짜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스승이 근처 호숫가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맑은 호수에 똑 같은 소금 한 줌을 뿌리고는 호수의 물을 한 모금 맛보게 했다. 물맛이 어떠냐고 묻자, 제자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시원합니다.”

짜지 않느냐?”라는 스승의 물음에 제자는 전혀 짜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스승은 제자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 차이를 알겠는가? 불행의 양은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다만 그것을 어디에 담는가에 따라 불행의 크기가 달라진다. 유리잔이 되지 말고 호수라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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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아빠가 발췌한 글들 중에서 특히 좋았던 글들을 소개해 주는 것으로 독서편지를 마쳐야겠구나. 이 책에는 아빠가 소개해준 글들 이외에 대부분의 글들이 너무 좋았단다. 이 책은 이삼십 대 때 읽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너희들도 굳이 이 책을 읽을 거면, 좀더 기다렸다가 이십 대 되어서 읽어보면 좋겠구나.

그나저나 류시화 님은 어떻게 끊이지 않고 좋은 문구들을 생각해 내시는 걸까. 보물단지라도 갖고 계신가. , 오늘은 여가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J.D.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홀든 콜필드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책의 끝 문장: 저의 인생 영화에 독자로 등장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저 역시 한 번쯤은 당신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이 인생은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다. 내가 생각한 세상이 절대 아니며, 내가 상상한 사랑이 아니다(아픔이 너무 크다). 신도 내가 생각한 신이 아니다(때로 인간에게 가혹하다). 지구별은 단순히 나의 기대와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좌표 계산이 어긋나 엉뚱한 행성에 불시착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모든 일들이 나의 제한된 상상을 벗어나 훨씬 큰 그림 속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 P18

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환영받는다고 느끼고,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 준다고 느끼고, 지지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것만큼 위대한 일은 없다. 친절은 상담료를 받지 않는 심리치료이다. 칼 융이 말했듯이, 모든 이론을 알고 심리 기법에 통달한다 해도 한 인간 영혼을 대할 때는 단지 따뜻한 인간이 될 수 있어야 했다. 상실의 깊이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그 상실감은 다른 형태로 다가오는 사랑에 의해 회복될 수 있다. 불완전한 인간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 P44

때로는 온 존재가 부서지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누구라는 굳센 생각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고 전체와 하나가 될 수 있다. 나는 불행한 인간이 아니다. 단지 불행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나는 우는 인간이 아니다. 단지 우는 순간, 웃는 순간이 교차할 뿐이다. ‘불행한 사람, 화난 사람, 과거의 어떤 사람’이 나라는 고정된 생각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다. - P103

반복해서 하는 행위가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특출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의 결과이다. 창조적이 되는 비밀은 ‘창조적이 될수록 더 창조적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창조하려면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미국 팝아트 선구자 앤드 워홀은 말했다.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완성하라.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게 두라. 그들이 결정하는 동안 더 많은 작품을 만들라."
- P130

그렇다. 한 가지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많은 길을 ‘가지 않은 길’로 남겨 두는 것을 의미한다. 삶은 선택인 동시에 포기의 길이다. 나는 결국 시인의 무화과를 선택했고, 특파원이나 사진작가나 다른 멋진 미래들은 신문지처럼 접어 안쪽 호주머니에 넣었다. 이것은 단지 열 편이나 스무 편의 시를 쓰고 나서 다른 길로 간다는 것이 아니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글을 써야 함을 의미했으며, 정오부터 저녁까지 다음 글에 대해 고민해야 함을 의미했고, 병원 신세를 지든 자신의 예민함에 질리든 단어들을 수정하고 있어야 함을 의미했다. - P191

‘사람들은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죽으면 더 이상 불평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긍정적인 감정이 좌뇌에서 간단히 처리되는 반면에 부정적인 감정은 우뇌에서 훨씬 많은 분석과 사고 과정을 거친다고 뇌신경학자들은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감정보다 불쾌한 감정과 사건을 묘사할 때 더 논리적이고 강한 말들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렇게 발달한 우뇌는 부정적인 것을 발견하는 일이 습관이 된다. 그것이 인간 뇌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동화가 필요한 순간이 바로 그때이다. ‘학자처럼 공부하고 동화의 주인공처럼 살라’는 말은 소중한 금언이다. - P218

통증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통증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고, 그 통증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일이다. 트워스키 박사는 말한다.
"불편함과 갑갑함을 느끼는 시간들은 당신이 성장할 시기가 되었음을 알려 주는 신호이다. 이 역경을 제대로 활용하면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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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8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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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조금만 방심하면 밀린 독서편지가 쌓이게 되는구나. 연휴 후 첫날이라서 좀 피곤하지만, 밀린 독서편지를 생각하니 컴퓨터를 켜야겠더구나..^^ 빨리 오늘 하나를 끝내야겠다.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8권을 이야기해줄 차례구나. 바로 시작할게.

8권의 이야기는 합방된 지 15년이 지난 후부터, 그러니까 1925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의열단에 가입한 방대근은 상하이로 왔단다. 다른 의열단 단원인 윤주협, 이상태와 함께 작전 수행을 위해 국내진입 작전을 지시 받았어. 의열단원들은 자신의 임무가 곧 삶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을 벌이기 전에 멋진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곤 하는데, 방대근, 윤주협, 이상태도 함께 사진을 찍었단다.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다면 다들 멋진 젊은이로 사랑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에 열정을 쏟을 텐데그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일을 하고 있단다.

방대근이 걱정하는 것은 국내 잠입 임무를 하다가 죽으면 양치성을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 되는 것이었어. 그만큼 방대근에게 양치성은 철천지 원수였던 거야. 국내에 성공적으로 잠입한 방대근은 국내에서 비밀 활동중인 김철호와 접선을 한 후, 군산으로 가서 손판석 아저씨를 만났단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에 보름이 누나를 만나게 되었어.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에 만남인가. 대근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 만주에 수국이 누나가 있다는 이야기도 전하며 정말 오랜만에 회포도 풀었단다.

이렇게 방대근의 이야기로 8권은 시작했단다.


1.

군산 지역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어졌어. 외눈박이 백남일 생각나지? 백남일은 정미소 노동자의 임금을 대폭 삭감해 버렸단다. 그러자 정미소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어. 그러자 백남일은 다른 사람들을 채용했단다. 그러자 노동자 연합 조합에서 채로 채용한 사람들을 몰아내고, 백남일의 정미소 노동자와 함께 농성을 했단다. 백남일이 경찰에 신고하여 농성하던 노동자들은 경찰서에 갇히게 되었어. 노동자들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것은 다 노동자들 뒤에서 고서완, 정도규, 유승현 등이 알려준 대로 한 거야.

다음날, 백남일의 정미소에 또다른 노동자들이 와서 농성을 하고 또 경찰은 농성한 노동자들을 경찰서에 가두었어. 그렇게 되자, 일본 사람들이 경찰서에 와서, 자신들의 노동자들을 경찰서에 가두어 자신들 정미소가 제대로 안 돌아간다고 항의를 했단다. 일본인들 사장들이 와서 그렇게 항의를 하니 경찰들도 노동자들을 어쩔 수 없이 풀어주었어. 백남일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정미소의 노동자들을 복직시키고 눈물을 머금고 임금 삭감은 없던 일로 했단다. 고서완, 정도규, 유승현의 작전 승리로구나. 노동자들도 이번 동정파업의 성공을 겪고 고서완, 정도규, 유승현 등의 공산주의 사상을 더 따르게 되었어.

한편 박건식은 3.1운동 후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어 고향을 떠나 목포까지 내려와 힘들게 지냈단다. 건식의 어머니 대목댁은 손주의 학비를 조금이라도 보태겠다고 행상을 했는데, 그만 일본 순사들이 강압적인 폭행에 허리를 심하게 다치고 말았단다. 방에서 꼼짝 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 효자인 건식은 어머니 병을 치료하기 위해 빚까지 써가면서 약을 쓰고 치료했지만 대목댁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졌단다. 집안 사정이 안 좋은데 자신 때문에 더 안 좋아지게 되자 대목은 자살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출근길, 손주의 등굣길을 배웅해주고, 며느리가 집을 사이 한 많은 삶을 스스로 끊고 말았단다.

7권의 마지막에서 차득보는 동생 옥녀를 다시 만났잖아. 이제 차득보는 옥녀와 함께 지냈단다. 그렇게 찾고 싶었던 동생을 만나 다시 지내고 있지만, 차득보의 마음 한 켠에는 늘 찬 바람이 불었단다. 자신이 사랑했던 월엽이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아기까지 낳았기 때문이야. 아직도 월엽을 잊지 못하는 차득보는 시간만 되면 월엽이 사는 마을에 가서 멀리서나마 몰래 월엽을 보고오곤 했단다. 차득보의 심정은 이해가 가긴 했지만, 이젠 깨끗하게 잊을 때도 되었고, 그의 행동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었던 거야. 보다 못한 공허 스님은 차득보의 행동에 대해 차득보에게 크게 혼을 냈단다. 그제서야 차득보도 정신을 차린 듯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어. 공허 스님은 그렇게 혼을 내면서도 차득보와 어울리는 짝을 찾아 주기로 했단다.

옥녀는 돈을 벌기 위해 남원에서 열린 소리대회에 참가하여 일등을 했단다. 그렇게 번 돈은 오빠에게 주고 논을 사라고 주었어. 차득보는 동생의 그런 마음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느끼며 논을 사서 생활 형편이 나아졌단다. 아무래도 자작농보다 자립농이 훨씬 나았지.


2.

동경에서 유학중인 송중원은 친구인 허탁과 함께 공산주의 모임을 참가했어. 당시 일본에서는 공산주의를 불법으로 선언하고 엄중한 감시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모임은 늘 비밀리에 이루어졌단다. 동경 유학생 중에 이경욱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도 공산주의 모임 멤버였어. 이경욱을 전에도 한번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이경욱은 악질 친일파 이동만의 아들인데 이경욱은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자신이 친일파 아들이라는 것에 죄책감을 갖고 있던 사람이야. 그래서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해 더욱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고 공산주의 활동을 했단다.

어느날 허탁이 실수로 일본인 아이를 자전거로 쳐서 다치는 일이 일어났어. 일본인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를 친 사람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용서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력해서 경찰서에 갇힌 채 며칠 동안 나오질 못했단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그들의 동료 유학생 박영애는 자신이 해결하갰다고 큰소리를 쳤고, 정말 며칠 뒤 허탁이 풀려나게 되었단다. 철없는 유학생 캐릭터인 박영애의 집안은 엄청난 배경이 있는 것 같더구나.

하와이 상황도 이야기해줄게. 하와이 노동자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어.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의 탄핵 소식이었단다. 교포들이 모은 독립자금을 자신이 착복했다는 것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이유로 탄핵되었다는 소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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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임시대통령 <리승만>의 범과 사실을 심리하고 대한민국 임시헌법 제4장 제21조 제14항에 의하여서 탄핵 면직에 해당함을 판정함.

<리승만> 범과의 사실

. 임시대통령 <리승만>이 그 직임에 피선된 지 7년에 임시대통령의 선서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정부의 행정을 집정하지 않었고 각원들과 불목하여 정책을 세워보지 못하였다.

. 임시대통령 <리승만>이 대미 외교사업을 목적하고 설립한 구미위원부를 가지고 국무원과 충돌하였고 아무때나 자의로 법령을 발포하여서 질서를 혼란하게 하였으며 정부의 처사가 자기 의사에 맞지 않으면 동지자들을 선동하여 정부를 반항하였다.

. 임시대통령 <리승만>은 그 직임이 국내 13도 대표가 임명한 것이라 하여 신성불가침의 태도를 갖이고 임시 의정원 결의를 무시하며 대통령 직임을 <황제>로 간주하여 <국부>라 하며 <평생 직업>을 만들려는 행동으로써 민주주의 정신을 말살하였아.

. 임시대통령 <리승만>이 미주에 앉어서 구미위원부로 하여금 재미 동포의 인구세와 정부 후원금과 공채표 발매금들을 전부 수합하여 자의로 처단하고 정부에 재정보고를 제출하지 않어서 재정 범포가 어느 정도까지 달하였는지 아지 못하게 하였다.

. 임시대통령 <리승만>이 민중단체의 지도자들과 충돌하여 정부의 고립상태를 주출하고 재미 한인사회의 인심을 선동하여서 파쟁을 계속 하므로 독립운동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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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은 하와이 노동자들을 분노케 했단다. 그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나라를 위해 모은 성금을 자신이 꿀꺽 했으니 그 심정들이 이야기가 갔단다. 그들의 울분을 누가 달래줄 것인가. 이승만에 대한 그들의 배신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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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최고로 많이 배워 박사라는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아니,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독립운동이란 자기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하는 일 아닌가? 그 일이 어렵고 장해서 뼈빠지게 번 돈을 아낌없이 내놓지 않았던가? 우리같이 무식한 것들도 다 아는 그 일을 이승만이란 사람은 몰랐는가? 그 유식하고 유식한 사람이 몰랐을 리가 있는가? 그런데 왜 독립자금을 제멋대로 범포해 버린 것일까? 그게 도대체 어찌 된 맘보일까? 그 사람은 독립운동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입신출세를 위해서 한 것인가? 어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많이 배우고,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 이승만 같은 사람은 또 없을까? 개는 믿어도 사람은 못 믿을 짐승이라고 하던데 그게 정말 아닌가? 사람을 어디까지 믿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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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승만으로 추종하던 소설 속 등장인물이 있었지. 남용석의 아내였던 말녀. 말녀는 이름도 선미로 바꾸었단다.. 선미의 불성실한 태도와 남편을 무시하는 행동은 방영근의 따끔한 훈시에도 먹혀 들지 않았어. 결국 남용석과 선미는 이혼을 했어.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선미는 남용석으로부터 계속 위자료를 받아내고, 혹시 한 달 위자료를 보내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여 남용석은 경찰서에도 여러 번 갔었단다. 그들이 이런 결말에 방영근도 남용석에게 무척 미안해했단다. 이 결혼이 성사되는데 방영근이 큰 역할을 했으니 말이야. 남용석은 계속된 선미의 괴롭힘에 결국 선미를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비극이 되었단다.


3.

다시 독립운동이 활발한 만주 이야기를 해줄게. 송수익과 지삼출은 대종교 모임에 참가했어. 대종교 모임은 겉으로는 종교 활동인 것처럼 보였지만,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었어. 당시 만주에도 젊은 층 중심으로 공산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 이전에도 공화주의 노선과 복벽주의 노선으로 대립이 있기도 했단다. 거기에 공산주의까지 또 생긴 격이니 독립운동 노선 갈등은 더 심해졌단다. 송수익은 왕을 다시 세우자고 하는 복벽주의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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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50)

복벽주의와 공화주의가 끝내 합일체가 이룰 수 없었던 것은 너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걸 독립운동 전선의 분열이라거나 독립운동 세력의 파쟁이라고 하는 것은 몰상식한 공론(空論)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뿐인 목숨들을 내걸고 나라를 되찾자는 것은 나라를 탈취한 자들만 원수로 삼는 것이 아니었다. 나라를 빼앗긴 자들의 잘못까지도 단죄하자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목숨 바쳐 되찾은 새 나라의 국체는 마땅히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공화주의가 아니고서는 안되었다. 그런데 복벽주의자들은 또 나라 빼앗긴 죄인들의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망동이었다. 상해임시정부가 탄생한 절대적 의미는 국체를 공화주의로 세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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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성으로 도망친 수국이는 서간도에서 다시 생활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양치성의 수하가 와서 수국이와 함께 있던 솜리댁(천수동의 아내)를 납치해 갔단다. 양치성의 목표는 오직 수국이었기 때문에 솜리댁은 중간에 그들에 의해 죽고 말았어. 수국은 기회를 보고 있다가 자신을 데리고 가던 놈을 죽이고 다시 탈출해서 돌아왔단다. 양치성이란 놈은 천벌을 받아야 할 텐데.. 그때 양치성은 군산에 와서 송수익 가족을 들쑤셨단다. 만주에서 송수익이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한 양치성은 송수익 가족들을 하나둘 경찰서에 잡아서 고문을 했단다. 송수익의 장남 송중원은 모진 고문에도 끝내 송수익에 대해 불지 않아 1 6개월형을 받아 감옥에 투옥되었단다. 송수익의 아내 안씨는 모진 고문으로 중풍에 걸리게 되었고, 정신도 온전치 못한 상태가 되었어. 송수익의 차남인 송가원과 중원의 아내인 하엽이 안씨를 보살펴드렸지만, 안씨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단다. 송수익의 친구이자 사돈인 신세호도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나와 몇 달 동안 꼼짝달싹하지 못하다가 몇 달 만에 겨우 거동을 할 수 있었단다.

삼형제의 이야기도 해주어야겠구나. 정재규는 여전히 도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땅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정상규는 소작인들을 쥐어짜면서 논을 점점 불려가고 있었고, 특히 형 정재규가 내놓은 땅을 몰래 사고 있었단다. 정도규는 앞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소작인들과 노동자들 배후에서 소작쟁의와 파업을 일으키고 있었단다.

한편 악덕 친일파 이동만은 55세 생일 잔치를 크게 벌였단다. 아들 이경욱은 아버지의 이런 행동을 크게 불만을 갖고 있었지. 이동만은 일본의 주요 인사들도 초대하고 노래패들도 불러서 공연을 했는데, 이때 옥녀가 와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자리에 있던 경욱은 옥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단다. 하지만 옥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은 경욱뿐만 아니라, 이동만도 반하고 일본인 사찰과장 고마다도 반했단다. 고마다는 어떻게든 옥녀를 자신이 차지하겠다고 마음먹었어. 돈을 계속 올려 불렀는데 옥녀는 한결같이 거절을 했는데, 결국 득보를 감옥에 처넣고 옥녀를 협박했단다. 결국 득보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옥녀는 자신의 정절을 고마다에게 빼앗기고 말았단다.

이경욱은 대학 졸업 후 판검사 되기 위한 고시 준비를 했어. 그런데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에 껄끄럽게 생각했는데 스승 고서완의 조언, 그러니까 판검사가 되어 조선 백성들을 위해 힘을 써 달라는 말에 이경욱은 고시 준비를 하게 돼. 하지만 이경욱의 머릿속에는 온통 옥녀가 가득 찼단다. 사라진 옥녀를 찾기 위해 수소문을 했지만 독공하러 지리산에 들어갔다는 소식뿐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몰랐어.


4.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나타났으니, 바로 중국 내부 사정이란다. 중국은 공산주의 바람이 크게 불어 광동에서 중국공산당 혁명이 일어났고, 이는 중국 공산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공산주의자들도 많이 참가했어.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참가를 했는데,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이광민과 윤철훈도 참가를 했단다. 그런데 중국 국민당의 장개석은 이 중국공산당 혁명을 쿠데타로 선언하고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게 되었어. 이렇게 되자 이에 참가했던 조선공산당 멤버들도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어. 윤철훈은 다시 연해주로 가기로 했고, 이광민은 상해에서 남기로 했단다. 그리고 방대근을 소개로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기로 했어.

송중원은 친구인 허탁도 중국공산당 혁명 운동에 참가했었는데 국내로 돌아가기 전 만주에 들러 송중원의 아버지 송수익을 만나게 되었단다. 송수익에 어쩔 수 없이 식구들의 안 좋은 소식을 전했는데, 아무 표정 변화 없던 송수익은 밤에 혼자 만주 벌판에서 몰래 흐느껴 울었단다. 독립운동가 이전에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거지.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은 점점 어려워졌단다. 특히 만주의 군벌인 장작림이 조선총독부와 손을 잡고 조선사람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야. 점점 독립의 길이 험난해주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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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293)

만주를 지배하는 봉건군벌 장작림은 조선총독부와 2년 전에 삼시협정을 체결하고 만주의 조선사람들을 공개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4월에는 혼란한 정국을 틈타 중앙권력을 장악하려고 대병력을 이끌고 북경을 치고 들어갔다. 뒤이어 국공합작으로 북벌전쟁이 시작되자 장작림은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는 자기의 세력권 안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없애라는 소탕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따라 만주에서는 폭력과 체포의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조선사람들은 그 거친 바람에 심하게 휘말렸다. 조선사람들 중에 공산주의들이 많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중국경찰들은 조선사람들을 걸핏하면 잡아가고 닥치는 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조선독립을 놓고 한동안 우호적이었던 관계가 깨져나가고 있었다. 특히 부패한 중국관헌들은 공산당 일소를 빌미로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며 박해를 가했다. 그리고 돈을 받아먹고는 풀어주었다. 타락한 관헌들에게 공산주의자 소탕령은 더없이 좋은 치부의 기회였다. 그런데 중국관헌들의 그런 횡포에 대해 독립운동 단체들이나 독립군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들과 맞서 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땅에 머무는 처지에서 총질을 했다간 그나마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신속하게 뒷손을 써서 잡혀간 사람들을 빼내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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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대충 <아리랑> 8권의 이야기란다. 아빠가 피곤해서 짧게 하려고 했으나, 하다 보니 오타 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에 힘이 생기는구나.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는 늘 이렇게 가슴 아프고, 화가 나는 일들만 있구나.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라를 위해 애쓰시던 분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다고 생각한단다. 유명한 독립운동가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와 독립의 밑거름이 된 분들께 늘 고마움을 잊지 말자꾸나..

,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상해는 분명 중국땅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에 맞서기라도 하듯 조선총독부에서는 사상운동의 단속을 더욱 강화하는 내용으로 치안유지법을 개정했다.


"예, 이제 하는 말이지만,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의 취조와 재판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그때 많은 것을 생각했었습니다. 33인 중에서 고문을 끝까지 꿋꿋하게 이겨내고, 재판정에서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내세운 사람은 한용운 선생 한 분뿐이었다는 게 참 충격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꺾였다는 것에 놀랐고, 만약 내가 그 처지였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나도 두려움에 떨며 꺾였을 것인가, 아니면 한용운 선생처럼 꿋꿋했을 것인가, 많이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한용운 선생이 될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느 순간에는 꺾이고 말 것 같기도 했고, 영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보다는 꽤 강해진 것 같습니다만, 변절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를 살펴보곤 하게 됩니다." - P57

"보시오 지 동지, 어디 독립운동을 독립군만 하는 것이오? 이 만주땅에 조선농부들이 없고서야 독립군들이 어찌 있을 수 있소. 농부들이 피땀 흘려 뒷바라지하니까 독립군들이 앞으로 나서서 싸울 수 있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내가 늘상 하는 말이지만, 농부들도 독립운동을 하는 거란 말이오. 다람 앞으로 나선 것하고 뒤에 있는 것하고 차이가 있을 뿐이오. 또 독립운동이 어디 한두 가지요? 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소학교 선생을 하겠소? 우리 대종교 활동은 또 뭐요? 친일모리배들을 빼놓고는 만주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모두가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니 만복이도 제 능력에 맞춰 일을 고르면 될 것 아니겠소. 공부에 더 열중하게 해서 소학교 선생을 시켜도 좋고, 대종교 일을 보게 해도 좋지 않겠오?" - P144

"우리는 조선사람이다. 그런데 왜 중국의 싸움에 나섰겠는가. 그건 전체 아시아사람들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다. 전 아시아사람들이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차별없이 잘살려면 중국에서는 군벌들을 타도해야 하고, 조선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무찔러야 한다. 지금 2천만 조선사람들은 우리가 중국군벌을 타도하고 조선으로 오기를 기다리며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자아, 당신들은 어째야 하겠는가. 군벌들은 당신들의 재산과 곡식을 빼앗아갔고, 탄압하고 괴롭혔다. 이제 우리는 당신들의 원수인 군벌들을 없애려고 총을 들고 나섰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말고 우리를 도와야 한다. 우리는 영원히 당신들의 편이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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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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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최은영 님의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었단다. 최은영 님의 책은 그 전에 <쇼코의 미소> <밝은 밤>을 읽었는데, 둘 다 좋았지만 아빠는 특히 장편인 <밝은 밤>이 아주 좋았단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아빠는 단편보다는 장편 체질은 것 같아. 이번에 읽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지은이가 최은영 님이라고 고른 책인데, 책 앞 표지에 최은영 소설집이 아니고 최은영 소설이라고 써 있어서 아빠는 장편 소설인줄 알았단다. 하지만 이 책은 중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더구나. 이 경우 보통 소설집이라는 적는데, 그냥 소설로만 적혀 있네. 비록 장편은 아니었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단다. 표제작인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2020년 젊은작가상을 받은 작품이었다고 해서, 아빠 독서이력을 찾아보니 2020년에 읽었던 작품이더구나. 당시 써 놓은 독서편지를 보니 내용도 생생히 기억나더구나. 그런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던 거구나. 저질 기억력이구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다시 읽어봤는데, 2009년 용산 사건과 그 시대를 살았던 두 젊은이의 우정을 잘 접목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 같구나. 이 소설의 이야기는 2020년에 이야기했으니 패스할게.


1.

<>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도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짧은 소설이라서 그런지 이번 소설집에도 포함을 시켰구나. 해진과 정윤은 같은 학교 대학신문사 선후배 사이였단다. 정윤이 선배이고, 해진이 후배였어. 해진이 졸업한 지도 오래되었는데 오랜만에 모교에 갔다가 오랜만에 정윤을 우연히 만났어. 정윤과 대학신문사 편집부 선배 용욱의 결혼식 때 보고 처음이었어. 그러면서 해진은 옛 생각이 떠올랐단다. 대학교 일학년이었던 해진은 무턱대고 대학신문사에 지원해서 최종 합격 두 명에 포함되었어. 나머지 한 명은 글쓰기를 무척 잘하는 희영이었어.

희영이는 여성 문제를 주로 기사로 썼단다. 그것 때문에 남자 선배들이 싫어하기도 했어. 해진과 희영은 함께 주제 조사도 했는데, 희영이 고른 여성 문제로 가정 폭력에 대해 조사를 했단다.  그러면서 직접 여성 인권 집회에도 참가했어. 희영이 계속된 여성 문제를 기사를 쓰다 보니, 정윤 선배도 희영 의견에 반대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단다. 3학년이 되어서 희영은 대학신문사를 그만 두었고, 졸업 후 여성인권 사회운동가가 되어 활동을 했단다.

희영은 자신의 주관이 뚜렷했단다. 생각해 보면 대학교 일학년이면 이제 고등학교 갓 졸업했을 때인데 그때부터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바를 알았던 것 같아. 반면, 해진은 대학 신입생 때 글쓰기도 서툴러서 대학신문사 편집부 일을 힘들어 있는데, 해가 거듭되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졸업하고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정식 기자까지 되었단다. 안타깝게도 사회운동가를 하던 희영은 병에 걸려 39살 짧은 삶을 마감한단다.

이 소설의 제목을 왜 <>으로 했을까? 사람마다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는 것을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이 소설은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어서 그런지 읽을 때 아빠의 그 시절 친구들이 생각나더구나.


2.

<일년>

세 번째 작품은 <일년>이라는 작품이란다. 병원에 입원 중이던 지수는 8년만에 다희를 우연히 만났단다. 8년 전, 27살인 지수는 한 회사의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고, 다희는 인턴으로 그 회사에 들어왔단다. 사는 곳에 같은 근방이고 해서 같이 카풀을 하게 되었는데 지방출장도 같이 가곤 했어. 둘이 친해지긴 했는데, 성격은 전혀 다른 성격이었어. 지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다희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활발해 보였어.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이 있다 보니 지수도 어느 날은 자신의 속마음도 이야기를 했어. 그렇게 성격이 물과 기름처럼 다르지만 서로 섞여서 또 다른 좋은 물질을 만들 수 있었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다희는 인턴 이후 정규직에서 떨어졌단다.

보통 그렇게 친하게 되었다면 회사에 떨어져도 가끔 연락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도아빠도 퇴사한 사람들과 거의 연락을 안 하는 것을 보니, 연락이 끊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8년 만에 병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안부를 전하고, 그 이후로도 병원에서 몇 번 만났지만 지수가 퇴원하면서 또 연락은 끊기게 되었단다. 지수 성격에 굳이 연락처를 물어볼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아빠와 참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를 소설 속에 만난 것 같더구나…^^


3.

<답신>

이 소설도 참 좋고도 안타깝더구나. ‘가 언니의 딸 조카에서 보내는 편지 형식이란다. 그런데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더구나. ‘ 4살 때,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때문에 엄마는 도망을 하고, 3살 많은 언니와 는 고모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되었단다. 언니는 고등학생 때 못된 학교 교련 선생님을 만나 추행을 당하면서도 계속 그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졸업 후까지 그 선생님을 만나 21살에 그만 임신을 하게 되었어. 교련 선생님은 마지못해 결혼한다는 식으로 티를 내면서 언니와 결혼했어.

형부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단다. 언니를 종처럼 부려먹었어. ‘가 언니 집에 몇 번 놀러 가서도 그런 모습을 보게 되어 는 언니에게 뭐라 했더니 언니는 형부를 감싸는데 급급했어. 형부 때문에 언니 집에 가지 않았는데, 사랑스러운 조카가 태어나고는 안 갈 수가 없었단다. 너무 사랑스러운 조카를 보기 위해서

는 호텔 식당에 취직을 했는데, 그 호텔에서 우연히 형부를 보았어. 어떤 여고생과 함께 있는 형부를 말이야. 화가 난 는 형부에게 가서 따지듯 이야기하고 여고생과 따로 둘이 만나 공감해주면서도 충고도 해주었단다. 얼마 후 형부의 학교에서는 형부와 그 학생에 대한 조사를 했대. 형부는 당연히 가 신고했다고 생각을 했어. 화가 난 형부는 를 찾아와 폭력을 휘둘렀어. 언니에게 이야기했지만 언니도 를 믿지 않았어. 언니는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는 것 같았어. 어느날 언니가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형부는 언니가 대준 대학교 학비를 왜 주었냐고 언니를 폭행했단다.

보고만 있을 수 없던 는 형부를 폭행했는데 형부가 크게 다치게 되었어. 재판에서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고 하는 언니가 형부 편을 드는 바람에, ‘는 실형을 받고 감옥까지 가게 되었어. 몇 년 뒤 출소를 했지만 언니의 연락은 없었어. 8년 뒤에 고모할머니의 장례식 때 언니를 잠깐 보고 또 연락이 끊겼어. 이젠 언니가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고, 조카가 얼마나 컸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도 몰랐단다. 어느덧 23살이 된 조카. 조카의 23살 생일 날, ‘가 조카에서 편지를 썼단다. 그 편지 전문이 이 소설이란다. 보낼 수 없는 편지, 받을 수 없는 편지.. 어린 시절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조카를 생각하면서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는데, 언젠가는 다시 꼭 만났으면 좋겠구나.


4.

<파종>

민주가 8살 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15살 많은 오빠 민혁이 민주를 키웠단다. 오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자란 민주는 결혼까지 했지만 딸 소리가 5다섯살 때 이혼을 하고 말았어. 실패한 결혼이라고 할 수 있지. 이혼을 한 민주는 딸 소리를 데리고 여전히 혼자 살고 있는 오빠의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게 되었단다. 소리는 삼촌을 잘 따르고 텃밭도 함께 가꾸며 나름 행복하게 지냈단다. 그런데 민혁은 소리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만 병으로 죽고 말았어. 민혁이 죽고 시점이 소리가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시점이라서 더 충격이 컸을 것 같구나.

중학생 이후 소리와 민주는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어. 고등학생이 된 소리를 자주 자퇴하고 싶다는 말을 했단다. 민주와 딸 소리의 갈등의 원인은 민혁의 부재로부터 시작되었던 거야. 둘은 처음으로 둘이 텃밭에 가서 밭을 일구고 파종을 하면서 다시 예전처럼 친해졌단다. 민혁이 죽은 이후 한 번도 가지 않았었거든. 파종이 또 하나의 생명을 싹 틔우는 시작이듯이 민주와 소리의 관계가 새롭게 싹을 틔어 값진 열매를 맺기를하늘에 있는 민혁 삼촌이 크게 미소 지을 수 있게


5.

<이모에게>

희진은 엄마가 23살 때 태어났단다. 희진의 엄마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가 있었어. 22살 차이였어. 희진이 태어났을 때 이모는 혼자 살고 계셨는데, 희진의 엄마와 아빠가 맞벌이라서 이모는 희진의 집에 들어와 살면서 희진을 보살펴주었단다. 그러니까 희진은 엄마 아빠보다 이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 밖에 이모와 함께 나가면 할머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그런데 엄마가 희진을 낳은 후 유산을 여섯 번이나 했단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임신을 하면 위험하니 임신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희진의 아빠는 계속 둘째를 원했어.

희진의 아빠는 권위주의로 만들어진 사람 같았어. 서울대까지 나와서 지 잘난 줄만 알았지, 집안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 사업을 하다고 계속 망해서 집안 사정도 안 좋아졌어. 그러자 처형, 그러니까 희진의 이모와도 갈등이 쌓였어. 결국 희진이 고등학생 때 이모는 집을 나가 독립하셨단다. 희진이 그렇게 반대를 했지만 아빠와 이모의 골은 너무 깊었어. 이때 이모는 마음을 굳혔는지 희진이 그렇게 만류했는데도 냉정하게 집을 나갔단다.

희진의 아빠도 사업이 망해서 열세 평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단다. 희진은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소위로 임관하고 나서 25살에 7년만에 이모를 만났단다. 이모가 냉정하게 집을 떠나서 한동안 희진도 이모에게 삐쳐 있었거든. 다시 이모를 만나고 나서 그 이후에는 일년에 한두 번씩 이모를 만났어. 그리고 79살이 된 이모는 뇌졸중에 걸리셨고, 엄마가 이모 집에 들어가서 보살펴주셨지만 결국 이모는 그렇게 돌아가셨단다. 희진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채워주셨던 이모. 이모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이 소설 또한 가슴 먹먹해짐이 느껴졌단다.


6.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마지막 소설은 기남이 딸 우경의 가족을 만나러 홍콩으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단다. 기남의 가족 구성원을 먼저 이야기를 해주어야겠구나. 우경은 기남의 둘째 딸이고, 첫째 딸은 진경이었단다. 진경은 박사까지 땄지만 알코올 중독이 있었어. 동생 우경과 그리 친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알고 보니 진경은 기남의 친딸이 아니었단다. 기남은 진경의 계모였단다. 기남은 어렸을 때 버림을 받고 이집 저집에서 식모로 일하면서 자랐는데, 남편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애가 있는 유부남이었어. 기남이 남편과 살기 시작했을 때 진경은 다섯 살이었단다. 그리고 우경이 태어났는데 진경보다 여덟 살이 어리단다.

진경은 커서 미국 교포인 제임스와 결혼하여 미국에 살다가 이번에 회사 때문에 홍콩으로 이사를 와서 기남이 우경 식구를 만나러 가게 된 거야. 그런데 기남은 진경보다 오히려 친딸인 우경의 눈치를 더 보는 것 같았어. 홍콩에서 지내는 것도 불편했고, 자신의 실수로 인해 우경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싫었어. 그런 모습이 손자 마이클에게도 보였는지, 마이클이 기남에게 와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를 했단다. 소설 속에서는 기남의 노년 생활만 짧게 그려졌지만, 기남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훤히 보이는 듯 하구나. 진경이 비록 친딸이 아니지만, 사랑을 다 주면서 키웠을 것 같구나. 진경이 기남에게 자신의 엄마여서 좋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둘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알기에 코끝을 찡하게 하더구나.

….

이렇게 이 책에 나온 소설들을 급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모든 소설들이 따뜻함으로 덮여 있고 그 안에 사랑과 정()이 있는 것 같았단다. 바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 스마트폰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보드라운 이불 같은 소설들아주 좋았단다. 최은영 님의 다음 작품들도 기대해봐야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그녀의 수업은 금요일 오후 세시 삼십분에 시작했다.

책의 끝 문장: 그 작고 연약한 순간이 아직은 자신을 떠나지 않았음을 바라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이름으로 나온 글이나 번역서를 찾을 수 없었다. 구 년 전의 내 눈에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강해 보였던 그녀가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글이나 공부와 무관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얼어붙게 한다.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이 질문에 나는 온전한 긍정도, 온전한 부정도 할 수 없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 P43

다희의 눈썹. 다희가 얘기할 때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눈썹을 보면서, 사람에게 눈썹이라는 게 있었구나. 눈썹이라는 게 꼭 마음과 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그리고 사실 그녀는 귤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게 껍질을 까서 하나하나 손바닥에 올려주던 마음이 고마워서 그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고, 결국엔 귤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도. 다희가 더 깊은 이야기를 할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는 말도.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애초에 그녀는 깊은 이야기를 할수록 서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지만 다희가 그녀로 하여금 말하게 했고, 그 사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말라고 싶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녀는 그중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 P120

부끄러움. 마이클의 말이 맞았다. 기남은 부끄러웠다. 우경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이, 그애가 오래전 자신을 멀리 떠난 일이, 진경의 알코올중독이, 두 아이가 결국 화해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른 사실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맞서지 못하고 살았던 시간이,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것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부모에게 단 한순간도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가, 하지만 그 사랑을 끝내 희망했던 마음이…… 기남은 이 모든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기남은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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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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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벵하민 라바투트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를 멈출 때>라는 책을 읽었어. 그 책은 수학자와 과학자에 에피소드를 소설로 쓴 책인데, 양자역학 등 흥미로운 소재로 쓴 소설이지만, 읽는 것은 쉽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구나. 하지만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은 아빠에게는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했어. 그 책을 쓴 벵하민 라바투트의 신작 <매니악>이라는 소설이 새로 나와서 읽어봤단다. 소설 제목 매니악(Maniac)은 광적으로 열중한다는 영어 단어인데, 이 책을 읽다 보면 폰 노이만이 개발한 컴퓨터의 이름이기도 한데, 그건 조금 이따 이야기해줄게. 그 외 말고 너희가 이 책의 제목을 보더니 노래 “Maniac”을 흥얼거리더구나.

소설 <매니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부마다 한 사람과 과학, 특히 컴퓨터 역사의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단다. 1부에서는 불확정성과 양자역학을 연구했던 에렌페스트라는 사람이고, 2부는 오늘날 컴퓨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만든 폰 노이만이고, 3부는 알파고와 바둑 대결을 했던, 너희들도 알고 있는 우리나라 바둑기수 이세돌이란다. 이세돌이 이런 외국 소설의 등장인물로 나오니 반갑고 신기하기도 하구나.

, 그럼 그들의 이야기를 해볼게.

 

1.

먼저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파울 에렌페스트는 1927년 그 유명한 솔베이 5차 회의에 참석을 했었고, 세계 최고의 정모 사진이라고 하는 그 사진 속에도 있던 사람이고, 아인슈타인의 친구이기도 해. 그는 양자역학의 한 축인 통계역학을 연구하였단다. 그런데 이 책에서 파울 에렌페스트를 다룬 것은 불행한 그의 가정사였단다. 그는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는데, 결국 다운증후군 장애를 겪고 있는 막내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함으로써 삶을 마감했단다. 파울 에렌페스트의 스승이 루트비히 볼츠만인데, 볼츠만도 자살로 삶을 마감한 이력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2부에서는 천재 과학자 폰 노이만에 관한 이야기란다. 가장 많은 장수를 차지하고 있고, 이 소설의 제목 <매니악>도 폰 노이만이 만든 컴퓨터 이름에서 따왔으니 실질적인 주인공이 아닌가 싶구나. 폰 노이만은 헝가리 출신으로 원래 이름은 노이만 야노시 러요시라고 한단다. 2부의 진행 방식은 좀 폰 노이만의 주변 인물이 폰 노이만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단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여 구성하는 경우가 있는데, 2부의 구성이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단다. 폰 노이만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로 유명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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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6)

우리와 다른 외계인, 진정한 천재가 존재한다니. 전교생이 그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두 살에 글을 깨쳤다고 했다.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했고, 여섯 살에 암산으로 여덟 자리 숫자 두 개를 나눗셈할 줄 알았으며, 한번은 여름방학 때 펜싱 교사 머리에 불을 붙인 벌로 아버지 서재에 감금되었다가 심심풀이로 미적분을 혼자 깨쳤고 급기야는 마흔다섯 권이나 되는 빌헬름 옹켄의 일반 역사서를 달달 외웠다. 모든 소문을 진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마침내 그 아이가 운동장에서 내 쪽으로 뒤뚱뒤뚱 걸어오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는 적잖이 실망했다. 아직 통통하게 살이 찌기 전이었음에도 움직일 때 어쩐지 투실투실하고 굼뜬 느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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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재는 27살에 프린스턴 대학교의 정교수가 되었어. 자타공인이던 폰 노이만은 자신보다 더 천재가 나타났다고 하는 순간이 있는데, 1930년 학회에서 만난 쿠르트 괴델이라는 사람이란다. 이 사람도 유태인으로 미국으로 망명 온 과학자인데, 아빠가 다른 책들에서 여러 번 이야기를 해주었던 사람이란다.

작년에는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라는 책의 독서편지에서도 이야기했던 사람이야. 폰 노이만은 학회에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단다. 이후 폰 노이만은 몇 달 동인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연구해서 따름 정리를 발표하기도 했다는구나. 그리고 폰 노이만은 핵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참가를 했어. 작년에 이야기해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책의 독서편지에서도 잠시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단다.

핵폭탄의 시험 폭발이 성공을 거둔 후, 그 위력이 엄청난 것을 본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정부에 폭탄 사용을 만류하게 된단다. 하지만 폰 노이만은 적극 지지를 한단다. 폰 노이만이 물리와 수학 분야에 있어 초천재인 것은 맞지만 다른 분야에는 좀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윤리적인 면을 판단하는 것도 좀 부족했던 것 같아. 다른 과학자들이 핵폭탄을 만류하는 동안 폰 노이만은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가 좋은지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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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54)

실험 직후 우리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서신이 돌기 시작했다. 일본을 상대로 폭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대통령을 설득하는 탄원서였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자 중 백오심 명 이상이 탄원서에 서명했다. 유럽의 전쟁은 끝난 후였다. 히틀러도 이미 총을 쏴 자결했으니, 우리가 실제 그랬던 것처럼 일본 민간인 이십만 명을 죽일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일본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기만 했다면, 일본 장군이 단 한 명이라도 폭탄 실험 장면을 목격했다면 그걸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랬으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탄원서는 트루먼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탄원서가 결과를 바꿨으리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만든 폭탄은 이미 군의 손에 넘어가 있었으니 어쨌거나 그들은 그 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최상의 표적을 고르기 위해 위원회도 벌써 꾸린 터였다. 그런데 폭탄을 지면이 아니라 높은 공중에서 터뜨려야 한다고 군을 설득한 다름 아닌 폰 노이만이었다. 그래야 폭풍파의 피해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이 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그는 최적의 높이가 600미터, 대략 2천 피트쯤이라는 계산도 직접 도출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 높이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예스러운 목재 가옥 지붕 위로, 우리가 만든 폭탄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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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노이만은 끝까지 세상을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시작으로 바라보았다고 하는구나.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스스로 계산하는 기계장치를 개발하는데 힘쓰는데, 그것이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이라는 결실로 나타났단다. 이후 줄리언 비글로와 함께 더 좋은 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서, CPU에 의한 제어 장치, 기억 장치, 논리연산 장치로 구성된 컴퓨터를 개발한단다. 프린스턴 연구소에 있을 때 만나 결혼한 두 번째 아내 클라리 단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개발에 참여하여 순서도를 제작하기도 했어. 그리고 그들은 수학분석기와 숫자 적분기 및 계산기가 가증한 업그레이드된 컴퓨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MANIAC이었단다. MANIAC Mathematical Analyzer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의 약자였단다. 이 컴퓨터를 이용하여 최초로 체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행하기도 했어. 그 뿐만 아니라 군에서는 매니악을 이용하여 수소 폭탄 제조에도 이용이 되었어. 컴퓨터가 군에 의해 많이 생산되었단다. 초창기 컴퓨터는 대부분 군사용으로 쓰였던 거야.

폰 노이만은 53세에 안타깝게도 췌장암 진단을 받았어. 암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그는 계속 연구에 매진했단다. 그러면서 기계가 생물체들처럼 스스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것이 그의 사후 계속 연구되어 오늘날 알파고와 같은 AI 컴퓨터들로 이어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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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어떻게 기계가 스스로 생명을 얻어 살아갈 수 있는가? 튜링이 그의 기계를 구상한 것처럼 나도 이 문제를 철저하게 공식화할 수 있을 것 같네.” 연치는 죽기 몇 달 전 내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알레프제로(Aleph-zero)라고 명명한 일종의 자동기계가 존재하며, 이는 다음과 같은 속성을 지니는데, 만일 당신이 알레프제로에게 무엇에 관한 서술을 제시하면 그 정보를 흡수해 두 개의 사본을 생성한다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증명할 계획을 이미 세웠다고 했다. 튜링이 컴퓨터의 탄생으로 이어진 사고실험을 고안했을 때, 또 괴델이 불완전성정리를 증명했을 때 사용한 것과 같은 논리 방법, 자기 참조적이며 재귀적인 추론을 사용해, 단순히 1 0의 문자열이 아닌,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대상을 생성하는 이론적 기계를 설계해낸 것이다. 그는 일종의 임계점, 티핑 포인트가 존재하며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비로소 기계의 진화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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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지막 3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단다. 이세돌과 AI 컴퓨터인 알파고가 바둑을 둔 것이 얼마 전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2016년으로 벌써 8년의 시간이 지났구나. 정말 세월이 빠르긴 하구나. 아무리 AI라고 하지만 바둑은 체스와 달리 경우의 경우가 너무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세돌의 승리를 점쳤단다. 하지만 첫 번째 경기를 마치고, 두 번째 경기를 마치고 어쩌면 알파고를 한 번도 이길 수 없겠다는 예측들이 나왔던 기억이 나는구나. 결국은 이세돌이 4대국에서 한 판을 이겨 전체 스코어 4 1로 알파고가 최종 승리했는데, 그 한 번의 승리가 AI 컴퓨터를 인간이 이긴 유일한 경기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알파고는 그 이후 계속 더 진화하여 인간이 접바둑을 두고도 이기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에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어 반가웠단다. 이세돌의 목소리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은 좀 독특하다고 생각할 텐데, 아빠는 그것이 천성적으로 타고나고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어렸을 병을 앓고 목소리가 그렇게 변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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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이세돌, 쎈돌, 바둑 9, 동시대 누구보다 창의적인 바둑 기사. 첨단 인공지능 시스템과 대전을 치러 패배를 안긴 유일한 인간, 그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목소리를 잃었다.

한반도 서쪽 끝자락의 작은 섬 비금도에서 서울로 상경한 지 오 년째, 프로 바둑 기사가 된 지는 육 개월째이던 1996, 폐에 알 수 없는 병증이 생겼다. 기관지가 상해 성대가 마비되었으니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으나 희한하게도 일부 단어를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일시적이었던 실어증의 근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질병(심오한 내적 혼란의 징후가 아니라 정말 질병이었다면)의 여파로 결국 기관지 신경이 영구적으로 마비됐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도 장난감 인형에서 나올 법한 독특하고 새되고 밭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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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은 목소리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바둑 기풍에 있어서도 독특하다고 하는구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5남매가 모두 어렸을 때부터 바둑을 배웠는데 이세돌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구나. 최연소로 프로 9단을 땄으며, 가끔 허세부리기도 하고 돌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K pop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젊은이이고 K 드라마도 즐겨 본다고 하더구나. 바둑을 둘 때도 예상치 못한 수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이 주특기였대. 하지만 이세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둑이었고, 그가 바둑을 은퇴하기 전까지는 매 순간 바둑만 생각하면서 지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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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30)

그에게 바둑이란 호흡과 같아서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바둑을 생각한다. 머릿속에 바둑판이 하나 있어서 새 전술이 떠오르면 그 바둑판에 돌을 둔다. 술을 마시고 드라마를 보고 당구를 칠 때도 늘 그런다.” 지금껏 눈 뜨고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바둑에 바치느라 놓친 것들이 아쉽지는 않은지, 사실상 정규교육이란 걸 받지 않았고 초등학교조차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은퇴를 앞두었는데 곧 닥쳐올 일에 맞설 준비는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바둑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대답했다. 바둑의 무한한 복잡성은 인간 정신의 내적 작동 방식을 거울처럼 비추며, 바둑의 전술과 수수께끼와 풀 수 없어 보이는 난해함이 바둑을 우리 우주의 아름다움, 혼란, 질서를 유일하게 비견할 인간의 창조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바둑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돌의 위치와 관계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세에 숨겨진, 거의 감지할 수조차 없는 패턴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게 신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이세돌에게는 승패보다는 바둑의 가장 심오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따라서 모든 수를 전부 이해하기 전까지는 절대 게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김지석은 말했다. “한번은 이세돌과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마셨는데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더니만 자기가 막 이기고 온 대국을 만취한 채로 복기하겠다며 흑돌과 백돌의 수 하나하나 다시 두기 시작했다. 이기기는 했으나 딱 한 수가-심지어 자신이 두었던 수인데!-완벽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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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대적한 알파고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알파고는 데미스 허사비스라는 사람이 개발을 했단다. 데미스는 어린 시절 체스를 잘 두어 대회에 입상하기도 했대. 대학에서는 프로그램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는데 인지신경과학 박사 학위도 땄다는구나. 학창시절 많은 논문을 읽었는데 그 중에는 폰 노이만의 논문들도 포함되어 있었어. 2011년 그는 딥마인드라는 스타트업 회사를 창업했고, 2014년 구글이 4억달러라는 천문학자 금액으로 인수를 했단다. 회사가 인수된 이후에도 데미스는 딥마인드를 경영했으며, 알파고를 개발하게 된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바둑이라는 것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단다. 그것을 다 고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어. 그 경우가 수가 얼마냐 하면 아빠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숫자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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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바둑판에서 가능한 자리의 수, 즉 두 사람이 대국할 때 발생하는 고유한 돌 배열의 가짓수는 너무 커서 2016년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규명되었다.

208,168,199,381,979,984,699,478,633,344,862,770,286,522,453,884,530,548,425,639,456,820,927,419,612,738,015,378,525,648,451,698,519,643,907,259,916,015,628,128,546,089,888,314,427,129,715,319,317,557,736,620,397,247,064,84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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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알파고가 41로 완승을 했단다. 이것은 이세돌뿐만 아니라 그 경기를 지쳐봤던 관람객, 시청자들그리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이란다. 인간이 수십 년 동안 갈고 닦아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것더 이상 인간이 가장 뛰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세돌도 알파고의 대전을 끝내고 소회를 이야기했고, 이 대전과 상관없이 사전에 계획한 대로 은퇴를 했다고 하는구나. 그는 바둑 은퇴를 하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며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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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102)

일종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제대로 결정타를 날렸죠. 어떻게 해도 이길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어요.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바둑을 뒀습니다. 그때 바둑은 예의와 매너가 전부였어요. 게임보다 예술을 배우는 것에 가까웠죠. 크고 난 후에야 바둑을 두뇌 게임으로 생각하게 됐지만 배울 때는 예술이었어요. 바둑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예술작품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주 달라졌어요. AI가 도래하면서 바둑의 개념 자체가 바뀌어버렸습니다. 굉장한 충격이에요. 알파고는 나를 그냥 이긴 것이 아니라 무너뜨렸습니다. 이후로는 계속 바둑을 뒀지만, 은퇴는 진즉에 결심했어요. AI가 등장한 후로는 내가 최정상에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복귀해서 미친듯이 노력해 최고의 바둑기사가 되더라도, 최고일 수는 없어요. 세계 최고가 되어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까요.”

==================

….

여기까지가 이 책에 대해 아빠가 대충 이해한 것이란다. 이 소설이 심도 깊은 과학 지식을 좀 갖추고 있어야 이해하기 쉬웠을 것 같은데 아빠는 그 정도는 아니라서, 쉽지 않게 읽었단다. 너희들에게 이야기한 부분도 아빠가 이해한 부분과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주어, 어쩌면 책의 핵심이 빠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이 책이 여전히 인기가 있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겠구나.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1993 9 25일 아침,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는 암스테르담에 얀 바테링크 교수가 세운 환아 교육 시설에 걸어들어가 열다섯 살 난 아들 바실리의 머리를 총으로 쏜 뒤 자신에게도 총을 겨눴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의 이름은 알파제로이다.


수학이란 신의 정신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숭배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수학에는 진정한 힘이 깃들어 있으며, 그 힘은 손쉽게 악용될 수 있다. 그 힘은 오직 인간만이 소유한 능력에서 탄생했는데, 은혜로운 우리의 신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과 발톱 대신에, 그만큼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힘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이에 관해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나에게 어떠한 심판이 내려지건 간에, 차마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그가 미래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내가 누구보다 먼저 보았음을. 그가 가진 능력이란 참으로 진귀하고 아름다워서 지켜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 나는 그것을 보았지만, 다른 것도 보았다. 우리 모두를 묶어두는 자제력을 상실한, 사악하고 기계 같은 지성. 그런데 왜 침묵했냐고? 그가 너무 우월했으니까. 나보다도. 우리 모두보다도. - P111

정말 모든 상황마다 합리적인 행동 경로라는 게 있을까? 조니는 이를 의심할 여지 없이 수학적으로 증명해냈으나 그건 오직 양측의 목적이 정반대로 다를 경우에 한정되었다. 그러니 우리의 추론에는 관찰안이 좋은 사람이면 단박에 발견해낼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 이론 전체의 틀을 떠받치는 최대최소정리는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주체를 상정한다. 그런 주체는 오직 이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며, 규칙을 완벽히 이해하고 자신의 이전 움직임을 모조리 기억할 뿐 아니라, 게임이 한 단계 진행될 때마다 자신과 상대방의 행동이 일으킬 수 있는 결과를 오차 없이 파악하고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정확히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자는 조니 폰 노이만뿐이다. - P176

에니악의 특징은 계산이 일어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다는 거였다.
내부로 걸어들어가면 비트값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구도 숫자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실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조니는 예외였다.
계산의 현장 한가운데 잠자코 서서 눈앞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던 그를 기억한다.
기계가 또다른 기계 안에 들어가 생각하는 모습을.
그는 다음날 나를 고용했다. 고등연구소에서 더 다은 기계를 함께 만들자는 거였다.
나는 곧장 연구소로 가는 기차를 탔다.
- P186

기계가 못하는 일이 있다고들 한다. 기계가 못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 내게 말한다면, 나는 언제든 그걸 해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
- 존 폰 노이만
- P213

클라리는 자기 남편이 그렇게나 컴퓨터를 좋아하더니 아예 컴퓨터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연치는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계산했고, 그게 아니면 루프에 빠지거나 서서히 멈춰버리거나 오류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절대 미친 것이 아니었다. 대화할 때는 어느 때보다 명민했고, 사후 출간되어 읽은 그의 말년 연구는 생각할 거리가 풍부했으며, 수학적으로 아름다웠고, 기술적으로는 역시나 그의 연구답게 빈틈이 없었다. 그가 정말로 선을 넘어 이성이 굴레이자 제약이 되는 세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성을 옆으로 치워두어야만 하는 영역으로 들어가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표면적으로 암시한 신호는 단 하나, 암이 그의 혈액뇌장벽을 넘어서기 직전 그의 조지타운 집에서 내가 목격한 참으로 혼란스러운 일화였다. - P270

미래를 감춰놓은 베일을 걷어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과학이 다음에 어디로 진일보할지, 다가올 세기에 일어날 과학 발전의 비밀이 무언지 일별할 수 있다면,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 다비트 힐베르트
- P317

"사실은 알파고가 확률을 계산하는 기계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수를 본 순간에 생각이 달라졌어요. 알파고는 분명 창의적입니다. 그 수가 알파고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바꾸었어요. 바둑에서 창의성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단순히 좋은 수, 위대한 수, 강력한 수를 두는 능력이 아닙니다. 의미 있는 수를 두는 능력이죠." 대국이 끝난 후 인터뷰를 진행한 다큐멘터리 제작진에게 그는 말했다. 이세돌은 평소였으면 포기했을 시점을 훌쩍 넘겨 세 시간을 어 기계와 싸웠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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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 2024-05-02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4-05-04 14:3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아리랑 7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7권을 이야기해줄게. 7권부터 9권까지는 제3부인데, 3부의 제목은 <어둠의 산하>란다. <아리랑>을 읽을 때마다 지은이 조정래 님이 대단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12권짜리 대하 소설을 쓴다는 것이 엄두도 나지 않을 것 같은데, 이야기의 흐름과 각 등장인물의 성격의 일관성을 놓치지 않고 전개되는 것을 보니 소설 속 세계를 만들어낸 신()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소설 속 주인공의 운명은 지은이 조정래 님에게 달려 있으니 말이야. 뿐만 아니라 소설 곳곳에 들어 있는 역사 상식도 이야기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있어서 참 좋았단다. 소설을 읽다 보면 역사 상식이 저절로... 기억력이 좋다면 오래 간직할 텐데, 그것이 조금 아쉽구나. , 그런 아리랑 7권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

세키야의 첩이었던 보름이는 세키야의 아이를 낳았지만 세키야에게 버림을 받고 떡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단다. 그런데 우연히 외눈박이 백남일을 만나게 되었는데, 백남일은 보름이가 수국이의 언니인 것을 알고 홧김에 폭력을 휘둘렀단다. 이 소식을 들은 서무룡이 백남일 고소했단다. 서무룡이 깡패이긴 하지만 그래서 보름이를 대하는 마음은 진정인 것 같았고, 백남일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백남일이 보름이를 구타했으니 가만 있을 수 없었지. 서무룡은 백남일을 고소하였고, 경찰의 뒷줄이 있는 서무룡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서무룡의 뜻에 따라야 했단다. 그래서 백남일은 보름이의 치료비뿐만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정미소에 대한 월세를 서무룡에게 내야 했단다.

 

1.

송수익의 장남 송중원은 3.1운동 후 감옥에 갔다가 2년만에 출옥을 했단다. 장인이자 아버지 송수익의 친구 신세호는 중원에게 일본 유학을 제안했어. 중원은 일본에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사귄 친구 허탁과 함께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해 힘썼단다. 중원이 동경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 유명한 동경 대지진이 발생했던다. 1923 9 1일이었어. 송중원과 허탁은 공부도 했지만 한편으로 과자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어. 과자공장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고 그들은 피해 복구를 도와주기 위해 공장에 갔단다. 그곳에서 신문 호외를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그들을 당혹스럽게 했단다.

신문에 적힌 내용은 지진이 발생하여 혼란한 틈을 타서 불령선인(조선인)들이 동경 시내에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단다. 일본은 자경단을 조직하여 조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단다. 이 때 죽은 사람이 6000여 명이라고 했어. 송중원과 허탁도 일단 몸을 숨겨야 했는데, 다행히 그들을 좋게 본 일본인 과자공장 사장이 그의 집에 숨겨 주어 위험을 면할 수 있었단다.

...

, 이번에는 만주 북간도의 상황을 이야기해줄게. 일본의 밀정인 양치성은 북간도에서 결국 자신의 뜻대로 수국과 살림을 차렸단다. 수국은 어쩔 수 없이 양치성과 함께 살고 있지만, 양치성에게 마음을 두지 못하고, 어디선가 고생하고 있는 동생 대근만 생각했단다. 그래서 양치성에게 동생이 있고 지인들이 살고 있는 서간도로 이사를 가자고 했지만, 양치성은 단칼에 안 된다고 했단다.

그런데 장사꾼인줄만 알았던 양치성이 밀정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어. 수국은 두려워하면서 이번이 어머니와 동료들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몇 달 동안 준비를 했고 만취한 양치성을 찌르고 서간도로 도망을 갔단다. 수국이 당황하여 칼을 한번밖에 안 찌르고, 양치성의 죽음을 확인하지 않고 도망을 간 점으로 보아, 양치성이 죽지 않았을 확률이 높을 것 같구나. 서간도에 도착한 수국은 지삼출과 필녀를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그들도 알고 지내던 양치성이 밀정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어. 수국이 서간도에 도착하기 열흘 전 동생 대근은 의열단에 가입하기 위해 북경으로 떠나서 동생은 만나지 못했단다.

당시 만주는 경신참변 이루 독립운동이 와해된 상태여서 대근은 의열단에 가입하기로 마음 먹은 거란다. 대근이 의열단에 가기 전에 송수익이 조언을 해주었는데, 당시 만주의 독립군들의 상황을 잘 설명하는 것 같아서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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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그래, 자네의 판단이 정곡을 찌르고 있네. 여기 서간도가 북간도보다 다소 덜할지는 모르나 여기 동포들의 동향도 대동소이하네. 경신년 참변 때 이곳 서간도에서도 학살이 자행됐으니까 그런 생지옥을 겪은 동포들이 그리 서간도에서도 학살이 자행됐으니까 그런 생지옥을 겪은 동포들이 그리 생각하게 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세. 그런데 독립군들이 이동을 단행한 것은 무고한 동포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더욱 효과적인 전쟁을 수행하려는 작전계획으로, 이는 어느 나라 어느 군대에서나 취하는 군사행동이지. 그 작전에 왜병들은 당당한 작전으로 맞서지 않고 한다는 짓이 양민들을 대량학살한 것이네. 그건 세계 어느 나라 군대에서도 볼 수 없는 비열함이고 잔혹함일세. 그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네. 그게 무언고 하니, 동포들이 품고 있는 그런 생각이 바로 왜놈들이 대량학살을 자행한 목적이고 노렸던 바란 사실이네. 우리 동포들을 낙담하게 만들고, 공포에 떨게 하고, 또한 독립군을 불신하게 하고, 협조를 못하게 만드는 술수, 그게 바로 왜놈들이 조작해 내는 이간책동술이네. 그러니까 지금 독립군들이 해야 할 일은 무장을 강화하기 위해 동포들에게 무작정 협조를 구하는 것이 아니고 왜놈들의 그런 이간책동을 바르게 알리고 이해시켜 가며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일세. 동포들이 곧 조선이고, 동포들이 없고서는 그 어떤 독립투쟁 단체들도 존속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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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했던 독립군들은 일제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연해주로 이동했어. 하지만 연해주에서는 자유시 참변이라는 사건으로 많은 독립군들이 죽고 말았단다. 자유시 참변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조선공산당의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의 갈등이 있었는데, 이르쿠츠파가 적군의 힘을 이용하여 조선공산당 상해파와 다른 독립군을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 사건이었단다. 같은 민족으로 한 힘으로 일본에 저항해야 시기에 상당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단다. 이 일 이후 남아 있는 독립군들은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어 만주로 돌아왔단다.

송중원의 친구로 함께 3.1운동에 참여했던 이중에 이광민이라는 사람이 있어. 이광민은 3.1운동 이후 만주로 와서 홍범도 부대에 참가해서 독립운동을 함께 했단다. 홍범도 장군이 나이가 드신 이후 독립운동 일선에 물러난 이후 이광민은 연해주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단다. 빨치산들은 일본을 상대로 기습 작전을 벌여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썼어. 이런 계속된 공격으로 일본군은 연해주와 시베리아에 철수를 하게 되었단다.(1922.10) 연해주에서 활약하던 빨치산 독립군들의 큰 성과였어. 이광민은 연해주에 머무르면서 윤철훈을 만나게 되어 함께 공산주의 사상을 공부하면서 향후를 도모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윤철훈의 여동생 윤선숙과 사랑을 하게 되지만, 이광민과 윤철훈은 독립운동을 위해 곧 떠나기로 했단다. 이광민와 윤선숙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고 헤어져야 했어. 사랑을 해야 할 수많은 젊은이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했기에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맥이 오랫동안 끊기지 않고 이어져서 결국 해방까지 이어지는데 큰 힘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단다..

..

 

2.

공허 스님은 국내에서 활동을 하던 중 기차 안에서 순사인 장칠문과 마주치게 되었고, 장칠문은 공허 스님을 알아보고 바로 체포했으나 장칠문이 방심하는 사이 공허 스님은 장칠문을 공격하고 도망을 갔단다. 여기저기 도망 다니다가 홍씨 집에 머무르게 되었단다. 홍씨는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공허 스님이 파계하면서 알게 된 여자란다. 장칠문은 도망간 공허 스님을 찾으러 돌아다녔고, 공허 스님과 친분이 있는 송중원의 집에 찾아왔어. 고향에 돌아와 있던 송중원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다짜고짜 유치장에 집어 넣었단다.

...

농장조합의 회장이자, 오쿠라 농장의 지배인인 요시다는 간척사업을 통해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했단다. 많은 조선인들을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고용하여 노동력을 착취를 하면서 간척 사업을 진행했어. 요시다 지배인과 조선인 노동자 사이에는 악랄한 이동만이라는 자가 있었단다. 요시다의 충실한 수하이지만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악마 같은 놈이었어. 요시다는 소작료까지 인상하려고 했단다. 소작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단 행동으로 반발했단다. 소작인들이 그렇게 집단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배후에 사회주의자들이 방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야. 요시다의 농장 조합은 그런 소작인들을 군대처럼 편성을 하고 서로 감시하게 만들었단다. 소작인들 중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면 연대 책임을 묻겠다고 했어.

한편,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고 간척사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임금까지 체불 당하고, 자신들이 일군 땅을 일본에서 온 일본인에게 공짜로 주고 소작인들에게 주기로 한 땅도 대폭으로 줄어들어 든 것에 불만이 쌓였단다. 이에 정씨 형제의 막내인 정도규와 그의 친구 고서완이 배후에서 조종하여 소작회를 결성하게 했단다. 정도규와 고서완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공부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단다. 고서완의 제자 중에 이경욱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도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며 항일 정신이 투철한 자였단다. 그런데 이경욱은 악랄한 친일파 이동만의 아들이었단다. 이경욱은 자신의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아버지의 죗값까지 자신이 받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소작인들과 노동자들을 도와주려고 했단다.

차득보 생각 나지? 잃어버린 동생 옥녀를 찾아 헤매다가 공허 스님을 만나 함께 했잖아. 공허 스님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다 보니 함께 못 있어. 신세호의 집에 기거하면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단다. 그런데 신세호의 둘째 딸 월엽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신세호가 아무리 신 지식인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딸을 차득보와 연을 맺어줄 수 없어 크게 반대했단다. 월엽은 신세호와 점지해준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단다. 그런데 얼마 후 옥녀가 오빠를 찾아 신세호의 집에 찾아왔단다. 그렇게 십 수 년 만에 득보와 옥녀가 만나게 되었단다.

….

 

3.

우려했던 것처럼 양치성은 오른쪽 가슴을 칼에 찔렸지만 죽지 않고 살아났단다. 수국에 대해 복수를 다짐했어. 수국은 서간도에 와서야 자신이 양치성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애를 떼어보려고 이런 저런 시도를 했지만 결국 실패를 했단다. 결국 아들을 낳았고 낳자마자 버리려 했지만, 필녀가 막으면서 자신이 키우겠다면서 아이를 데려갔단다. 하지만 모정을 그리 쉽게 끊을 수 있겠는가. 100일이 지나고 수국은 아이를 자신이 키우기로 했단다.

여기까지가 아리랑 7권에 대한 이야기란다. 우리나라에도 가끔 조선족이라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일제 시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간 이들의 후예란다. 친일파의 후예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란다. 그리고 조선족이라는 말은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면서 소수 민족들을 부를 때 부르는 말로, 너희들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들은 중국동포나 중국교포라고 이야기하면 될 것 같구나. 미국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미국교포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야.

,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요시다 지배인님 드시느만이라우.”

책의 끝 문장: 바다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긴 한숨을 쉬었다.


천지에 가득한 그 아름거림은 꿈결인 양 황홀하면서도 서러운 하소연양 슬픔이 깃들여 있기도 했다. 그 슬픔이 깃들여 있기도 했다. 그 슬픔은 서러움 깊은 사람들의 탄식 같기도 했고, 한 많은 사연 품은 넋들의 승천 같기도 했다. 그건 기실 굶주려 배고픈 사람들의 한숨이고 한탄이기도 했다. 아지랑이가 그리도 숨막히게 흐드러지면 보릿고개의 배고픔도 병이 되도록 사무쳤다. 이미 죽으로도 끼니를 때울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부황이 들고 어질병을 앓았다. 그 배고픈 병이 든 눈으로는 아지랑이를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아지랑이의 아롱거림은 어질병을 더 도지게 했다. 그 사람들은 속 메스꺼운 어지럼증에 휘둘리며 하늘을 향해 한숨짓고 한탄을 토했다. 배곯고 사는 기구한 팔자를 쓰라려 하고 아파하는 그 한숨과 한탄은 풀릴 길 없는 채 아지랑이에 실려 멀고 먼 하늘로 스러져 갈 뿐이었다. - P56

만주에 퍼져 있는 일본영사관들이 독립군을 잡아 넘겨주는 중국관리들에게 상금을 주기로 한 것은 사실 그대로였다. 독립군 토벌에 실패하고 군대까지 철수시킨 그들은 중국관리들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 계획이 바로 이화제한(以華制韓)이었다. 중국의 힘으로 한국을 제재하자는 것이었다. 그전의 이한제한(以韓制韓)의 수법에다 하나를 더 첨가한 것이었다. 조선인 친일파와 밀정들을 투입하여 독립투쟁 세력을 파괴하고 제거하는 것이 이한제한이었다. - P90

저런 인종들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종자들인가. 저런 것들이 바라는 것은 도대체 뭔가.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저런 종자들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가. 영원히 일본세상이 되어버렸다고 믿는 것인가. 저런 놈들한테 꼼짝없이 끌려가야 하는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왜 튀어나온 것인가. 조선인은 허위와 공상과 공론만 즐기고 게으르며 서로 신의와 충성이 없으니 이를 반대방향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것이 이광수의 주장이었다. 이광수는 왜 저런 못된 인종들을 질타하고 정신차리게 하지 않고 민족 전체를 비하시키고 흉보고 흠집 내고 있는가. 이광수는 3.1운동을 보지도 않았는가. 아니, 지금도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안중에 없는 것일까. 이광수는 왜 그 따위 글을 쓴 것일까. 그건 바로 일본놈들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광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의도나 저의는 무엇일까.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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