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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 탱고를 찾아 떠나는 예술 기행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4월
평점 :
나는 병을 앓고 있다. 불치병이다. 아무 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병. 자가 진단이지만 어느 전문의보다 정확한 진단이다. 내 몸에 관한한 어느 의사가 나보다 더 정확할 수 있을까. 그런데 최근 이 불치병이 치료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땅고를 접하고 난 후 부터다. 땅고 음악에 취한건지 춤에 취한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분명 땅고에 취해 있다. 대체 땅고의 무엇이 나를 이토록 유혹하는 걸까.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반도네온이 펼치는 하모니는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1930-40년대의 음악들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음악에 대해 내가 무얼 말하랴마는, 이 당시의 음악들을 듣다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으면서도 다른 무언가가 있다. 땅고 음악에는 슬픔, 비애 같은 것들이 진하게 배어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고상한 언어를 동원해서 우아하게 말하면 좋겠지만, 편하게 내 식으로 말하면 땅고 음악에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이상한 청승끼가 배어있는 것 같다. 특히 반도네온은 자신의 몸에 가득한 주름들을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다른 음을 내는데, 청승끼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음색으로 사람을 취하게 한다.
그런데 이 청승끼에 내 몸이 반응한다. 간신히 파트너의 동작을 따라갈 만큼 스텝을 밟게 되었지만 몸짓은 아무리 예쁘게 해봐야 마네킹이나 로봇의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자꾸만 몰입하게 된다. 대체 그것이 무어란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몇 권의 책을 뒤적였다.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그중의 하나다.
저자 박종호를 접한 건 오래전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을 통해서였다. 깊이 있고 아름다운 그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글은 내게 큰 믿음을 주었던 것 같다. 그 믿음 때문인지 땅고 대한 그의 책을 선택하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골라야할 만큼 땅고에 대한 책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를 클래식 음악 해설가로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고 나서 그의 본업이 클래식 음악 해설가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정신과 전문의이면서 클래식 음악에도 전문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왜 정신과와도 클래식과도 무관한 듯 보이는 땅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을까?
저자는 클래식 음악이 팬 층을 확충하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는 첫 번째 분야로 땅고를 꼽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서 땅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예술의 전당에 연주를 보러 가면 가끔 탱고 연주를 듣게 되는데 나는 그것이 한국 팬을 위한 이벤트성 연주로 생각했었는데....... 어쨌거나 클래식 음악의 흐름이 이러하니 저자가 땅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2008년 당시 땅고에 대한 책이 단 한권도 없었다는 것이 아마도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는 정보를 수집하면서 일본의 한 소설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다녀와 땅고에 대한 경험을 소설로 써서 일본에 다시 한 번 땅고에 대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 역시 그 소설가가 머물렀던 호텔을 예약하고 일정도 그녀와 똑같이 2주간으로 잡고 그곳에 머물렀다 다녀와 쓴 글이다.
책의 내용은 주로 땅고 음악에 관한 것이다. 땅고의 중심지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더 나아가 남미의 문화 전반에 관해 사진을 곁들여 개괄했다. 카를로스 가르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에비타, 피아졸라, 마라도나, 체게바라 등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부담 없이 펼쳐놓았다.
땅고 춤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는 땅고를 출줄 모르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땅고 카페를 순례하면서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그 분위기를 즐겼던 것 같다. 그가 땅고 춤에 대해 내린 정의는 아래와 같다.
“그들의 춤은 3분, 그들의 사랑은 3분. 3분 동안 그들은 울부짖듯이 모든 열정을 다하여 춤을 춘다. 그러므로 탱고의 춤사위는 그들의 몸부림이며, 탱고의 음악은 그들의 절규다. 섹스가 육체를 위로한다면 탱고는 영혼을 위로한다. 그래서 탱고는 슬프다. 섹스가 육체의 위안이라면, 탱고는 영혼의 섹스다.”
일반적으로 땅고는 한 곡만을 추지 않는다. 보통 분위기가 비슷한 곡이 서너 곡 연주되고 이것을 한 딴따라고 부른다. 파트너가 정해지면 한 딴따를 함께 추게 되는데 한 곡의 연주시간이 3, 4분 정도라면 10 - 15분 정도 함께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의 리드를 받게 되므로 남성이 어떻게 음악을 해석하고 어떤 동작을 하느냐에 따라 춤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서로의 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섹스가 육체를 위로한다고? 잘 모르겠다. 탱고가 영혼을 위로한다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탱고가 슬프다고? 동의할 수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땅고의 무엇이 나를 이토록 유혹하는지 그 해답을 이 책에서 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땅고 음악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변천사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땅고 음악에 흐르는 청승끼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문화의 전반을 맛볼 수 있는 건 커다란 덤이었다. 내 질문의 답은 책을 통해 구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나에게서 찾아야할 숙제일 것이지만, 아마도 청승끼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싶은 내면의 깊은 욕망 같은 건 아닐까 자문해본다.
사족.
유럽에서 처음 연주된 아르헨티나 땅고 음악, El Choclo(엘 쵸클로)는 원래 옥수수나 나막신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남자를 상징하기도 한단다. 이 음악은 우울할때 들으면 위로가 되었는데 자꾸 듣다보니까 이젠 음악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