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수로水路를 따라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 떼 가득한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 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홑치마 같은 풋잠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 치자향을 흘리며 오는 사람, 그 사람은 눈뜨면 사라질 사람. '결코 눈뜨지 말라'에 이르러 절로 눈이 감기는 순간, 어디선가 흘러나오던 음악이 시에 포개어졌다. 반도네온이 애절하게 음을 끌고 가면 피아노가 스타카토로 뒤를 따랐다. 양철지붕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피아노소리는 시 속의 꿈꾸는 어떤 이와 꿈속의 어떤 이를 어루만지듯 했다. 코끝이 찡하더니 눈시울이 수평선처럼 넘실거렸다. 나는 더 이상 시를 읽을 수 없었다. 눈물이 넘치지 않도록 급히 수습해야했으므로.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과 애틋한 시의 한가운데서 나는 수평저울처럼 떨었던 것도 같다. 음악의 제목도 내용도 모르는 채로 시간이 제법 흘렀다.

 

누군가와 춤을 추다가 이 곡을 다시 듣게 되었다. 몸과 마음에 나도 모르게 파동이 일었다. 음악의 제목을 알게 되었고, 아름다운 그는 내게 못 잊을 사람이 되었다. 음악의 제목은 Lagrimas Y Sonrisas. 슬픔과 기쁨 혹은 눈물과 미소라는 뜻인 것 같다.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음악과 시와 사람.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던 우연의 가면을 벗기면 필연의 맨 얼굴과 맞닥뜨릴 수 있을까

.

http://youtu.be/m809ivwfgyI

 

음악을 들으면서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것이 영화였는지 클래식 음악이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오래 헤맸다. 결국 나는 영화도 클래식 음악도 모두 찾아냈다. 영화는 <번지점프를 하다>였고, 클래식 음악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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