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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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 나는 이런류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드디어 해치웠다는 안도감과 시원함은 남지만 주인공의 이름도 사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400여 쪽 분량의 소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기도 하다. 입담 좋은 할머니에게서 한나절 옛날얘기를 들은 기분이다. 믿을 수도 없고 이해도 안 되지만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황당무계하고 흥미진진한 옛 얘기 말이다.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세 여자의 일생이 그려진다. 물론 각기 다른 여성의 일생이지만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책 말미에는 평론가의 작가 인터뷰가 실려 있다. 평론가는 소설 속의 세 여성을 전근대, 근대, 탈근대의 상징으로 보려한다. 평론가의 이런 도식적인 분석이 내겐 과도한 의미부여로 여겨졌다. 더불어 인터뷰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소설의 요소를 하나도 갖지 않은 소설에 대한 당혹감과 부담감을 설명하는데 할애되고 있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이야기꾼의 입을 빌려 작가는 말한다.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한 줄 또는 두 줄로 세상을 정의 하고자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명제가 그것이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310)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들이 말하는 법은 물론 성문화된 법을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성문화되지 않은 세상의 모든 법칙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사건이 하나 종결될 때마다 그것은 관성의 법칙이었다, 그것은 생식의 법칙이었다, 그것은 화류계의 법칙이었다등등 나는 전혀 상상치 못했던 법칙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세상의 모든 법칙을 늘어놓을 기세다. 가속도의 법칙. 거리의 법칙, 금복의 법칙, 무의식의 법칙, 습관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세상의 법칙, 이념의 법칙, 거지의 법칙, 흥행업의 법칙, 구라의 법칙(1), 진화의 법칙 유언비어의 법칙 만용의 법칙, 자본주의의 법칙, 알코올의 법칙, 플롯의 법칙(2), 감방의 법칙, 신념의 법칙, 토론의 법칙, 춘희의 법칙.......

 

금복의 법칙이니, 춘희의 법칙이니 하는 주인공의 법칙이 나올 때 나는 공감하면서 웃었다. 최소한 3번 이상 사랑의 법칙을 언급할 때, 다른 법칙들과는 다르게 사랑은 개별적인 법칙을 갖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런류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런데 리뷰를 적다보니 왠지 이런류의 소설을 좋아하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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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싸리 2015-10-31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두어번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으려다 실패했죠. 초반 이,삼십쪽은 읽었는데 진도가 안나가더군요...

반딧불이 2015-11-03 13:33   좋아요 0 | URL
저도 몇쪽 보다 던져두었던 책이었어요. 한고비 넘기시면 술술...너무 잘넘어가서 탈이에요~.

hope 2015-10-3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의 힘! 천명관 작가님의 책 대부분이 이야기가 강해서 좋아요

반딧불이 2015-11-03 13:33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저는 천작가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이네요. 참고할께요.

넙치 2015-11-01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반딧불이님^^
저도 빨려들어가서 읽었는데 그닥 좋아하는 장르의 소설이 아니에요. 불콰한.. 이 말을 감상에 썼던 거 같아요.

반딧불이 2015-11-03 13:35   좋아요 0 | URL
ㅎㅎ 넙치님..기억하시고 방문주시고..댓글까지..반갑고 고맙습니다. 읽는동안 저도 술에 취한듯 불콰해졌드랬어요.
 

 

 

고통의 역사

                   이현승

악을 쓰고 역기를 들어 올리는 사람의 얼굴로

꽃은 핀다. 실핏줄이 낱낱이 터진 얼굴로 아내는

산모휴게실에 혼자 차갑게 식어 누워 있었다

죽자고 벌인 사투의 끝은 죽음 같았다.

있는 힘을 다 뽑아낸 몸은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뼈마디까지 낱낱이 헤쳐진 몸으로 까맣게 가라앉았다.

백일홍 백일동안 핀다고 누가 그랬나.

백일홍은 백일동안 지는 꽃이다.

꽃은 떨어져 내려 시나브로 색이 시들고

그 곁에서 매미가 악을 쓰고 우는

백일은 얼마나 긴가.

어혈이 빠지기도 전에 다시 어혈을 입는

백일은 얼마나 더딘가.

먼 바다는 아이들이 가라앉아 아직 시퍼렇고

사람죽은 소리에 질린 하늘 아래

백일동안 멍든 얼굴로 누운 그늘을 보면서

생각한다. 용서가 먼저인지 망각이 먼저인지.

견디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견딤에 대해.

사람들이 곡기를 끊고 시나브로 제 생을 말리는

이곳은 어디인가.

죽은 사람이 떠나지 못하는 세상은 구천 같다.

세월은 더 흘릴 눈물도 없는 사람들을 울려서 눈물을 짜낸다.

사람이, 역기를 들어 올리는 사람의 얼굴로 간신히.

 

 

 

 

 

 

 

 

 

 

 

현대시학 2014.10 -

현대시학사 편집부 엮음/현대시학사(월간지)

 

 편집주간이 쓴 권두시론의 제목이 '혁신호를 펴내며'다.  어떤 혁신일까. 편집진과 표지가 모두 바뀌었다. 장기적인 기획도 보인다. 이번 혁신호에서는 <우리 시의 미래를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의 기획특집을 꾸렸다. 평론가 및 시인들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실었다. 그 질문 중의 하나가 '좋은 시와 그렇지 못한 시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입니까?'다.  당연히 답은 모두 다르다. 예술에 문학에 시에 어떤 정답이 있으랴. 수학문제를 풀어 정답을 얻듯이  시의 답이 하나라면 어떻게 될까? 수학문제의 답이 하나이듯이  유일무이한 오직 한 작품만이 시로 남게되나?  어쨌든 저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는 이현승 시인의 시를 꼽았다.  물론 현시시학 10월호에 실린 시 중에서 골랐다.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가 하나로 여며지며 문장마다 콕콕 찍힌 마침표가 아프다. 시인의 환하고 선한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시인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10명중 두명이 이영광 시인을 꼽았다. 그의 첫시집을 만났을때 서점에서 선채로 통독하고는 다른 책은 보지도 않고 사서 돌아와 며칠을 끼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두권의 시집을 더 내는동안 그는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내 눈썰미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내 몸도 모르는 영역에 가서 낯선 말을 영접하는 모험'을 매편마다 감행하는 시인이 존경스럽다.

파장 짧은 햇살은 시들어 가고, 차가운 바람은 목덜미를 파고들고, 초록이 지쳐가는 10월, 오후의 들길을 걷다가 울컥했다. 슬프다는 느낌도 들기전에 눈물부터 먼저 차오르는 이 난관은 아마도 이 모든 사물들이 자아내는 분위기에서 나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었던 것 같다. 사적으로는 오감이 반응하면서 사회적 일에서 똑같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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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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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남역을 지나다가 허삼관이라는 영화 포스터를 보았다.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가 떠올랐고, 원작의 재미를 살렸을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을 한국적 상황으로 그려내는 것이 쉽지 않아보였다. ‘허삼관이 결혼자금을 위해 또 돈이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피를 팔아야하는 상황은 비참한 내용과는 달리 많은 웃음을 주었었다. <허삼관 매혈기>매혈기에 강조점을 둔 책이었는데 매혈기라는 뒷말은 떼어버리고 허삼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면 내용이 어떻게 각색 되었을까? 격변기를 자신의 피로 살아내는 허삼관이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을까?

 

<인생>은 내가 읽은 위화의 두 번째 작품이다. 주인공 나는 민요를 수집하러 다니다가 푸구이라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구전되어 내려오는 민요를 채록하기 위해서는 만나는 사람이 대부분 노인이었을 것이다. 그가 만난 대부분의 노인은 자기가 살아온 날들에 별다른 애정이 없는 듯, 마치 길에서 주워들은 것처럼 몇 가지 사소한 일들만 드문드문 기억할 뿐이었고 이 사소한 기억마저도 자기가 아니라 남에 대한 것이었고, 한두 마디 말로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표현해버렸다.’

 

그러나 푸구이 노인은 달랐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그처럼 또렷하게, 또 그처럼 멋들어지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는 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 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푸구이라는 노인의 이야기를 내가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작품 역시 중국의 정치적 혼란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굶주림에서 비롯한 삶의 처절함은 <허삼관 매혈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처절함을 부각하거나 부조리에 반항하기보다 그것을 견디며 또 수용하는 한 인물을 그렸다. 피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비슷하다. 위독한 산모에게 헌혈을 하다가 죽는 푸구이 노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야기를 읽을 때면 무지가 가장 큰 폭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피를 뽑다니! 그것도 어린아이의 피를. 소설이긴 하지만 중국에서라면 왠지 가능한 일일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중국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있는 것을 깨닫고 섬짓했다. 한권 책으로 요약된 푸구이 노인의 인생을 통해 내 삶을 요약해보면서 소설의 아니 문학의 기능을 되새겨본 기회였다.

 

장예모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기억이 없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게 되면 대부분 실망하게 되지만 장예모의 영화에 한 번도 나는 실망한 적이 없었다. 원작은 원작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어떤 때는 영화가 원작을 더 빛나게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오래 된 탓인지 영화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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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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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읽다가 만난 문장이 있다. “소설가 김연수와 김중혁이 그의 고교 동창이다. 김연수가 도서관 타입이고 김중혁이 박물관 타입이라면 문태준은 마을회관 타입이다.” 문태준 시인에 관한 글에 나왔던 문장이다. 이 문장 외에도 소설가 김연수는 쓰기만 하면 상을 거머쥔다는 내용의 글이 있었는데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다. 이런 문장들을 접하고 김연수의 글을 하나도 읽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책꽂이를 뒤져보니 두 권의 책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청춘의 문장들이다.

 

도서관 타입이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책의 제목을 읽으면서 나는 교육의 혜택을 많이 누린 작가를 떠올렸다. 당연히 그런 작가가 젊은 시절에 만난 서구적이고 도회적인 문장들을 많이 접할 것으로 짐작했다. 장 그르니에, 까뮈, 움베르토 에코, 보르헤스 등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이 책에는 한시, 하이쿠 등이 내 생각을 배반하듯이 연두색 옷을 입고 문장 중간 중간에 흐릿하게 박혀 있었다. 잊고 있었던 이백, 두보, 이덕무, 바쇼 등을 오랜만에 만나는 기회였다. 물론 나머지 글들은 대략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군복무시절까지의 젊은 날에 관한 이야기가 메우고 있다. 처음 접하는 작가에 대한 친절한 안내 글이라고 해야 할까.

 

얽힌 매듭을 하나씩 풀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 소소한 매듭에 얽힌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 놓았다고 할 수 있겠다. 늦둥이로 태어났고 유난하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고,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으나 번역을 해보라는 어떤 시인의 권유로 성균관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일본만화 윤문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시인, 소설가, 대중음악 평론가 등의 이름이 따라 붙었다. 간추려 말하면 질풍노도, 우여곡절, 파란만장 같은 단어들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소설가의 청춘이 밋밋하리만큼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나는 그의 소설을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았지만 그는 대여섯 권의 소설을 쓴 유명한 소설가다. 소설가가 될 재목은 역시 다른 걸까? 그는 무던히도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청춘의 문장이라 하니 그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한시와 친했던 것 같다. 나도 이백이니 두보니 하는 시인들을 교과서에서 접했지만 그들의 시를 따로 찾아본 기억이 없다. 단지 교과서에 실렸다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감동과 우수성을 강요당해야했기 때문이었을까? 엑기스처럼 뽑아놓은 그들의 시는 감동의 대상이 아니라 외우고 분석하고 기억 속에 저장해두어야 할 골칫거리에 더 가까웠다. 이덕무니 이옥이니 하는 조선조 사람들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된 듯하다.

  

 

한 조각 꽃이 져도 봄빛이 깎이거니

바람 불어 만 조각 흩어지니 시름 어이 견디리

스러지는 꽃잎 내 눈을 스치는 걸 바라보노라면

많이 상한 술이나마 머금는 일 마다하랴

 

두보의 곡강이수(曲江二首) 중 첫 번째 수다. 소설가 김연수의 청춘과 함께한 문장 중 하나다. 절대로 그럴 리 없지만 내가 청춘일 때 이런 문장들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한 잎 꽃이 지는 것에서 깎이는 봄빛을 읽을 수 있었을까? 만 조각 흩어지는 꽃잎을 보면서 좋은 시절 다 간다고 시름에 젖을 수 있었을까? 차마 견딜 수 없어 술에나 기대볼 줄 알았을까? 작가가 조숙한 건지 내가 지진아여서 인지 나는 황혼이 되어서야 이런 문장들을 겨우 느껴보게 된다. 적고보니 나는 소설가의 청춘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의 문장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소설가는 청춘과 문장 중 어디에다 무게중심을 두었을까? '청춘'과 '문장'사이에 모래알이 서걱이는 듯한 이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 아무렇거나 이 조숙했던 소설가의 작품에 신뢰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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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1-08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딧불이님 반가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 제가 좋아하는 작가예요. 소설은 단편도 아름다운 것이 많아요. 산문도 소설도 아주 명민하고 박학한 지식이 드문드문 보이는 그런 작가인 듯 해요.

반딧불이 2015-01-12 18:59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전하신 모습으로 계셔서 친정집을 찾은 기분이에요. 김연수는 짬짬이 찾아보고 또 얘기 나누기로 해요. 고맙습니다.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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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소리만 하는 사람은 참아줄 수는 있지만 미워할 수는 없다. 만일 이 바른 소리만을 큰소리로 한다면 참을 수도 미워하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바른 소리를 조근조근 낮은 목소리로 하는 이가 있다면? 겸손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면?

 

신형철의 글은 시를 더욱 시답게 하고, 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라는 단어에 영화, 소설, 평론 등 어떤 어휘를 넣어도 마찬가지다. 최상급 형용사를 총동원해야 하나? 놀라운 일 앞에서 절로 말문이 막히듯 입 다물어야하나? 대략 난감하다. 이 난감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모르겠다. 명징하면서도 뭉클하고, 논리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자칫 어긋나기 쉬운 이 대립 쌍들이 이상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 반응은 고통과 환희를 수반하는 사랑의 모습이다. <몰락의 에티카> 이후 다시 확인하지만 그는 문학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러므로, 그렇기 때문에, 그냥, 문학을 사랑하는 그를 사랑하기로 한다. 아니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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