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 을유세계문학전집 112
요시야 노부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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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소녀들 각자가 지닌 순수하고도 맑고 진실된 마음들이 결국 서로의 마음에 닿아 깊어지는 우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세 소녀가 처한 사회적 편견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믿음대로 스스로의 자의식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후속편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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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선택: 생명은 선택하는 존재다.

안동호에서 쇠제비갈매기의 사냥 모습을 촬영한 적이 있다. 그들의 사냥 장소는 호수 전체다. 언제 어디서 사냥할지는 쇠제비갈매기의 선택이다. 그렇다고 모든 방향을 다 노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결과가 나오기 십상이다. 호수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사냥은 망원렌즈로 당겨봐야 클로즈업 영상을 촬영하기 쉽지 않다. 이럴 때는 넓은 영상 위주로 촬영하는 게 낫다.  - P178

그다음엔 가까이 다가오는 쇠제비갈매기가 사냥하는 순간을 노려 클로즈업 장면을 얻어야 한다. 실제로 쇠제비갈매기는 불규칙하게 비행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초당 프레임 수(29.97 또는 59.94 fps)로 촬영하면 표현할 수 있는 모습이 제한된다. 이럴 땐 고속카메라를 활용해 500fps이상으로 찍어야 비행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 - P178

이러한 기본 장면을 촬영했다면 이제 특별한 샷을 촬영해 사냥의 역동성을 구현해야 한다. 카메라를 수면 가까이에 위치시켜 촬영하면 사냥하는 순간의 느낌이 달라진다. 게다가 자주 사냥하는 포인트에 고정 카메라를 거치해두면 바로 가까이서 물고기를 낚아채는 모습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장면이 확보되었다면 카메라를 물속이나 혹은 반수면에 설치해 물고기를 낚아채는 순간을 한층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앵글과 위치로 야생동물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촬영에 앞서 이 모든 것을 촬영감독과 상의해서 또는 PD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PD는 한마디로 ‘선택하는 인간homoselectus‘이다. 그건 프로그램을 책임진 사람의 숙명이다. - P179

이것을 선택할 것인가? 저것을 선택할 것인가? 정해진 바는 없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효과적으로 대응하면 된다. 단, 반드시 준비된 선택이어야 한다. 결과는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 자연 다큐 제작 과정도 우리의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처한 상황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을 한 후 방향을 결정하면 된다. 잘되든 못되든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선택권자의 몫이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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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자기 다리를 자르고 싶어한 남자






1장
팔다리를 없애고 싶어하는 상태를 상상할 수 있을까? 건강한 두 다리가 있지만, 그것이 당신을 괴롭히기만 한다면? 그 정도가 심해서 당신의 몸이 잘못 만들어졌거나 완전하지 않다는 기분이 들고, 원래 주어졌어야 할 몸과 다른, 잘못된 몸에 갇혔다는 기분이 든다면? 여섯 아이를 키우면서 평범하게 
50년 인생을 사는 동안 내내 속으로는 두 무릎 위를 잘라내야만 자신이 온전하고 완전해질 것 같은 생각에 시달린다면? - P45

앤드루는 그런 딜레마에 처해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한쪽 다리를, 다음에는 다른 쪽까지 모두 없애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거추장스럽기만 한 다리를 잘라내는 것을 도와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인터넷에 의지하여, 절단수술을 원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 P15

라마찬드란 박사는 환각지 환자들이 결코 미친게 아님을 증명했다. 환자들의 뇌는 사지 절단 이후에 신기한 적응양상을 보였다. 사라진 팔다리나 손가락에 해당하는 신경경로들이 몸의다른 부위로 재배치되었던 것이다. 라마찬드란이 환자들의 볼에서 특정 영역을 자극하자, 사라진 부위에 경련이나 가려움, 저린 느낌이 완벽하게 재현되었고, 그밖에도 온갖 특이하고 황당한 행동들을 했다. 얼굴신경에 연결된 뇌감지기들이 과거에 존재했던 팔다리의 감각을 모방한 것이다. - P49

라마찬드란이 보고한 사례들 중에 아칸소(Arkansas)주의 어느 기술자가 있었다. 그 남성은 한쪽 다리를 무릎 아래에서 절단했는데, 그뒤에 감각이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음경에서 시작된 오르가슴이 환상다리 부위까지 퍼진다고 했다.
라마찬드란의 선구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적응력이실로 경이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각지를 물리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은 상상이나 정신병이 아니라, 뇌의 신경회로라는 물질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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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신뢰: 믿음은 관계의 시작이다.

뿔논병아리는 수심 1미터 정도 되는 호수의 물 위에 수초로둥지를 짓고 번식한다. 이 때문에 수초는 뿔논병아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알을 품는 시기부터 새끼가 둥지를 떠날 때까지 수초로 만든 둥지의 보수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물에 있는 수초는 썩기도 하고 수시로 유실된다. 그러니 틈나는 대로 보수해야만 둥지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수상 번식 조건 때문에 뿔논병아리가 수초를 활용한 구애 의식을 발달시킨 것이다. 수초를 잘 가져오고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짝으로서 충분히 신뢰할만한 조건을 갖췄다고 본다. 
이처럼 동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에너지를 투자해 짝을 고르는 의식을 치르는 건 번식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그 핵심이 바로 신뢰 형성이다. 서로간에 믿음이 있어야 어떤 경우에라도 새끼에게 먹일 양식을 조달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침입자를 물리칠 수 있다. - P130

동물의 혼인 시스템은 종에 따라 다르다. 어떤 동물은 일부일처제를 지키는가 하면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를 유지하는 동물도 있다. ‘어떤 혼인 시스템이 더 좋은가‘라는 질문은 합당하지 않다. 각기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에 해당 방식의 혼인 시스템을 선택했을 뿐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일부일처제를 가장 적합한 혼인 형태로 받아들이지만 일부다처제가 용인되는 사회도 있다. 우리만 해도 조선시대까지는 첩 제도(일부다처제)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다. 따라서 그 사회에 맞게 혼인제도가 발달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한 관점일 것이다. - P122

일부 조류는 일처다부제라는 특별한 혼인제도를 취한다. 대표적인 종이 물꿩이다. 물꿩은 제주도를 포함해 일부 남부지방에서 번식하는 여름 철새인데, 번식 주도권을 암컷이 쥐고 있다. 물꿩은 마름, 가시연 등과 같은 수면에 뜨는 수초들이 우거진 저수지에서 번식하고 별도의 둥지는 만들지 않는다. 기껏해야 몇 개의 수초를 모으거나 그냥 수초 위에 서너 개의 알을 낳는다. 산란이 마무리되면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쪽은 놀랍게도 수컷이다. 그 사이에 암컷은 또 다른 수컷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알을 낳는다. - P122

왜 물꿩 암컷은 자신의 알을 스스로, 또는 함께 돌보지 않고 수컷에게 양육을 맡길까? 그 이유는 물꿩이 서식하는 저수지의 조건 및 번식 시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비가 많이 오는 7월의 저수지는 수위 변화가 심해서 알이 유실될 수도 있고 수초 위에 그대로 산란하기 때문에 알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높다. 만약 그런 사태가 생기면 물꿩은 번식이라는 한 해 농사를 망친다. 그래서 물꿩 암컷은 여기저기 알을 많이 낳아서 번식 성공률을 높이려 한다.
자신의 알을 수컷에게 맡기고 또 다른 수컷을 만나 교미를 하고 알을 낳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컷에 대한 신뢰이다. 만약 이러한 신뢰가 없다면 암컷은 자기의 유전자 50퍼센트를 간직한 귀한 알을 수컷에게 맡겨두고 떠날 수 없을 것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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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아이들은 뭐든 자기가 좋아하는 길로 나아가게 해 주고 싶다고. 엄마는 와타루가 음악에 소질이 있다면 그걸 소중히 키워주고 싶다고 즐겁게 말씀하셨어요. 아빠 부탁이에요. 제발 와타루가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해 주세요. 저를 위한 피아노인데 저보다 와타루가 훨씬 더 잘 쳐요. 역시 음악에 재능이 있는 거예요."
"그럴까....... 그저 반쯤 재미로 치는게 아니고?"
"아니에요, 저는 어떤 곡을 치려면 아주 열심히 연습해야 하는데, 와타루는……………, 아무튼 천재일지도 몰라요."
"아하하, 천재라니 허풍이 심하구나."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기분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 P168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버지와 딸이 툭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와타루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걱정마저 잠시 잊을 만큼 아버지와 딸의 소통은 즐거웠다.
"그럼 마키코 넌, 아빠랑 엄마 중에 누구를 닮았을까?"
아버지는 놀리듯 말했다.
"둘 다 조금씩."
마키코가 웃었다.
"그렇구나. 그럼 아빠의 좋은 부분과 엄마의 좋은 부분을 조금씩 닮아다오, 마키코."
"응, 그럴게요."
"하하하." - P169

"요코!"
어디에선가 자신의 이름을 그리운 듯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가까운 언덕 그늘에서 코트의 깃을 세우고 웃으며 달려오는 사람이 보였다. 마키코였다. 그녀의 손에는 온실에서 키운 여러색깔의 꽃다발이 소중히 들려 있었다.
"어머."
그 모습에 발걸음이 멈춰선 요코의 뺨에는 발그레한 혈기가 돌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 P181

"병문안 왔어. 이 꽃은 가즈에가 전해 달래. 오는 대신 선물이라면서."
마키코는 요코의 가슴에 꽃다발을 안겨 주고 어깨에 손을 둘렀다.
"빨리 건강해져. 그리고 우리 셋이서 사이좋게."
말하다 말고 마키코는 문득 눈물이 고여 요코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말보다 빨리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린 요코의 검은 머리칼과 옷깃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풍겼다. 아아, 그리운, 물망초 향수 냄새여. 하지만 지금 이 냄새는 마키코로 하여금 위태로운 죄악과 전율하는 유혹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다.
아니, 이 냄새야말로 앞으로 세 소녀를 묶어 줄 우정의 표식과도 같이, 밝고 깨끗하고 고요하고 그립게 마키코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ㅡㅡㅡ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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