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작가 천쉐陳雪의 《악녀서》를 읽는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 어제 받아왔다.

천쉐 작가는 1995년 데뷔작 《악녀서》가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중화권의 대표적인 퀴어 문학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을 처음 발표한 30 년 전부터
자신의 성적취향을 숨긴 적이 없는 동성애자이다.
성소수자 인권향상과 대만의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사회운동에 앞장서며, 자신의 삶과 목소리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산문집 등을 통해 공유해왔다.


지난 22일 막을 내린 서울국제도서전 참석을 계기로 처음 한국을 찾은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볼 수 있었다.









1. 천사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

처음 아쑤阿蘇를 만났을 때, 그녀와 내가 같은
유형이라는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둘 다 날개 잃은 천사였다. 우리 눈은 비상을 갈망했다.
그래야 일정한 고도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맨발은 뜨겁고 단단한 대지 위를 걸었지만 인간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방향을 잃어버렸다. - P21

그런데 왜 10년 전에 출간된 책을 다시 출판하는 걸까?
이 책은 일찌감치 절판되어, 시중에 돌아다니는 것은 대부분 복사판이고 더 많은 각종 동성애 혹은 비동성애 소설집이 약속이나 한듯이 내가 가장 먼저 발표한 「천사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를 선정하여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상의 소홀함 탓에 나는 영문으로 가득한 그 빽빽한 계약서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고 서로 다른 두 권의 영문 선집에는 서로 다른 번역으로 이 작품을 수록하고 있었다. 독자들은 수시로 내게 편지를 보내 악녀서와 절판된 나의 또 다른 작품들을 사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징징서고晶晶書庫서점 주인인 아저阿哲는 내게 "적지 않은 독자가 서점으로 직접 돈을 보내오면서 책 좀 구해달라는데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일부 젠더 연구 학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합법적인‘ 『악녀서 원고를 살 수 없느냐고 물어오기도했다. 나의 충실하고 열정적인 독자들은 헌책방을 뒤지기도 하고 친구에게서 빌려 읽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도서관에 가서
‘훔치기도‘ 했다. - P15

긴 시간의 세례를 거치면서 나는 악녀서』가 나 자신에게, 내가 존재하는 사회와 1990년대의 전 지구적인 젠더 연구에 여전히 일정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악녀서」에 대한 관심과 논쟁은 내게 개인적으로 초조감을 유발하긴 했지만 글을 계속 써나가도록 엄청난 힘을 주기도 했다. - P15

한 소설가의 첫 번째 작품이 이처럼 선명한 기치를 
내걸었던 것에 대해서는 분명 애증이 교차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더 많은 작품으로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하여 출판사와 내가 받은 신호는 수많은 독자가 어떻게든 이 책을 읽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독자들의 열정과 성의를 우리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재출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신판자서 소설의 운명 중에서 - P16

얼마나 많은 날이 지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낮에는 항상 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모든 사람의 몸에서 아쑤의 그림자를 찾다가 밤이 오면 침대 위에서 아쑤의 호흡을 복습했다.
그러나, 점점. 내 기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정말로 존재했는지 아니면 한바탕 꿈이었는지조차 확정할 수 없었다.
"어딘가에 있을 거야."
아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답은 이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그곳이 어디일까?
반드시 찾아야 했다. 그곳을 찾기 위해 나는 수없이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탔다. 심지어 비행기를 탈 수도 있었다. 어떤 방법들을 써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어떤 목소리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나는 점점 그곳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 P50

문득 내가 어느 묘지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덤인가? 알고 보니 내가 찾으려 애쓴 것은 무덤이었다.
우리 아빠의 무덤 옆에 또 다른 무덤이 조성되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똑바로 서서 대리석 묘비에 새겨져 있는 글자들을 살펴보았다.
"쑤칭위蘇靑玉...."
쑤칭위, 그건 우리 엄마 이름이었다.
엄마, 내가 돌아왔어요. 여러 해 엄마를 떠났다가 결국 돌아왔어요.
나는 엄마의 무덤 앞에 누워 엄마의 자궁 속인 것처럼 몸을 말았다. 그러고는 중얼중얼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감정을 쏟아냈다.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말이 너무 느리고 힘들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떠돌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땅이 충분히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 P51

"엄마 사랑해요. 더없이 확실하게 진심으로 사랑해요."
희미하게 아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늘 끝에서 들려오는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위의 구름이 점점 뭉쳐 익숙한 형상을 만들고는 좌우로 흔들렸다. 그렇게 흔들리는 것은……………

한쌍의 날개였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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