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의 총성]
쏘지 않겠네.
실비오가 대답했소.
나는 만족하오. 당신이 당황하고 겁먹는 모습을 본 걸로 만족해. 당신이 나를 쏘게 만들었으니 이걸로 되었소. 나를 기억할테지. 당신의 양심에 당신을 맡기겠소.
그는 이렇게 말하고 곧바로 나가려 하다가 문가에 멈춰 서더니, 내가 총을 쏜 그림을 힐끗 쳐다본 후 조준도 하지 않고 총을 쏘고는 사라졌소. 아내는 기절했고 종복들은 그를 붙잡을생각도 못한 채 공포에 
떨며 그를 지켜보고만 있었소. 그는 현관으로 나가 지나가는 마부를 불러 세운 뒤, 내가 미처 정신을차리기도 전에 떠나버렸소." - P49

백작은 말문을 닫았다. 이리하여 나는 예전에 내게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야기의 첫머리가 어떻게 매듭지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 P49

[눈보라]
"이럴수가!"
마리야 가브릴로브나가 소리쳤다.
"그러니까 당신의 가엾은 아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신다는 말씀이세요?"
"모릅니다."
부르민이 답했다.
"제가 결혼식을 올린 마을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어떤 역참에서 출발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그때는 제가 한 고약한 장난이 죄인 줄도 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교회를 출발하고는 곧바로 잠이 들었고, 이튿날 아침에야 세번째 역참에서 눈을 떴습니다. 그때 저와 같이 있었던 종복이 전쟁 중에 죽어버려서 제가 그토록 잔인하게 농지거리를 했던 그 여인을 찾으리라는 희망이 없어요. 이제는 그녀가 이토록 잔인하게 제게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세상에 이럴 수가, 이럴 수가!" - P81

마리야 가브릴로브나가 그의 손을 부여잡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당신이었던 거로군요! 저를 알아보지 못하시겠어요?"
부르민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그는 그녀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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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가본적도 없고 거리도 건물도 상점들도 모두가 낯선 이름들이다. 여러 작품들 가운데서 대하던 거리와 인물들, 사물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럼 또 반갑다. 역사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저 단편적 지식만 있을 뿐!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페렉이 묘사하는 파리는 왜 이다지도 멋지게 느껴질까?
우리 서울의 아름다움도 누군가 이렇게 멋있게 써주면 좋겠다.

그렇지만 페렉이라서 읽는다!




이 구역의 모든 거리는 저마다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역사 그 자체다. 생마르탱 거리와 오브리르부셰 거리가 만나는 모퉁이에 1832년 6월 마지막 폭동자들의 바리케이드가 세워졌고, 바로 그곳에서 빅토르 위고가 가브로슈를 죽게 만들었다. 우르스 거리에서는 약 4세기 동안 마리아 상을 숭배했는데, 한 병사가 마리아 상을 때렸을 때 피가 흘러내렸고 이에 사람들은 해마다 7월 3일이 되면 군복을 입힌 허수아비를 도시 전체에 끌고 다닌 후 마리아 상앞에서 
불태웠다.(거리의이름인 Ours는 곰을 뜻하는 ours 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거위를 뜻하는 ‘oues‘ 에서 유래했다. 많은 구이 장수들이 초기에 이 거리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 P119

또 롱바르 거리에서는 보카치오가 태어나기도 했다.  한편, 생드니 거리 바로 맞은편에 있는 페론느리 거리 11번지 앞에서 1610년 5월 14일 금요일 오후4시경 앙리 4세가 암살당했는데, 그는 아르스날의 설리 경14을 방문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과거에 트랑스노냉 거리라불리던 보부르 거리의 한 부분에서, 1834년 4월 13일 뷔조 사령관의 군인들이 반란군들이 숨어있다고 추정되는 한 건물의 주민들을
모두 학살했다. - P120

생마르탱 거리를 지나 남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센 강변에 다다르게 된다. 바로 그 근처에 새시장과 꽃 시장이 있고,너무나 아름다운 도핀 광장이 있으며,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고, 생루이 섬과 선착장들, 고서적 상인들 그리고 바토-무슈들이 있다. - P120

세바스토폴 대로를 지나 북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거의곧바로 장인(匠人)들의 파리 그 한복판에 있게 될 것이다. 모자 제조인, 패션 주얼리 세공업자, 흡연용품 제조인, 단추 제조인, 세공품 제조인, 가죽 제품 제조인, 모피 제조인, 안경 제조인 등...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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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 작가는 책도 쓰고 번역도 한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우리 죽은자들이 깨어날 때>와 비비언 고닉의 <멀리 오래 보기>가 이주혜 작가가 번역한 책이다.
그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첫 문장~~~
학살자가 죽은 날, 그의 죽은 몸이 운반된 병원에 갔다.
그의 끝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텔레비전 화면에 간혹 비치는 그의 산 얼굴조차 보고 싶지않아 채널을 돌려버리는 사람이었다.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다. 아침뉴스에서 그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기자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며 유당이 제거된 우유에 천천히 그래놀라를 말아 먹었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외출복을 입었다. 마지막으로 텔레비전을 끄면서 한 문장을 떠올렸다. 모든 죽음은 느닷없다. 죽음의 평등함을 말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학살자는조소하듯이 죽음조차 불평등함을 알리고 가버렸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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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캐럴라인 냅, 북하우스
동네 작은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한 책.
적은 책들 속에서 실망할 때도 있지만
가끔 이런 기쁨을 주기도 한다.

내가 평생 느껴보지 못할 ‘거식증‘이라는, 이토록이나 자극적인 주제가 나에게는 너무 생소하고 이해불가한 영역이지만 궁금한 영역이다. 음식을 먹지 않음에 대한 욕구,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허기의 힘을 가물가물하게나마 의식˝하며, 비만과 식욕, 섹스,쇼핑 등등의 욕구들 저변에 깔린 ˝여자들 특유의 불안, 죄책감, 수치심, 슬픔의 혼합물들˝을 버무려 예술의 형태로까지 끌어올린 것뿐이라는 작가의 경험이 어떤 식으로 쓰여질지 궁금한 것이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
그래서 ˝거식증은...˝으로 이어지는 여러 문장들을 읽다 놀랐다.

˝거식증은 여성의 신체에 대해 우리 문화가 갖고 있는 수척하고 앙상한 몸의 이미지들에 대한 한 가지 반응으로, 그러한 이상에 순종하는 동시에 그것을 조롱하며, 섹슈얼리티의 모든 부수적 신호들,
즉 젖가슴과 엉덩이와 궁둥이를 제거하고 대신 그
자리에 현란한 캐리커처, 살과 뼈로 된 잔인한 만화를 남겨둔다. 거식증은 일종의 소리 없는 항거이며, 성인 여성의 몸을 입고사는 경험에 대한 심한 불편함을 표현하는 단식투쟁이다. 거식증은 ... ... 거식증은... ... ˝(56쪽~)



*서론~~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사이의 암묵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이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욕구에 관한 이야기다. 시험해본 적없는 새로운 자유가 주어질 때 함께 솟아나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자가 성별과 여성성에 관한 깊고 견고하게 뿌리박힌 오래된 규칙들을 시험할 때 솟아나는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다. 자아와 문화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이며, 여전히 여성의 권력에 대해 심히 양가적 태도를 취하는 세계, 욕구와 수치심을 똑같은 정도로 불러일으키고야 마는 세계 안에서 여성의 욕망을 속박하고 있던 고삐가 덜컥 풀어졌을 때 생기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 P47

갈수록 더 시각에 치중하고 상업성이 짙어지는 세계, 여성의 형태가 무자비할 정도로 외현화되는 세계, 여성의 욕망에 관한 관념이 너무나 협소한 틀 안에 갇혀있는 세계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몸과 자신의 욕망에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한 이야기다. 전통적인 심리 구조와 사회구조가 얼마나 오래도록 멀쩡히 버티고서 있을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전히 소녀들에게 자기부정의 씨앗이 뿌려지고 권장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며,40년에 걸친 법적·사회적 변화가 진정한 대안적 변화를 아직일구어내지 못한 까닭에 우리가 행위 주체성과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나, 자신의 욕구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만족시켜도 될 타당성과 자격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이
부재한다는 이야기다. - P48

1장, 케이크 더하기, 자존감 빼기
굶기의 미끼는, 그 불가해하면서도 유혹적인 
낚싯바늘은, 위안이었다. 나를 인간의 갈망이라는 평범하면서도 온갖 위험이가득한 세계에서 끄집어내어 그보다 더 높은 곳에, 고요함의내밀한 왕국에 데려다놓는 듯한, 그 안전함과 억제가 주는 온화한 위안.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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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집중력 문제를 진단받는 아이들의급증이 아이들의 삶의 방식에서 나타난 여러 다른 변화와 동시에발생했음을 알고 있다. 오늘날 아이들은 전만큼 뛰어놀지 못한다.
아이들은 거리와 동네에서 노는 대신 집이나 교실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또한 아이들은 전과 매우 다른 식단을 먹는다.
뇌 발달에 필요한 영양소는 부족하고, 집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미치는 설탕과 식용색소가 가득한 식단이다. 학교 교육도 바뀌어서, 스트레스가 극심한 시험을 준비시키는 데만 주력할 뿐 창의력을 기를 여지는 없다. 이 커다란 변화들과 동시에 ADHD 진단이 증가한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관련성이 있을까? - P346

스트레스가 심한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가 집중력 문제를 겪을확률이 더 높은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네이딘 버크 해리스를 통해 알게 된 모든 내용을 떠올렸다. 앨런은 여기에 네이딘의 연구결과와 양립하는 또 다른 층위의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그는 어릴 때는 속이 상하거나 화가 나면 자신을 달래주고 진정시켜줄어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위로받는 경험을 충분히하고 나면, 시간이 흘러 성장할수록 혼자서 자신을 달래는 방법을배우게 된다. 가족이 주었던 안심과 이완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 P353

그러나 스트레스가 쌓인 부모는 자기 잘못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녀 달래기를 힘들어하는데, 본인이 너무 흥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그들의 자녀도 중심을 잡고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결과 그들의 자녀는 화를 내거나 괴로워하는 방식으로 힘든 상황에 대처할 확률이 높아지고, 분노와 괴로움은 집중력을 망가뜨린다.  - P353

수십 년간 증거를 모은 끝에 앨런은 "처음에 내가 믿었던 그무엇도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나중에 ADHD를 진단받은 아이들의 "절대다수는 ADHD를 타고나지 않는다. 이들에게ADHD가 나타나는 것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반응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 P354

앨런은 부모들이 이 문제를 극복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 질문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사미의 일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 보였던 이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주변에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앨런의 팀이 연구한 가족들은 때때로 주위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도움을 준 사람은 대개 전문가가 아니었다. 이들은 그저 힘이 되는 파트너나 친구들을 찾았을 뿐이었다. 연구팀은 이런 식으로 사회적 지지가 늘어나면 "그들의 자녀가 문제를 보일 가능성이 더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일까? - P354

앨런은 이렇게 썼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부모는 자기 아기에게 관심을 많이 쏟을 수 있으며, 그러면 아기는 더 큰 안정감을 느낀다." 이러한 효과가 너무 커서, "긍정적인 변화의 가장 강력한예측 변수는 그 시기에 부모가 받는 사회적 지지가 증가했는가였다."" 생각해보니 사회적 지지는 집중력 문제를 겪는 아이들의 가정에 사미가 주로 제공한 것이었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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