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서 인류애로 - 성적 지향과 헌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강동혁 옮김, 게이법조회 해제 / 뿌리와이파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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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C. 누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에서 사회가 동성간의 성행위를 '범죄'로 취급하거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가장 큰 이유를 '혐오'에서 찾는다. 그 동안 사회와 법률에서 동성애를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정당화해왔는지의 과정을 밝히고 있으며, 사회와 대중의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과 헌법의 변화하는 과정도 여러 법률 사건을 들어 세세히 밝혀 놓았다. (하지만 이 책의 리뷰를 쓰는 것은 너무 어렵다ㅠㅠㅠ  그렇지만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것은 더 안될 말! 누스바움의 문장들로 대체할 수 밖에...)



'혐오'의 감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쁜 감정만은 아니다. 타인의 혈액, 타액, 정액, 체액, 역겨운 냄새, 그리고 끈적거리는 물체나 생물(에를 들어 민달팽이를 보고 느끼는 걈정, 꿈틀거리는 벌레 등등)에 대해 드는 자연스러운 혐오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공통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도의 '혐오'라면 공공장소에 침을 뱉거나 배설을 하면 안된다거나 개방된 장소에서의 성행위를 금지하는 등의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데 있어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배설물, 타액, 체취, 혈액, 벌레 등을 보고 느끼는 1차적 대상과 이를 다른 대상이나 물체에 투사하여 느끼는 투사적 혐오projective disgust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투사적 혐오란, 혐오의 1차적 대상물과 관련성이 없는 자들에게 대해 혐오의 1차적 대상물의 성질 등을 투사함으로써 그들을 혐오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성소수자, 여성, 유대인 등에 가해진 비하 및 차별의 수단으로써 이와 같은 투사적 혐오를 사용하였다. 우리 사회에서도 전통적으로 여성들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사용한 '부정탄다', 다문화 가정 자녀에게 '냄새가 난다', 그리고 역시 소수자들에게 '~~충蟲' 등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혐오의 감정을 투사하였다. 이렇게 투사된 감정을 법에 실현함으로써 이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혐오의 정치'가 오랜 시간 존속되어 왔다.



'혐오의 정치'에 대비되는 개념이 바로 '인류애의 정치'이다. 미국의 건국과정으로부터 인정되어온 종교의 자우, 종교의 다양성에 대한 인정의 역사로부터 시작되는 자유와 평등의 의지가 바탕이 되어 형성된 의식, 그리고 타인이 나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를 하나의 존엄한 인간으로 인정함으로써 그를 존중하는 정치를 '인류애의 정치'라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을 어떤 식으로 볼 것인지, 거기에 평등한 인간성을 부여할 것이지, 아니면 그보다 못한 무언가를 덧씌울 것인지를 선택해아만 한다. 다른 사람을 혐오의 감정이 투사된 '무언가'가 아닌 '누군가'로 인식하는 지점, 소수 인종이나 게이, 레즈비언들의 삶을 바라보는 주류적 관점에 상상력을 동원하는 참여가 그동안 아프게도 결여되어 있었다.  



'제1장 혐오의 정치:실제, 이론, 역사'에서는 '혐오'라는 감정이 미국의 성 정치에 미친 영향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학자로 데블린과 카스의 이론을 비판하고 있다.  '제2장 인류애의 정치:종교,젠더,장애'에서는 미국 헌법의 고유한 가치인 평등, 박애, 자유, 행복에의 추구 등에 관한 권리를 언급하면서 성적지향과 인종, 젠더, 장애 등으로 인하여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하여 투쟁해온 과정을 설명한다. "다양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상황을 상상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상황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평등도, 평등한 존중도 존재할 수 없"으며 "타인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 사람도 괴물이 아닌 진짜 사람이라는 점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미국적 전통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 평등한 자유를 사유하는 길로 나아갈 때 반드시 내디뎌야 할 한 걸음"으로 천명함으로써 상상력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오늘날에는 혐오와 맞서는 두 반대자가 있다. 사회적, 정치적, 심지어는 법적 영역에서도 점점 더 힘을 키워가고 있는 혐오의 반대자는 바로 '존중'과 '공감'이다. 미국 민주주의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개념은 말할 것도 없이 개인을 평등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이념, 그리고 사적 자유에 대한 높은 평가인데, 다수의 시민들은 이 두 이념이 결합되면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다고 생각한다. 즉 설령 다수 시민이 특정한 선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지라도, 그 선택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개인적 선택을 할 여지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4쪽)


   혐오는 도덕적 둔감성에 의지한다. 다른 인간을 끈적거리는 민달팽이나 역겨운 쓰레기 조각으로 보는 일은, 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 사람의 느낌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진지하고도 선의에 찬 시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때에나 가능하다. 혐오는 타인에게 인간 이하의 속성을 전가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다른 누군가를 인간으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26쪽) 


   '인류애의 정치'는 그저 타인을 광범위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인간, 평등한 존엄성 평등한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바라볼 것만을 요구한다. 어떤 경우에는 누군가가 추구하는 목표가 제3자에게 실제적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인류애의 정치'를 실현하는 사람은 타인의 평등한 인간성을 보지 못하는 위치로 결코 퇴각하지 않는다.(95쪽)


   어떻게 보면 결혼의 미래는 앞으로도 예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결합하고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을 것이며, 때로는 갈라설 것이다. 다만 국가는 이와 관련된 결정을 낼 때 반드시 평등에 기초해야만 한다. 그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압도적인 국가의 법익이 걸려 있지 않는 한, 정부는 특정한 혜택이나 결혼의 존엄성이라는 의미의 표현으로부터 어떤 집단의 시민들도 배제시킬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동성커플을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완전히 포섭한다는 결정은 인종 간 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결정이나 여성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유권자로서, 또한 시민으로서 인정한 결정에 견줄 만큼 거대한 변화다. 이 모든 변화는 헌법이 보장하는 약속의 진정한 실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변화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인류애의 정치'에 따라, 우리는 더 이상 동성결혼을 전통적 결혼을 더럽히거나 타락시키는 이유로 보지 말아야 한다. 대신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간적 목적을 이해하고, 결국 이성애자들이 추구하는 목적과 동성애자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유사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동성결혼 금지는 인종간 결혼금지와 마찬가지로, 만인의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차별이다. (232~233쪽)


   '인류애의 정치'란 평등한 존엄성과 평등한 행복 추구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284쪽)


   결혼만큼 뜻 깊은 관계는 없다. 왜냐하면 결혼은 사랑,충실,헌신,희생과 가족이라는 최고의 이상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을 통해 결합함으로써 두 사람은 기존에 각각 존재했던 것보다 위대한 존재가 된다. 원고들의 일부가 이 사건에서 보여주듯, 결혼은 심지어 과거의 죽음을 이겨내는 사랑을 담고 있다. 이들 남성들과 여성들이 결혼의 이상을 무시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들을 오해하는 것이다. 원고들의 주장은 그들이 결혼의 이상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그토록 결혼의 이상을 깊이 존중하기에 그들 자신들도 결혼의 이상 속에서 충족을 구하고 있다. 그들의 바람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들 중 하나로부터 배제된 채 외로운 삶에 추방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다. 헌법은 이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한다.(300쪽,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인정 판결문 중에서, 게이법조회 번역 참조.) 




2015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오버거펠 대 호지스 사건에서 동성결혼 금지법 심리 사건에 있어 5대 4의 결정으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위법이며, 동성결혼이 가능한 주에서 공증된 동성결혼은 다른 모든 주에서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위키백과 참조)을 내려, 사실상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성결혼이 불법은 아니나 합법도 아니고 그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으며, 그에 대하여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불법은 아니지만 법 규정 자체가 없으니 혼인신고도 불가능하다. 



내 기억 속 최초의 커밍아웃이라면 당연히 홍석천 씨의 경우일 것이고 그 후 하리수 씨의 트랜스젠더 커밍아웃과 결혼이라는 뉴스를 접한 것이 불과 그 얼마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모'라는 말로 그를 비하하고 비난하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20 년이 넘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홍석천 씨는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나타나 요즘 다시 방송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사이 이태원에서 여러 음식점을 성공적으로 일궈내기도 했고 딸이 중학생이던 시절 그이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일부러 찾아가 오징어 먹물 파스타를 맛있게 먹고 오기도 했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 홍석천 씨가 가게에 나와 있었다. 우린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그때도 그가 게이라는 것에 반감이 없었고 그의 선택이니만큼 내가 그것을 판단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 인생 자기가 선택하는데 왜 남이 왈가왈부야?! 하는 생각을 했었다. 반대를 반대한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자신의 인생이니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선택과 판단은 온전히 자신의 몫인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뿐, 오히려 그 이유로 방송에서 퇴출되고 그의 부모님의 신상이 까발려지고 뭇매를 맞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고 속상했다. 홍석천 씨와 같은 사례들이 쌓이고 우리 사회도 좀 더 치열한 논의를 거쳐 다양성을 인정하고 법제화하는 그 날이 오기를 나도 두 눈 크게 뜨고 잘 지켜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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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세 자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288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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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삶을 실천하고자 했던 안톤 체호프의 삶의 경험이 녹아있는 단편 ‘아내‘에서의 나탈리야 가브릴로브나, 현실의 벽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을 찾아 주체적으로 살고자 애쓰는 ‘세 자매‘인 올가, 마샤, 이리나 모두 그녀들의 남편과 오빠를 앞서간 주인공들이다. 단편,희곡의 최고봉 체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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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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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의 더위를 기억한다. 기록된 수치상으로도 그렇고 체감상으로도 아마 가장 더운 여름이었을 거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그 기록은 올 여름이라도 다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재작년 여름, 작년 여름, 올 여름... 이런 더위는 그게 어느 해였는지 애써 어떤 사건과 결부되지 않는 한 기억하지 못할 한 해로 묻히겠지....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되는 해는  단연코 누가 뭐래도 '1994년 여름'이었다.  수치상으로도 그 해 여름은 정말 기록적인 폭염으로 남아있지 않았던가~~~!  '김일성이 죽던 해', 어떤 이들은 이렇게 기억을 할 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도 우리 현대사에 어마어마한 그 사건을 굳이 검색해 보지 않는 한 그것이 그 해 여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그 해 여름을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1994년 그 해 여름, 난 우리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심한 입덧으로 물조차도 삼키지 못한 채 방바닥과 일체인 듯 드러누워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3살 이었던 큰 아이는 거의 돌보지도 못한 채 방치되고 있던 수준이었다.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거의 먹지 못하고 출산 때까지 입덧 모드였는데 하필 최악의 더운 여름에 입덧이 시작이 되었으니 그 고통이야 말로 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다. 임신인 걸 인지하지 못하는데 내 몸은 벌써 기별을 보내준다. 바로 그 즉시 입덧이 시작되면서 거의 아무것도 삼키지를 못하고 토하고 먹은 것도 없이 내 속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만 고통이 그나마 멈추는?  문제는 내가 입덧임에도 거의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그때까지 정말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던 배추김치였다는 것인데. 이런 나의 어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시 어머님과 같이 살고 있을 때였는데 그 해 여름 기온이 너무 높아 배추를 비롯한 채소류의 작황이 좋지 못해 가격이 치솟았고, 평소 틈만 나면 각종 김치를 번갈아 담아주시던 어머님이 도저히 배추김치를 담그지 못하시겠단 말에 눈물 주르륵.... 어찌나 원망스럽고 서운하던지... 아니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싶게 그 서운함은 정말 잊히지도 않고 두고두고 내 가슴 속에 앙금이 되어 남았다. 어머님과의 트러블은  출산 후에도 예기치 못한 사태로 발전을 하였고  나는 꽤 오래 어머님을 미워하는 며느리 노릇을 했지 아마... 어머님과의 작은 틈들은 결국 다 메워지지 못하고 남았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시간이 지나니 당신 나름으로 나를 큰 며느리로서 존중하고자 애쓰셨던 그 마음을 이해할 만큼의 시간이 쌓여 그런가 그 어머님이 그립고 어머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질 때가 있더라는.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각자의 노력과 시간이 더해져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시간들이 이루어낸 결과일 것이다.   





성해나의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을 읽었다. 총 8편의 단편들을 하나 하나 읽다 보면 작품들이 보여주는 소재가 어느 지점에서 겹쳐지는 부분이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를 소재로 그 이해할 수도 없고 메워지지 않을 오해들만 쌓이는 관계들을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혹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만 남게 되는 관계들이라는 것을. 첫 단편 '언두'에서는 유수와 채팅 앱으로 만난 도호, 그리고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도호의 할머니 세 사람이 만들어 내는, 서로 이해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차이를 보여준다. 'OK, Boomer(나도 기성세대에 꼰대 소리 듣겠지만... 그래도 이 말은 참 볼 때마다 슬프다.ㅠ.ㅠ.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등장하는 상 꼰대 아버지가 이해된다는 건 아니다. 너무나도 가식적이고 자기 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아들의 친구들에게 날리는 "여긴 내 집이야" 같은 말은 정말 참아주기 힘들다. 아무 것도 수용하지 못하면서 수용하는 척하는 그 가식적인 행태를 보고 있자면 아들 세대와의 불화는 따논 당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이러면 결국 세상 혼자 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안쓰럽단 생각은 안든다!)'와 '괸당'에서도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차이가 이해되고 극복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 불화하는 세대간의 갈등을 부각시켜 보여줌으로써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소돔의 친밀한 혈육들'에서는 가족 내에서의 문제가 역사적인 차원으로까지 발전하는 양상을 띤다. 주인공은 대학 동창 오수의 조부 상수연(100세를 축하하는 잔치)에 홈 비디오 촬영을 의뢰 받는다. 서울 도심에 이런 고택이 있나 싶게 전통적인 일본식 목조 주택 형태의 3층 집은 잘 가꿔져 있었고 한국식과 서양식이 혼재된 내부 구조의 실내는 넓고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시대가 여러 번 바뀌면서 대물림 되어온 부의 격차는 나를 알게 모르게 주눅들게 하기 충분했다. 집안의 가보로 내려오는 검劍의 가치를 감별하기 위한 감별사도 초빙이 되었는데 감별사는 그 검劍이 조선 황실에서 제작된 사인검이 맞지만 조부의 바람대로 고종 황제의 하사품은 아니라는 판정을 내린다. "사료에 의하면 황실에서 보관하거나 종친이나 총신에게 하사한 사인검은 총 아홉 자루입니다. 그 중 병인년에 만들어진 사인검은 단 한 자루고요. 고종 3년에 만들어진 검인데, 그 검은 ... ... 유실 되었죠."(198쪽) 1902년에 황실에서 유실된 사인 참사검! 주칠 십이각상, 익선관과 함께 일제에 귀속되었다가 이후 총독부 관리 몇 몇에게 기념으로 내려진 검... 조부가 가진 검이 바로 그러한 검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건 고종이 하사하신 검이 아니라, 총독이 ...... 친일을 한 관리들에게 뇌사한 검이다, 이 말입니다." (198쪽) 친일을 한 후손이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모인 가족들은 그것이 그저 "조상의 과오"일뿐이며  "우리가 이룩한 건 선대와는 무관"(201쪽)하다는 말로써 오늘 날 이룬 부의 원천이 "선친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 부끄러움, 죄의식에 대해 말하는 감별사의 말을 막아버린다. 캠코더로 그 장면을 모두 찍고 있던 나도 오수의 요청으로 그 장면을 깔끔하게 편집하고 삭제함으로써, 그리고 감별사는 흔적도 없이 어느 새 사라진 반면 나는 그들과 음식을 먹고 끝까지 남음으로서 그들에 동조하는 자세를 취한다. 힘없는 개인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거대 세력에 충성하고 기생하는 삶도 있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오래 살아남아 역사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간 무수한 개인의 역사는 누가 기록할까 하는 생각에 착잡함이 밀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불화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불통의 세대 갈등만을 다룬 소설집이었다면 내가 별 다섯을 줄리 만무. 8편의 단편들 중에서 '화양', 작가의 등단작인 '오즈', 그리고 마지막 단편인 '김일성이 죽던 해' 이 세 작품은 특히, 여성들 간의 연대와 소통을 보여주는 작품들로써 기억에 깊이 남을 거 같다. '화양'에서 젊은 여성 '경'은 노년의 여성인 '이목'과 만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의 등단작인 '오즈'와도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8번에 걸친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아무런 의욕도 목표도 없이 아버지가 있는 고향에 내려와 있던 '경'은 아버지와 언니의 눈치를 보며 마음 둘 곳을 못 찾는다. 우연히 아버지를 피해 잠시 벗어나고자 갔던 화양극장에서 지나간 영화를 보다 '이목'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뜨거운 음식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이목'이 젊은 시절 스턴트우먼으로 활동했던 배우였으며 지금은 멀리 떠나있는 한 여인을 오래 사랑해왔다는 것, 지금은 뤼미에르(고양이, '빛'이라는 멋진 뜻을 가지고 있음)를 키우며 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녀의 사랑은 그 시절 사람들로부터 이해받기 힘들었고, 여자인데 '바지 씨(84쪽)"로도 불리고 사랑을 '러브, 그거'라는 말로 폄훼당하지만 경은 '이목'의 사랑인 '연수'를 떠올리며 둘의 사랑을 가만히 상상해본다. 특히 이 단편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은 이런 말들... 이목과 경이 역 근처 복집에 들러 따뜻한 복국을 먹는 장면들, "미나리부터 먹고, 그 뒤에 복을 건져 먹어요."(74쪽) 이런 말, "둘 다 새알심을 듬뿍 넣은 팥죽을 좋아해서 우리는 동지마다 그걸 끓여 먹곤 했어요. 이번에는 경도 와요. 우리 같이 새알심 넣은 팥죽을 먹어요.(79쪽), 멀리 있던 '연수'가 찾아온 날 "이목씨는 경에게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경의 얇은 옷차림이 마음에 걸린다고. 눈이 오니 따뜻하게 입고 집으로 돌아가라며."(82쪽) 이런 문장들... 이 단편집은 책의 제목이 흔히 하듯 단편 중의 한 작품을 표제작으로 하여 제목을 지은 것이 아니어서 의외였는데 책의 제목이 이 단편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가 생각하게 되었다. "이목씨는 말했다. 어둠을 걷으면 또다른 어둠이 있을 거라 여기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어둠을 걷으면 그 안에는 빛이 분명 있다고. 나는 이제 살아내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견디지 않고 받아들이면서."(92쪽) 이 말은 경에게도 많은 위로의 언어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 좋았다. 이목과 경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노년과 청년 세대의 여성이지만 두 사람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나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으려는 소통과 화해의 미학이 아름다웠고, 작가가 그려낸 따뜻함을 선사하는 문장들을 읽어가면서 남게 된 그 이미지들은 오래 기억하게 될 거 같다. 지금 제철을 맞은 청도 미나리가 새파랗고 향긋하게 입맛을 돋우며 끓고 있는 복국과 그 음식을 나누는 이목씨와 경의 영혼의 대화들, 그리고 새알심 듬뿍 넣은 달콤한 팥죽이 주는 이미지가 겨울이라는 계절과 어우러져 말로 다 할 수 없는 내밀한 감정을 보여주는 이 '화양'이 다른 다 단편들보다 먼저 읽어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나이 차가 나지만 그것을 권위의 상징으로 이용하지 않고 존대함으로써 동등한 개인으로 대하는 점, 표현 하나하나 따뜻함이 묻어나는 이목씨의 배려 덕분에 경은 서서히 무기력에서 벗어나 이목씨처럼 살아가고자 애쓰는 현재를 보여주어 좋았다.


역시 '오즈'에서도 젊은 세대인 나와  자신을 '오즈'라고 불러 달라는 할머니의 동거를 시작으로 처음에는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 한집에서 데면데면 살지만 어느 순간 '타투'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상처난 몸을 보이면서 살아온 흔적들을 서로 보듬는 과정을 고통스러우면서도 '화양'과는 다른 분위기로 보여준다. 상처난 마음을 감추기 위하여 압화에 몰두하며 꾹꾹 눌러담는 마음처럼 정성을 다하는 할머니와 상처난 몸을 감추기 위하여 타투를 시작한 젊은 나의 이야기는 '화양'의 이목씨와 경의 관계처럼 서로 동등함을 보여준다. 괴팍하고 말수 없는 무뚝뚝한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의 몸에 남은 말도 안되게 슬픈 일본어로 새겨진 똥 같은 문신들을, 할머니가 압화로 만든 아름다운 꽃들로 채워나가는 '나' 의 연대는 진정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깊이 공감이 되었던 작품은 '김일성이 죽던 해'라고 할 수 있다. 딸과 엄마의 불화, 그리고 1994년 여름의 임신 사실들이 내가 더 공감하게 되는 포인트가 되었다는 것은 뭐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김일성이 죽던 해'의 화자인 

'나'는 신춘문에 당선으로 등단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관점에 대한 확신이 없다. '김해원 소설은 기성 문학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듣고 나서는 더욱. 엄마와의 불협화음은 '나'의 묹제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지지 못하는 자신감은 엄마의 영향도 무시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매사에 말수가 적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고 대화가 되지 않는 엄마와의 관계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일상의 세세함까지 공유하는 모녀 사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관계에서 기인하는 공허함은 '나'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보여주는데 '나'를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은 일방적인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엄마가 작가인 나에게 다이어리에 적어 건네는 글 '내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라는 큰 제목을 단, '김일성이 죽던 해'로 시작되는 긴글을 읽고 난 후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받기를 원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엄마의 글은 '나'가 그녀의 뱃속에 자리잡은 1994년 여름으로부터 시작된다. "김일성이 죽던 해, 그해 더위는 지금도 피부로 느껴질만큼 선연하다. 더위를 타지 않는 나도 꽝꽝 얼린 사골 팩을 이마며 목을 대야 겨우 잠들 정도였으니까. 징그러울 만큼 무더운 날에 북녘의 지도자가 죽었다기에 일사병으로 죽은 것 아니냐고 여공들이 속닥이던 것도 기억난다. 그날의 기묘한 망연함도."(363쪽) 여공이란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엄마는 '나'를 임신하고도 그 더운 1994년 여름, 공장 노동자로 일을 하고 있었고, 그 곳에서 만난 상희 언니, 문덕과 노동자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고, 당시 유행하던 '나우누리'에 올려 놓고 자신들의 처지를 글로 표현하던 시절들, 그리고 그 모임에서도 가장 소극적이었고 현실을 피해 한 발짝 물러나 있었던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러던 엄마가 '나'를 낳은 후 비로소 자신의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을. 이 후 다이어리를 건네받고 가려는 엄마에게 "밥 먹고 가."(393쪽)라고 한다든지 엄마와 티 테이블에 마주앉아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 엄마의 꿈을 묻는 장면, 엄마가 하던 대로 사과 껍질을 먹는 내가 "엄마 딸이잖아."(394쪽)하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차올라와 찔끔 눈물이 나기도 했다. 지금도 살짝 어긋나는 대화를 하지만 대화는 하는, 이젠 크게 싸우고 몇 년씩 얼굴 안보고 살지는 않는, 하지만 우리 딸과 나 같은 세세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는 결코 될 수 없을 거 같은 나와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나서.





올 봄에 엄마와 해외 여행을 계획 했었다. 엄마가 가고픈 곳이 동유럽이어서 나는 이미 다녀온 곳이라 이번엔 안가고 엄마와 친구 두 분이 모여 세 분이 같이 가시기로 했다. 나와의 여행은 자연스레 내년 봄, '튀르키예' 여행을 함께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김일성이 죽던 해'의 딸 해연과 엄마 이순이씨처럼 우리도 그닥 잘 맞는 엄마와 딸은 아니다. 세대간의 차이도 분명하고 엄마나 나나 서로 굽힐 생각이 없는 채로 서로 피하는 대화 주제는 입에 올리지를 않으니 지금은 평온한 듯 하지만 나는 솔직히 언제 엄마가 또 예전처엄 부르르 떨며 자신의 주장에 핏대를 올릴까 싶어 걱정한다. 그런 엄마와의 여행이라니... 동생은 극구... 말린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엄마와 딸이다. 모녀지간에도 이리 어려운 것이 이해, 화해, 포용, 연대일진데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연대와 화합, 이해가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성해나의 <빛을 걷으면 빛> 중에서도 '화양', '오즈', '당춘', 그리고 '김일성이 죽던 해'를 권해주고 싶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기를...  아무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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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3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하수 2024-03-13 20:18   좋아요 1 | URL
1994년의 그 여름을 기억하시는군요! 큰애의 몸에 땀띠 돋아서 욕실에 담가놓으면 뛰어나오고 엄마 몰래 비 오는날 집압 물웅덩이에서 물장구치고 놀던 모습 .. 근데 엄만 아이를 제대로 케어할 수 없는 상태고... 그때의 막막함은 말도 못해요. 그때만큼 시엄니와 친정엄마가 야속한 적은 진짜 없었던거 같은 그 절망감 때문에 울던 날들이요..
지금도 아리네요 ...
전 시어머니가 일단 저에 대한 곡해나 억하심정은 일도 없단 것이 느껴졌던 시간이었거든요. 거기다 수술 후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더 아쉬움이 남았죠.
아직도 ‘증‘이 5배시라니... 제 마음으론 이해가 되고도 남죠. 밉고 야속하던 시간들도 많았으니까요. 어찌하면 며느리의 그런 감정조차 지난 일이지.. 옛얘기하는 시간이 올 수 있을지 정말 어려운 문제네요.
 
이선 프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7
이디스 워튼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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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의무(아내 지나)와 개인의 자유(매티)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선 프롬.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기나 했을까. 매티를 만나 비로소 자신의 삶에 대한 자각을 하지만 아내를 버릴 만큼 파렴치한도 될 수 없었던... 그래서 죽음과도 같은 삶을 인내함으로써 결국엔 함몰되어버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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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3-08 0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지요? 저도 참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였나, 거기 보면 사람들은 항상 새것을 탐내고 헌것을 싫어하는데, 새것도 결국 헌것이 된다는 얘기가 나오거든요. 이선프롬, 달라질 줄 알았는데 다시 원점으로.. ㅋ ㅑ ~

은하수 2024-03-08 08:59   좋아요 0 | URL
진정 너무 좋았어요. 별 5개 아깝지 않았어요. 이디스 워튼의 주인공들은 왜 하나같이 제 마음을 쓰리게 만드는지... 정말 눈물 나지 뭐예요..흑... 새것도 헌 것이 된다는 얘기 하시니 전 새것도 좋지만 역시 헌것이 되어야 편해지던걸요. 이선 프롬은... 달라질, 달라지기 힘들단 걸 알아서 더 아프네요.
 
1945년 해방 직후사 - 현대 한국의 원형
정병준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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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직후 건준과 한민당, 총독부, 그리고 미군정의 권력 다툼. 암중모색, 반탁운동 등의 과정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역사이지만 우린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세대이므로 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자료를 바탕으로 기술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등장인물처럼 생각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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