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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 - 새로운 길을 낸 여성들의 날카로우면서도 우아한 세계
이유진 지음 / 나무연필 / 2021년 8월
평점 :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 이유진, 나무연필, 2021
나처럼 한정적인 독서(주로 소설, 에세이를 읽는)를 하는 사람이라면 독서의 지평을 넓히는 책(특히 페미니즘, 여성학)으로는 꽤 도움이 될 책이다. 이미 알고 있는 길이지만 잠시 잠깐 길을 잃은 사람(여성학에 대해 좀 아시는 분)보다 전혀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데 길이 보이지 않을 때(나 같은 사람) 저 멀리서 보이는 '등불', 혹은 '등대처럼'이라고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는 그렇다. 전혀 모르는 길을 가는데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할 책이 되었다. 소설이나 에세이 외에 요즘 나의 주된 관심사는 페미니즘. 그런데 이쪽은 정말 1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적인 여자 무리"들의 이름은 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정도의 정보는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이 책은 '1장 어떤 여자들에 대하여:지성은 여성의 것', '2장 어떤 여자들을 위하여:말,몸,피,신,그리고 페미니즘'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2장 목차만 훒어도 페미니즘의 역사를 약간이나마 경험할 수 있다. 일단 이 책은 반납을 해야하니까 1장에 등장하는, 작가가 말하는 우리 "지적인 여자 무리"들의 이름이라도 남겨놔야 한다.
나혜석, 하야시 후미코, 버지니아 울프/연단에 오를 권리를 위해 싸우다가 단두대에 오른 올랭프 드 구주/말이 필요없는 여성 대법관이자 시대의 아이콘이 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시몬 베유/냉소적, 열렬한, 야망적이기까지 한 수전 손택/<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의 작가 에이드리언 리치/클라라 슈만/거다 러너/수전 브라운 밀러/마사 누스바움/바버라 에런라이크/록산 게이/멜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등이다.
처음 읽을 땐 많은 것 같았는데 막상 적고 보니 그리 많은 거 같지 않다. 그런데 그들의 책까지 적으면 목록이 어마무시하게 늘어난다. 뭐부터 읽어야할지 벌써 막막하다. 읽어야 할 책은 늘 끝이 없다 정말...!(머리 나빠서 금방 잊는다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
1장에 등장하는 페미니스트 작가들의 책들도 소개되어 있는데 당연히 기록해 두었다(사진으로 찍어서).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참 큰일이다. 2장에서는 새로운 책들이 또 대거 등장하니 말이다. 2장은 좀 더 범위를 넓혀서 다양한 영역별 페미니즘에 대한 소개라고 할 수 있다. 혐오 표현, 사고 파는 감정 노동으로서의 사랑, 한국 사회 담론전의 최전선에 있는 여성의 몸과 문화 정치학의 측면에서 재 사유하게 만드는 월경, 질병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을 겪는 이와 돌보는 이 사이의 목소리들을 기록한 여러 저작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남성 중심적 권위에 맞서는 여성 종교인들, 특히 신학과 불교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을 실현하려한 여성들의 작품들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생 인류의 기원으로부터 지금까지 "여자들을 위한 세계는 없었다. 그 가운데서 읽고 쓰고 나아간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금기와 금지를 넘어 읽으며 썼고 닫힌 문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린 이들이었다는 것이" 이 책에 실린 등장인물들의 하나의 공통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것이 여성일 수도 있고 남성일 수도 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고 말한 록산 게이처럼 나도 한발짝 앞으로 내딛어 보고 싶어진다. 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괜찮을 거라고 나를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