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필라바스투의 동문 (주1)
- 거기에서 당신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옆에서 얻을 수는 없는 것이었나요? (주2)
빛나는 신들은 신을 명상한다 메마른 강이 흐르
는 그늘의 그물을 쓰고 사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수한 벽돌들이 밤바다의 성좌처럼 흩어져 있다
(저렇게 무거운 세계가 이토록 가뿐하게 떠 있을 수
있다니) 벽돌 속으로 엉킨 실타래처럼 갈래지어져
있는 소로, 모든 것을 버려본 적이 있는 정처 없는 자
의 운명은 그렇게 상처입은 끝없는 길들을, 오래도록
노래하며 가야 한다 비밀한 길들은 발자국을 간직하지
않는다 사내의 발바닥에도 몇 천분의 일 지도 같은
미세한 길들이 사방으로 팔방으로 나 있었다 필시,
객사의 운명이려니 - 신성한 강도 얼른 몸을 바꿔 타락
을 드러내보이고 저 강변의 보리수는 서서 죽었다 이제
나의 집은 여기이다
(내가 버린 것들이 이렇게 무성하구나)
다시 태어난다면 숲을 이루는 저 바람으로 태어나
리라 나 저 바람처럼 몸이 없는 마음으로만 떠돌다가
나, 또 몸의 울음으로 잉잉 전신주도 울리고, 다시는
저 너머를 꿈꾸지 않으리 (네가 나를 견디었구나) 온
몸에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고 아름다운 음악과 산해
진미를 맛보며 마약과 섹스로 아아, 이 즐거운 생을
노래한다 폐허, 폐허, 썩은 연못과 잡풀에 가려진 길
들 : 당신이 없는 밤
무너진 길들과 서로 다른 은하들이 충돌하여 우주
의 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뜨거운 별들이 서서히 식고
나는 불의 온도 속에서 밖을 보았다 (어머니 또 혼자
계신다) 몸에 따르는 자 양세를 얻으리라 흰 베옷을
입은 사내가 저 메마른 강을 건너는 마음의 무늬들,
무늬들
내 정든 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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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부다의 탄생지인 룸비니 근처 석가족의 성. 부다는 그 모든 권세와 아름다운 부인을 버리고 오직 자기 가슴속의 욕망만을 간직한 채 이 카필라바스투의 동쪽 문으로 출가한다. 성은 피폐하고 한 인간의 욕망은 유구하다.
주2 : 이윽고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 카필라 성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부인 아유다라가 부다에게 던진 질문. 경전은 아무 대답이 없는 부다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내 옆에서의 깨달음, 출세간보다는 세속에서의 깨달음을 일깨우고 있다. 아마도 부다는 이 질문을 통하고서야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었을 터
문학과지성 시인선 208 함성호 시집 <聖 타즈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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