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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은 자폐증 환자다. 역시 그렇지만 호프만의 열연은 빛났다. 영화는 아카데미 무슨무슨 상을 타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극중에서 호프만은 전화번호부 한권을 모두 외우는 놀라운 기억력을 보여준다. 룸서비스로 들어온 호텔 여종업원 명찰을 보고 전화번호를 알아낸다. 여종업원이 깜짝놀라 호들갑을 떨던 장면도 떠오른다. 식당에서 호프만은 바닥에 떨어진 한 무더기의 이수씨개 수를 단 몇초만에 정확하게 알아 맞춘다. (이 이야기는 본 책에도 거의 그대로 나온다. p368 탁자에 있던 성냥갑이 떨어지면서 그 안의 성냥이 쏟아졌을 때 쌍둥이 형제는 동시에 “111”이라고 외쳤다.)
호프만의 껄렁한 동생 탐크루즈는 백치천재인 형을 돈벌이에 이용한다. 호프만은 카지노의 트럼프카드 놀음에서 카드를 모두 읽어내어 천금을 얻기도 한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파란이 굽이치는 여행길에서 껄렁한 양아치 동생은 자폐증 형에게 찐득한 형제애를 느끼게 된다는 뭐 그런 결론이다. 보나마나 결론은 항상 버킹검이겠지만 이 영화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었던 것 같다. 포스터만 봐도 호프만이 어딘가 약간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호프만은 무얼 하고 있나 그를 극장에서 본 지가 꽤 된 것 같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33305113193170.jpg)
2.
박경철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보면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시골마을에 치매 할매가 한 분 살고 있었다. 젊은 아들 부부가 할매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들에게는 깐알라(갓 태어난 아기의 경상도 사투리다.)가 하나 있었다. 촌이라서 변변한 수용시설도 없고 물론 부부에게는 노인을 병원에 보낼 돈도 없다. 그럭저럭 같이 살아 가고 있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할매는 정신이 잠깐 잠깐 나갔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늙은 몸은 잠깐잠깐 집을 나갔다가 잘 찾아 돌아오지 못하기도 했다. 멀쩡할 때도 많았다.
젊은 부부가 깐알라를 놔두고 잠깐 밭에 일을 보러 나갔는데, 젊은 부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할매가 반갑게 맞으며 하는 말이 '얘들아 내가 너희들 줄려고 삼계탕을 끓여 놓았다'는 것이다. 노릿한 냄새가 진동하는데 불길한 예감에 부엌에 들어가 솥뚜껑을 열어본 부부는 그야말로 기절초풍을 하고 말았다. 그들의 깐알라가 솥안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부글부글 끓는 물에 뚱뚱불어서 말이다. 나중에 병원에서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깐알라의 사체를 앞에 둔 의사나 간호사나 모두 너무나도 비극적인 이 상황에 그야말로 망연자실했다고 책은 전하고 있다. 할매는 그 후 자살로 얼마남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3.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효웅(아니 간웅이라 했던가)이라는 조조는 젊은 시절 꽤나 한량 짓도 하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조조도 한때는 근왕의 깃발아래 한 황실에 충성을 맹세하였고, 황건적의 난 때에는 다 자빠져가는 황실을 위해 의로운 병사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야심가들은 틈을 놓치지 않는 법이고 역시 난세는 군웅들이 할거하기 마련이다. 조조가 위나라를 세우는 위업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반대자들이나 옛날 권력들은 조용히 사라져 줘야했으나 그들이 조용히 사라져줄리는 만고에 없을 것이었고 따라서 억울한 죽음이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사 삼국지가 아닌 삼국지 '연의'에는 조조가 억울하게 죽은 원귀들에 시달리다 정신착란을 일으켜 결국 사망하신 걸로 나와 있다. 전쟁으로 날이 새고 지던 그 어느 시대에나 수만 혹은 수십만의 인명을 죽인 전쟁영웅들이 수다하고, 권력투쟁에서 옛 권력을 숙청한 혁명가나 성공한 모반자들이 또 무수하건데 유독 조조만이 죄책감에 시달려 발광을 했겠나 하는 이야기다. 원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뇌신경 손상을 입은 것이다. 색스의 책을 보다가 문득 조조 생각도 났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33305113193169.jpg)
4.
뇌신경에 손상을 입어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임상사례 들을 모아놓은 본 책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조금은 희극적이고 덜 심각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어떤 이야기는 조금 따뜻한 느낌이고 어느 이야기는 그런대로 견딜만한 것이었다.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의 귓가에 이제는 거의 잊어버린 어린시절의 노랫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것이라든지. 신경매독의 재발로 80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활기찬 생활을 하게 된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라든지, 손자를 씨암탉으로 착각한 우리나라 할머니에 비하자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얼마나 애교적이고, 또 그의 아내를 위해서도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인간 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는 수많은 학자들이 오랜 세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많은 부분이 신비에 쌓여있고 두꺼운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 같다. 과학이 뇌의 구조와 기능을 속속들이 밝혀내어 뇌손상으로 기이한 병에 걸려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항상 그렇듯이 그 과학기술이 결국은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 자체에 대하여 심각하고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생명공학의 발전에 대한 일부의 염려와 비슷한 생각이 든다.